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1290
밥만 먹고 레벨업 1291화
민혁은 제우스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어떠한 것을 요구했다.
민혁은 자신의 대륙에서 절대 그런 것을 구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이아 대륙은 다르다.
그 가이아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신인 제우스라면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잉태의 사과를 얻어냈다.
세상은 변한다.
그 변화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옷차림일 거다.
10년 전이 촌스러웠음을 눈치채는 우리들처럼 오래전 필립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표정만큼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민혁과 필립은 무너진 그의 세상에서 벗어나 한 숲속에 함께였다.
“많은 것이 변했겠지.”
변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면 남은 여생을 떠돌 필립에겐 굉장히 따분한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고 돌아볼 곳은 많았다.
“또 만나자, 손주야.”
사실 민혁은 필립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와 가까워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는데 결국 민혁이 요구하였단 것에 다른 이들만큼의 정감은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필립은 민혁을 진짜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고, 드디어 민혁의 ‘족보’ 중 증조할아버지가 채워진 거다.
‘증조할머니와 고모, 이모는 어디서 찾지?’
아무튼.
“언젠간 다시 만나자꾸나.”
작은 웃음을 지으며 필립은 떠나갔다.
앞으로 민혁이 기둥의 재앙을 또 얻을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혁은 어떠한 것도 원치 않았다.
사실 이미 너무 과분한 것을 받은 민혁이다.
그리고 떠난 필립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의협처럼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 사이에서 위험에 처한 자들을 구해줬다.
“나 민혁이 증조할아버지일세.”
“갑자기요?”
또 어떤 날은 가뭄에 찌든 어떠한 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 많은 물을 구해다 줬다.
“민혁이를 아는가? 나 민혁이 할애비 되는 사람인데.”
“……?”
그리고 어떤 날은 그저 어떠한 동행을 만나 걸었다.
“나 민혁이 할애비일세.”
동행자들은.
“저 아저씨 허언증 말기 아냐……?”
“그런 듯…….”
필립은 정처 없이 걸었고.
[누군가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민혁에겐 흔하게 들려오는 알림이었기에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계속 정처 없이 걸었으며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은 후.
“나 민혁이 할애비인데 민혁이 앞에 달아놓으면 안 되나……?”
“……?”
아무튼 그는 그렇게 주방으로 끌려가 설거지를 했다.
그는 언제나 정처 없이 걸었다.
* * *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높은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든, 낮은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든.
강하든 약하든. 모든 인간은 죽으면 끝이고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든 이 역시 죽으면 끝이다.
바카만 공작은 자신의 잘린 핏줄이 회복되지 않고 썩어들어 가는 것을 느꼈었다.
구더기라도 들끓을 것처럼 풍겼던 지독한 악취가 그를 더 괴롭게 했다.
온몸이 썩어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었다.
혈관을 타고 썩어들어 가던 그것은 어느덧 심장을 으깨고 있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바카만 공작조차도 그 끔찍한 고통과 깊은 심연속에 가라앉은 느낌은 너무도 두렵고 무서운 거였다.
‘바카만 공작님!’
오열하는 알렉의 목소리를 끝으로 바카만 공작은 정신을 놨었다.
그리고 지금,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아려온다. 특히나 심장 부근이 저릿하여 손을 뻗어 쥔다.
“크흑…… 뭐지?”
바카만 공작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옆에서 라그만 공작도 막 깬 듯싶었다.
서로가 눈을 맞췄다.
때마침 알렉이 들어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신의 검 기사단의 알렉이 환하게 웃음 지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저릿거리는 육체가 지금조차도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알렉은 민혁과의 친밀도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민혁의 모습은 멋졌다.
특히나 천외제국 이들만이 아니라 루브앙 제국 사람들마저 구하려던 그 모습이 그의 많은 기억을 ‘왜곡’시켰다.
알렉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누군가의 무용담을 늘어놓듯 상기되어 말했다.
