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474
474. 너랑 비교하면 서민 맞지.
공장 일을 하는 중년 가장인 김태일은 동료들과 가볍게 소주를 한잔 마시고는 버스 정류장에 섰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얼 것 같은 영하의 날씨였다.
게다가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까지 있어 두터운 겨울 점퍼에 목도리를 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으으, 추워.”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서 있던 그는 마침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줄을 서서 올라탔다.
버스 안은 히터가 틀어져 있어서 따뜻했다.
김태일은 저절로 늘어지는 몸을 의자에 기대고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국제유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주요 산유국 중에 한 곳인 베네수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Caa1”에서 “Caa3”로 두 단계 강등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 하락의 이유로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정부 재정이 계속 악화됨에 따라 디폴트 위험이 크게 높아진 것을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동 산유국들에 비해 원유 생산 원가가 높은 베네수엘라는 국제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재정 수입이 크게 악화되고 외환보유액 역시 최고치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이번 발표가 나오자 베네수엘라의 국가의 부도 위험을 의미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러자 고유가에 베네수엘라 국채와 주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적극적으로 매입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친구의 권유로 유니콘 증권을 찾아 펀드를 가입할 때 베네수엘라 어쩌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김태일은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이런 가운데 박재성 회장이 소유한 골드원 펀드와 유니콘 증권은 다른 투자자들하고 달리 베네수엘라 채권 CDS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CDS, 즉 신용부도스와프는 상품의 대상이 부도가 났을 때 원금을 보장해 주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하는 신용파생상품입니다.
다시 말하면 골드원과 유니콘 증권은 유가 하락으로 인해 베네수엘라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예상하고 투자를 한 겁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예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어 골드원이 다시 한번 “big shot”을 맞췄다며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재성과 유니콘 그룹의 이름을 믿고.
은행 이자보다 조금만 더 많은 수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때마침 만기가 된 적금을 몽땅 털어서 넣은 펀드였다.
혹시라도 손실이 났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김태일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네.”
다른 곳들은 손실이 났는데 골드원과 유니콘 증권은 오히려 수익을 냈다는 뉴스에 역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버스에서 내린 김태일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 군고구마네.”
요즘 시대에 드물다고 생각하면서 김태일은 코를 킁킁거렸다.
평소라면 추운 날씨에 그냥 지나쳤겠지만 오늘따라 군고구마 냄새가 유독 달콤했다.
“겨울엔 역시 군고구마지.”
그러고 보니 아내도 군고구마를 좋아했다.
김태일은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한 봉지에 얼마죠?”
“5천 원이요.”
버스에서 기분 좋은 뉴스를 들은 덕에 지갑이 쉽게 열렸다.
김태일은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다!”
“와, 좋은 냄새.”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우당탕 뛰어오며 그를 반겼다.
딸은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아들은 아직 유치원생이라 둘 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공장 일이 힘들고 피곤해도 이렇게 반겨주는 자식들을 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전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빠! 뭐야 맛있는 냄새나.”
“짜잔. 군고구마다.”
“와아!”
“맛있겠다.”
꺅 소리를 지르며 딸과 아들이 서로 자기한테 달라고 팔을 뻗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네~”
“엄마! 아빠가 군고구마 사 왔어.”
현관 앞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가 부엌에서 걸어 나오며 물었다.
“어머, 웬일이야?”
“오다가 보여서 샀어.”
“밥은?”
“동료들하고 소주 한잔 걸치면서 대충 먹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어휴, 그게 안주지 어떻게 밥이야. 나이도 있는데 술 좀 줄여.”
김태일은 알았다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소리를 피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은 뒤 씻고 나오자 아내가 거실에 군고구마를 꺼내놓고 아이들에게 먼저 먹이고 있었다.
“당신도 와서 먹어.”
“됐어. 지금 먹으면 더부룩해서 잠 못 자.”
김태일은 습관적으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마침 스포츠 채널에서 낮에 했던 야구 경기를 재방송 중이었다.
“참. 당신한테 우편물이 하나 왔던데.”
