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92
92. 삼강서우란 이름의 기생집
무위도장의 은신처인 망양곡에서는 강호 무림을 어지럽히는 심목풍을 누를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
다.
무위도장은 한 패의 무당 제자들을 강호로 보내어 각 대문파에 서신을 전하게 하는 한편 제자 중
에 제일 무술이 강한 여섯 명을 뽑아 분장시켰다.
전엽청은 사전의 계획대로 소영과 손불사를 따랐고 운양자는 그대로 계곡에 남아 마문비의 상처
를 돌봐 주기로 하였다.
계곡을 떠나는 군호들은 모두가 희한한 분장술로 모습을 바꾸었다. 강호에서 당당한 위명을 떨치
고 있는 무위도장은 약한 문인으로 분장하였다. 그리고 늙은 거지라 자칭하면서 항상 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손불사는 이번만은 단정하게 깨끗한 옷을 입고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차부(車夫)
로 변장하였다. 사마건은 숨은 재질을 되살려 점쟁이로 분장했다.
중주이고는 본래부터 강호에 유협하면서 분장을 많이 하였던 경험이 있던 터라 변장하는데 있어
서는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부로 분장했다. 소영과 전엽청은 나이와 정반대
로 늙은 노인으로 분장을하고 당나귀를 탔다.
군호들을 뒤에서 도울 무당의 여섯 제자들은 모두 포목장사로 변장하여 관도를 따라 악주로 길을
떠났다.
길을 가면서 강호 무림의 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니 그들의 발걸음이나 표정은 한결같이 무엇에
쫓기는 듯한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이 길을 재촉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이것은
비록 심목풍의 안목이 넓고 날카로웠지만 군호들이 이같은 변장으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려는 시간에 일행은 눈앞에 악주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상팔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당나귀를 탄 소영에게 입을 열었다.
“저곳에는 남관 이외에 육대화(六大和) 객잔(客棧)이 있는데 집이 크고 방이 많아 그 집에 드나드
는 인물들이 많소이다. 심목풍의 부하들이 악주에 있다면 필시 그 객잔에 머물고 있을 터이니 안
성마춤이 아니겠소.”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우리는 몇 명씩 따로따로 행동하여 객잔으로 들어 갑시다. 만약 우리 일행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 간다면 심목풍의 부하들에게 의심을 살 것이오. 이번만은 전처럼 허술하게 일을 할 것
이 아니라 철저히 사전 계획대로 하여야 되오.”
일행은 암암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우선 상팔이 앞장서기로 하였다. 그는 길을 가는 도중 뒤
를 따르는 일행을 위하여 가끔 침을 뱉아 놓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게 하였다.
상팔이 객잔에 도달하였을 때엔 이미 해가 저물어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상팔은 사환을
불러 당나귀를 맡기고는 제일 구석진 방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객잔 내에는 기둥마다 등불이 밝게 켜져 있었고 대청에는 저녁식사 준비로 많은 사환들이 분주하
게 오갔다. 벌써 객잔 안은 손님으로 만원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대청으로 나온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상팔은 뒤따라 들어 오는 소영을 맞으러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당나귀의 방울소리
가 들리며 소영이 나타났다.
“방은 구해 놓았소?”
“아주 구석지고 조용한 방이오.”
소영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객잔 안으로 가다가 대청 끝에 앉아 있는 두 명의 경장대한과 눈이
맞부딪쳤다.
‘저놈들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 그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곧 상팔의 뒤를
따랐다.
소영은 대청을 지나 과원(跨院)으로 들어 갔다. 그곳은 등불을 하나만 켜 놓아서 주위가 어두운데
커다란 방이 소영을 기다렸다는 듯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때까지 방 청소를 하던 사환은 소영과 전엽청을 번갈아 쳐다보며 갸우뚱갸우뚱하였다.
‘저 늙은이들은 모두 광목 바지저고리에 거북스럽게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길러 촌스럽기 비길 데
없구나. 더군다나 허리띠도 넓은 것을 했으니 시골 구석에서 농사나 짓던 늙은이가 강호 구경을
하러 올라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런 큰 방을 쓸 만한 돈도 없겠지, 에이 재수없게시리….’
그 사환의 짐작은 소영과 전엽청이 내심 바라던 것이라 오히려 잘되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 사환
은 치우던 방을 그대로 놓아 두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오며 소영에게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 독방은 방값이 좀 비싼 편입니다. 두 분께서 돈이 없으시다면 다른 작은 방을 쓰시도록 하십
시오.”
하자 상팔은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이놈은 우리를 촌 사람으로 알고 있구나.’
이런 짐작을 하고 품 속에서 두 냥쯤 되는 은자 하나를 꺼내어 사환의 손에 쥐어 주며,
“모자라는가? 우리들은 오래 머물 손님이니 놓치지 말게.”
