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19
엎질러진 물
테오라는 2년 차밖에 안 된 아이돌이지만, 처음부터 서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데뷔할 때부터 웬만한 아이돌은 쌈 싸 먹을 만한 실력파였고, 슬럼프가 뭔지도 모르는 것처럼 막힘 없이 성장해나갔다.
본인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몰라도 적어도 팬들과 대중의 눈엔 타고난 스타였다. 본업은 말할 것도 없고 예능이면 예능, 연기면 연기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특히 외모는 저절로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물론 지금도 배우 못지않지만, 멤버들이 전부 성인이 되고 성숙미가 생겨서 섹시 컨셉을 소화할 나이가 된다면 얼마나 압도적일지.
굳이 말과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코티지라면 공감할 사항이었다.
“아무튼 인기 아이돌이 될 조건은 다 갖췄다니까. 애들 성격 봐서는 마의 7년을 넘어서 장수돌이 될 거야.”
“얼씨구?”
“사고 안 치는 인기 아이돌이 오래 못 갈 이유가 없잖아?”
“모를 일이지. 재계약 안 하면 끝 아냐?”
“아니야! 설령 다른 회사로 흩어지더라도 활동은 같이 할 거라구!”
속을 살살 긁는 친구 때문에 잠깐 열이 올라왔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커다란 TV 화면을 통해 곧 조선 꽃 선비로 분장한 테오라 멤버들을 볼 수 있으니까!
광고가 끝난 후에도 말문을 열려는 친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조용해. 언제 테오라가 나올지 몰라!”
억지로 손을 자기 입에서 떼어낸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밤 중에 커피 마시게?”
“봐야 할 자료가 있어서.”
“너희 회사는 진짜 월급 주는 만큼 뽑아 먹는다, 정말.”
집에 와서도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친구를 안쓰럽게 보다가 왠지 테오라가 나올 것 같은 예감에 고개를 다시 복귀시켰다.
“얼른 와! 자료 보기 전에 눈이라도 정화 시켜! 울 애기들 얼굴 보면 뻑뻑하던 눈도 시원해질 거야!”
“걔네가 무슨 루테인이야? 네 말만 들으면 종합영양제가 따로 없어. 걔들 노래가 좋은 건 인정하는데 그 정돈 아니잖아?”
“왜 아냐? 플라시보 효과 몰라?”
“갖다 붙이긴.”
“헤헤. 얼른 옆에 앉아.”
소파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더니 친구가 물방울이 맺힌 유리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옆에 앉았다.
“오, 나온다.”
VOD 나오면 고화질로 소장하기로 하고 TV에 눈을 고정시켰다. 드라마 줄거리만 찾아서 읽어봤지만, 조선판 아이돌로 분장한 애들을 보는 데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샤랄라 하는 진부한 배경음악과 함께 테오라가 저 멀리에서 걸어왔다.
훤칠한 선비 무리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똑바로 걸어왔다.
한복이, 갓이 이렇게 아름다운 의상이었나? 한복 천이 움직일 때마다 사르륵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겹겹의 한복은 오묘하게 아름다운 색감을 만들어냈다. 각자 입은 한복 색에 맞춘 갓끈이 갸름한 턱선을 강조했다.
애들의 독보적인 외모 탓에 나머지 단역들이 자연스럽게 쩌리가 되어버렸다.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테오라 멤버들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파스텔 톤의 한복이 멋스러운데다 고급스러워서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입을 수도 없는 남자 한복이건만 소장하고 싶어졌다.
‘아우, 음악방송이었으면 카메라 너머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을 텐데!’
단역들에게 자연스럽게 아는 척을 하는 모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머어머, 화 공자들이다!]“크큭, 화 공자래. 꽃 화라서 화 공자야?”
“쉿!”
[우리를 기다리셨소?]묵직하게 내려앉은 서혼의 목소리는 사극 톤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특별 출연이 아니라 주·조연급 등장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역시 아역배우의 짬이 어디 가지 않았다.
