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18
118. 비밀장치를 밝혀내다
우문한도는 손을 내밀어 옥병 속에서 그 옥으로 만든 고기를 꺼내 한참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경악의 빛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은 그는 천천히 입
을 열었다.
“이 옥병은 원래 옥으로 만든 물고기를 두는 데 쓰는 것이므로 당연히 한 가지 물건으로 쳐야
하오.”
심목풍이 곧 그의 말을 받았다.
“이것은 극히 진귀한 것이 아닐까요?”
우문한도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 옥병과 옥고기의 내력은 나도 모릅니다. 심대장주는 본 것이 많고 아는 것도 풍부하니 혹시
이 옥고기의 내력과 출처를 알고 계신지요?”
심목풍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옥고기의 내력은 모르지만 확실히 보통 물건이 아닐 것이오. 십대 고수들이 장난감을
갖고 금궁으로 들어왔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심대장주의 말은 정말 일리가 있소. 이 옥고기는 보통 물건이 아니오.”
잠시 말을 끊고 일행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더니 다시 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개의 옥으로 깎아서 만든 장식품에 지나지 않소.”
소영은 옆에서 그 우문한도의 일거일동을 빠짐없이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가 처음에 옥고기를
보고 놀란 것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우문한도가 곧 태연을 가장하고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
자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영은 그가 옥고기의 내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모른다고 잡아떼는 데에는 반드시 무슨
계략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만약 자기가 이번에도 다행히 이긴다면 꼭 이 옥고기를 차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심목풍이 제의했다.
“이 옥병과 옥고기는 이번에도 우문선생께서 보관하시오.”
하며 옥병을 억지로 우문한도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우문한도는 그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또 하나 석실이 남아 있소.”
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나머지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금화부인은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눈을 돌려 심목풍에게 말했다.
“대장주, 기왕에 이 옥병을 들고 싶은 생각이 없으시다면 내가 들고 있겠소.”
심목풍은 잠시 주저하더니
“좋소!”
하고 손을 내밀어 그것을 금화부인에게 건네 주었다. 금화부인이 옥병을 받아 들 무렵 우문한도
는 벌써 단검을 휘둘러 쇠 자물통을 자르고 철문을 열었다.
일행이 일제히 석실 안을 들여다 보니 그 석실에도 역시 돌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은 향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향로는 색이 까맣고 높이가 약 한 자 가량 되어 보였
으며 넓이는 불과 다섯 치도 되지 않았다.
이번에 심목풍은 어쩐 일인지 전과 같이 석실 안으로 몸을 날려 이 향로를 먼저 차지하려고 하
지 않았다.
우문한도는 그 향로를 자세히 살폈다. 그 향로에는 금으로 된 뚜껑이 덮여 있었는데 그 속에 무
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소영을 향해 말했다.
“이 오래된 향로는 당신이 들고 가 주십시오.”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석실로 들어가 그 향로를 들고 나왔다. 그 향로는 굉장히 무거웠다. 안
에 무엇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안을 살펴볼 수는 없었다.
심목풍은 오른손을 들어 그 향로의 금뚜껑을 열어 보려고 접근했으나 소영은 재빨리 그것을 피
해 버렸다. 그 뚜껑을 열어 보지 않았지만 보고 싶은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 된 향로 속
에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는지 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우문한도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나서
“만약 이 향로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의 독립된 물건으로 칠 수 있다면 그 옥병과 함께 일찌
감치 공평하게 나눕시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라고 말했다.
소영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우문한도가 왼손을 내밀어 향로의 금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향로 속에는 하얀 분말이 가득차
있었으며 한 가닥 그윽한 향내가 풍겼다.
박학다재(博學多才)를 자부하는 우문한도는 그것을 바라보았으나 그 향로 속에 하얀 분가루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그 뚜껑을 닫으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오래된 향로는 단지 하나의 물건으로 인정하여 분배해야겠소.”
심목풍과 소영, 우문한도, 이 세 사람은 무공의 고하로 볼때 우문한도가 제일 약했다. 그러나 그
는 실력이 비등한 소영과 심목풍의 두 고수 가운데서 자기의 비상한 두뇌로써 한 번 보아 만사를
빈틈없이 처리해 나가는 재질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군호들 중에서 항상 수뇌인물답게 행동하여
실수를 하지 않았다.