그리고는 소영과 전엽청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들은 비록 바깥 세상을 모르고 사시던 분이지만 한 번 돈을 쓰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네.”
사환은 은자의 효력 때문인지 이제까지의 건방진 태도가 싹 사라졌다. 허리를 굽실거리며 공손히
말했다.
“원 별말씀을….. 이것으로도 남습니다요. 그럼 안으로 드셔서 잠시 쉬십시오. 차를 갖다 드릴 터
이니.”
소영은 그가 멀리 사라지자 나직이 상팔에게 물었다.
“상형, 의심살 만한 사람을 보셨소?”
“나도 보았소 검문의 쌍영인 추풍검(追風劍), 배백리(裵百里), 무영검(無影劍), 담통이 이곳에 있더
군요.”
맨 뒤에 들어 선 두구가 말을 받았다.
“검문쌍영이라 하면 그래도 이름깨나 날리는 놈들인데 어째서 심목풍의 부하가 되었습니까?”
그러자 상팔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 갔다.
“쉬잇! 조심하게나.”
두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주위의 동정을 살폈다.
소영이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상형, 검문쌍영이 이곳에 왜 나타났을 것 같소?”
“그들의 모습이 보인 것으로 보아 심목풍은 벌써 악주에까지 손을 뻗쳤다는 뜻이 되오. 그러나
그것에도 약간 의문이 있긴 한데…….”
“무슨 의문이오?”
“심목풍이 무공이 높고 기지가 정명한 장한들을 백여 명이나 풀어 놓아 형님을 해하려고 날뛰는
데 어찌 정면으로 모습을 나타내겠소? 그들은 독을 써서 암암리에 형님을 해하려고 할 것이 분명
하니 이곳에 검문쌍영이 모습을 나타낸 것도 많은 의문이 있다는 것이오. 만일에 그들도 심목풍
이 풀어 놓은 장한 중에 끼여 있다면 저렇게 정정당당히 본모습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터인
데….”
소영은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힘있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들이 나를 해치려 이곳을 찾았다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변장을 하면 훨씬 수월하
게 일을 끝낼 수가 있을 것이 아니겠소?”
상팔은 돌연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입을 열었다.
“틀림없이 검문쌍영은 심목풍의 부하가 아닐 것이오. 지금까지 우리의 뒤에서 암암리 도움을 주
던 사람이 심목풍과 무슨 내통이 있어서 그에게 우리의 거취를 고하겠소? 분장한 사실을 알려 주
지만 않았다면 심목풍도 이것만은 모르고 있을 것이오.”
“그렇기도 하군.”
상팔은 바싹 앞으로 다가서서 소영과 한 발 정도 가까이 되었다. “형님께서 이 악주성에 나타난
후 심목풍의 부하가 눈치를 채 백화산장의 장한들이 이곳으로 몰려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이지만 아직 본 정체를 나타내지도 않았는데 백화산장에서 이곳으로 장한을 보냈다 하면 어딘가
좀 이상하지가 않소?”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전엽청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거야 우리가 검문쌍영을 잡아 직접 문초를 하면 곧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상팔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소생의 생각으로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그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밖의 동정을 살피던 두구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눈길
에 들어 오는 것은 조금 전에 한바탕 수다를 떨던 그 사환이 찻잔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오고 있
는 것이었다. 사환은 방엔 놓여 있는 여덟 모가 난 탁상 위에 찻잔을 놓으며 물었다.
“무슨 음식을 올릴까요?”
소영은 우선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시키고 덧붙여 술과 안주도 주문했다. 사환이 다시 원외로 나
가자 전엽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형께서 제 제안에 선뜻 찬성을 안하시니 다른 고견이 있는 것 같소이다.”
“그렇소 제 생각으로는 검문쌍영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그들대로의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소.”
“상형의 고견에 저는 항상 탄복하여 왔던 터이라 상형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소.”
상팔은 빙긋이 웃음을 띠었다.
“먼저 검문쌍영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는가를 알아야 되겠소.”
“그거야 그들을 잡아야만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아니겠소?”
상팔은 손을 저었다.
“꼭 그들을 붙잡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상형에게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대화 속에는 절박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팔은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비밀리에 조사하는 것이오.”
“그것도 좋은 방법이오. 우리는 검문쌍영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얼마 동안 미행하여 뒷조사를 하
는 것이 안전할 것 같소.”
소영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로 결정을 내렸다.
“좋소 우리는 곧 두 패로 나뉘어 그들을 감시하도록 합시다.”
그러자 전엽청이 대뜸 앞으로 나서며,
“소생이 먼저 그들을 감시하겠소.”
하고, 원외로 걸음을 옮겼다.
상팔은 재빠르게 손을 뻗어 전엽청을 잡았다.
