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37
괴수 말벌 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든 놈들은 화평장원을 새까맣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 수는 자그마치 수십만 마리에 달했다.
대청에서 나온 군웅들이 하나같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거대말벌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왔을지는 몰랐던 것이다.
삼백여 군웅들의 맨 선두에 서 있던 백소운은 말벌들의 우두머리 말벌왕을 쳐다봤다.
집채만 했던 놈의 몸집은 그사이 두 배 이상 커져있었다.
“하하하! 조무래기 같은 네놈들이 이곳에 숨어 있었구나. 곽직! 이제 내가 네놈을 살려준 이유를 알았느냐?”
말벌왕이 소리쳤다.
원래 인간이라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음에도 실제 목소리를 내자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곽직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들의 손에 일천여 수하들이 몰살당한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것도 불과 하루 전의 일이었다.
“네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곽직이 분노하며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필생의 공력을 담은 장력이었다.
아까 백소운과의 대결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강한 장력으로, 분노로 인해 잠력까지 발동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말벌왕은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미친놈! 그 실력으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말벌왕이 날갯짓을 한번 하자, 장세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한 번 더 까불면 진짜 죽이겠다. 사실 우리가 온 것은 네놈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 화평장원의 장주가 누구냐?”
“나다.”
왕장이 소리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백소운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백소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왕장이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것이냐?”
“후후후! 네놈이었구나. 좋다. 맹주님 지시 사항을 말해주마.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네놈들을 살려주겠다. 그리고 계속 이곳 서안을 비롯하여 섬서 무림을 다스리도록 해주겠다.”
“지금 우리보고 지옥맹에 항복을 하라는 것이냐?”
“그렇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것을 네놈들도 알고 있지 않으냐? 네놈들이 믿고 있는 무림맹 총단 역시 조금 전 우리에게 항복했다. 그 때문에 네놈들을 한데 모아 섬멸하려던 계획을 바꾸게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다. 맹주께서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절대 항복하실 분이 아니다.”
왕장이 소리쳤다.
“후후후! 믿기 어렵겠지. 하지만 우리 맹주님이 직접 나섰기 때문에 백리천은 수하들을 살리기 위해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지.”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했다는 말이냐?”
“물론 그건 아니다. 놈이 교활하게도 항복의 조건으로 마교 박멸을 걸었지. 다시 말해 우리가 마교를 제거해주면 우리 지옥맹 휘하에 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따라서 본맹에 항거하는 놈들은 이제 무림맹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섬서성을 관할하게 된 내가 어찌 네놈들을 무조건 죽일 수 있겠느냐? 최대한 항복을 받으라는 맹주님의 명도 하달되었다. 그래서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바꿔 투항을 권유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제의를 거절하면 오로지 죽음뿐이다. 무림맹 지휘부도 투항한 마당에 네놈들이 끝까지 저항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말벌왕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속임수라고 하기에는 놈들에게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백소운이란 절대고수가 있긴 했으나, 거대말벌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았다.
삼백 명에 불과한 그들이 막아낼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군웅들이 당황하며 은연중 백소운을 쳐다봤다.
화평회의 회원이 된 그들로서는 회주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소운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말벌왕이 백소운을 발견했다.
“후후후! 그러고 보니 네놈들이 독립적인 단체를 하나 만들었구나. 네놈이 우두머리냐?”
말벌왕이 앞발로 백소운을 가리켰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가 바로 화평회주 무명서생이다. 우리는 화평회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 목표는 네놈들 같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을 일소하는 것이다.”
“고작 이 병력으로 말이냐? 아, 네놈들은 각파의 무사들을 모두 모으면 일만이 넘는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모두 오합지졸일 뿐이다. 어서 말해라. 투항하겠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겠느냐?”
“······.”
백소운이 대답 없이 침묵을 지켰다.
정의노인이 소리쳤다.
“맹주님이 항복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곧 전서구가 날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면 기다려줄 용의가 있다. 반 시진 이내에 분명 전서구가 날아올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무림맹과 우리 지옥맹이 힘을 합쳐 마교를 소탕하기로 했다고 하겠지. 어떻게 하겠느냐?”
“지옥혈교는?”
“지옥혈교는 본맹 휘하 세력이니 당연히 마교 토벌에 참여할 것이다. 실제로도 대군을 이끌고 천마성으로 진군하고 있지 않으냐?”
“으음, 그럼 무림맹과 지옥맹, 그리고 지옥혈교 이 세 곳이 힘을 합쳐 마교를 제거하기로 했다는 것이냐?”
정의노인의 물음에 말벌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실질은 항복이지만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동맹의 형식을 빌었지. 이미 천하일심맹(天下一心盟)이란 통합 단체 이름도 만들었다. 천하일심맹의 맹주는 우리 지옥맹의 맹주께서 맡기로 하셨고, 백리천과 혈루서생은 부맹주를 맡았지.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반 시진 정도 기다려줄 용의도 있다. 그 안에 전서구가 날아올 것이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회주님.”
정의노인이 백소운을 쳐다봤다.
“부회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소운이 왕장에게 물었다.
왕장이 안색을 굳혔다.
“반 시진 정도 기다린다고 더 불리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전서구가 날아오면 그 내용을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곽직과 정의노인 역시 뜻을 같이 하자, 군웅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부회주님과 장로분들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습니까? 총단에서도 무턱대고 항복한 것은 아닐 겁니다.”