심목풍은 싸늘한 눈초리로 소영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그 매서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가득차
이글거리는 광채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는 소영이 자기에게는 향로의 뚜껑에 손도 대지 못
하게 하면서도 우문한도에게는 열어 보는 권한을 준 것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그는 즉시 출수
하여 소영을 박살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기이하게 높은 무공과 본 얼굴을 가린 인피가면 때문에 심목풍으로 하여금 그의 정체를
헤아릴 수 없게 하여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문한도는 심목풍을 힐끗 바라보고
“유감스럽게도 물건이 두 가지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오? 한 가지만 더 있으면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을 걸었다.
심목풍은 억지로 마음속에 솟구치는 분노를 누르며 담담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여섯 칸의 석실을 모두 살펴보았소. 우문선생께서 그렇게 말을 둘러대지 마시오.
우리들은 마땅히 금궁 깊숙이 들어가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소.”
우문한도는 신중하게 대꾸했다.
“안으로 더 들어간다면 강호를 수십 년 동안이나 미혹시킨 금궁의 비밀이 풀어질 것이오. 따라
서 우리의 처지도 이 순간보다 더욱더 위험해질 것이 틀림없소.”
심목풍은 코웃음쳤다.
“우문선생께서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중히 여기신다면 이 금궁으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좋았을
것이오.”
우문한도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소영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뜻은 어떠시오? 여기서 중지할까요? 아니면 계속 안으로 들어갈까요?”
소영은 서슴지 않고
“계속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며 변성을 해서 간단히 대답했다.
소영의 대답을 들은 우문한도는 소영에게 말했다.
“당신이 깊숙이 들어갈 생각이시라면 약속을 지키셔야지요.”
그 말에 소영도 처음에 무슨 약속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나서 손에 들고 있
던 향로를 내려 놓고 손을 들어 우문한도의 몸을 향해 이 장을 쳐냈다.
심목풍은 껄껄 웃으며 비꼬았다.
“이제 보니 우문선생은 그분에게 혈도를 찍혔구료. 어쩐지 나에게만 유독 불친절하다고 생각했
더니…..”
우문한도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이분은 그래도 말을 하면 꼭 지키는 분이오. 만약 내가 심장주에게 혈도를 찍혔다면 아마 그리
쉽사리 나의 혈도을 풀어주지는 않았을 것이오.”
심목풍은 냉랭히 웃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문한도는 혈도가 풀리자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길을 막고 있는
암벽 앞으로 다가서더니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여기까지 와서는 앞으로 나가는 길이 커다란 암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과연 여기 있구만! 내가 예상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단검을 들어 벽에다 확 꽂았다. 그리고 한 번 옆으로 비틀더니 재빨리 몸을 날려 뒤로 멀
찍이 피하고 땅에 착 엎드렸다.
소영과 심목풍은 모두 우문한도에게 매우 깊은 경계심을 갖고 있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리는 것
을 보자 그를 따라 엎드렸다.
갑자기 우렁우렁 동굴 속이 울리더니 암벽의 일부분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암기가 허
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왔다.
수없이 많은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휙휙 날아 왔으나 그들은 이미 땅에 찰싹 붙어 경계하였기
때문에 그 화살들은 모조리 머리 위를 지나갔다. 한참 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그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암벽 위에는 원래 한 곳에 암문(暗門)이 있었고, 그밖에는 암문을 여는 비밀장치가 있었으나
너무나 그 장치가 엄밀하여 찾기가 곤란하지요. 그러나 나는 이 보검의 힘을 빌려 그 암문을 조
종하는 쇠사슬을 끊었으므로 이렇게 열렸으니 이 암문은 오늘부터 효능이 없어졌소이다.”
심목풍과 소영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몹시 우문한도에게 감탄과 존경의 빛을 금
하지 못했다.
그들은 각기 암암리에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의 학식과 지혜는 과연 보통 사람들이 따를 수 없을 만큼 비상하구나.’
우문한도는 그들이 묵묵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담담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석실은 이미 열렸으니 어느 분이 먼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시겠소이까?”
심목풍이 곧 제의했다.
“우리들은 비밀로 매복해 놓은 장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니까 자연 우문선생이 길을 인도하
셔야지요.”
“그렇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소?”
하고 당노부인이 돌연 입을 열고 나섰다.
