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331
331. 3년이면 충분하겠지.
다음 날.
재성은 박승훈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회장실 소파에 둘러앉아 회의를 가졌다.
“최종적으로 수자원 공사와 4천 850억 원에 디즈니랜드 예정 부지를 인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처음 기대한 것보다는 액수를 많이 깎지 못했네요.”
“대신 부지 면적이 원래보다 10만 ㎡ 더 늘어난 430만㎡가 됐습니다.”
최종 합의안을 확인한 재성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잘한 일이에요.”
나중에 추가로 부지를 매입하는 것보다 미리 충분히 땅을 확보해 두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쥐고 있으면 나중에 무조건 더 비싸지는 땅이니까. 싸게 사두면 그만큼 돈을 버는 거지.’
재성이 몸을 뒤로 기대며 물었다.
“부지 매입금은 골드원에 넣어뒀던 투자 원금과 수익금으로 충당할 거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유니콘 그룹 계열사들은 보유한 현금성 자산 가운데 상당액을 골드원에 투자하고 있었다.
씨네박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투자를 거듭하면서 크게 불어났다.
“이미 6천 500억을 송금받아서 법인 계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정도면 부지를 매입하고 프로젝트를 본격 시작하는 데 충분한 액수였다.
“그러면 더 머뭇거릴 것 없이 바로 계약을 마무리 짓고 디즈니랜드 건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참, 중국 쪽 상황은 어때요?”
재성의 물음에 박승훈 사장이 곧장 대답했다.
“그동안 문을 닫았던 멀티플렉스극장들은 내일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씨네박스 차이나 역시 판권을 확보한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스케줄을 잡으며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할당받았던 외화 수입 쿼터는 이미 연도가 지나 기한이 만료됐으니 새로 쿼터 배정을 받아야 되죠?”
연말 성수기 때 개봉하기로 스케줄을 잡아뒀던 외화 두 편이 공안 조사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었다.
그로 인해 가지고 있던 외화 수입쿼터 역시 사용하지 못한 채 소멸되고 말았다.
“저희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중국 당국이 쓰지 못한 수입 쿼터 기한을 6개월 연장시켜 줬습니다.”
재성이 의외라는 얼굴로 되물었다.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먼저 그렇게 해줬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도 보고를 듣고 진짜인지 의심했었습니다.”
뇌물을 준 것도 아닌데 중국 당국이 먼저 이렇게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경우는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의아해하던 재성은 이내 화젠민의 입김이 들어간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화 부주석이 신경을 써준 모양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쪽에서 알아서 챙겨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겠죠. 대신 관할 기관인 국가 광전국 간부들한테 서운하지 않게 성의를 표시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이런 것까지 신경 써줄 여유가 있는 걸 보면 화젠민이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고 양위안은 몰락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권세를 누리며 기고만장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는군. 뭐 자업자득이지.’
재성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회의를 끝냈다.
박승훈 사장과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이어 비서실 직원들이 들어와서 테이블을 말끔하게 치웠다.
재성은 결재 서류나 조금 더 볼까 싶어서 책상 앞에 앉았다.
막 앞으로 손을 뻗으려던 찰나, 권혁재 실장이 문을 두드리더니 죄송하다며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어쩐지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올라 있어서 재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게…….”
권혁재 실장은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택 관리 사무소에서 대신 받아 둔 우편물 중에 이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재성이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 후론 비서실에서 우편물을 비롯한 빌라 관리를 맡았다.
대부분은 재성이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처리되었는데 어쩐 일로 권혁재 실장이 저런 말을 하나 싶었다.
“이게 뭔데요. 아…….”
재성은 우편물을 들어서 보자마자 알겠다는 듯 낮은 탄성을 흘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치를 떨 그 이름.
국방부에서 날아온 편지였다.
“그동안은 해외 체류 기간이 길어서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올해는 1월 첫 달에 훈련 대상이 되어서 통지서가 나왔답니다.”
규정에 매년 180일 이상 외국에 체류하면 훈련을 면제 받는 조항이 있었다.
딱히 그걸 노리고 미국이니 유럽이니 하면서 날아다닌 건 아니지만 뜻밖의 이득이었던 셈이다.
재성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새 우편물을 뜯어 통지서를 읽어보았다.
반면 권혁재 실장은 연신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바로 연기 신청을 하고 출장 계획서를 제출해 면제받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통지서가 나온 이상 재성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들고 오긴 했지만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한다고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권혁재 실장이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과 달리 재성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뭐 그럴 필요까지야. 그냥 놔둬요.”
“예?”
“어디 보자. 마침 훈련 날짜에 별다른 일정도 없네. 하루 회사 쉰다고 생각하고 갔다 올게요.”
재성은 스케줄을 적어둔 탁상 달력을 집어서 살펴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혼날 각오를 하고 있던 권혁재 실장은 얼이 빠져서 물었다.
“며칠씩 군부대에 가서 훈련받는 동원 예비군도 아니고, 그냥 하루만 동사무소에서 교육을 받으면 끝나는데 뭐가 어렵겠어요.”
만약 다른 재벌 자제였으면 왜 자기가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시간을 버려야 하냐며 성질을 부리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재성은 언제나 좋은 의미로 예상을 깨부수는 남자였다.
“그래도…….”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권혁재 실장이었다.
지난 삶에서 질리도록 예비군 훈련을 받아봤던 재성이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걸 모르는 탓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괜히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면 재벌 특혜니 뭐니 해서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잖아요. 그럴 바엔 그냥 갔다 오는 게 낫죠.”