말벌왕이 보는 앞이라 대놓고 어부지리 작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마교 소탕이라는 목표가 마음에 드는지 기다려 보는 쪽을 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백소운의 최종 결정이었다.
‘사태가 생각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반 시진이라······.’
백소운이 숙고에 들어갔다.
말벌왕의 예기치 않은 배려가 조금 수상했기 때문에 냉철한 분석이 필요했다.
‘으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놈들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 천여 명의 무사들을 죽인 놈들이다. 무림맹이 지옥맹과 동맹을 맺은 게 사실이라 해도 일단 이놈들을 죽이는 게 낫겠다.’
백소운이 결단을 내린 후 말했다.
“우리는 무림맹의 명을 받지 않는 화평회 무사들이다. 따라서 전서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자는 것 같으니, 네놈들의 척결은 나 혼자 하겠다. 다들 대청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회주로서의 명입니다. 이의는 받지 않을 것이며 반대하는 자는 즉시 무공을 폐하겠습니다.”
백소운이 무명검을 높이 들었다.
순간 검봉에서 기둥 모양의 검강이 솟구쳤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해 화평회 무사들 또한 흠칫했을 정도였다.
진하림이 소리쳤다.
“뭣들 하나요? 회주님의 명입니다. 모두 들어가세요.”
“그럽시다.”
군웅들이 정신을 차린 듯 다투어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왕장, 정의노인, 곽직 세 사람도 어리둥절해 하며 따라 들어갔다.
백소운의 말이 엄포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진하림과 유덕, 정기, 막총 네 사람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네 분도 들어가 계십시오.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아 제가 보호해드리기 힘듭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조심해라.”
진하림 등 사대호법이 마지막으로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백소운은 무형공력으로 대청 주위에 보호막을 쳐뒀다.
말벌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무명서생이라고 했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말 겁이 없구나. 좋다. 네놈을 본보기로 죽여주겠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제 내가 가만히 있어준 이유를 알겠느냐?”
“네놈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반시진 동안 지원 병력을 기다린 것이지. 총단이 항복을 했다는 말도 모두 거짓이고 말이야.”
“후후후! 미친놈이군! 오늘 처음 본 네놈을 내가 왜 두려워한다는 말이냐?”
“기세에 밀린 것이지. 근처에 있는 다른 괴수왕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인가?”
“······.”
말벌왕이 흠칫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소운이 다시 말했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내 말이 맞는 모양이군.”
“후후후! 똑똑한 놈이군. 그렇다. 네놈의 기세가 뛰어나 보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동료들을 불렀다. 하지만 백리천이 우리와 협력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놈은 곧 무림맹 병력을 이끌고 천마성으로 출발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네놈들에게 투항을 권유한 것은 거짓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네놈이지.”
“나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냐?”
“그렇다. 나는 네놈이 천무공자 백소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다른 괴수왕들에게 없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데, 한번 만난 사람은 제아무리 얼굴을 바꿔도 알 수가 있지.”
“냄새라도 맡은 것이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네놈을 수상히 여기고 그 기운을 기억해두었지. 이는 우리 맹주님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천하에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네가 천무공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쉽군. 사실 나는 무명객이다.”
백소운이 말을 하며 무형공력을 끌어올렸다.
말벌 떼가 아무리 많아도 말벌왕만 제거하면 그 힘이 약해져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동안 말벌왕의 무공도 두 배 이상 강화된 상태였다.
그 몸집이 두 배로 커진 것도 그와 관련이 있었다.
백소운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네놈이 다른 괴수왕에게 도움을 요청한 기파는 내가 제거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따라서 지원 병력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정말이냐?”
말벌왕이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그렇다. 백 공자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나다. 어찌 그만한 능력이 내게 없겠느냐?”
“으음, 정말 무명객이란 말인가. 어쩐지 이전보다 강해져 있더라니······.”
말벌왕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 말벌들이 있었다.
이번에 지옥맹주의 명으로 그가 키우고 있는 말벌을 모두 데리고 온 그였다.
‘놈이 아무리 무명객이라 해도 말벌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공력을 소진시킨 후 공격하면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말벌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놈을 죽여라!”
말벌왕의 명이 떨어지자, 수십만 마리의 말벌들이 일제히 백소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쏴아아.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말벌들이 독침을 앞세우며 다가왔다.
장원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말벌들이 보자기 모양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피할 공간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백소운은 무명검을 수직으로 든 채 미동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말벌왕을 향해 있었다.
지금 그는 얼마 전 무맹비고에서 접했던 많은 무공과 깨달음을 통해 진보한 그 힘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바로 무형검 무공 중 하나로, 무형의 기운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무형살공(無形殺功)이란 것이었다.
무형의 기운은 마음의 힘이라 할 수 있기에 살심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었다.
광채도 파공음도 없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말벌왕이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가루로 변해버렸다.
순간, 말벌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 힘이 다한 것 같았다.
백소운의 보호강기에 막혀 제대로 독침을 쏘아보지 못했던 놈들이라, 다소 허망한 느낌도 있었다.
백소운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놈들을 태워버렸다.
활활활.
거대한 불길이 치솟자, 대청 안에 있던 군웅들이 일제히 나왔다.
“회주님!”
“어떻게 된 겁니까?”
질문이 쏟아졌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놈들을 제거했습니다. 어제 전사한 무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정말 전서구가 오는지 기다려 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