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45
이불 밖은 위험해
미국 일정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일은 이틀만 하고 계속 놀기만 한 것 같은데. 아직 모자란 느낌이 드는데 왜 내일이 돌아가는 날이지?
[돌아가는 거야? 이렇게 빨리?]시무룩해진 로로는 더 놀다 가라고 은근히 권해왔다.
[나 놀고 싶어! 더 많이 많이!] […한국 돌아가면 한겨울일 텐데.]박하는 물론이고 오란도 더 있다 가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털어놨다.
시차는 금방 적응한다고 해도, 적당히 따뜻하고 시원한 이곳의 가을 날씨를 그리워하게 될 듯했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작용했는지 멤버들이 짐을 싸는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우리를 쳐다보는 준현 형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워커홀릭 테오라답지 않다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쉬라고 해도 제대로 쉬지를 않아서 바다가 보이는 시골에 보내졌던 게 얼마 전인 걸 생각하면 준현 형의 의아함도 이해가 됐다.
“너희를 쉬게 하려면 여행을 보내면 되는 건가. 해외여행이면 더 좋고?”
색다른 공간과 문화 때문일까? 우리끼리 여행 갔을 때마다 나름대로 잘 쉬고 왔던 걸 보면 ‘여행=휴식’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새겨졌는지도.
작업실과 연습실, 회사 같은 일터로 가고 싶어도 바로 갈 수 없다는 점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대부분 우리를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주니까 ‘아이돌의 본분’을 떠올릴 일이 적어서 일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준현 형 말처럼 나와 멤버들이 쉬려면 어딘가로 떠나야 하나?
“지금은 그런데 해외 스케줄이 많아지면 또 모르죠.”
미국에서도 일하러 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나중에 가봐야 알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강 짐을 싸두고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로티플로 집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회장님 차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운전석에는 기사 겸 비서 같은 남자가 내렸고, 뒷좌석에서 내린 사람은 파티에서 봤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맥스, 회사에 있을 시간이잖아? 웬일이야?] [오늘은 루카 너 보러 온 거 아니야. Hi, 슈퍼노바.]박하랑 얘기하던 힙합 레이블 대표였다. 이름은 정확히 못 들었지만, 얼굴이 낯설진 않았다.
[Mr. 맥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바쁘신 것 같으니 본론부터 얘기하죠. 혹시 TV쇼에 출연할 생각 있습니까?] [넹? TV쇼 출연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힙합 레이블 DEC는 POX 산하 레이블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POX에서 방영하는 TV쇼에 출연하기도 하죠. 오늘도 촬영이 있었는데 하필 중요 참가자가 갑자기 촬영을 못 하겠다고 통보하지 뭡니까. 거기서 문득 떠오른 거죠. 루카 집에 머무는 숨겨진 천재들이.]“어…. 이원 형 이거 우리 캐스팅하고 싶다는 뜻이지?”
“응. 맞아.”
“헐! 이렇게 갑자기 미국에서 벼락스타가 되는 건가아! 참! 대답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지? 어떡해요, 준현 형?”
“일단 더 들어보고 괜찮은 제안이라면 한국 쪽 스케줄을 미뤄서라도 해야지.”
“그렇게 전달할게요.”
Mr. 맥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를 섭외하려고 하는 TV쇼 제목은 ‘리얼 지니어스 아메리카’.
후원금을 걸고 분야에 상관없이 천재성을 뽐내는 서바이벌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인이 출연하기도 해서 영상 클립을 본 적이 있는데 자극적인 예능 그 자체였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갖가지 술수가 판을 쳤다. 참가자의 행동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가 하면 바로 과장해서 띄워주기도 했다.
가정사와 과거로 사연팔이는 기본이고 악의적으로 편집했다면서 종종 소송도 걸렸다.
한마디로 재미를 위해서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제작진이 버티고 있는 TV쇼였다.
여기에 우리가…?
