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8
현재진행형
[루카! 다른 사람 작업실에서 빌붙겠다는 얘기를 잘도! 왜 멀쩡한 숙소를 놔두고 왜 여기서 지내겠다는 거야? 뻔뻔하게 구는 건 나한테만 해!]매니저님의 불호령에 루카의 목이 놀란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그 와중에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아예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다.
[같이 일하는 동안 내내 여기서 먹고 자겠다는 뜻은 아니죠? 침대도 없어서 지내기 불편할 텐데요.]게다가 나는 빠질 수 없는 스케줄도 있어서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로로 혼자 작업실에 남겨둬야 한다는 소린데….
[에이~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내니 혼자 쓰게 둘 순 없지. 가끔 느낌 와서 여기서 끊기 아쉬울 때만?]그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에서 선율을 충분히 숙성한 후에 내놓는 편. 로티플로의 작업 스타일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작업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터다.
로티플로 같은 감각적인 타입은 번뜩이는 영감으로 순식간에 결과물을 뽑아내곤 하니까.
하루에 조금씩 긴 기간 동안 협업하는 것보단 시간을 밀도 있게 써서 후다닥 끝나는 게 나을지도?
[좋아요. 크게 어지럽히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저는 숙소로 꼬박꼬박 돌아갈 거니까 알아두고요.]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은 숙소에서 잔다는 건 우리 그룹의 암묵적인 규칙. 늦게 들어가는 건 봐줘도 무단외박을 했다간 멤버 다섯 명한테 돌아가면서 혼날 일이었다.
[이원 씨가 동의하니 더 잔소리는 안 하겠지만, 루카 너 예의 바르게 굴어.] [예에~ 알겠어요, 내니!]매니저님은 우리 둘이서 편하게 일하라면서 자리를 떴다.
지온이 조합해준 달달하고 향긋한 특제 허브티를 로티플로 몫으로 차갑게 해서 건넸다. 로로는 그 웰컴티를 원샷 해버리더니 손뼉을 쳐 소리를 냈다.
짝.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이원, 다른 가수랑 콜라보 해본 적 있어?] [시상식에서 합동 무대를 한 적은 있는데, 곡 작업을 설계단계부터 협업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로로는요?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되나요?] [정해진 순서가 꼭 있어야 해?]질문이 질문으로 돌아왔지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협업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구나.
어떤 방식이 최선일지는 결과물이 말해줄 것이다. 로티플로는 틀에 박힌 방식을 싫어할 것 같으니 유연한 작업 방식이 어울릴 터다.
[로로,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로티플로의 음악에서 취향이 대략 유추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취향과 능력이 다른 케이스도 있으니 콜라보 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 *
성질 급한 로티플로에게 맞추어 협업 일정이 더 빨라진 탓에 한창 콜라보를 진행하는 도중에 좀비 드라마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다.
로로에겐 하루의 휴식 시간을 준 뒤에 멤버들과 함께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인데?”
꼬박꼬박 숙소에 들어가긴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작업실에서 있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며칠만이었다.
“콜라보는 잘 돼가? 로티플로는 말 잘 듣고?”
“생각보다 얌전해. 처음에 매운맛을 보여줘서 그런가?”
“매운맛…? 함이원, 무슨 짓 했냐? 우리 말 곧이곧대로 듣고 로티플로한테 괴짜 천재가 뭔지 한 수 가르쳐줬어? 네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를 얕보는 건지,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건지.
“문자 그대로 ‘매운맛’이야. 매운 곱창 전골을 같이 먹었거든. 매운맛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낸다고 우러러보는 중이야. 로로, 아니 로티플로가 맵찔이더라고.”
“로로?! 우리한테도 안 붙여주는 애칭을 엊그제 처음 본 사람한테…! 이원 형, 나 서운해!”
애칭…? 그렇게 말하니까 로티플로와 나 사이에 대단한 유대라도 있는 것처럼 들린다. 단지 나를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려다가 나온 것뿐인데.
첫 만남에 박하준이 아니라 ‘박하’로 불러달라고 했던 박하를 제외하면 이름으로 부르고 있긴 하다.
