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9
데뷔 준비
작업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빠 말씀에 따르면 운이 좋아서 전문가가 쓰던 작업실을 넘겨받았다고 하셨다.
사진으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본격적인 레코딩 스튜디오였다. 아무래도 웃돈을 주고 구해주신 게 아닐까.
어쨌거나 작업실은 음악 작업하기 편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고, 방음도 장비도 완벽했다. 몸만 가면 될 정도로.
작업실 자체가 넓어서 여기에 현오 형의 물건들을 옮겨두기로 했다. 집보단 작업실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여차여차 작업실은 구했는데 아침 일찍 연습을 시작해 밤에 퇴근해서 곡 작업을 할 틈이 나지 않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혼자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작업실에 가서 곡을 쓰려고 계획을 세웠다. 오래는 아니고 한두 시간씩. 다행히 거리가 가까워서 걸어갈 만했다.
그러나 난관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같은 방을 쓰는 서혼 형이나 예민한 초록 형과 오란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는 것.
결국 금방 들통나서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원래 새벽 운동을 다녀왔다고 둘러대려고 했는데….
세 명은 나를 졸졸 따라와서 작업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돌아갔다. 초록 형은 내 손에 휴대폰을 올려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면서.
테오라 공용 휴대폰을 주면 우리 멤버들은 전화 받을 수가 없을 텐데…? 매니저 형이나 부모님께 연락하라는 뜻인가. 음….
셋에게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나는 새벽마다 숙소와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 * *
데뷔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어느 때든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려는 듯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회사 분위기가 이상한데?”
“우리한테는 쉬쉬하시는데 뭔가 숨기시는 것 같아.”
“무슨 일 터졌나?”
“개인 휴대폰이 없어서 그런가? 세상에 뒤처지는 기분이야.”
우리는 옹기종기 모였다. 머리를 맞대고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우리 소속사 이름을 먼저 쳐봤다. 최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하눌 엔터 소속 아이돌 그룹 SEED, 이대로 무너지나? 무단 탈퇴부터 학폭까지!] [SEED 멤버 단우까지 학폭 논란? 하눌 엔터는 확인 중] [끊이지 않는 잡음. SEED는 해체 수순? 하눌 엔터의 선택은] [‘갑질 논란’ 하눌 엔터 “오히려 우리가 당했다”] [“하눌 엔터 대표가 갑질했다” 전 SEED 소속 멤버의 고백]전부 최신 기사들이었다. 무단 탈퇴를 한 SEED의 전 멤버가 하눌 엔터를 갑질로 몰고 가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갑질 건은 거짓이라는 증거가 명백해서 바로 진정되어가고 있었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도중에 현 멤버의 학폭 논란까지 터진 듯했다. 이중으로 정신없는 상태였다.
“갑질에 학폭 논란. 회사 뒤집힐 만하네.”
초록 형이 담담하게 감상을 뱉었다.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는 듯한 태도였다.
안 그래도 SEED는 자잘한 사건 사고가 잦은데.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쪽이 낫지 않냐는 여론이 높아질 듯했다. SEED는 각자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한데 모이면 시너지는커녕 잡음이 끊이질 않는 그룹.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도 꾸준히 불화설이 돌았다.
“초록 형, 회사가 시끄러우면 우리도 위험하지 않아?”
박하는 이 논란의 틈에서 우리를 걱정했다.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데뷔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데뷔가 엎어질까 봐 그래?”
“혹시나….”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특히,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면서 박하는 데뷔가 무산되어버리거나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고 했다. 현실적인 걱정인 셈이었다.
“하눌 엔터, 네 생각보다 탄탄해. 그리고 대표님이 이번엔 가만히 안 계실 거라.”
예전부터 하눌 엔터는 홍보팀은 언론 대응에 약하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아티스트를 배려했기 때문.
배려할 아티스트가 소속 연예인이 아니게 됐다면? 혹은 소속 연예인이 강경하게 칼을 빼 든다면?
하눌 엔터의 대표 손중기는 매니저부터 꾸역꾸역 기어 올라와 대표가 된 인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연예계 인맥은 탄탄하게 깔려 있고, 결단력도 있다. 대표가 직접 손을 쓴다면 홍보팀 없이도 단번에 여론을 뒤집을 수 있다.
“내가 다 들은 게 있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단우 형도 나쁜 사람 아니고.”
“초록 형의 정보망은 어디까지 뻗어있는 거야?”