“리스크가 너무 커. 자칫하면 팬덤이 아니라 안티부터 생길 수도 있어. 이 TV쇼 보는 사람?”
“나. 자주 봐.”
스릴이 넘치거나 치열한 경쟁이 들어간 장르를 선호하는 지온의 취향은 확고하다. 경연 프로그램 출신답다고 해야 하나?
까딱했으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서 우리랑 못 만났을 수도 있다. 농담이 아니라.
“보다 보면 그거 같아. Battle Royale.”
“발음 때문에 못 알아들을 뻔했네. 배틀로얄?”
“어. 배틀로얄.”
얼마나 무시무시했으면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프로레슬링 룰에 비유하는 걸까. 내가 봤던 영상 클립은 새 발의 피였던 모양이다.
“으힉! 거기에 우리가 출연한다고? 전부 출연하는 게 아니라 한 명만 나가는 거?”
Mr. 맥스에게 다시 물어보니 한 명이거나 한 팀이면 된다고 했다.
[천재성으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판단해요?]진짜 천재인지 아니면 조작된 천재인지 어떻게 가려낸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면 천재가 나락으로, 가짜 천재가 추앙받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심사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섭외해 평가한다는데 만약 천재라고 판단한 참가자가 사기꾼으로 드러나면 심사를 맡은 전문가들의 평판이 깎일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했다.
시즌 3까지 오면서 법적 논란을 피해 갈 방법을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설명만 들으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는데? 망신만 당하고 오는 거 아니야?”
[출연해보지 않겠냐고 설득하러 오신 거 아닌가요?] [hahaha. 여기까지는 쉽게 보지 말라는 경고였고, ‘리얼 지니어스’가 가진 거부할 수 없는 장점이 있죠. 바로 시청률.]시청률에 영혼을 팔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예능이다. 리얼 지니어스는 시청률로 따지면 FOX 채널 부동의 1위였고, OTT 예능 장르에서도 항상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우리는 참가자 하나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합니다. 기회만 잘 살릴 수 있다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건 일도 아니죠. 전 세계적인 셀럽이 될 수도 있습니다.]대신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비난당할 수도 있겠지.
[선택은 그쪽에서 하면 됩니다.] [잠깐 상의할 시간을 주세요.] [얼마든지.]Mr. 맥스는 미국인다운 제스처를 취하더니 한발 물러섰다.
[내 의견을 말해도 돼? 너희가 결정할 문제지만, 미국인 입장에서 ‘리얼 지니어스’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설명해줄 수 있는데.]이 제안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에 다양한 의견은 도움이 될 터였다.
[리얼 지니어스는 욕하면서도 보는 ‘Makjang’ 드라마야. 꾸며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몰입하면 아무것도 상관없어지지. 애매한 천재라면 안 나가는 편이 나아. 관심받아보려고 나왔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여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니까.] […진짜 천재라면?] [그린. 리얼 지니어스라면 당장 나가야지. 이 TV쇼보다 빠른 성공 루트는 없어.]로로는 나가보려고 생각해본 적 없었을까.
[혹시 출연했었어요?]내가 본 적 없는 시즌에 출연한 적이 있을까. 하긴 그랬다면 더 생생한 경험담을 얘기해줬으려나.
[아니. 제안받은 적은 있는데 거절했어.] [왜요?] [무서워서. 사람들이 나보고 천재가 아니라고 하면 그렇게 믿어버리고 좌절할까 봐 무서워서.]천재의 기준은 뭘까. 하나는 안다. 분야마다 수많은 천재가 있을 테지만, 과거의 위대한 천재는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모차르트, 베토벤, 고흐, 미켈란젤로….
사람들의 환상이 수없이 덧입혀진 예술가를 뛰어넘으려면 그만한 고통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현대가 아니라 후세에나 원하던 평가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천재…. 진짜 천재는 이원이지만, 혼자 내보낼 시기는 아니라 다 같이 나가야 하는데. 과연 테오라가 천재 아이돌 그룹일까? ”
초록 형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재능 넘친다고 치켜세워졌을 뿐인데.