“안 되오. 큰형님과 전형은 오늘 이 정도의 일을 가지고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소이다. 더군다나
두 분은 반백이 된 늙은이로 분장하고 있으니 거동 하나하나 아직도 많은 허점이 있소. 검문쌍영
이 두 분을 보게 되면 즉시 두 분이 분장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 것이오. 만약 그들이 대청에
없다손 치더라도 다른 사람이라도 두 분을 보아 쉽게 속지는 않을 것이오.”
소영은 근심된 표정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상팔은 웃음을 띠고 말했다.
“이런 일은 두 분이 해낼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천하에서 미행에 제일 으뜸인 사람은 개방 문파
에 있소이다. 그 하나는 일진풍 팽운(彭雲)이며 다른 하나는 신투향비(神偸向飛)라고 하오. 이 두
사람 이외에도 개방 문하들은 거의 모두가 미행에 자신을 가지고 있소이다. 아직 손형이 도착을
안했으니 무어라 말을 못하겠지만 손형은 개방의 장로로 있으니 개방의 제자들을 시킬 수 있을
것이오. 이 악주에는 개방의 제자들이 많을 터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오.”
전엽청이 탁상 위의 찻잔을 집어 들면서 말을 받았다.
“상형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검문쌍영이 이 객잔에 오래 머물리라는 것은 확실하지 못하
잖소? 만약 손선배가 이곳에 오기 전에 그들이 이곳을 떠나면 모든 것이 허사가 아니오. 지금의
형세로는 손선배를 기다릴 수 없으니 우리끼리라도 수를 짜내야 되지 않을까요?”
상팔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더니 무슨 결심을 하였는지 옷매무새를 고치고 또 자신의
분장도 잘 다듬었다.
잠시 후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느꼈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그럼 두 분께서는 이곳에 남아 계시오. 제가 먼저 그들의 동태를 살피겠소이다.”
그는 말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며 두구에게 귓속말로,
“동생, 큰형님과 전형은 모두 강호에 경험이 적으니 자네가 뒤에서 보아 주어야 되네. 공연히 상
대를 쫓다가 오히려 쫓기는 결과가 안 되게…..”
두구는 냉랭한 표정으로 상팔의 말을 듣고 몇 번 소영과 전엽청을 돌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걱정 말고 형님이나 조심하시오.”
상팔은 입술을 꼭 깨물고 두구의 등을 몇 번 가볍게 두드리며,
“잘 부탁하네.”
하는 말과 함께 어깨를 조금 움직이는 것 같더니 어느 사이에 원외로 사라졌다. 그는 몸이 뚱뚱
하고 배가 불룩하게 튀어 나왔지만 민첩하게 몸을 날리는 동작은 제비같이 빨랐다.
두구는 방으로 들어 와 창문과 출입문을 모두 닫아 걸었다.
“두 분께선 방 안에 가만히 계시오. 제가 밖에 나가서 주위의 동정을 살펴 볼 터이니 마음을 놓
으시고 편히 쉬시오.”
이때 사환이 문을 두드리며,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자 두구는 입을 다물었다. 두구는 옆에서 기다리는 사환에게 짐짓 핑계를 대어 급히 돌려 보냈
다.
그는 다시 한 번 창문과 문을 살핀 후 탁자로 다가와 술병을 들고 소영과 전엽청에게 낮은 음성
으로 말했다.
“어서 술이나 들고 불을 끄도록 합시다.”
소영은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초조함으로 인해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술이
들어와도 그냥 그대로 딴 데 정신이 팔려 흡사 정신나간 사람 같았다.
세 사람은 탁자에 둘러 앉아 술과 안주 그리고 약간의 음식을 든 후 그릇을 그대로 놓아 둔 채
불을 껐다.
세 사람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내실은 마치 빈 방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상팔이 밖으로 나간 지 벌써 한 시진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소식이 없자 소영은 은근히 걱정이 되
었다.
‘상형이 나간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
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요함을 깨뜨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가 지나자 그렇게 떠들썩하던 대청이 잠잠해졌다. 두구는 소영의 한숨소리를 듣고 직감적으
로 느낀 것이 있었다.
‘큰형님은 둘째 형님을 걱정하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아주 낮게 입을 열었다.
“큰형님께서는 아직 둘째 형님의 성격을 모르셔서 그러실 것이오. 둘째 형님은 겉보기로는 퍽 온
순하지만 무슨 일을 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꼭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미지요. 그러니 이왕 밖으로
나간 김에 무슨 단서를 갖고야 돌아오지 그냥은 안 올 것이오.”
소영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만 두었다.
두구는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시 입을 열었다.
“큰형님께서는 너무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둘째 형이 검문쌍영과 부득불 맞서게 되었다
하더라도 굳이 싸울 일만 없다면 어떻게든지 몸을 피하여 도망쳤을 것이오.”
“제발 그래 주었으면 좋겠소.”
소영의 말을 이어 전엽청이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앞으로 한 시진만 더 이대로 기다려 본 후 그래도 상형의 소식이 없으면 우리도 밖으로 나가 손
선배와 상형을 찾읍시다.”
