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49
제149화
현재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의 중심인 조각사의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사방의 이목이 한곳으로 쏠렸다.
여우 가면이 내려가고 그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붉은 입술과 검게 칠해진 눈가, 시꺼먼 머리카락.
사람들이 기대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폴의 얼굴에 곳곳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얼굴에 뭘 그렇게 바른 거야?”
오실리아가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어릴 때 뺨에 상처를 입어 항상 이렇게 다닙니다. 이리 안 하면 신경이 쓰여 일이 잘 안되다 보니…….”
얼굴에 펴 바른 걸 지우라고 하려던 오실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화장을 지우면 다시 화장을 해야 일이 가능해진다. 교황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하라는 건 교황의 시간을 무시하는 행위.
억지로 그의 화장을 지우게 하기에는 상황이 모호했다.
“나 때문에 괜히 가면을 벗게 한 건가.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교황의 사과에 오실리아의 표정만 굳어갔다.
“제 불찰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오실리아. 내가 어찌 자네의 생각을 모르겠나. 괜찮네.”
그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투에 사제들 사이에서 옅은 존경심이 피어난다.
“다시 써도 되네.”
“감사합니다.”
폴은 다시 가면을 썼다.
“내가 어디 있으면 되겠나?”
“이쪽에 잠시 앉아 계시면 됩니다.”
“그러지.”
교황이 조각상의 뒤쪽 대각선상에 앉았다. 폴은 그를 확인하고 조각상 위로 올라섰다.
* * *
‘큰일 날 뻔했어.’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미리 화장해놓지 않았으면 허무하게 정체를 들킬 뻔했다.
악기와 더불어 귀족 부인들이 사용하는 화장용품들을 미리 공수해놓고 가면을 쓰기 전에 매일 화장을 해놨었다.
머리카락은 조금 더 어둡게 만들 수 있는 염료를 이용해 브릴런트에서부터 변색해놓은 상태였다. 잿빛 머리카락은 그리 흔한 머리 색은 아니었으니.
하르만 대주교가 가면을 벗을 일 없다며 나와 아크로를 몇 번이나 안심시켜주었지만, 하르만을 믿느니 플레이크를 믿는 게 나았다.
‘여기서 들켰으면 일이 배는 힘들어졌을 거야.’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를 마음대로 구금하거나 벌하지는 못하겠지만, 성국 밖으로 내쫓을 수는 있다.
마스터급의 검사가 신분을 숨기고 교황 근처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찔리는 것이 많은 놈들은 식겁할 테니.
‘바로 코앞인데.’
몇 걸음만 걸으면 닿을 거리다. 지금 내 품에 초혼과 혈검 둘 다 없는 게 아쉬웠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까짓 검 없어도 아무 무기나 집어 들고 싸우겠지만, 상대는 프로코피우스 두카스다. 전력을 다해도 죽일 수 있을까 말까 한 인물.
나는 그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프로코피우스 두카스]특성: 성흔 오선(聖痕 五線), 신위
기술: 신성 마법 6성
힘: 9.4
민첩: 10.1
체력: 10.4
감각: 8
신성력: 40.2
나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뱉을 뻔했다. 신성력이 40이 넘는 수치. 더구나 다른 사제들에 비해 기본 신체 능력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절망스럽게 만든 것은 두카스가 가진 ‘신위’라는 특성이었다.
[신위]신과 가장 가까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 신성력이 남아 있는 한 죽지 않습니다.
‘미치겠군.’
결국에는 저 괴물 같은 신성력을 모조리 없애지 않는 이상 교황을 죽일 수 없다는 뜻이다. 교황을 죽이는 게 가능할까?
두카스의 상태창을 보고 있자니, 그를 죽일 의욕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뭐 하고 있나?”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닙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우선 잡념을 지우고 조각 일에 집중했다.
사각,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각들이 떨어지고 가루가 흩날린다. 얼굴은 조각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더 많은 심력을 쏟았다.
조각칼을 움직이고 있으니 어느새 앞선 고민들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눈앞의 작품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들로 가득 찼다.