재성이 직접 가겠다고 하는데 계속 말릴 이유도 없었다.
권혁재 실장은 괜히 자기 때문에 재성의 일을 하나 더 늘리게 된 것 같아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럼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요.”
재성은 등받이를 젖혀 의자에 늘어진 상태로 통지서를 손에 들어 팔랑거렸다.
“안 그래도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바람 쐬러 나갈 핑계가 생겼네.”
하루 정도는 아예 머리를 텅 비워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매일 이것저것 업무를 처리하느라 피곤한 일상에서 신선한 기분 전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생각의 흐름을 끊듯이 책상 한쪽에 놔둔 핸드폰이 울렸다.
“데이비드?”
재성은 자세를 바로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걸 보니 소니의 2011년도 실적이 나왔나 보네요?”
[예. 방금 발표됐습니다.]“어떻게 됐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5,360억엔의 순적자를 기록했습니다.]지난 1년 동안 무려 한화로 무려 7조 5천억 원이 넘는 거액의 적자가 난 것이었다.
[중간에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돌발악재가 있었다지만 시장에서 예상했던 3000억 엔보다 두 배나 많은 적자입니다.]“시장의 충격이 크겠네요.”
적자를 예상했다지만 액수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났다.
소니가 아무리 글로벌 대기업이라고 해도 이 정도 적자라면 기둥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장외시장에서 소니 주식이 3%이상 급락했습니다. 아마 뉴욕증시가 개장되면 하락 폭이 더 커질 겁니다.]“실망한 투자자들의 매물이 쏟아질테니 그렇게 되겠죠.”
[화학과 패널 부분에서 명을 감원하고 하워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총사퇴를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입니다.]핸드폰을 손에 든 채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감원을 단행하면 비용은 줄어들겠지만 실적을 개선시킬 명확한 비전이 전혀 안 보이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벌써 4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TV 사업 부분은 사성과 TG 등 한국 기업에 완전히 밀려 버렸으니 앞으로 가 더 암울하겠죠. 거기에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까지 기록했으니 제 같아도 손절하고 나왔을 겁니다.]데이비드의 말대로 현재 소니는 누가 봐도 몰락 중인 기업이었다.
그 역시 십 년 뒤에 화려하게 부활하는 걸 직접 보지 않았다면 소니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한국에서 흔히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어요. 소니가 휘청거리고 있다 해도 그동안 쌓아올린 것이 있으니 버틸 수 있는 알짜 자산이 여전히 많을 거예요.”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라……. 그거 아주 흥미로운 말이군요.]“하워드 회장이야 어차피 퇴임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상관없을 테고. 이번 실적 발표로 카이토 고문의 입지에 악영향이 있겠군요.”
[사실상 지금의 소니를 설계한 인물이 카이토 고문이니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일본 대표 기업을 외국에 넘겨서는 안 된다며 지분을 보유한 일본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해 우호지분을 모으는 중이라고 그랬죠?”
[그렇습니다. 미즈호 은행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저희가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로 올라서자 위기감을 느낀 모양입니다.]재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봤자 결과를 바꿀 수는 없을 거예요.”
[맞습니다. 너무 늦어버렸죠.]카이토 고문이 우호지분을 최대한 끌어모은다고 해도 25%가 채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골드원이 직접 보유한 지분만 13.1%나 됐고 손을 잡기로한 외국계 투자자들이 가진 주식까지 합치면 40%가 넘어갔다.
일본 개인투자자들한테 위임장을 전부 다 받아내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골드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주주총회를 하기도 전에 이미 승자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생각해 봐도 미즈호 은행이 내놓은 지분을 가져온 것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이쪽의 지분은 크게 늘리면서 상대편 주식 숫자를 확 줄여 버렸으니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쯤이면 카이토 고문도 상황파악이 됐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그렇다면 주주총회 전에 카이토고문을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도록 해요.”
[이미 표 대결에서 이길 것이 확실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의문을 표시하자 재성이 차분하게 이유를 말해줬다.
“주총에서 이겨 다케다 사장을 새회장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종목표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경영진을 교체한다고 해도 카이토 고문 일파가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을 텐데하려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한다면 그것보다 귀찮고 골치 아픈 것도 없을 거예요.”
다케다 수석 사장을 앞에 내세운다고 해도 오랫동안 주류로 회사를 좌지우지해온 카이토 일파를 단번에 뽑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카이토 일파는 새로운 경영진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게 뻔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다시 회사의 주류로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며 재성이 말을 이었다.
“지루한 파벌 싸움이나 하면서 언제까지 소니에 발목이 잡혀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골드원과 함께 움직이는 외국계 투자자들도 높은 수익을 원하는 거지 소니 경영권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늙은 너구리인 카이토 고문도 싸워봤자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알테니. 적당히 사탕을 던져주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봐요.”
[알겠습니다.]“그리고 카이토 고문 일파를 남겨 놔야 다케다 사장이 회장직에 앉고 나서도 허튼 생각을 가지지 않을 거예요.”
[역시 저보다 몇 수를 더 보시군요. 근데…….]잠시 주저하던 데이비드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만약 카이토 고문 쪽에서 좋게 말해도 우리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지 못하도록 준비해 둔 카드를 하나 보내줄게요.”
몇 가지 더 이야기를 하고 통화를 끝낸 재성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알맹이를 쏙 다 빼먹는 데 3년이면 충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