세 사람은 서로 굳은 결심을 나타냈다. 방 안의 공기는 차츰차츰 긴박한 분위기로 변하여 갔다.
소영과 손불사는 서로 헤어지면서 약속한 것이 있었다.
‘우리 특이한 일이 없을 때에는 서로 만나지 않기로 합시다. 길에서 만나더라도 우리는 전연 모
르는 사람이오.’
소영은 앞으로 한 시진 후에는 그 약속을 깨뜨리고 손불사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처
지가 무척 서글퍼졌다.
‘악주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사건이 생겨 서로의 힘을 빌려야 되니 앞으로 거대한 세력의 심목풍
과 싸우려면 어찌해야 좋을까?’
너무나 한심한 생각에 또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소영이 내 쉰 한숨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여러 번이었다.
두구가 무슨 위로의 말을 하려고 막 입을 열려는데 달빛을 받고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 비치는 것
같았다.
“누구냐?”
소영과 전엽청도 눈깜짝할 사이에 밖으로 몸을 날려 양쪽으로 갈라지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
다.
세 사람의 이같은 동작은 모두 일순간에 이루어졌다. 상대는 어둠 속에서 대답을 보냈다.
“나야, 빨리 안으로 들어 가 불을 켜게.”
그러자 두구는 다급히 방으로 들어 가 탁자 위에 세워 둔 촛불에 불을 당겼다. 촛불이 켜지자 어
느새 안으로 들어 왔는지 상팔의 모습이 등 뒤에 보였다.
그는 핏기없는 하얀 얼굴로 왼쪽 어깨를 움켜 잡고 있었다.
소영은 가슴이 섬뜩해짐을 느끼며 재빠르게 상팔의 몸을 부축해 주었다.
“상형, 많이 다치셨소?”
“괜찮소이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으니 금창(金創)약이나 조금 발라 주시오.”
옆에서 보고 있던 전엽청이 품 속에서 조그만 주머니를 꺼내었다.
“우리 무당 문중의 지혈생산(止血生散)이라는 약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이오.”
두구는 그에게서 약주머니를 받아 들면서,
“많이 들었소. 이것은 강호에서도 유명한 약이오이다.”
하고 주머니를 열어 흰가루를 상팔의 상처에다 뿌렸다. 전엽청은 만일을 위하여 지혈제와 함께
상처를 동여 맬 수 있는 헝겊도 준비하고 있었다.
두구는 치료를 끝내고 이마의 땀을 씻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군. 갈비뼈가……. ”
그러자 상팔은 깜짝 놀라며 다그쳐 물었다.
“그렇다면 갈비를 다친 것이 아닌가?”
“아니오. 갈비뼈와의 차이는 머리카락 한 올 사이요.”
상팔은 그제서야 얼굴에 화색을 보이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난 또 한쪽 팔을 아주 잃게 될까 큰 걱정을 하였었는데 불행중 다행이군.”
소영은 벌써부터 걱정해 오던 일이라 잠시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상형, 어떻게 된 일이오?”
상팔은 크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대청으로 나갔더니 검문쌍영이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하고 있었소.”
“상형은 피를 많이 흘리고 또 상처도 깊으니 길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형이 어깨를 다치게
된 일이나 간단하게 말해 보시오.”
상팔은 빙긋이 미소를 보였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그들의 뒤를 미행하였소. 그들은 큰 행길을 지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주위 분위기가 흥청거리는 곳으로 갔소.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초롱이 기둥마다 달려서 산들바람
에 흔들리며 근처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소. 그 행길 양쪽으로는 거대한 주택들이 늘어 서 있
었소.”
전엽청이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곳이 무엇하는 곳인데 그토록 번잡하오?”
“바로 악주성의 유일한 오락 장소가 있는 곳이며 기생과 술 그리고 창녀들이 있는 곳이지요.”
소영이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검문쌍영이 무엇하러 그곳으로 갔을까? 혹시 그들은 호색한이 아니오?”
“나도 이상히 생각했었소이다. 검문쌍영이라면 그런 곳을 찾을 때는 변장을 하고 갈 텐데 그대로
갔으니 말이오. 그래서 더욱 바싹 그들을 따랐소이다.”
소영은 내심 짚이는 생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심목풍이 설마 그곳에도 손을 뻗치지는 않았겠지요?”
상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제가 보기로는 그곳에 심목풍의 첩자가 있을 뿐 아니라 아마도 악주를 움직이는 심목풍
의 명령기관이 설치된 것 같았소. 그들은 큰 기생집으로 들어 갔소. 문에는 삼강서우(三江書寓)라
고 씌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주저없이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 갔소.”
소영이 그의 말을 끊고 다그쳐 물었다.
“상형의 상처는 그곳에서 당하였소?”
그러자 두구도 입을 열어 말참견을 하였다.
