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9
전설로 남는
“가위, 바위, 보!”
멤버들의 눈이 전부 우리 둘의 손을 향했다. 나는 가위였고 오란은 보. 나의 승리였다.
이게 뭐라고 긴장씩이나 했을까 싶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진짜 쫄깃했다.
“역시 오란이가 질 줄 알았어. 다 같이 가위바위보 몇 판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
“그냥 가위바위보를 못 할 수도 있잖아.”
운이 나쁘다기보단 실력이 별로일 수도 있으니까. 반복해서 주먹만 낸다거나, 다른 사람보다 빨리 패를 보이면 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 않던가.
“이원아. 몇 판 해보면 다 알게 된다니까.”
그렇게 나온 가위바위보의 승패. 결과는 나에게는 평범했고, 오란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에게는 경악스러웠다.
승 패 무 패 패 승 무 승 패.
첫 번째 판까지 계산해서 총 10판 중에 내 승리가 4번, 패배가 4번 무승부 2번이었다. 오란과 나의 승률은 정확히 반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오란 형이? 오란 형이 4번이나 이겼다고?! 지온 형, 나 한번 꼬집어줄래? 으악! 누가 이렇게 세게 꼬집으래! 사심 들어갔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박하가 호들갑을 떨다가 볼을 꼬집히고 지온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못 믿겠는데….”
“도대체 왜? 오란 너까지 그럴 정도야? 나 혼자만?”
“처음엔 나도 안 믿었지. 불운의 아이콘이라니 우습지도 않아. 근데 어쩌겠냐. 불운이 생활이 되면 믿을 수밖에 없는데.”
머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삶. 운이 필요한 사소한 순간마다 불운의 연속. 이런 삶이라면 요행은 바라지도 못할 것이다.
이래서 오란이 노력가가 됐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아직도 얼떨떨하네. 내가 4번이나 이겼다고? 평범한 운을 가지게 됐다고? 너 무슨 일을 한 거야, 함이원.”
“…아무것도?”
방금 몰아치는 눈보라 탓에 최악의 무대를 보여주고 내려왔지만, 멤버들의 관심사는 오란과 내가 일으킨 이상 현상에 쏠려 있었다.
엉뚱하지만 이렇게라도 속상함을 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면 사다리 타기를 해보자.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으니까 차에 가서.”
멤버들은 후다닥 소지품을 챙겨서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결과가 궁금해서 안달하는 태도였다.
이성적이고 어른스러운 초록 형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서혼 형까지?
엉겁결에 휩쓸려서 차에 타에 된 나는 눈앞에 슥 들어온 종이 한 장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차에 탔는데? 언제 틈이 있었다고 벌써 그렸지…? 호기심이 이런 초인적인 힘까지 주는 줄 오늘 처음 알게 됐다.
6개의 사다리 중에 하나를 선택하자 지온에게 종이가 넘어갔다. 그렇게 모든 멤버가 사다리를 선택하자 본격적으로 결과를 확인할 시간이 됐다.
우리를 태운 차가 움직이든 말든 오로지 종이 한 장에만 집중력을 모았다.
“빠르게 갈게. 먼저 나부터.”
초록 형을 시작으로 지온, 박하까지 사다리타기를 마쳤을 때 남은 번호는 2번, 4번, 6번.
나와 초록 형, 오란 셋이 남은 상태에서 멤버들은 꼴찌인 6번이 오란 차지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이원이, 그다음 서혼 형으로 가자.”
내 이름이 적힌 위치부터 시작해 초록 형이 쥔 펜을 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마침내 끝에 다다랐을 때, 적힌 숫자는 4.
“…아까는 단지 우연?”
지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결과는 알아보기로 하고 서혼 형의 이름부터 사다리타기를 시작했다.
숨죽이면서 벽돌 같은 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인 끝에 도달한 숫자는….
“무슨 일이야! 서혼 형이 6이라니! 그럼 오란 형이 2라고? 두 번째에 당첨됐다고?”
“…사다리 하나 빼먹진 않았고?”
급기야 서혼 형이 사다리 타기에 오류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재차 확인해봤지만 사다리 타기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란이 평범해졌다고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내 대답에 다섯 명의 고개가 홱 돌려졌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그 발언은 내 인생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렇게까지 받아들인다고?”
오란까지 지금의 상황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면, 긴 세월을 불운과 함께했던 것 같다. 경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내가 전부 깨부쉈나?
“다시 확인해보자. 이번에는 이원이 빼고.”
그렇게 나를 제외한 다섯 멤버들은 다시 사다리타기를 시작했다. 세 번의 사다리타기의 결말은 놀라웠다.
오란이 모조리 꼴찌를 차지했으니까.
“여전한데…?”
“안심되는 기분. 오란은 역시 Mr. Bad luck.”
멤버들은 아까보다 차분한 태도로 평가했다. 나 혼자서만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이원이가 오란이의 불운을 중화시키는 거야. 일종의 보정 효과라고 할까?”
현재 상황에 대한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초록 형이었다. 모든 일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초록 형이라 다들 수긍했다.
“그러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운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지? 함이원이 나랑 같이한다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럴듯하지 않아?”
내가 오란과 함께할 때와 함께하지 않을 때의 결과를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변수는 ‘나’ 하나였다.
“초록 형. 그렇다면 아까의 무대…도 행운 보정됐을까?”
“으음….”
초록 형의 분석이 옳다면, 아까의 무대에 나도 참여했으니 불운을 바로잡아서 눈보라가 잠잠해져야 하지 않았을까?
오란의 불운이 날씨에까지 영향을 줬다고 치면, 내 존재는 그 영향을 없애야 했다.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고, 아직 행운 보정 전일지도 모르지.”