“이 늙은 몸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하더니 지팡이를 짚고 큰 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심목풍과 금화부인, 백리빙, 우문한도 등은 그 뒤에 나란히 한 줄로 서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석문 안에 들어서니 한 가닥 매우 협소한 길이 뻗쳐 있었으며 그 넓이는 불과 두 자 가량밖에
되지 않아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넓이였다.
우문한도는 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하였다.
“만약 포일천이 이 통같이 협소한 외줄기 길 속에 어떤 악독한 장치를 비밀로 설치해 놓았다면
우리들은 필시 도망을 못하고 꼼짝 없이 큰 변을 당할 것이오.”
그의 말소리는 매우 높았으므로 굴 속으로 울렸다. 나란히 서서 캄캄한 길을 걸어가는 군호들은
각기 공포에 질려 오싹해 오는 감을 느꼈다.
길이 너무 어두워서 당노부인은 운기하여 안력을 집중시켰으나 석 자 이내의 사물도 분간할 수
없었다. 이 좁은 길을 이십 장쯤 걸어서 들어갔다. 이윽고 길은 끝나고 눈앞이 확 트였다. 갑자기
얼굴에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공기가 매우 맑고 신선하여 그들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정신이 번
쩍 들었다.
심목풍이 입을 열었다.
“원래 이곳은 외부와 상통되어 있었군요. 이것을 진작 알았었다면 금궁의 문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외다.”
우문한도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이 통풍 설비는 매우 꼬볼꼬불하게 만들어진 것이오. 그런데도 이렇게 바람이 잘 통하게 했소
이다. 만약 이 포일천이 그 통풍하는 구멍을 통해 한 가닥이라도 햇빛을 비추게 했다면 교수신공
이라는 칭호는 받지 못했을 것이외다.”
심목풍이 눈을 돌려 사방을 훑어보니 과연 햇빛은 조금도 스며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위의
형상과 경물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우문한도는 헛기침을 여러 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소제가 갖고 있던 두 개의 횃불 중 하나는 이미 다 타 버렸소. 지금 남은 이 하나의 횃불마저
다 타 버린다면 우리는 아마 암흑을 더듬어야 할 것이오.”
그는 말을 마치고 품 안에서 다시 하나의 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의 경물
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곧 동쪽 정면에 쌍문이 활짝 열린 대청이 보였다. 그것은 역시 삼면이 석벽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이 장 둘레의 방이었다.
심목풍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면이 이렇게 석벽으로 되었으니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저 대청 안일 수밖에 없구료.”
우문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쪽 대청으로 가는 길밖에 없으니 여러분은 조심하여 따라 오시오.”
하며 왼손으로 횃불을 밝히고 오른손에는 단검을 쥐고 대청을 향해 똑바로 걸어나갔다. 심목풍
도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 청문은 원래 활짝 열려 있었으나 그들이 대청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저절로 닫혀졌다. 심목풍
은 흠칫 놀라며 즉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청문 밖에 무슨 비밀 장치가 되어 있나 보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돌려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심대장주께서는 진작 그것을 깨달으셨어야 되었을 것을…..”
그는 심목풍을 지그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만약 이 포일천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다 무서운 매복 장치를 해 놓았다면 이 장 가량 되는 방
원형의 이 방에서 우리는 살아날 기회가 있을까요?”
소영과 심목풍은 그 말을 듣자 얼떨결에 천장을 쳐다보았다.
소영은 암암리에 생각하였다.
‘저 청문은 이미 닫혔고 단 하나의 도망갈 수 있는 길은 방금 들어온 통로뿐인데…그러나 그 통
로는 좁을 뿐 아니라 불빛도 없이 깜깜하여 행동하기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우리가 있
는 이곳은 막다른 곳이다.’
심목풍이 싸늘하게 우문한도의 말을 받았다.
“그것은 포일천이 석벽 위에 장치한 암기에 달렸지요.”
“그렇다면 그것을 일종의 독침이라고 예상해 보시오. 심대장주께서 살아날 자신이 있으신지?”
심목풍은 얼음장같이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피하지 못한다 칩시다. 그러나 그때에는 여러분도 한 사람 빠짐없이 살아날 수 없으
리라 믿습니다.”
우문한도는 담담히 웃었다.
“저희들이 죽는 것은 억울할 것이 없지만 그러나 당신 심대장주께서 어떻게 죽을 수가 있단 말
이오?”
심목풍은 그의 말 속에 조소가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억지로 참으면서 더 이상 말하
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 암암리에 운기하여 우문한도의 거동을 감시하였다.