“설마 검문쌍영이 그 기생집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형에게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겠죠?”
상팔은 어깨의 상처도 잊은 듯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기생집에 쫓아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웬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삼강서우의 건물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구석구석마다 고풍이 물씬 풍기고 있었소. 비파소리와 간드러지게 웃어젖히는 기
생들의 웃음소리가 주위를 어지럽히더군요. 방마다 사람들로 꽉 차 있고 그늘마다 자리가 날 때
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빈틈이 없었소. 그 장사 해볼 만하더군요. 돈이 산더미같이 쌓일 것 같았
소.”
소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역시 옛날의 기질이 있어 돈 버는 장사라면 신이 나나 보오?”
하고 농담을 했다.
상팔은 그 말에 마치 어린애처럼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허허….제가 정말로 옛날 생각
을 잊지 못한 것 같소이다.”
두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서 어깨를 다치게 된 일이나 말해 보시오.”
상팔은 웃음으로 두구를 힐끗 쳐다 보고 다시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삼강서우의 뒤뜰로 올라 갔소. 그곳에는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는데 양쪽에 두 명의
하인이 지키고 있으면서 나를 못 들어 가게 막는 것이 아니겠소. 내 옷차림이 이렇게 지저분하고
더군다나 마부 차림이니 그들 생각으론 마부의 주머니로는 기생집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 거요. 그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가려다가 검문쌍영에게 눈치를 채일까 봐 어두운 곳을 찾아
서 지붕으로 올라 갔소.”
전엽청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상팔에게 물었다.
“그 뒤뜰에도 곳곳에 등불을 켜 놓아 근처의 지붕을 밝게 비추고 있었지만 유독 건너편 정자엔
등불이 보이지 않았소. 창문마다 두꺼운 발을 드리웠으며 그 틈으로 희미하게 방 안에 켜 놓은
불빛이 보였소. 그러나 지붕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를 못하였소. 내가 올라가 있던 지붕에서 불
이 꺼져 있는 정자로 가려면 지붕으로 간다 하여도 밝은 곳을 몇 개 거쳐야 되기 때문이었소. 그
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 보듯 멍하니 그곳만 보고 있을 뿐이었소.”
소영은 그가 어깨의 부상 때문에 무리를 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면 몸에 해로울 것이라고 느꼈다.
“상형, 좀 간단하게 이야기하여 보오.”
상팔은 왼쪽 어깨의 상처를 쳐다 보고는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무당파의 영약은 정말 신기하군요. 지금 나는 조금도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않고 있소.”
소영은 그의 위인됨을 족히 알고 있는 터라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럼 상처에 지장이 없도록 음성을 조금 낮추어 이야기하시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았으나 도저히 아무에게 들키지 않고는 불 꺼진 정자
로 갈 수가 없었소. 그렇다고 그대로 바라만 볼 수도 없어 지붕을 내려 와 옷을 다른 것으로 갈
아 입고 들어 가려고 하였소.”
그제서야 실내의 사람은 상팔이 입고 있는 옷이 먼저 것과 전연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상팔의 상처와 그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미처 그의 변한 모습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상팔은 마부복을 벗어 버리고 혹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전엽청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물었다.
“그렇게 빨리 어디서 옷을 빌렸소?”
상팔도 그 일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싱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밖으로 나와 어두컴컴한 골목을 찾았소.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니 마침 나와 신체가 비
슷한 사람이 나타나기에 무작정 그의 혈도를 찍은 뒤 그 사람의 옷과 내 옷을 바꾸어 입었소.”
그러자 조그만 내실에는 군호가 웃어젖히는 웃음소리로 꽉 찼다.
상팔은 신이 나는 듯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과연 사람에게는 옷이 날개라더니 기생집 후원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인들은 옷만 바꾸어 입은
나를 그대로 들여 보내는 것이 아니겠소.”
소영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뒤뜰은 굉장히 넓더군요. 양쪽으로 쭉 늘어 선 정자는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어느 곳에
검문쌍영이 들어 있는지를 분간할 수 없었소.정자가 열두 개나 되었는데 거의 불이 켜져 있으
니…”
두구가 호기심에 끌려 상팔의 이야기 구절마다 어깨를 움츠렸다 폈다 하였다.
“형님, 그렇다면 불이 켜진 정자마다 손님으로 꽉 찼단 말이군요?”
“그렇지, 나는 그 여러 정자를 쭉 훑어 보았으나 그들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지. 다만 적진 깊숙
이 들어 온 것 같은 기분만 들더군.”
전엽청이 다그쳐 물었다.
“그곳이 틀리던가요?”