[대감댁 아씨가 상사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들으셨소?] [들었지요.] [어찌 책임질 셈이오. 애먼 아가씨 숨이 다 넘어가게 생겼소!]웅성대던 엑스트라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상사병 걸리게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게 도리라면 나는!’
그 많은 코티지들은 또 어쩌고! 그런 법도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다행이기도 했다.
[우리 중에 누구한테 반한 게요? 그걸 알려주면 병문안이라도 보내 보겠소. 내 화 공자의 우두머리로서 힘써볼 테니 말해보시오.]남초록은 드라마 속에서도 리더인 모양이다. 에메랄드색의 고운 비단이 자기 것처럼 잘 어울렸다.
부잣집 한량이라는 게 비주얼로 이해됐다.
[그것이….] [그것이?] [한 명이 아니라….] [한 명이 아니라니. 혹여 우리 전부라도 된단 말이오?] [그, 그렇다고 합니다.] [어허!]헛기침하는 오란은 귀하게 자란 종갓집 도련님같이 귀여웠다. 외모만 보면 형들 사이에서 예쁨 받는 동생처럼 보였다.
[하늘이 내려준 이 아름다움을 어찌하랴.]멋들어지게 한탄한 함이원이 스냅 한 번으로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렸다. 난이 그려진 부채 너머로 보이는 속눈썹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자신이 경국지색이라도 된 듯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는 게 화면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와, 다른 멤버도 아니고 함이원이? 자기가 잘생기고 예쁜지 실감 못 하는 그 함이원이?’
그 뒤에 짧게 대화가 오갔는데 테오라가 나오는 장면이 지나가자 대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알찬 감상 시간이었다.”
“쓸데없는 스토리에 얼굴 자랑이 전부였는데도?”
“그러니까 알찼지!”
연기 못해도 팬심으로 특별 출연은 본 방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테오라 멤버들 중 아무도 발 연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보람찬 감상 시간이 됐다.
아마도 서혼이 연기 선생님이 되어서 엄하게 가르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재능이 받쳐줘야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오늘의 MVP는 단연 함이원이었다.
“핑크색 한복 입은 멤버 어땠어?”
“왕자병 걸린 걔? 그 외모면 왕자병 걸렸어도 욕할 순 없겠다 싶던데.”
친구의 솔직한 감상평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으?학학!”
“이상한 소리로 웃지 좀 마. 그렇게 웃으면 바보 같아.”
“아?학! 웃기잖아! 테오라 멤버들 중에 자기 잘생긴 줄 모르는 멤버가 딱 한 명 있는데 네가 말한 걔거든.”
“…뭐? 눈깔에 이상 있대? 눈이 멀쩡하게 달렸으면 모를 수가 없는데. 컨셉질 아님?”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 오해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실제고, 본래 함이원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하면 차라리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데뷔 초부터, 아니지, 어릴 때부터 그랬대. 그게 컨셉이라고 하면 무서워지는데?”
함이원은 고등학교 때 갑자기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돼서 바로 하눌에서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이 됐다고 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돌이 될 생각이 없을 때부터 자기 외모에 자각이 없는 척해 왔다는 의미. 그렇다면 정말 소름 끼치는 연기력이고 의지력일 것이다.
“미적 감각에 문제라도?”
“다른 멤버들 잘생겼다고 하는 거 들으면 그렇지도 않아.”
“걘 뭐가 문제래? 겸손도 정도를 넘어서면 기만인데. 내가 저런 얼굴로 태어났어 봐라. 남녀노소 안 가리고 다 꼬셔서 희대의 카사노바가 됐을 거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겠지.”
“으??! 넌 그러고도 남지.”
자기의 장점을 잘 알고 그걸 갈고닦아서 경쟁력으로 삼는 친구였다. 이번 생에 친구의 장점은 똑똑한 머리였고, 그걸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최연소 팀장이 돼서 잘 나가고 있었다.
“답답한 놈이네. ‘나는 잘생겼다’ 하루에 백번씩 외치게 해야 돼.”
“함이원 팬들이 하는 말 똑같이 하고 있어, 너.”