궁금한 점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가 이 바닥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친했거든. 그때부터 차근차근 쌓은 인맥이 이제는 방송가에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있지.”
아버지가 연예인이거나 방송국 소속이신가. 어릴 때부터 인맥을 만들다니. 사교성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용의주도하다고 해야 하나.
초록 형은 멤버들의 불안을 읽고 달래주었다.
“어차피 회사의 문제라 우리가 관여할 수도 없어. 우리는 그저 믿고 기다리면 돼. 우리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회사와 관련된 논란을 우리가 대신 해명해줄 수도, 어떤 결정을 내릴 수도 없었다. 걱정을 보탠다고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지도 않는다.
“데뷔하면 온갖 시련이 닥칠 텐데, 벌써 쫄면 어떡해? 응?”
“이까짓 사건은 껌이지. 안 그러냐?”
삐뚤게 서 있던 오란이 곧바로 동조했다. 둘이 가볍게 받아들이자 다른 멤버들도 한결 안심했다.
“그럼 우린 초록 형만 믿을게! 리더 한번 잘 뽑았다니까!”
풀이 죽었다가 바로 발랄한 기운을 회복한 박하가 초록 형을 치켜세웠다. 옆에 앉아있던 지온이 대충 멋있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초록 형의 등과 어깨를 툭툭 치는 오란과 서혼 형.
그 틈에 나도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아서 바짝 다가갔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내 뒤통수를 초록 형이 거칠게 쓰다듬었다. 머리가 앞뒤로 마구 흔들렸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 뭘 그렇게 쭈뼛거리면서 와? 너도 한 팀인데.”
초록 형은 거리감을 못 잡는 나에게 괜찮다고 웃음으로 답해줬다. 우리는 그렇게 자그마한 사건을 넘겼다.
* * *
하눌 엔터 대표를 갑질로 몰아서 동정표를 얻어 한국에서 다시 활동해보려던 전 멤버의 음흉한 속내가 대중들에게 까발려지는 것을 시작으로 SEED 선배님들과 관련된 사건은 급반전을 일으켰다. 회사에서 고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단오 선배님의 학폭 논란은 동창생이 증거를 가지고 등장하면서 주작으로 밝혀졌다.
하눌 엔터는 근거 없는 논란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스캔들을 흐지부지 넘기거나, 악플러에게 선처하던 하눌 엔터가 칼을 빼든 것이다. 그에 놀랐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참다 참다 결국 터졌구나… 하눌이 터질 정도면 장난 아니었나 보네] [쾌변한 너낌 그동안 내 속이 얼마나 터졌는지 알겠냐!ㅅㅂ] [혹시 홍보팀 갈아엎었나! 짝짝짝!!!!] [씨앗들은 이제 수납해라 얼른 코넬 다음 자컨 내놔!]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SEED는 이제 그룹 활동을 서서히 줄여나간다고 했다. 전에 수도 없이 스캔들을 터뜨렸던 멤버는 제 발로 나간다고 했고, 나머지는 SEED의 껍데기 아래에서 본격적인 개인 활동을 이어 간다고.
수익적으로도 개인 활동을 하는 편이 이득이고, 그룹의 이미지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빠르게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그래도 바로 그룹 해체를 발표하면 팬들의 반발이 심할 게 뻔했다. 회사는 전략적으로 SEED라는 그룹이 서서히 잊히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사건과 상관없이 가칭 테오라의 데뷔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아니 오히려 선배 그룹의 사실상 해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듯했다.
SEED에게 붙었던 스탭들이 하나둘씩 인수인계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데뷔까지 대략 5개월밖에 남지 않아서 곧 전담 스탭이 필요할 시기였다.
스케줄에 따라서 우리는 연기 연습에 돌입했다. 뮤직비디오 스토리가 나오기 전에 기본기는 다져놔야 했다.
데뷔조에 발연기를 하는 멤버는 없을 것 같았다. 다들 평소에 표정이 자연스럽고 카메라 앞이라고 얼어붙거나 오버하지도 않으니까. 무대라고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실제로 아역배우였던 서혼 형의 연기는 확실히 안정적이었다. 오란은 뻔뻔하게, 초록 형은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했다. 지온의 연기도 어색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연기해 본 적 없는 내가 함정이 아닐까 싶었는데 칭찬을 듣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의 표정을 유심히 봐뒀다가 복사하는 식으로 연기했는데 들키지 않았나 보다.