“제가 처음에 주위를 살필 때는 몰랐었는데 열두 정자를 두루 훑어 보고서야 이상한 점을 생각해
내었소. 알고 보니 그 열두 개의 문호는 바로 우연중 팔봉방위(八封方位)를 뜻하는 것이었소. 그
래서 그곳은 절대로 평범한 기생집이 아니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재빨리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입
구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돌연 어둠 속에서 ‘죽여라!’ 하는 낮은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검
광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내 가슴을 향해 비스듬히 쳐 내려 왔었소. 너무나 뜻밖에 당한 일이었고
더군다나 칼을 휘두른 상대의 솜씨가 놀랍도록 빨라 그만 어깨를 베인 것이오.”
두구는 옛날부터 상팔과 행동을 같이한 터라 그의 무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이기에 형의 어깨에 단 일격으로 큰 상처를 주었을까?’
이런 생각으로 눈살을 크게 찌푸리며 물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보았소?”
상팔은 고개를 저었다.
“못 봤네. 볼 수도 없었고, 또한 그의 검술이 얼마나 빠른지 강호에서도 보기 드문 솜씨였네. 다
행히 내가 어깨를 맞고 앞으로 더 나가지를 않고 지붕으로 몸을 날렸었네. 내가 막 지붕에 올라
서자 조금 전에 내가 서 있던 곳으로 사방에서 무수히 많은 암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니겠나. 만
약에 조금만 더 그곳에서 지체하였더라면 목숨을 잃을 뻔하였지.”
소영이 점잖게 입을 열어 짐짓 넓은 견식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 설치는 상형 한 사람을 상대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라 사전에 모든 계획을 세워 놓
아 침입한 적을 꼼짝 못하게 하려던 것일 거요. 천만다행으로 상현의 기지로 화를 면하였으니 퍽
이나 반갑소.”
상팔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단 말이오.”
“무슨 일이오?”
“바로 내가 일격을 당한 그 장소가 이상하단 말이오. 처음에 지나갈 때 유심히 살폈는데 괴한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없었소. 도대체 그 괴한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 나에게 칼을 휘둘렀는지를
모르겠소.”
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일 그 정자가 움직일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면…..”
상팔이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맞았소. 그것을 생각 못했군요. 그들의 장치는 아주 악랄하오. 한칼에 죽지 않으면 비오듯 쏟아
지는 암기에 맞아…. 역시 그렇게 되면 강호의 일류 고수들이라도 피해 내기가 힘들 것인데 내가
운이 좋았나 보오.”
두구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점차로 흥미로운 상팔의 이야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래 지붕 위로 도망간 뒤 누가 뒤쫓지 않았소?”
“내가 오른 지붕은 전실과 가까운 곳이며 다행히 앞마당에 사람들이 들끓어서 그대로 사람들 틈
으로 뛰어 내렸네.”
소영이 냉랭히 말했다.
“필경 그 삼강서우가 수상한 곳이긴 하군.”
전엽청이 손을 비비며 말을 받았다.
“심목풍의 세력이 천하에 구석구석 퍼져 있어 도처에 그의 제 이, 제 삼 소굴이 있으니, 우리 우
선 그 소굴을 하나 골라서 쳐부수기로 합시다.”
“전형의 말이 옳소. 오늘 저녁은 편안히 푹 쉬고 내일 저녁 삼강서우로 잠입하여 한바탕 오랜만
에 힘을 써 보도록 합시다.”
상팔이 앞으로 나섰다.
“전형은 아무래도 무위도장과 손노선배님에게 사전 상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전엽청이 근심된 표정으로 물었다.
“소생의 사형께서도 이곳 객잔에 드셨는지 모르겠소?”
“그건 염려 마시오. 내가 조금 전에 검문쌍영을 쫓으러 대청으로 나갔을 때 그곳 기둥에 씌어 있
는 암호가 보였었소. 그러니 틀림없이 이곳에 드셨는데 어느 방인지는 모르겠구료.”
바깥의 어두움은 차츰 짙어 갔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간간이 들려 오는 말소리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고 그 사이 벌써 삼경이 지났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날이 밝았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뜻밖에도 무위도장과 손불사가 소
영을 찾았다.
소영은 자신이 그들을 찾으려 하였었는데 그들이 직접 찾아 왔으니 힘 안 들이고 일이 잘되어 갔
다.
이제 모든 사람이 다 모이게 되자 새로 온 두 사람에게 어젯밤에 상팔이 당한 일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무위도장은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우리는 이제부터 전세 속으로 말려들게 된 것 같소. 기왕 이렇게 나섰으니 힘을 함하
여 심목풍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줍시다. 이곳 악주에 심목풍의 소굴이 있고 또한 많은 부하가
있다 하지만 백화산장의 주력이 이곳에 있지는 않을 것이오.”
손불사도 매우 흥분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분타를 기생집에다 설치해 놓은 심목풍의 기지는 정말 감탄할 만하군. 이 늙은이가 강호의 모든
곳을 유랑했지만 기생집에 분타를 설치하였다는 이야기는 오늘에야 처음 들어 보는 일이오. 좌우
간 오랜만에 기생집 구경이나 하여야겠소.”
