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렌 아르젠]
– 특성: 묘안(墓眼)
– 기술: 강령(降靈), 하벤베르크 검술 초급
– 힘: 7.3
– 민첩: 7.3
– 체력: 8.0
– 감각: 6.7
– 기력: 0.6
– 영력: 2.1
영력이 드디어 2를 넘어섰다.
그래서 그런지 눈앞의 고블린 주술사가 더욱 선명히 느껴지는 듯하다.
– 네게서 영혼의 힘이 느껴지는군.
“어억!”
– 뭘 그리 놀라나?
갑자기 위에서 몸을 거꾸로 한 상태로, 그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면 안 놀라겠니?
그나마 내가 담력이 강해서 망정이지, 다른 이들이었으면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요?”
레이먼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하긴, 이 녀석에겐 망령이 보이지 않으니…….
“아니야, 정리할 게 있어서 그런데 저 녀석 데리고 먼저 나가 있을래?”
“알겠습니다요.”
레이먼은 기절해 있는 린을 등에 업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 내 염원을 대신 해결해 주어 고맙군. 나는 게르구르다.
“난 렌 아르젠.”
고블린 주술사와 통성명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근데 영혼의 힘이 느껴진다는 게 무슨 소리지?”
– 말 그대로다. 영혼들은 산 자와 다른 그들만의 힘을 가지고 있지. 보통 산 자들은 영혼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
게르구르가 말하는 영혼의 힘이 영력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근데 보통이라는 건, 가진 이들도 있다는 거겠네?”
– 그렇다.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있기는 하지. 그게 바로 나와 같은 주술사들이다.
주술사들이 영력을 사용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주술사들은 죽어 망령이 된 영혼들을 다루며 그들이 가진 힘을 빌려 주술을 사용한다.
내가 다른 것에 무관심했던 것일까?
생전 생각도 못 해본 소리에 흥미가 일었다.
“그럼 영혼의 힘은 어떻게 키우는데?”
– 영혼의 힘은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며 쌓거나 혹은 영혼 주변에 머물며 그들의 영력을 몸속으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주술사들은 편법을 이용해 그들의 힘을 가져온다.
“그게 가능해? 편법이 뭔데?”
편법으로 영력을 빌려올 수 있다니, 그 방법을 알아내면 나도 할 수 있단 거잖아?
– 비밀이다.
나의 기대와 다르게 돌아온 대답은 퉁명하다.
그럴 거면 왜 말한 거야?
“뭐야? 나도 가르쳐 줘.”
– 주술을 쓸 줄 아느냐?
“……모르지.”
– 그럼 알려줘도 의미가 없다.
“그래, 뭐 됐다. 대신 영혼의 힘에 관해 알려 줘.”
– 영혼의 힘은 강해질수록 다른 영혼을 더 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지. 가령, 지독한 악의(惡意)에 사무쳐 사령(邪靈)이 되어버린 영혼들이 술사를 헤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한 영혼을 사령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영혼에 대한 통제력.
설명을 들으니 어떤 힘인지 감이 잡혔다.
– 그 밖에도 죽은 자들의 힘을 잘 느낀다든지 감각이 예민해진다든지 하는 부가적인 능력도 있지만 나도 그런 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고마워.”
– 그렇다면 하나만 더 부탁을 들어주겠나?
“……뭔데?”
내 물음에 게르구르가 쓰러진 고블린 워리어를 가리켰다.
– 이 아이를 묻어달라.
그 말에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아닌 괴수의 무덤을 만드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땅을 파고 무덤을 만드는 건 내 일이었으니.
“흐음…….”
고블린 워리어를 묻으려 생각해 보니, 주변에 다른 이들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 녀석들도 묻어줘야겠군.’
내가 죽이고 무덤을 만들어 준다는 게 모순적이긴 했으나, 어쩌겠나?
게론이 메고 있던 가방을 뒤지니 그곳에 작은 휴대용 삽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삽으로 우릴 죽인 뒤 어디에다 우릴 묻어 숨겨둔 후에 나중에 찾으려 한 듯싶었다.
갑자기 열이 뻗쳐 그냥 내버려 둘까 하다가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무덤을 만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20년간 쌓인 내공의 힘이랄까.
– 잘하는군.