함이원 팬들 절반은 어떻게 자기가 예쁘게 잘생긴 걸 모를 수가 있냐며 속 터져 했다, 나머지 절반은 그게 매력이라면서 천연기념물처럼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양쪽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는 데다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해서 결론이 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걔가 자기 입으로 ‘저 잘생겼어요’라고 할 때도 있긴 한데 누가 봐도 진심 아니거든.”
“어이없네. 저런 얼굴이면 어릴 때부터 지겹게 칭찬 들어서 이제는 코웃음으로 넘길 시긴데.”
“그러니까. 팬들한테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야.”
눈으로, 머리로 잘생김의 기준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걸 자신에게 적용하는 과정에 무슨 오류가 생긴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었다.
자기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이쯤 되면 치료 불가능한 오류 같기도 하고? 함이원-증후군 어때?” “그럴듯하네.”
두 친구와 마찬가지로 테오라가 특별 출연한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현실 세계와 인터넷 세계를 가리지 않고.
당연히 함이원의 그 짧고 강렬한 대사와 아이러니한 왕자병 연기는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움짤로 박제되어 널리 널리 퍼져갔다.
* * *
하루하루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특별 출연했던 퓨전 사극 드라마가 방영됐다. 모니터링 한다는 핑계로 멤버들과 다 같이 모여서 봤는데 특별한 점은 없었다.
감독님이 테오라 등장 장면에 온갖 효과를 덕지덕지 발랐다는 점만 뺀다면. 주연보다도 더 뽀샤시하게 나오질 않나, 슬로우 모션을 걸지 않나….
감독님이 단단히 벼르셨다고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딱 하루, 짧게 촬영해서 출연료가 그리 높지는 않았을 텐데…? 여섯 명이라 많았으려나?
감독님의 노력 때문인지 다행히 시청률이 잘 나왔다. 본 방이 끝나고 전화 통화를 잠깐 했었는데 나는 연기를 제대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들었다.
제일 자신 없는 연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감독님께 칭찬을 들은 걸 보면 서혼 형이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알 수 있었다.
서혼 형의 지시대로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했을 뿐이었다. 운동 지능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했다.
“함이원, 넌 그 얼굴로 연기 안 할 거냐?”
“연기엔 소질이 없는 거 같아.”
“왜. 곧잘 하던데.”
“이번에 봤잖아. 비중 큰 역할이라도 맡으면 혼이 형이 매 씬마다 표정이랑 동작 하나하나 다 지정해줘야 할걸?”
“그것도 안 되는 사람 천지야. 그리고 서혼 형이면 기꺼이 도와줄 텐데.”
서혼 형이라면 자기 일도 제쳐두고 도와주겠지. 무대 위의 표정 연기나 이번처럼 짧은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연기에 욕심이 생기진 않았다.
“이원이는 음악이 더 재밌나 봐. 연기 쪽으로도 재능 있는데. 내가 표정이나 습관 같은 걸 하나하나 알려준다고 해도 그걸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동의. 연기 잘하던데? 이원.”
“지온….”
“나 혼자 생각이 아니라, 이거 봐.”
지온이 내미는 휴대폰엔 드라마 속에서 내가 얼토당토않은 대사를 뱉는 장면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이게 뭐….”
“나도 봤어! 내가 장담하는데 움짤 백 퍼센트 유행해!”
내가 나오는 움짤이 온갖 곳으로 퍼져나간다고? 그것도 하필이면 치명적인 척하는 재수 없는 모습이…?
“…막을 순 없어?”
“왜 막아? 이게 밈이 되면 인지도도 미친 듯이 올라갈 텐데!”
아이돌인 내게 인지도는 중요한 문제지만 하필 왜 저런 걸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유쾌하잖아!”
“좋기만 하진 않겠지만, 이미 시작됐어. 단념하는 편이 속 편할걸.”
걷잡을 수 없는 급류라는 게 초록 형의 설명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대사를 억지로 나한테 시킬 때 끝까지 거부했어야 했는데!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