아내는 애들한테 군고구마 껍질을 까주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처럼 소파 테이블 밑에서 회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우편물?”
“겉에 유니콘 증권이라고 적혀 있던데.”
아내는 내용물이 궁금한지 빨리 뜯어보라고 재촉했다.
손으로 입구를 찢고 속을 열어보자 안에서 얇은 책자가 튀어나왔다.
대충 살펴보니 그가 가입한 펀드에서 투자한 내역과 수익률이 알기 쉽도록 상세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깔끔해서 보기 좋긴 하지만 그냥 흔한 안내 책자인가보다 하고 김태일은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그러다 제일 마지막 장에서 손이 멈췄다.
모든 걸 종합해서 펀드 운용 기간과 원금, 그리고 수익률이 정리된 페이지였다.
“어?”
김태일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 제 눈을 의심하며 0이 몇 개인지 하나씩 세어봤다.
“일십백천만……. 2천만 원?”
천만 원이었던 원금이 불과 5개월 만에 2천 백만 원이 되어 있었다.
“뭐야? 뭔데!”
옆에서 군고구마를 먹고 있던 아내가 2천만 원이란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달려들었다.
“이, 이것 좀 봐.”
아내는 김태일에게서 책자를 받아 들더니 역시 입을 벌리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만 원이 이천만 원으로 늘어났다고? 그것도 5개월 만에!”
그야말로 숨만 쉬고 살았을 뿐인데 저절로 돈이 복사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펀드가 이렇게 돈이 잘 벌리는 거였어?”
“어어, 잠깐만. 아까 버스에서 무슨 뉴스를 들었던 거 같은데.”
김태일은 인상을 쓰면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뭐라더라……. 아, 자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암튼 유니콘 증권이 투자를 잘해서 큰 수익이 났다고 한 건 분명해.”
아내는 재차 수익금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기뻐했다.
“그래도 두 배가 나다니 정말 크게 벌었나 보네.”
아내는 박수까지 치면서 활짝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넣어놓을걸 그랬네. 여보, 우리 이러다가 금방 부자 되는 거 아니야?”
“하하! 그러게 말이야.”
김태일 또한 뜻밖의 횡재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펀드를 들 때만 해도 제발 이득까진 안 바라니 원금만 까먹지 말라며 얼마나 빌었던가.
솔직히 은행 이자보다 조금만 더 벌어다 주면 그걸로 만족했을 거였다.
그런데 두 배 이상 돈이 불어났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을 겪은 건 김태일뿐만이 아니었다.
유니콘 증권에서 펀드를 가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대박을 외치며 축배를 터트렸다.
[유니콘 증권 펀드 풋옵션과 베네수엘라 채권 CDS 잭팟!] [작년에 출시한 유니콘 증권 골드원 드림 펀드 200%가 넘는 수익률 기록!지난 15일, 유니콘 증권 펀드 가입자들에게 운용 보고서가 발송됐다.
운용 보고서를 확인한 투자자들은 기대 이상의 수익률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1년도 채 운영되지 않은 펀드가 무려 200%를 훌쩍 넘기는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국내 증권사들이 운용하는 펀드 평균 수익률이 3%를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유니콘 그룹의 인수 이후 운영하던 펀드들을 전부 재편해 월가의 유명 투자사인 골드원과 협력해서 자금을 운영한 것이 이런 수익률의 비결일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200%라니……. 진심 수익률 완전 미친 거 아님?
↳아무리 그래도 이거 너무 과장된 거 아냐?
↳맞아. 설마 이 정도까지 나왔겠어.
↳유니콘 증권 펀드 가입자 1인인데 기사 내용 사실이에요. [유니콘_펀드_운영보고서.jpg]
↳우와……. 이거 찐이네.
↳역시 믿고 가는 유니콘이네.
↳바닥까지 꼬라박았던 동남 증권인데 박 회장 손 좀 닿았다고 이렇게 변하냐…….
↳지금 당장 적금 깨서 유니콘 증권으로 달려갑니다.
↳아직도 출발 안 했어요? 난 벌써 가는 중.
↳펀드 모집 마감돼서 가봤자 소용없어요^^
↳젠장~~!!