“미쳤군.”
“아니……, 전보다 더 실력이 늘어난 것 같은데? 착각인가?”
“아니네, 착각이 아니야…. 내가 느끼기에도 그래.”
주변에서 감탄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러한 소음들은 점차 자그마한 배경이 되었고 내 귓가엔 대리석의 파열음과 마찰음만이 선명해졌다.
“후우…….”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눈앞에 교황이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도 못하고 작품에 집중했다. 이곳에 온 뒤로 그 어느 때보다 작품에 몰입한 상태였다.
얼굴을 조각하는 데 시일이 걸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얼굴의 디테일한 분위기나 주요 포인트들을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내 실력이 이렇게까지 늘었었나?’
젬마가 강령한 것도 아닌데, 순간 그녀가 내 몸에 들어왔던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멍하니 내가 만든 작품을 보고 있을 때였다.
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짝…….
하나둘 손뼉 치는 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리에 앉아 있던 교황조차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대단하군.”
아직 작품을 완성조차 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감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예정보다 더 빠르게 작품을 완성하게 될 듯싶었다. 그에 따라 축제의 일정도 당겨지겠지.
내 실력에 감탄하며 존중의 의미로 박수를 보내던 사제들은 어느새 양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있었다.
“신이시여…….”
교황 역시 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들의 몸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허어…….’
바스티안의 주교부터 교황까지, 고위급 사제들만 모여 있었다.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신성력이 공간을 뒤덮고 내 공간을 범람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까짓 신성력을 밀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건……, 몸의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야.’
뛰어난 조각상을 만들어낸 조각사에 대한 경외와 존중. 고생한 자를 위해 보상을 바라는 그들의 감정이 신성력으로 변해 내게 스며든 것이다.
‘내가 너무 편협하게만 보았던가.’
솔직히 성국의 고위 사제들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로 그들의 신앙심마저 의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것들은 결코 거짓된 신앙심을 가진 이들이 내보일 수 없는 신성력이었다.
교황이라는 성국 최고의 사제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를 본뜬 최고의 조각상을 만든 조각사에 대한 감사.
그것들이 한데 모여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니. 이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사제들의 모습이 분명했다.
‘두카스의 신성력이 가장 정순하고 뛰어나다.’
괜히 그의 신성력이 40을 넘는 게 아니었던가. 그의 탐욕과 비리와는 별개로 신에 대한 신앙심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그가 교황의 자리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를 용서할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 * *
밤이 되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 김에 궁전의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교황은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궁전의 내부를 안내하던 사제는 내게 내부 지도와 정보가 상세히 적힌 종이를 넘겨주었다.
특이한 점은 따로 표시가 된 곳들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교황의 침실, 서재, 기도방, 비밀 공간…….’
별의별 방들이 다 존재했다.
특히 비밀 공간이라 칭해지는 이곳은 그가 궁전 내부에서 여자 교인들을 불러오는 곳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내부가 복잡해. 못 가는 곳도 많고.’
내게 이 지도를 건네준 이는 애스턴의 심복. 미리 교황의 이동 동선과 궁전의 내부 지리를 익히기 위해 그에게 자료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관련 없는 곳까지 천천히 둘러본 후에 궁전 밖으로 나왔다.
조각상의 예상 완성일은 이틀 뒤. 이것도 완벽한 준비를 위해 일부러 하루를 늘린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은 지금, 도심의 거리엔 사람이 없다.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셨군요. 추적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초반에 따돌렸지만.”
양 건물의 좁은 틈, 어둠에 가려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애스턴 캐쉬였다.
“다행입니다. 렌 님의 조각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을 붙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겁니다.”
“제가 알아서 잘 피해 보겠습니다.”
지난번 플레이크에게 추적자가 당한 이후로 내게 붙여진 눈들이 점점 많아졌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따돌려야 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여기.”
그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내게 종이 뭉치를 건넨다.