“초록. 생각보다 거창한 예능은 아니야. 고작 TV 프로그램이잖아. TV쇼 이름은 리얼 지니어스여도 사실 천재성보단 얼마나 희귀하고 매력적인지가 더 중요해. 그것만 보여줄 자신이 있다면 출연할 가치가 있어.”
“지온아, 안 불안해? 난 불안한데.”
“난 안 불안해. 왜냐하면 테오라는 여기서 멈출 리가 없거든.”
지온의 저 확고한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도 가지고 싶었다.
[솔로로 활동하는 게 홀가분하고 좋았는데 조금 부럽네. 의지할 멤버가 있다는 거.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면 되든 안 되든 질러봤을지도.]로로는 농담과 진심이 섞인 발언을 했다. 진짜 로로가 그룹으로 활동했을 리도 없는데 고통받을 가상의 멤버들이 너무 잘 상상됐다.
“난 급하게 결정 안 했으면 좋겠는데. ‘대타’를 제안받았지만, 우리가 정식 출연 제의를 받지 못할 그룹은 아니잖아?”
오란은 제3의 선택지를 만들어냈다.
일주일 안에 촬영이 들어가야 방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으니 Mr. 맥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호의는 얻을 수 있더라도 시간이 촉박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휘말리는 것보단 차분히 결정을 내리는 쪽이 현명했다. ‘리얼 지니어스 아메리카’ 출연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정식으로 출연 협의를 해보면 될 일이었다.
Mr. 맥스의 추천이 없는 우리가 덜 익은 열매처럼 보여서 출연을 거절당한다면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되어주면 된다. 그들이 테오라가 탐스러운 시청률을 가져와 줄 거라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어차피 시간문제다.
초록 형은 멤버들의 의견을 종합해 정리했다.
일단 바로 섭외를 승낙하기엔 너무 위험이 큰 TV쇼라는 점에선 의견이 일치했다. 미국에선 유명하지도 않은 타국의 아이돌인 우리에겐 특히나 더 위험했다.
시청률을 위해 허위 사실을 만들어내고 악의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왜곡한다고 해도 대항할 힘이 없으니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꼭 출연해보자. 테오라가 천재 아이돌 그룹인 걸 증명할 겸.”
그걸 증명해서 어디에 써먹으려는 지 몰라도 ‘갓 아이돌’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는 쓸모가 있을 것 같다.
테오라가 함부로 대하기 거북한 위치까지 올라간다면, 그때야말로 ‘리얼 지니어스’에 출연할 시기겠지.
[Mr. 맥스. 제안은 감사하지만, 섭외는 거절하겠습니다.] [흠, 그래요? 알겠습니다.]의미심장한 눈빛이 돌아왔다. 뭐라고 중얼거린 Mr. 맥스는 나중에 또 보자면서 자리를 떴다.
뭐라고 한 거지? 영어는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스페인어?
아, 지온이라면 알아들었으려나? 물어볼까 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지온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Mr. 맥스를 태운 차가 지나간 자리를 훑었다.
“지온.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
“…지뢰를 잘 피해 간다던데.”
‘지뢰’라고 표현했다면 자신의 제안이 우리에게 불리한 정도를 넘어서 독배나 다름없다고 여겼다는 뜻이다.
“단순한 운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궁금하다고도 했어.”
“믿을 사람 하나 없구만.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데가 서울이라더니, LA는 더하잖아. 눈 뜨고도 꼼짝 못 하고 당할 뻔했네.”
초록 형은 자기 앞마당에서 벗어난 패널티가 이렇게 크다면서 해외까지 인맥을 넓혀둘 계획을 세웠다. 나라 하나를 넘어서 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준비?
친절한 얼굴의 이웃에게 한번 당할 뻔하고 나니 초록 형을 말리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응원까지 해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감췄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우리나라 밖은 더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