내 작업을 구경하던 게르구르가 중얼거렸다.
“내 직업이 묘지기니까.”
– 그래서 그랬던가…….
[영력이 0.1 상승합니다.]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자 갑자기 영력이 오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건…….”
– 호오, 설마 영혼의 힘을 느끼는가? 대단하군. 고작 무덤 몇 개 만든 것에 쌓이는 영혼의 힘을 느끼다니.
멍하니 묘지를 보며 중얼거리던 나를 게르구르가 신기한 듯 보았다.
“무덤을 만들면 영혼의 힘이 쌓인다고?”
– 그렇다. 아까 말했지 않나.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는 게 힘을 쌓는 거라고. 그들을 묻어주는 게 그 첫 번째지.
“그랬구나…….”
그렇게 내가 주억거리고 있을 때, 게르구르가 다시 내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 고맙다.
진심 어린 그의 인사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과거에 수많은 이들의 묘를 만들어 주어도 이런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들도 내게 고마워했을까?’
문득 과거에 만들었던 그 수많은 무덤이 떠올랐다.
– 묘지기여.
게르구르의 영혼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난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게르구르를 보았다.
– 사령을 조심해라. 묘에 잠든 망령들이 모두가 하얗지는 않으니…….
“사령…….”
– 나와 고블린 워리어를 이렇게 만든 건 검은 옷을 입은 마법사들의 소행이다. 영력보다도 더 사이한 힘을 사용하는 자들이었지.
“……뭐?”
여기서 또 흑마법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 놈들은 워리어를 이용해 무언가를 시험하는 듯했다. 강자는 영혼의 힘도 강한 법, 그들의 영혼의 힘을 추출한다고 하더군.
“영혼의 힘을 추출한다고? 그게 가능해?”
–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메인 퀘스트 – 흑마법사의 흔적] [흑마법사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들의 흔적을 찾으십시오.]
– 흑마법사의 흔적 2/3
여기서 또 놈들의 흔적이 나타나다니…….
스펜서가 무덤에 갇혀 있던 것도, 놈들이 데케인을 노린 것도, 어쩌면 영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넌 이제 사라지는 건가?”
–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거다.
역시, 영혼들이 있어야 할 곳은 이승이 아니었던가.
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게르구르를 바라보았다.
– 나의 넋은 충분히 위로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게르구르는 사라졌다.
텅 빈 허공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 있어라.”
고블린 주술사와 고블린 워리어.
그리고 4명의 인간이 묻힌 묘지.
언젠가 누가 이곳에 들린다면 그들의 넋을 위로해주길 바라며 나는 그곳을 떠났다.
* * *
레이먼과 함께 프랜시스의 집으로 돌아간 나는 고블린들을 모두 처리했다는 결과를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수고했네.”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것처럼.
나는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잘 보여야 할 상대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매우 화가 난 척 연기를 시작했다.
“그게 끝이야?”
“뭐? 그럼 뭘 더 말해줘야 하는데? 너희는 그저 내가 치료해준 대가를 치른 것뿐이야.”
“다른 이들의 생사는 안 궁금해?”
“알아서 잘 돌아왔겠지. 너희들도 왔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다 죽었어. 한 명 빼고.”
“뭐? 죽었다고?”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나와 레이먼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다른 이들은 죽었다.
이건 분명 의심해볼 만한 상황이었으니.
“너희-.”
“다 우리가 죽였어. 왜인 줄 알아?”
죽였다고 말하면서도 당당한 나의 모습에 프랜시스가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듯, 말을 더듬는다.
“왜, 왜……인데?”
“그놈들이 우릴 죽이려 했으니까.”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것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을 몰래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범. 그게 놈들이었어.”
프랜시스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갈팡질팡하는 시선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은 나름 재밌는 요소였다.
그런 속내를 숨긴 채, 가만히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거짓말하지 마. 증거는? 증거는 가지고 말하는 거야?”
“지금 피해자인 우릴 의심하는 거야?”
“뭐……, 내 말이 틀려? 너희가 날 속이고 있을 수도 있잖아!”
프랜시스의 반응에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쯧…….’
그녀는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참여한 의뢰가 자신의 무지로 인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하는 거겠지.
그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이 의뢰의 의뢰자라면 응당 사과부터 하는 것이 맞았다.