“가긴 가야겠지만 사전에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겠소.”
“도장께서는 무슨 계책이라도 있소?”
무위도장은 다그쳐 묻는 손불사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계책은 한 가지 있으나 그것이 여기에 적용이 될지 궁금하군요. 빈도가 이야기할 테니까 만약
여러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지 마시고 중단시켜 주시오.”
이런 전제를 내어 놓은 무위도장은 삼강서우라는 기생집을 공략할 계책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였
다.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던 손불사가 대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도장의 계책은 정말로 기가 막힌 것이오. 적을 혼란하게 만든 뒤 허리를 찌른다! 허허
허…..”
손불사의 호탕한 웃음이 막 그치려는데 돌연 문 밖에서, 탁! 하고 조그만 물체가 마룻바닥으로 떨
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위도장의 안색이 싹 변했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그의 말과 함께 또 다시 두 번째 소리가 들렸다.
“빈도가 이곳에 오기 전에 곳곳으로 망을 볼 사람들을 내 보내었소. 지금 저 소리는 의심할 만한
인물이 이곳에 들어 왔다는 신호요.”
소영은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심목풍의 부하가 이곳에 들어 왔다는 말이오?”
“그렇소.”
무위도장은 문께로 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이었다.
“빈도는 먼저 가 보아야 되겠으니…..”
손불사도 그의 뒤를 따랐다.
“노부도 몇몇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해야 되겠소.”
개방의 제자들은 강호 곳곳에 전부 퍼져 있었으니 이곳 악성에도 없을 리 없었다.
손불사는 개방 문하 중에서 오직 한 사람 남은 장로인만큼 제자들이 그를 대하는 예는 매우 공손
했다. 그러니 그의 말 한 마디면 십여 명의 제자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니 도움을 받
아야 될 장한은 아주 쉽게 결정되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소영은 눈길을 돌려 상팔에게 물었다.
“상형은 어깨를 다쳤으니 며칠 푹 쉬시오.”
상팔은 고개를 저었다.
“반나절만 쉬면 충분할 것이오.”
소영은 그 한 사람만 이곳에 남겨 둔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소영, 전엽청, 그리고 중주이고 등 네 명 은 객잔을 나와 군영루를 찾았다.
군영루는 악주에서 제일 큰 술집이었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 무위도장과 사마건의 모습이 보였다. 무위도장은 청포에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머리에는 망건을 쓴 평범한 노부로 변장하고 있었다.
소영은 내심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그들 옆을 지나쳐 자리가 빈 탁상으로 자리를 잡았
다.
사마건은 여전히 점쟁이 차림이었다. 아직 점심 때가 일러서인지 손님은 과히 많지 않았다. 그들
은 이 층으로 올라가 아래층이 잘 보이는 장소에 제각기 자리를 잡았다.
일행의 눈빛이 마주치자 소영은 품 속에서 조그만 약병을 꺼내어 그것으로 노인으로 변장한 모습
을 깨끗이 지워 버렸다. 이제 소영의 본래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래층으로 내려가 입구에서나 이 층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
다.
이어 변장한 모습 그대로의 중주이고와 전엽청이 소영의 근처 탁상에 앉아 암암리에 그를 보호하
였다. 그들은 군영루 안의 인물들과 쉴새없이 드나드는 손님들을 일일이 살폈다.
소영을 위시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으로 심목풍이 어떤 수법으로 공격을 할 것인가를 궁금히
여겼다.
잠시가 지난 후 상팔이 무엇을 보았는지 두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입구를 가리켰다.
“저 자를 조심하게.”
두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곁눈질로 지금 막 입구로 들어서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
다. 그 자는 일 층의 빈 자리를 지나 이 층으로 오르는 층계 입구까지 가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
추고 흘깃 소영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소영의 등 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탁상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사환이 찻잔을 받쳐 들고 소영의 앞으로 다가 왔다.
“나으리,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무위도장은 잔뜩 긴장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깨뜨리기 위하여 탁상 위에 놓인 술잔을 대번에 들
이켰다.
소영이 무어라 주문을 하니 곧 사환이 주방으로 물러갔다.
사환이 주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커다란 쟁반에 술과 안주를 들고 나왔다. 상팔은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터라 사환이 안주를 가지고 나오는 시간이 무척 빠르다고 생각되었다.
“좀 이상한데?”
두구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오?”
“어떠한 술집이고 간에 선후가 있는 법인데 어째서 큰형님에게 먼저 술을 갖다 주는 것일까? 주
문은 우리가 먼저 했단 말일세. 저 사환을 주의하게.”
그들은 사환의 일거일동을 날카롭게 살폈다.
사환은 무표정하게 소영에게 다가 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술과 안주를 놓고 이 층으로 올라 갔
다.
두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형은 너무나 의심이 많단 말이야. 심목풍이 이곳에까지 손을 뻗치지는 않았겠지!’