소영은 묵묵히 심목풍의 거동만 살폈다. 그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우문한도를 보호해야 되겠
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우문한도가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이런 험악한 상황 하에서는 국면을
무난히 유지할 사람은 우문한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풍부한 경험과 초인적인 기지로 심목
풍의 음모를 전부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것이었다.
우문한도는 천천히 대청 앞으로 다가가서 횃불을 높이 쳐들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분은 저와 함께 대청으로 들어갑시다. 혹시 무슨 변고가 생기더라도 같이 저항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심목풍은 뒤에 있는 소영을 바라보며
“당신의 의견은 어떻소?”
하고 물었다.
소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손에 든 향로를 백리빙에게 건네 주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
나 여전히 입을 다문 채 행동으로만 표시하는 것이었다.
심목풍은 미간을 찌푸리며 금화부인과 당노부인에게 나직이 말했다.
“두 분께서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그는 성큼성큼 대청 앞으로 걸어나갔다.
우문한도는 수중의 단검으로 대청문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소영에게 말했다.
“포일천은 아무리 천만 번 계산을 했어도 한 가지만은 빠뜨렸구료.”
심목풍이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무엇을 빠뜨렸습니까?”
우문한도는 수중의 단검을 들어보이며 싱긋이 웃었다.
“이 한 자루의 쇠를 흙처럼 자를 수 있는 단검에 찔려 죽을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이 한 자루의 단검만 감추었다면 일은 한층 곤란하였을 것이오. 우리에게 이 한
자루의 단검이 없었다면 이처럼 쉽게 그의 비밀 장치와 단단한 암벽을 파괴할 수는 없었을 것이
오.”
심목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장 묘한 것은 공교롭게도 이 한 자루의 보검이 당신 우문선생에게 돌아갔다는 것이오. 만약
이 검을 내가 얻었다면 우선생은 아마 이처럼 손쉽게 들어가실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더니 무슨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제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소?”
“심대장주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그러나 제 능력이 부족하여 과연 당신의 의문을 풀어드릴 수
있을는지 걱정이군요.”
“금궁 속에 갇혔던 십대 고수는 이런 예리한 칼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어찌 벽을 파괴하여 빠져
나가지 않고 이 금궁에 갇혀서 죽었을까요?”
심목풍의 이러한 질문에 소영도 마음속으로 끄덕였다.
‘맞아! 과연 그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의문인 걸…..’
우문한도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잘 물어보셨습니다. 이 단검으로 백장이나 되는 산벽을 도저히 뚫을 수 없었다 칩시다. 그러나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문을 파괴하여 나갈 수 있는 일인데 왜 이곳에서 죽었을까요?”
심목풍은 곧 맞장구를 쳤다.
“십대 고수는 각기 뛰어난 기지의 소유자로 아무리 비밀장치에는 익숙치 못했다 해도 우문선생
의 말씀같이 검으로 문을 파괴하여 탈출했어야 하는데…..”
우문한도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심대장주는 오히려 나에게 대답을 못하게 만들었소. 지금 현재 나로서는 단언할 수 없으나 필
시 이 점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오. 아마 포일천은 그들의 탈출에 대비하여 단단히 예방을 했을지
도 모르지요.”
심목풍은 냉소하며 비꼬았다.
“저는 우문선생이 모르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것도 있었군요.”
우문한도는 싸늘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가 대청으로 들어간 후에 혹시 저는 그 원인을 알아낼지도 모르지요.”
그는 수중의 횃불을 높이 쳐들어 꽉 닫혀진 대청문을 이리저리 한동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그
는 갑자기 들었던 횃불을 내려 놓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심목풍과 소영은 모두 그의 속셈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자 할 수 없이 따라서 뒤로 물러났
다.
우문한도는 제자리로 돌아오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영문을 모르고 뒤따르던 심목풍과 소영도 동
시에 원위치로 돌아왔다.
이때 별안간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닫혀졌던 청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심목풍과 소영은
그제서야 우문한도가 횃불을 놓고 뒤로 물러선 이유를 알았다. 그 횃불은 대청문 바로 앞에 놓여
져 있어서 그 불빛을 이용하여 대청 안의 일부 경물을 볼 수 있었다.