사실관계는 이후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
“우린 너만 믿고 너의 의뢰를 이행했어. 그리고 저놈들한테 기습당해서 죽을 뻔한 상황까지 갔었지.”
“증거는? 증거 있어?”
레이먼은 렌과 프랜시스의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다 혀를 찼다.
‘사수님이 기습하면 기습했지, 기습당한 적은 없지……않았나?’
죽을 뻔한 적은 더더욱 없었고.
그냥 단칼에 베스킷의 팔과 목을 베어낸 걸 생각하면 레이먼은 아직도 소름이 돋았다.
“증거? 증거 있지.”
나는 품에서 작은 패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인간들을 실험에 사용하는 파렴치한 집단의 문양. 잘 봐둬. 그리고 정 못 믿겠으면 네가 알아보던지.”
“……좋아. 내가 알아볼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직 믿을 수 없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 굽히지 않을 사람이란 걸 나는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데려왔지.”
레이먼이 그 말을 듣고는 후다닥 나가서 묶여 있던 린을 데려왔다.
“저 사람은…….”
“아, 안녕하세요?”
“자, 솔직하게 다 말해. 하나도 빠짐없이.”
린은 렌의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그때의 상황을 모두 말해주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까지도.
“……정말이에요? 신중히 생각하고 말해요. 이 두 사람이 협박이라도 했으면 걱정 말아요. 제가 지켜줄 테니.”
그녀의 분노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근데 정말이면 제가 당신을 죽일지도 몰라요…….”
정말로 그녀는 린을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였다.
린은 렌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끝내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이런 상종도 못 할-.”
“잠깐.”
그때,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죽을 위험에 처했어. 맞지?”
“……인정해.”
“그니까 그에 대한 보상을 난 받아야겠어. 애초에 이 녀석들을 떠나서 의뢰내용도 말도 안 됐고.”
마을의 의뢰내용은 고블린들의 처리가 전부였지만, 그 안에는 고블린 워리어가 있었고 같은 의뢰를 받았던 용병들은 배신자였다.
이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야 하는 건 당연지사.
“그래서 어떡한다고?”
“우린 네 부탁으로 온 거라 마을에 보상을 받지 못해. 하지만 얘는 다르지.”
나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린에게 향했다.
“기존 5명분 보상에 더해 추가 보상까지 전부 린이 받게 할 거야. 그거 전부 우리가 가져가겠어. 난 고블린 부락을 정리해주는 것으로 너에 대한 빛을 보두 갚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넌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이걸 인신매매 사건으로 키우면 이놈들 주선한 용병 길드에서 조사가 나올 게 뻔한데? 괜찮겠어?”
프랜시스는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레이먼, 네가 일 마무리 짓고 와.”
“옙!”
나는 레이먼에게 뒤를 맡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프랜시스가 입을 꾹 다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붙잡았다.
“왜?”
그녀는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고마워.”
그 자존심 강한 성격상 간신히 꺼낸 말이었겠지만, 내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아니, 틀렸어.”
“어?”
예상 밖의 말에 프랜시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가 아니라 미안하다고 했어야지.”
그 말과 함께 나는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 다시 문으로 향했다.
“미안해! 정말로…….”
프랜시스가 뒤늦게 사과해 보지만 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늦었어.”
“어……?”
“처음 내가 말했을 때 했어야지. 너 때문에 상대방이 피해를 입었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맞는 거야. 같잖은 증거를 찾기 전에.”
그리 말한 나는, 또 다른 말을 듣기 전에 곧바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끼익-
“사수님! 저도 같이…….”
놀란 얼굴로 뒤늦게 나를 따라 나오는 레이먼.
나는 그의 어깨에 슬쩍 팔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때?”
“예? 뭐가 말입니까요?”
“프랜시스 말이야. 어떠냐고.”
갑자기 변한 내 분위기에 레이먼이 고개를 갸웃한다.
“울상…이긴 합니다요.”
“그래? 후후…….”
“……화나셨던 것 아닙니까요?”
“화를 왜 내? 쟤가 뭘 알았겠어?”
이 정도는 해야 이번 보상 다 챙겨가는 데에 프랜시스가 아무 말도 못 하지. 흐흐.
원래라면 저 중 절반은 프랜시스한테 뺏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