“지금이라도 애정을 담은 별명을 만들어줄까?”
“난 이름이면 충분해, 이원아.”
“나도 됐어. 부르라고 지은 이름인데.”
서혼 형과 오란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도 시큰둥했다. 굳이 애칭이 필요하냐는 식이었다.
“이건 기분 문제야! 이원 형이 우리보다 외간 남자한테 더 신경 쓴다는데!”
“로티플로는 어디서 사고 칠지 몰라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되는 말썽꾸러기 조카 같아서 그래.”
진심으로 섭섭해 보이는 박하가 삐지기 전에 그런 게 아니라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열심히 달랬다. 박하는 다른 데선 뒤끝이 없는 편이지만, 한번 삐지면 오래 가니까.
“어쨌든 이원이가 잘하고 있으니 다행이고. 우리는 언제 갈까?”
어떤 곡이 나오게 될지 몰라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우리 둘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곡이 한 곡으로 끝나진 않는다는 것.
나도 작곡 속도가 빠르고, 로티플로는 영감이 넘쳤다. 몸풀기로 만든 첫 결과물은 무려 첫날에 완성됐다. 우리 둘은 잘 맞는 파트너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이런 속도로 곡을 완성한다면 조만간 이벤트성 앨범을 낼 수 있을 듯했다. 최소한 서너 곡은 나올 테니까.
애초에 싱어송라이터인 로티플로가 협업하게 된 대상은 작곡가 함이원이 아니라 테오라의 작곡 담당 함이원이었다. 테오라와 로티플로의 콜라보 곡을 목표로 했으니 최소한 녹음할 때만큼은 멤버들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아무 때나 들러도 돼. 로티플로는 언제든 환영할걸. 집중력 떨어지면 놀러 가자고 하는 걸 아직까진 잘 막고 있는데 한번은 나가서 놀아야 할 것 같아.”
에너지 넘치는 로로를 상대해달라는 도움 요청에 멤버들이 그럴 줄 알았다면서 피식거렸다.
“오디션 끝나면 한동안 바쁘진 않아. 한번 가서 체력 쏙 빼놓을게. 다시 놀러 나가자고 할 엄두도 안 나게.”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는 초록 형이 그리웠나?
영어로 말하는 것도 불편한데 로로는 의식의 흐름대로 해석해버리는 나쁜 버릇까지 있었다.
하루에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쉰 건지. 그래도 협업의 과정이 순조로워서 참아줄 만했지만, 척하면 착 알아듣는 초록 형이 때때로 떠올랐었다.
“작업은 어떤데?”
“잘 되어 가.”
“엄청나게 잘 되고 있구나?”
로티플로는 아이디어나 매력적인 음의 조합을 짜내는 감각이 뛰어났다. 그 대신 가끔 뜬금없는 부분에서 막히긴 했지만,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부분이었다.
곡 전체의 흐름을 살피고 조각으로 이루어진 짧은 멜로디를 잇는 작업은 내가 맡았다.
편곡은 각자 해보기도 했는데, 로티플로가 한 편곡은 분위기만 살짝 달라지는 게 아니라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듣기 좋아서 차이가 뭔지 유심히 관찰해보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장점을 가진 타인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워도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일본에서 사슴한테 엉덩이를 물려서 갑자기 비행기를….”
멤버들이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동안 밴은 드라마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제작사에서 공지한 오디션장은 제작사 건물 지하였는데 층고가 높고 밝아서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래는 일찍 도착해서 좀 더 준비하려고 했는데, 차가 밀리는 바람에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벌써 도착해 대본을 보고 있는 오디션 참가자가 서른 명 남짓. 오디션이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고 하니 오디션을 보는 인원이 몇 배가 될지 모를 일이었다.
대본을 보고 있는 오디션 참가자들은 대부분 20대로 보였다. 중장년 감초 조연은 이미 캐스팅됐다고 들었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나이대가 어렸다.
원작도 대본도 드라마의 주 시청층을 2, 30대로 잡은 것 같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었다.