“그때 민혁 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미운 것은 사실이나, 이곳에서 등을 맡기고 싸운 동료이다. 그들도 함께 살리지 못한다는 것은 황제로서 매우 통탄할 일이다. 나는 그대가 루브앙 제국의 이들까지 살려주지 않는 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겠다!’라고 하셨죠.”
비슷하나 조금 과장되었고, 그 과장은 부풀려진다.
“‘제우스’여. 부디 내가 이곳의 소중한 모든 이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다오!”
“……진짜 그렇게 말했단 말이더냐?”
그리고 그 왜곡을 당사자는 진실처럼 믿어버린다.
“정말입니다. 오히려 제가 간략하게 설명드리느라 그때의 민혁 폐하의 표정과 목소리의 절박함을 전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라그만 공작과 바카만 공작은 혼란스러웠다.
암묵적인 전쟁.
지금은 그러한 때다.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인가.’
친한 적 손을 내밀며 속으로는 전쟁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도 민혁에 대한 모든 생각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알렉보다도 더 컸다.
왜냐?
‘나를 살렸다…….’
‘나를 구했다…….’
죽어가던 나를 구해준 자다.
‘민혁 황제는 오래전부터 내가 탐났던 걸까?’
바카만 공작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할아버지는 룬달쿠다.
그 가문의 사람이 자신이었고.
어쩌면 그로 인해 자신이 탐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루브앙 제국과 천외제국은 결국 그런 곳이었으니까.
물론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르게 생각을 하셨다.’
바카만 공작은 브로드에 의해 새롭게 개척되는 루브앙 제국이 경멸스러웠다.
왜 우리가 천외제국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수순을 걷는가?
대루브앙 제국의 우리가 말이다.
그러나 민혁은 우리와 달랐다.
‘공존’을 알았고 적이어도 병사들의 소중함을 알았다.
‘나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낫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루브앙 제국군을 구했다며 기뻐하고, 천외제국 진영을 보며 조소 어린 미소를 지어줬을 거다.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한다.
바카만 공작의 시선이 라그만 공작과 마주쳤다.
그나마 조금 더 감수성이(?) 풍부한 라그만 공작은 한 방울의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 순간 그들의 눈빛교환과 작은 끄덕임. 씁쓸한 미소가 많은 걸 나타내고 있었다.
“민혁 폐하는 지금 천외제국에 계시나?”
“아뇨. 루브앙 제국으로 오고 계십니다.”
“민혁 폐하께서도 다치셨을 텐데, 움직이신단 말인가? 옥체가 상하면 어쩌시려고.”
“예……?”
옥체요……? 갑자기?
“맞네. 그 귀하신 몸으로. 언제 도착하시지?”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방문하시는 이유는?”
“루브앙 제국과 친분을 유지하던 국가들의 사절단과 함께 방문하시는 걸로 압니다.”
라그만 공작과 바카만 공작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민혁 황제를 봬야겠네.”
* * *
아테네엔 여러 제국이 존재한다.
그 여러 제국의 대부분이 루브앙 제국과 화친해 오며 루브앙 제국으로부터 보호받아 왔다.
그리고 이제, 천외제국은 루브앙 제국과 전쟁이 끝남으로써 다른 제국과의 화친을 이끌어내야 할 때다.
물론 다른 제국들보다 천외제국이 우위에 서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루브앙 제국을 업은 그들을 천외제국이 어쩌진 못하며, 천외제국도 원활한 교류를 위한 외교를 펼쳐야 했다.
“민혁 폐하. 아무리 루브앙 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브로드 황제께서 꿰차고 있으시다 한들. 동등한 입장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민혁은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루브앙 제국에 향하는 사절단과 합류했다.
사절단은 두 개의 제국과 일곱 개의 왕국의 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이 바로 루브앙 제국을 지탱하는 동맹국의 핵심이다.
애초부터 천외제국과 교류하던 이들이 아니다.