“추기경들의 동선과 일정입니다. 축제 일정 또한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장 그가 건네준 자료들을 확인했다. 필요한 정보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눈 밖에 오래 있으면 의심을 살 테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예. 다음에 볼 때는 교황이 죽은 이후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은 위험해도 너무 위험했다. 교황의 능력도 그렇고, 다른 추기경들과 성기사들의 시선을 끌 애스턴도 마찬가지.
교황을 죽이지 않으면 애스턴은 반드시 죽게 된다. 어떻게든 한 번에 일을 성공시켜야 했다.
“아, 그리고 플레이크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폭발에서 살아남다니, 역시 범상치 않은 마법사로군요.”
“놈이 성물을 강탈하기 위해 궁전에 침입할 겁니다. 그곳으로 추기경을 보내 놓으십시오. 부담이 줄어들 겁니다.”
내 말에 놀란 눈을 한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 다 끝내야 해.’
더 이상의 이상 행동은 의심을 살 확률이 높으니.
나는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곳과 그다지 멀지 않은 건물의 옥상.
좁은 건물 틈 사이의 벽면을 타고 올라가자 그곳에 플레이크가 기다리고 있다.
“왔네?”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귀 열고 제대로 들어.”
“걱정 마.”
작전의 시작 시기, 역할, 중요 포인트 등을 플레이크에게 알려준 뒤 다시 자연스럽게 골목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다시 붙는군.’
감시자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난번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추적자들이지만, 나를 감시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잠깐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시간을 비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어리숙한 이들이니 그 정도의 추적 공백은 의심스러워도 확신은 하지 못할 테지.
“야밤에 달리기로 운동까지 했더니 피곤하군. 빨리 자야겠어.”
나는 적당히 몸을 푸는 동작을 취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 * *
하루가 더 지나 조각상이 거의 다 완성이 되었을 즈음.
궁전의 입구로 향하는 길이 개방되고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성기사들의 통제와 함께 성대하게 시작된 축제. 마지막 눈동자만 새기면 완성되는 그 장면을 위해 바스티안의 인파가 죄다 이곳으로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엄청나군. 반응이 뜨거워.”
“그걸 알면 성기사들만 고생시키지 말고 좀 사제들에게도 도우라 하지? 저스틴.”
“렘, 그건 너무 억지잖아?”
저스틴이 피식 웃으며 폴을 보았다.
조각상 앞에서 마지막 조각상을 새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어디서 저런 조각사가 나타났지?”
“왜 탐나나?”
“탐이야 나지. 근데 저걸 탐낼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라.”
“하긴, 너는 아니지. 다른 놈들은 맞는 것 같지만.”
렘이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다. 폴을 향해 탐욕을 숨기지 못하는 몇몇 사제들.
위쪽에서 그들의 비리를 알면서도 눈을 감아준 것은 교황의 심기를 건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각상의 뒤편에서 시민들에게 인자한 웃음과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교황의 이면이 어떤지 아는 그들에게는 뻔히 보였다.
교황이 폴을 보았다. 그의 눈빛에 생겨나는 안개처럼 자욱한 욕망. 그 안에 일렁이는 강렬함 탐욕.
아주 잠깐 스치듯 드러난 것이었지만, 저스틴과 렘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 성하께서 지금 얼마나 참고 있으신 지 말이야.”
저스틴이 느릿하게 웃는다. 렘은 굳은 얼굴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축하연을 지켜보았다.
“시작하게나.”
교황의 명과 함께 렌이 그의 눈동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조각했다. 지금까지 조금 부족해 보였던 조각상이 눈 하나 완성되는 것으로 완벽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사람들의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마주한 교황도 순간 넋이 나간 듯 조각상을 멍하니 보았다.
“허, 진짜 미쳤군.”
렘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조각술이 뛰어나다 정도의 감상이었다면, 조각상이 완성되고 나서는 완전히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말 다 했네. 크큭.”
저스틴이 실실 웃으며 말한다. 평소라면 퉁명스레 대꾸했을 렘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말을 멈추고 조각상을 감상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렌은 자신에게 주르륵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확인하느라 그들의 반응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