우리도 조용히 대기실 한구석에 서서 대본을 펼쳤다. 원하는 배역의 대사는 전부 외워 왔지만,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아이돌? 누구?”
“요즘은 개나 소나 연기한다고 난리네.”
“말조심해. 저 그룹에 서혼 있는 거 몰라? 아이돌이라고 얕봤다가 개발리고 싶냐?”
속삭인다고 속삭이는 듯했지만, 내 귀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들렸다.
아이돌 출신 배우는 텃세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인기를 빌미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예도 있다고 들었다.
예전보다는 아이돌 출신 배우가 흔해져서 이런 경향이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현역 아이돌인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연기까지 겸하기란 쉽지 않다. 스케줄이 겹치기라도 하면 다른 배우에게 피해를 주는 게 현실이었다.
우리 멤버들은 예외라고 나서서 해명할 수도 없는 일.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마스크는 다들 배우상이네.”
“주연도 잡아먹는 비주얼 조연을 누가 반겨?”
“너 이 드라마 원톱 주인공 누군지 못 들었어? 강백 선배님으로 확정됐다는데. 강백 몰라? 연기력 딱 하나로 차별하는 사람이잖아.”
“…강백? 아 X발. 새됐네. 오디션장에도 강백 선배님 있는 거 아니냐?”
아, 강백 선배님이 주인공 역을 맡으셨구나. 멤버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미리 들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만, 놀라는 모습을 보일 뻔했다.
“계실걸. 연기 관련된 일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는 분인데 없을 리가. 강백 선배님 데려다 놓으면 후배들 앞에서 무게 잡기도 좋고, 연기 상대도 돼 줄 텐데.”
“이번 오디션도 텄네. 마음 비우고 보든지 해야지….”
“왜?”
“저번에 강백 선배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오디션 갔다가 찍혔어. 나보고 연기하지 말라더라.”
“크큭. 야, 도대체 연기를 X같이 했으면 그래?”
“아, 몰라. 서혼 온 이상 너도 오디션 통과는 글렀어.”
“나는 일부러 분량 많은 배역은 준비 안 했어. 경쟁률 치열할 거 예상하고 나름 전략을 세웠지.”
어디선가 지나치듯 본 얼굴인 두 명은 킬킬대며 서로를 디스했다.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오디션 시작합니다! 호명하는 번호에 해당하는 분은 순서대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랜덤으로 번호를 뽑았는지 멤버들의 번호가 뒤죽박죽이었다.
내 번호는 3번. 제일 먼저 해치우고 속 시원하게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두 명의 참가자가 오디션을 마치고 복도를 벗어났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3번 들어오세요.”
“네!”
대본과 가방을 챙겨서 안내를 맡은 직원을 따라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3번 지원자 함이원입니다.”
“시간을 아껴야 하니 소개 생략하고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어떤 배역에 지원하셨죠?”
심사 위원석에는 감독님과 작가님, 제작사 관계자 외에도 강백 배우님이 앉아 계셨다. 밖에서 들은 게 있어 놀라지는 않았다.
“제가 지원한 배역은 나르시시스트 좀비입니다.”
“연기는 어떨지 몰라도 시청자들이 납득할 역으로 잘 골랐네요. 본인이 골랐습니까? 아니면 연기 선생 추천?”
강백 배우님은 듣던 대로 보기 좋은 병풍이 아니라 오디션의 중요한 진행자였다.
“멤버들 추천이었습니다. 멤버 중 한 명이 연기 선생님이니 연기 선생 추천이라고 이해하셔도 됩니다.”
“그쪽이 아이돌인 건 지원서에 쓰여 있으니 알겠는데 연기 선생이 같은 그룹 멤버라고요?”
“네. 배우 서혼이 같은 그룹 멤버라서요.”
“혼이? 걔가 한때는 천재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긴 했었죠. 가르치는 건 어떨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한번 보죠.”
여기선 허세라도 부려야 한다. 자신감 있는 태도는 흥미를 끄니까.
“기대하셔도 됩니다.”
“오호? 진짜 기대합니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 적어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서혼 형 얼굴에 먹칠하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