이 굴 속의 대청은 크고 캄캄하였다. 불빛이 비춰진 곳에 마침 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
였다. 돌 탁자 위에는 각기 종류가 다른 무기들이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이것을 본 군호의 마음
은 호기심에 싸여 추호도 공포와 긴장을 느끼지 못했다.
소영은 그 돌탁자의 무기 중에서 한 자루의 백옥소와 장검이 나란히 놓여져 있는 것을 재빨리
보았다.
그는 암중에 생각하였다.
‘저 옥소는 혹시 소왕 장방의 유물이 아닐까?’
이때 심목풍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야 알겠소. 우리가 서 있는 곳과 그 석문 사이의 땅에 청문을 조종하는 장치가 놓여
져 있소. 그 장치는 너무 예민하여 사람이 밟았다 하면 열려 있던 대청문은 즉시 자동으로 닫혀
지게 되었던 것이오.”
우문한도도 감탄하며 말했다.
“그 장치는 수십 년을 지났는 데도 지금 이렇게 영민(靈敏)하게 잘 들으니 건축의 신기함이 얼
마나 높은 것인가 알 수 있소. 과연 포일천은 재능이 출중한 인물이구료.”
심목풍이 곧 받아
“여기서 저 청문과의 거리는 불과 일 장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가 몸을 날려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오. 더 이상 머리를 써서 이 청문을 조종하는 장치를 조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문한도는 싸늘하게 반문했다.
“만약 우리들이 저 대청으로 들어간 뒤 그 두 짝의 문이 또다시 꽉 닫혀지면서 열 수 없다면 그
때 가서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심목풍은 어리벙벙해져 주저하더니 싸늘하게 비꼬았다.
“그것을 내가 만약 알고 있었다면 우문선생은 아마도 벌써 내 장력에 죽었을 것이오.”
우문한도는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심대장주는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속히 없애 버리심이 좋을 것이오.”
심목풍은 자기의 실언을 깨닫고 황급히 말을 받았다.
“우리가 이 금궁을 나가기 전에는 또다시 살의를 품지 않겠소이다.”
우문한도는 여럿을 돌아보며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시오.”
하더니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네다섯 발자국을 걸었을 때 또다시 청문이 자동적으로
닫혀졌다.
우문한도는 몸을 굽히고 단검을 휘둘렀다. 아마 예리한 보검으로 그 자리의 돌땅을 파헤쳐 청문
을 조종하는 장치를 찾아내려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단지 두 번 단검을 휘둘렀을 뿐 갑자기
손을 멈추더니 원위치로 돌아왔다.
심목풍은 날카롭게 비꼬았다.
“돌땅이 너무 견고해서 우문선생은 보검이 상할까 봐 그러시오?”
우문한도는 안색이 숙연해지며 심목풍의 신랄한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딴 생각에 사
로잡힌 듯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무서운 수단이구나.”
심목풍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다급히 물었다.
“우문선생,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소?”
우문한도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포일천의 능력은 너무나 비범하여 나는 티끌만큼도 그를 따를 수 없구료.”
금화부인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혹시 또 무슨 잔꾀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오?”
심목풍은 곧 그녀의 말을 이었다.
“만약 우문선생이 저 금화부인이나 당노부인과 말다툼을 일으켜 싸우게 된다면 나는 책임지지
않겠소.”
우문한도는 냉랭한 눈초리로 일동을 훑어보고 나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당신들의 처지가 위험하다는 것만 알릴 수 있을 뿐이
오. 일에 대해서는 아무 힘도 못될 것이오.”
하더니 기침을 한 번 하고
“이 돌땅의 밑에는 바로 급류가 흘러내리고 있소이다. 까딱 잘못 하면 홍수가 밀려들어 우리들
은 전부 이 금궁 안에서 익사하고 말 것이란 말이외다.”
심목풍의 안색이 단번에 변하였다.
“아니! 그것이 정말이오?”
우문한도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믿을 수 없다면 귀를 대고 한번 들어보시오.”
심목풍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과연 우문한도의 그 검으로 찍은 구멍을 통해 급류가 휩쓸려 흘
러 내려가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그만 전신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우문한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의 말만 계속했다.
“만약 포일천의 사람됨이 나의 추측보다 더 악독하다면 아마 중요한 곳에다 그 급류로 통하는
암문을 조종하는 장치를 해 놓았을 것이오. 그러므로 누군가 그 기관을 건드리기만 한다면 그 암
문이 자동으로 열릴지도 모르오.”