되려 언제든 그들은 루브앙 제국을 위해 천외제국에 검을 들이밀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로 인해 천외제국과도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칸스 제국의 후시먼 공작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아시겠지만 루브앙 제국엔 여러 파벌이 존재합니다.”
제국은 황제의 것이나 그 거대한 지분은 여러 파벌들이 나눠 가진다.
“가장 강력한 파벌은 역시 바카만 공작님의 파벌입니다.”
사실이다. 바카만 공작의 명성은 루브앙 제국 내에서도 크며 그를 따르는 무리는 황제의 무리와 버금간다 할 정도다.
그런 그가 루브앙 제국의 충신임이 다행이다.
왜냐. 그렇지 않았다면 카르딘 황제는 진작 자리를 내줬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허나 바카만 공작께선 천외제국을 고깝게 보고 계시진 않은 것 같으니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명 텃새다.
일개 제국의 공작 따위가 한 제국의 황제를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모든 사절단의 귀족들이 그를 당연시 여겼다.
‘우린 루브앙 제국과 오랜 시간 연을 맺어왔다.’
‘천외제국이 아무리 막강해도 후발주자에 불과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으르렁거리던 사이였는데 가깝게 지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어린 작자가 제국 황제라니.’
모두 민혁을 경계했고 그 소리에 민혁이 답했다.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은 알겠으나 오지랖은 집어넣었으면 하는군. 이 자리의 누가 나를 가르쳐도 된다 생각하는가?”
“……!”
“……!”
“……!”
그들은 건방진 민혁의 언행에 화가 났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순리에 대해 모르는 황제가 분명하다.
그저 ‘알겠네.’ 하면 될 것을 우리와 이렇게 관계를 틀게 하겠다고?
후시먼 공작의 얼굴이 붉게 물들자 누군가 그를 대변하듯 말했다.
“민혁 폐하. 후시먼 공작님은 바카만 공작님과 차를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십니다.”
“참 대단하시군.”
미치고 팔짝 뛰겠다.
민혁은 그깟 것에 우월함을 느끼는 그들이 뼛속까지 ‘루브앙의 개’였음을 알았다.
그러나 뱉어놓고도 조금 후회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란 걸 알았으나, 그들의 언행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후시먼 공작이 민혁을 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괜한 오지랖이었군요. 그럼 저는 바카만 공작님과 차나 한잔 마셔야겠습니다.”
그 말이 바카만 공작에게 이 사실을 이르겠다는 유치함이었다.
그때.
“오! 바카만 공작께서 저를 마중 나오셨군요!”
후시먼 공작이 웃음 지었다. 루브앙 제국 성벽 위에서 초조한 기색의 두 사람이 사절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시먼 공작이 예의를 갖추어 상체를 꾸벅 숙였다.
모두가 감탄했다. 후시먼은 바카만이 손 인사를 할 거라 생각했으나, 그와 라그만 공작이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달려왔다.
심지어 달려오는 그들은 어딘가 아파 보였다.
성벽의 문이 열리며 뛰쳐나온 두 사람을 보며 후시먼 공작은 알았다.
‘아, 나를 악수로 맞아주기 위해서!?’
후시먼 공작은 이것이 자신의 위상을 세워주기 위한 바카만 공작의 배려임을 알았다.
“하하하, 바카만 공작님, 잘 지내셨…….”
그가 손을 내밀었으나 바카만 공작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더니 그를 밀쳤다.
“길 막지 말게.”
“……?”
이번엔 라그만 공작이 옆으로 밀려난 후시먼 공작을 밀쳤다.
“아, 쫌! 비키시게!”
“……?”
두 사람이 거칠게 호흡하며 민혁을 바라봤다. 그들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민혁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조금 더 감수성이 풍부한 라그만 공작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 바카만 공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사람이 민혁에게 힘껏 절했다.
무릎 꿇는 것도 아닌 절이었다.
모든 사절단의 인원들, 그리고 후시먼 공작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