예상 외였던 멤버는 바로 박하. 감정 표현이 크고 자유로운 평소 모습으론 짐작할 수 없었다. 쇼핑몰에서 피팅 모델로 카메라 앞에 자주 섰기 때문에 더 기대했었는데….
분명, 사랑하는 연인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장면인데 왜 몰입이 안 되지?
“박하야….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
“괜찮지 않아요?”
박하는 아예 자신이 발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사실을 직시하게 해줄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아니어도 지적할 사람이 넘쳤다. 연기 선생님이라던지.
“이대로면 뮤비에서 네 분량 통편집이야. 아니다. 이 얼굴은 꼭 넣어줘야 하니까 잠자는 장면이나 가만히 있는 장면만 넣으면 되겠다.”
“…그 정도라고요? 제가? 리얼리?”
“진짜. 너 쇼핑몰 모델 할 때는 어떻게 하는 거니? 사진 확인해 보니까 분위기 있게 잘 나왔던데. 그렇게만 하면 돼.”
“모델 할 때요? 이거 말씀드려도 되려나? 재수 없다고 하면 안 돼요!”
우리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뭐길래 재수 없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생각하지? 박하 스스로 그렇게 여길 정도면 상당히 수준 높은 헛소리겠지.
“모델 할 때는 속으로 계속 생각해요. 컨셉대로 외로움에 허우적대고 있지만, 난 누구보다 멋있다! 완벽한 옆선을 보여주면 쓰러지겠지. 이렇게 잘 생겨도 되는 걸까? 옷을 다 잡아먹는 잘생김, 괜찮나? 이런 식으로.”
“…….”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게 뭐야. 다들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박하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 얼굴을 보니 차마 헛소리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 분했다. 평소엔 어떻게 숨기고 다니는지 몰라도 자신의 얼굴과 몸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거기 사진작가님이 맨날 멋있는 척하면 된다고 그러시거든요.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남친 스타일로 서 있으라거나 나보다 잘생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려다보라거나. 거기에 익숙해져서….”
박하의 변명은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사진작가의 지시가 있어도 다 속으로 자신의 잘생김을 찬양하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연기가 안 됐구나. 막 절망하면서 화도 내는, 망가져야 하는 장면이라서.”
선생님은 박하가 발연기를 하게 된 메커니즘을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면서.
“박하는 발연기. 박하는 발렸네. 구박하네. 발연기. yo!”
뭘 들은 거지? 귀를 의심케 하는 랩이었다. 지온은 일부러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랩을 했다.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박하를 제외한 멤버들은 웃음을 참다가 결국 터뜨렸다. 옆에 있던 연기 선생님도 푸흐흐 웃음소리를 흘렸다.
“지오오오오온!”
“왜. 제톤 말이 맞는데. 그냥 절망하는 나도 멋있다 자뻑하면서 연기하면 되잖아.”
“오란 형! 왜 그게 자뻑이야. 자신감이지!”
비꼼을 받는 와중에도 박하는 얼굴에 대한 자부심은 잊지 않았다.
“아냐. 조금만 조정하면 되겠어. 미남 배우들을 참고해보자.”
연기 선생님은 망가짐에 대한 망설임 때문에 발연기가 나온다고 판단하셨다. 연기 선생님이 태블릿으로 자료를 찾는 동안 우리는 박하를 몰았다.
“박하. 뭘 믿고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
박하는 서혼 형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턱을 손등으로 받쳤다. 얼굴을 강조하는 포즈. 서혼 형은 무참히 침몰했다. 거짓말도, 욕도 꺼리는 서혼 형에게 사실을 부정하는 건 너무 어려운 임무였다.
“얘가 뭘 모르네. 연기 잘하면 외모도 더 멋있어 보이는데. 잘생김도 연기할 수 있어.”
잘생김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사실. 탑급의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배우의 얼굴조차 잘생겨 보이게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보통 연기력으론 어림도 없었지만. 그 얘기는 쏙 빼고 초록 형이 박하를 살살 꾀어냈다.
“정말?”
“우리가 왜 널 속이겠어. 우리 그룹의 비주얼이 넌데. 이대로라면 비주얼 멤버의 위치를 이원이한테 넘겨야 할지도 몰라. 이원이가 너보다 연기 잘하니까.”
“안 돼!”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초록 형의 말을 되새겼다.
내가 비주얼로 박하를 위협한다고?
내가 박하만큼 잘생겼을 리 없으니 잘생김 연기를 그만큼 잘한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과찬이긴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박하는 그럴듯한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 새로 연기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