금화부인이 그에게 다시 소리쳤다.
“당신은 점점 더 무서운 소리만 하는구료. 이 금궁 속에는 발자국을 뗄 때마다 함정이 있어 어
디서나 죽음이 뒤따르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다면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면 될 것이 아니오?”
“만약 지금 누구든지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면 저는 절대 말리지 않겠소!”
심목풍이 다그쳐 물었다.
“우문선생은? 그럼 당신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겠다는 말이오?”
“나의 생각은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니
이왕 금궁으로 들어온 이상 운수에 맡기고 한번 맞부딪쳐 보아야겠소. 나는 벌써부터 생사는 초
월하였소.”
이런 상태에서는 항상 거들먹거리던 심목풍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
를 끄덕이며
“좋소! 우리도 우문선생과 같이 만사를 운수에 맡겨 봅시다.”
하고 말했다.
우문한도는 핫하 웃으며
“대장주께서 왜 갑자기 겸손해지셨소?”
하고 조소하자 심목풍이 버럭 화를 내었다.
“대장부는 굽힐 때도 있고 큰소리 칠 때도 있는 법! 이런 것으로 남에게 약점을 잡혔다고는 생
각지 않소.”
우문한도는 그의 말을 묵살하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 우리들의 급선무는 대청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오. 나는 처음에 저
대청을 조종하는 장치를 파괴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그 계획을 포기해야겠소.”
심목풍은 나서며 제의했다.
“내가 실험해 보겠소.”
하더니 진기를 모아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내공이 심후하여 진기를 모아 초상비(草上飛)의 초
식을 발휘하였다. 그 순간 마치 제비같이 날아서 대청 앞에 내려섰다. 그의 신법은 비할 데없이
가벼웠다. 과연 그 청문은 닫혀지지 않았다.
심목풍은 대청 앞으로 다가가서 머리를 디밀고 그 안을 한번 살폈다. 그러나 혼자서는 들어갈
용기가 없었는지 그 자리에 선 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어서 건너오시오.”
이 말에 군호들도 천천히 걸어갔다. 이들은 모두 무림의 일류 고수들이라 진기를 모아 걸어갈
때 발이 땅에 닿는 힘이 극히 가벼웠다.
청문 앞에 다가온 우문한도는 땅에 놓인 횃불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제가 앞장서겠소.”
그는 선두에 서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에 비쳐진 대청 안은 깊이가 약 사장쯤 되고 넓이는
불과 이 장 반 정도인 좁고 기다란 곳이었다. 그 안에는 입구에 놓인 기다란 돌탁자 위에 여러
가지 무기가 놓여 진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심목풍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오? 그렇다면 또다른 대청 복실이 있는 것일까요?”
우문한도는 대답하지 않고 횃불을 높이 밝히며 대청의 벽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하나의 다른
문이 나왔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펴보았다.
소영은 마음속으로 악소채와 옥소랑군과의 단혼곡에서의 약속을 상기하였다. 만약 그 옥소랑군
이 소왕 장방의 후손이라면 이번에 이 금궁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그 장방과 가장 밀접
한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소영은 심중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부지중에 손을 내밀어 그 한 자
루의 백옥소를 집어 들었다.
심목풍은 재빨리 소영의 손을 덮쳤다. 그리고 싸늘하게 외쳤다.
“당신은 이 안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되오.”
소영은 날쌔게 후퇴하여 심목풍의 일 장을 피했다.
심목풍의 출수가 어찌나 빨랐는지 소영은 그의 장세를 피하기에 바빠서 그만 바로 뒤에 석벽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소영은 그 석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소영이 재빨리 몸을 가누어 반격
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의외의 변화는 소영과 심목풍으
로 하여금 격투하는 것을 잊게 하였고 정신을 가다듬어 만일의 변고에 대비하게 했다.
소영이 부딪친 그 대청의 오른쪽 석벽은 별안간에 석문이 열리더니 바퀴 달린 의자 한 개가 천
천히 굴러 나왔다. 그 의자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몸에 회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으며
손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노승이었다. 횃불에 비친 그의 목에는
향나무로 만든 일련의 염주를 걸고 있었다.
심목풍은 얼떨결에 큰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누구냐!”
하고 외치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이것을 본 우문한도가 황급히 말했다.
“심장주는 함부로 손을 쓰지 마시오.”
심목풍은 손을 거두며
“그것은 또 왜 그러시오?”