소영은 혼자서 술을 마시게 된 것을 우습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술병을 기울여 잔 가득히 술을 따
랐다.
‘오랜만에 술집에 들어 왔군.’
이런 생각을 하며 술잔을 들어 막 입에 대려는데 돌연 등 뒤에서 전음입밀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
려 왔다.
“그 술과 안주는 먹지 못하는 것이오.”
그것은 분명 여자의 목소리였으며 눈치채이지 않게 찬찬히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 근처에는 여자가 없는데 어디서 그 음성이 들렸을까? 전음입밀을 쓰는 것으로 보
아 보통 여자는 아닐 텐데. 하여튼 빨리도 난관에 부딪쳤구나. 이놈들이 독을 써서…..’
이런 생각을 하며 들었던 술잔을 도로 탁상에 놓았다. 그러자 주방으로 들어 가려던 사환이 소영
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술과 안주가 너무 뜨겁습니까?”
소영은 사환을 유심히 쳐다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렇다면 안주가 마음에 드시지 않으십니까?”
“아니!”
사환은 탁상에 놓인 술잔과 안주를 힐끗 바라 보고는 다시 권했다.
“그러시다면 어찌 술을 안 드시나요?”
“이 술과 안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요.”
사환은 대뜸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허리를 연방 굽신거렸다.
“손님께선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 술과 안주에 이상이 없다면 자네가 먼저 먹어 보게.”
소영은 이야기를 하면서 두 손을 놀려 그의 오른쪽 다리의 요혈을 찌르고, 반 강제로 술을 먹였
다. 그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여 몇 가지 동작은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다른 손님들은 조금
도 눈치를 못 채었다. 설사 소영과 사환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사환과 손님의 관계
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소영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니 입에 물고 있던 술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사환은 두 눈을 둥
그렇게 뜨고 소영의 손에서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자네 조심하여야겠어.”
소영은 그에게 점잖게 주의를 주고 요혈을 풀어 주었다.
사환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주방 쪽으로 달려 갔다. 그가 주방 입구까지 다다랐을 때 갑자기
그의 몸이 뒤틀리는 것 같더니 그대로 마룻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가 쓰러지는 모습은 마치 나
무 토막 같았다. 그는 마침 천장을 보고 쓰러졌으므로 코와 입에서 붉은 선혈이 새어 나오는 것
이 빤히 보였다.
‘만일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것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다면 내가 저런 꼴이 되었을 게 아닌가? 부
끄러운 일인데!’
소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벌써 그 사환의 주위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우르르 모였다.
‘이 주객들 중에는 틀림없이 심목풍의 부하들이 끼여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알고 나
는 아무도 모르니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인 것이 아닌가. 이곳도 오래 머물지는 못할 곳이로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 속에서 몇 푼의 동전을 꺼내어 탁상에다 놓았다.
두구는 불안해서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둘째 형님, 우리도 밖으로 나갑시다. 심목풍의 손길이 여기까지 뻗쳤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는데…..”
중주이고가 자리를 뜨자 계속해서 전엽청 무위도장 손불사 그리고 사마건이 몸을 일으켰다.
소영은 곧장 걸음을 옮겨 군영루 출입문으로 나가려는데 또 다시 조금 전의 그 여자 음성이 귓전
을 울렸다.
“암수를 조심하시오.”
소영은 재빨리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역시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는 나에게 모습 보이기를 싫어하는군. 하여튼 암수를 조심하라고 했으니 단단히 정신을 차
려야 되겠는걸.’
이렇게 생각을 하며 막 문을 나서려는데 별안간 차가운 섬광이 눈앞에 번쩍이는 것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십여 개의 독침이 대문 위에 나란히 꽂히는 것이었다.
소영을 겨냥한 독침 중 몇 개는 열려진 문 사이로 빠져 나가 죽어 넘어져 있는 사환을 구경하던
두 사람의 주객에게 사정없이 꽂혔다.
“아앗!”
두 주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져 몇 번 뒹굴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들 바
로 옆에서 같이 구경을 하던 주객들은 두 사람이 어째서 죽었는지를 전연 몰랐다.
그 독침은 매우 가늘고 짧은 것이 마치 돼지털과 흡사하였다.
소영은 가슴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달랠 길 없어 문 앞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뚫어지게 쏘아 보
았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독침을 날린 인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로구나.’
중주이고와 그외 일행들은 쓰러진 두 명의 주객을 훑어 본 후 사태가 긴박함을 느끼고 모두 암암
리에 공력을 모아 예기치 않은 공격에 대비하였다.
상팔은 몸을 날려 문을 나서며 소영의 옆을 스치는 순간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형님, 빨리 따라 오시오.”
소영은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괜히 행인들만 살필 것이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앞서 가는 상팔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소영의 뒤를 전엽청이 따르며 뒤의 동정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