“오란 형이 행복회로 돌릴 수 있는 날도 오다니!”
“뭐, 나는 희망 좀 품으면 안 되냐?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범함을 느껴보겠다는데.”
세상에 냉소적이었던 게 이런 이유였을까. 사소한 일에서부터 불운을 겪은 오란에게 세상은 불공평 그 자체였을 테니까.
“도망갈 생각 하지 마. 함이원. 아니 이원 형.”
“…?!”
농담처럼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건데, 그걸 기억해서 쓴다고? 오란에게 형이라고 불리니 어색해서 몸이 뒤틀리는 듯하다. 게다가 도망가지 말라니?
앞으로 나 어떻게 되는 거지?
“오란 형! 그런 식으로 말하면 형이 집착남 같잖아! 으핫! 마음은 알겠는데!”
“집착…. 그거 좋네.”
곰곰이 생각하던 오란은 끔찍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피해! 이원 형!”
이상한 쪽으로 사고가 꼬인 오란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피할 곳이 어디 있을까.
“함이원 형. 앞으로 내가 잘 따라다닐게?”
“…….”
다른 멤버들조차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만 피해 다니면 될까? 나는 아무래도 스토커 한 명을 얻은 것 같다.
* * *
어재영은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대학생이었다. 그에게는 10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었는데, 어린 동생 때문에 방학만 되면 이리저리 가족 여행에 끌려가곤 했다.
이번 겨울방학에 가족 여행지로 당첨된 장소는 강원도 인제. 빙어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이 빙어 낚시해보고 싶다고 한마디를 던졌고, 그 길로 부모님은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일정을 짰다.
“아니 엄마. 나는 빼놓고 가라니까, 제발!”
“네 동생이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면서 그래.”
왠지는 모르지만, 동생은 형인 자신을 가족 중에 가장 좋아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챙길 수밖에 없어서 동생과 붙어있는 시간이 가장 길긴 했다.
동생이 싫지는 않다. 어린아이가 주는 순수한 호의를 누가 싫어할 수 있나. 동생은 사랑하지만, 가끔은 피곤한 순간이 있었다.
억지로 가족 여행에 동반하게 되는 오늘 같은 날처럼.
“근데 너무 추운데. 괜찮겠어? 재민이 감기 걸리겠는데?”
“단단히 입히긴 했는데, 상황 봐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아빠와 동생을 보니 괜한 걱정 같기도 했다. 눈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돌격하는 둘은 추운 날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와! 형! 이거 봐!”
이러나저러나 동생이 귀엽긴 했다. 주변에서도 동생 바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콩깍지가 씌었을지도.
동생의 부름에 카메라를 챙기고 한달음에 뛰어가며 생각했다.
한참 후에야 스노우캐슬이라는 이름의 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는 초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탓에 시끌시끌했다.
잠시 관객석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쉬자는 엄마의 제안이 반갑기만 했다. 아빠도 동생과 노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셔서 휴식은 필수였다.
“아이돌?”
트로트 가수가 들어가고 난 후, MC는 다음 차례를 이어갈 가수를 아이돌이라고 소개했다. 테오라라는 처음 들어보는 아이돌이었다.
워낙 아이돌이 쏟아지는 시대라 듣도 보도 못한 아이돌이 있더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형! 아까 나 찍었지? 또, 또 찍어줘!”
어릴 때부터 카메라에 익숙했던 동생은 이제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즐기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형인 자기가 찍어주면 된다는 이유로 내버려 뒀다. 영화감독 지망생의 눈에 동생은 썩 괜찮은 피사체이기도 했고.
카메라를 다시 켜서 동생을 찍는 도중에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내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각도를 올려 눈이 내리는 주위 풍경을 찍다가 무대에 선 여섯 명의 남자애들에게 렌즈를 고정했다.
카메라 화면 속의 아이돌 여섯 명은 찍을 맛이 났다.
독립영화를 촬영해본 입장에서, 카메라빨을 잘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버릇처럼 영상이 만들어낼 구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무심코 카메라 여러 대로 다양한 구도에서 촬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나름 아이돌이라 이건가?”
인지도는 별로 없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아이돌은 카메라에 항상 노출되어야 하는 직업. 일반인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았다.
동생을 찍으려던 처음의 생각은 잊어버리고 새로 만난 신선한 피사체에 집중했다.
힐끗 동생을 보니 동생의 눈도 앞을 향해 있었다. 아이의 눈을 사로잡을 정도라고?
날아갈게 비록 서툰 날갯짓이더라도
우리의 존재 자체로 너에게 기쁨이기를
눈발은 서서히 강해져만 갔다. 바람도 거세졌다. 동생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촬영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영상이 잘 나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단 이 추운 날 얇은 옷을 입고 필사적으로 무대를 꾸미는 그들의 모습을 남겨야겠단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꺄악!”
“얼른 이리 와…!”
약하던 눈보라가 눈 폭풍이 되어가자 주변에서는 비명이 난무했다. 두꺼운 옷가지 사이에 드러난 살갗으로 따갑기까지 한 칼바람이 들이친 탓이었다.
그 비명과 눈 폭풍 속에서도 하나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았다.
나에게 너를 각인시켜 그리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내게 새겨줘
심지어는 발음까지 명확하게 고막에 꽂혔다.
“와 씨…. 얘네 뭐야….”
영상 촬영을 마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무대를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전부 철수한 후였다.
동생은 이미 부모님이 챙겨서 숙소로 데려간 것 같았다. 무대에 올라갔던 이름 모를 아이돌도 사라졌다.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러다 내가 찍은 영상이 전설로 남는 거 아니야?”
어재영은 얼어붙기 직전인 손과 볼을 문지르면서 숙소로 발을 옮겼다. 품에는 영상이 든 카메라를 꼭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