하고 물었다.
우문한도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이 금궁은 수십 년 간이나 닫혀 있었는데 어찌 살아 있는 사람이 있겠소?”
“그러나 그는 죽은 사람 같지 않소이다. 이 금궁 속에서 수십 년 갇혔었다면 아무리 무공이 심
후한 사람이라도 마땅히 살이 썩고 백골만 앙상할 것이 아니겠소.”
우문한도는 여전히 침착했다.
“이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라 그 내막을 알아내기 전에 나는 심대장주께 답변할 수가 없구료.”
심목풍은 계속 따지려고 했으나 그의 눈에도 그 승려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쳤고 전신의 살은 전
부 굳어서 산사람 같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때 그 바퀴 의자는 구르는 것을 멈추었다. 그 노인은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
았다. 우문한도는 단검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천천히 노승 앞으로 다가가 횃불을 가까이 비쳐 얼
굴을 살펴보았다. 그 노승의 눈썹은 새하얗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여러 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의 얼굴빛은 살아 있는 사람과 같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문한도는 노승에게서 눈을 떼고 심목풍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장주, 당신은 이 금궁에 갇힌 사람들 중에서 승려가 모두 몇 사람이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아마도 두 분이었던 것 갈습니다.”
우문한도가 말했다.
“한 분은 소림사의 절세 기승(奇僧) 무상대사(無相大師)이고 또 한 분은 누구였지요?”
“제가 알기로는 법명을 천인(天忍)이라 하는 승려지만 그는 소림 출신이 아니오.”
우문한도가 끄덕였다.
“그 말이 맞을 겁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도 천인이라는 고승이었소. 그러나 이분은 아마 소림파의
무상대사일 것이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석벽의 장치를 조종하여 이 대사를 출현시켰소?”
심목풍이 소영을 건너다 보고 대답했다.
“그것은 저분에게 물어보시오.”
우문한도는 눈을 소영에게 돌리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저 석문을 열었소?”
소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대답했다.
“나는 이 대장주의 일격을 피하려고 몸을 날리다가 우연히 이 벽에 부딪쳤을 뿐이오.”
그는 여전히 목소리를 꾸며서 말했다. 심목풍과 우문한도는 그것이 본 음성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것으로 신분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심목풍이 다시 말했다.
“지금 이렇게 된 마당에서까지 당신이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오.”
우문한도가 천천히 다가오며 심목풍의 말을 받았다.
“이분은 분명히 우리들과 잘 아는 사이일 것이오. 그러므로 얼굴에 인피가면을 쓰고 또한 음성
마저 꾸미니 몹시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요.”
소영은 그들 두 사람이 번갈아 공격하자 가면을 벗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자기 얼
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자 얼굴까지 올린 손을 다시 내리며 냉소를 띠고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우문한도는 소영을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
“당신이 방금 부딪친 벽이 어디요?”
소영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곳이오.”
우문한도는 그 석벽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른 곳과 다름없이 평평한 석벽이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포일천은 과연 천재구료. 이 석벽은 다른 곳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 만일 당신이 우연히 이
벽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것을 못 찾아냈을 것이오.”
그리고 그는 손으로 석벽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달아 몇 장을 내리쳐도 석벽은 아무런 반
응이 없었다.
그는 소영에게 다시 확인했다.
“이곳이 틀림없지요?”
“틀림없소이다.”
우문한도는 다시 벽을 쳤다. 내력을 다 모아 연달아 때리자 과연 세 번째 장력이 벽을 때렸을
때 동쪽 정면 석벽에 변화가 생겼다.
다시 이상한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석벽에는 다시 하나의 석문이 열리며 또 바퀴 달린 의자가
천천히 굴러 나왔다. 그 의자 위에는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고 몸에 장삼을 걸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 바퀴 달린 의자는 대청 중간까지 굴러 오더니 갑자기 멈추었다. 의자 위의 노인은 두 손을
단정히 무릎 위에 얹어 놓고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
다.
우문한도는 물끄러미 그 노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중얼거렸다.
“나는 알았다! 이제야 알았어!”
심목풍은 싸늘하게 물었다.
“우문선생은 무엇을 알았다는 것이오?”
우문한도가 천천히 대답했다.
“심대장주께선 견문이 풍부하니 그들이 앉아 있는 위치와 거리로 봐서 왕년에 있었던 일을 얼마
쯤 추리할 수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