↳뭐야! 돈을 갖다준다는데 왜 안 받는 거냐고.
* * *
유니콘 증권 펀드의 엄청난 수익률에 떠들썩한 가운데 재성은 휴일을 맞아 평창동 본가를 찾았다.
마중을 나온 권민도 집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가족들이 벌써 다 도착해 거실에 모여 있었다.
“왔니?”
단가연 여사는 소파에 앉아 재성을 맞이했다.
작년에 태어난 조카가 품에 안겨서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손자의 예쁜 짓에 미소를 짓고 있던 박경수 회장 역시 고개를 들어 재성을 반겼다.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컸네요.”
“원래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법이야.”
단가연 여사가 입가에 웃음을 가득 지으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땐 완전 쪼글쪼글해서 원숭이 같더니 그래도 몇 달이 지났다고 제법 사람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큰형 대신 형수를 닮아서 그런지 갈수록 잘생겨지네.”
“내 얼굴이 어때서?”
맞은편에 있던 박재현이 발끈했다.
“어머, 왜 그래. 솔직히 남자답게 잘생긴 건 아니잖아. 우리 형제들 가운데 나 빼고 그나마 봐줄 만한 얼굴은 막내밖에 없는걸.”
다른 건 몰라도 얼굴 평가는 재경의 눈이 제일 확실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박재현은 짐짓 화난 것처럼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평소라면 기분 나빠했을 형수조차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확실히 애가 생겨서 그런가, 예전의 예민했던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게 보였다.
오늘도 작은 형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조카가 있으니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가족들 간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조금 이르지만 첫돌 선물이에요.”
재성은 옆구리에 끼고 온 얇은 봉투를 형수인 장인선에게 내밀었다.
“네? 고마워요, 도련님.”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 든 장인선은 어떻게 하지, 하고 묻는 듯한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무슨 선물인데 서류 봉투에 넣어서 가져와?”
박재현의 물음에 재성은 아버지가 있는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손주 재롱에 푹 빠져 있어서 이쪽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제일 건설 지분이야.”
“뭐?”
그 말에 박재현은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열 분리를 해서 나가면서 재성이 물려받은 제일 그룹 지분을 대부분 정리했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로 인해 주력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제일 건설 지분 0.9%를 지금까지 계속 가지고 있게 됐다.
현재 제일 건설 주가로 따지면 거의 210억 원의 가치가 있었다.
박재현이 얼른 봉투를 열어보자 정말로 주식 증여 서류가 들어 있었다.
“너…….”
“딴살림 차리고 나간 나보다는 조카가 가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해.”
“맞아요, 도련님.”
장인선도 설마 재성이 이런 선물을 들고 올진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이미 증여 절차가 다 끝났거든.”
“맙소사. 너 진짜…….”
박재현은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를 얼굴로 재성을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삼촌이 조카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하잖아. 그냥 고맙게 받아.”
“하지만 아버지…….”
“저놈이 어떤 녀석인데.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남자라며 심심하면 잡지에 실리는 놈이다. 제일 건설 지분 좀 떼어준다고 표시라도 나겠어?”
박경수 회장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큰아들에게 고민하지 말라고 등을 떠밀었다.
재성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제일 그룹 지분까지 내려놓는 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이미 드넓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막내아들에게 제일 그룹은 비좁은 새장에 불과했다.
“기껏 준비해 줬는데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받아야지.”
박경수 회장이 거듭 권하자 박재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서류 봉투를 든 손을 내려놓았다.
“고맙다.”
옆에서 형수인 장인선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조카는 좋겠네. 막내 삼촌이 엄청 부자라서! 이게 바로 다이아몬드 수저지 뭐야.”
한창 숙연해져 있는 분위기에 뜬금없이 등장해 초를 치는 건 역시 재경이었다.
“아니, 누가 들으면 누나는 서민인 줄 알겠어.”
“너랑 비교하면 서민 맞지. 그냥 지나가는 일반인 1 정도밖에 안 돼.”
양손에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몇 개씩 끼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재성은 가족들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