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렌의 충격적인 발언에 찰스는 물론 생도들 모두가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야? 지금 내가 들은 게 맞아?”
“미, 미친 거 아니야?”
“아니…, 혼자서 다섯을 상대한다고?”
제국 황실 기사. 그것도 저들은 평범한 기사들이 아니다.
제국 황실 기사단의 단장들. 그중 붉은 머리 기사는 오늘 사절단 대표로 온 검주의 기사단원이었다.
모두가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 전부를 혼자서 상대한다는 미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들이 당황할 수밖에.
‘미쳤다. 정말로 저 기사들을 혼자 다 상대한다고? 이건 무조건 봐야 해! 이건 놓칠 수 없는 자료다!’
찰스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대결이 제발 성사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언제 이런 대련을 보겠나? 그것도 제국 황실의 상급 기사들이 다른 국가의 기사를 상대로 합공을 펼치는 걸 볼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
그리고 아까 보았던 렌의 검술을 떠올리면 왠지 질 것 같지도 않았다.
“진짜로 정신이 나간 놈이었군.”
붉은 머리 기사가 이를 아드득 갈며 말한다.
“내 심기를 건들고 싶은 거였다면 충분히 성공했다.”
“말이 많네? 다 같이 덤비라니까. 왜 5명도 모자라?”
“하! 내가 네 속셈을 모를 거라 생각하나? 우리를 모두 경기장에 올려 핑계라도 대려는 걸 모를 줄 알아?”
뒤쪽에 있던 기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렌은 그런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헛소리는 그만해라. 나를 이긴다면 그 말 들어주지.”
붉은 머리 기사가 훈련장 위로 올라갔다. 렌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저 붉은 머리 기사가 말한 대로 그저 놈들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한 말일 뿐이었다.
“아쉽다.”
찰스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교수님 뭐가 아쉬워요?”
“어? 아, 아니야.”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훈련장을 본다. 그는 제발 렌이 이기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4:1이라도 볼 수 있을 테니.
‘투기까지는 쓸 필요 없겠어.’
만약 정말로 5:1의 상황이 되었다면 투기는 물론이고 가지고 있는 패를 전부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1:1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
‘그래봤자 상급 기사. 수준은 어느 정도이려나.’
벌써 싸움 귀신이라도 된 걸까.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막상 누군가와 붙을 때마다 왜 자꾸만 저 안쪽에서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며 슬그머니 올라오는 건가.
“제대로 해주마.”
검을 고쳐 쥔 붉은 머리 기사의 몸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
땅을 박차고 뛰어든 그가 검 끝에 화염을 피워내며 그대로 내지른다.
카앙!
검을 쳐낸 렌이 검을 타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불꽃을 기로 밀어내며 새파란 전류를 앞으로 쏘아 보냈다.
파지지지지지직!!
뇌기를 막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기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전류는 한 줄기라도 몸에 닿는 순간 상대를 경직시키고 반응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대응하기 힘든 속성. 그만큼 일반적인 기의 컨트롤을 가진 이들은 뇌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타고난 이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그 뇌기에 직격당한 붉은 머리 기사가 고통을 무시하고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온몸을 마비시키는 고통을 다릿심으로 찍어 누르고, 달려든다.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길쭉한 팔을 휘둘러 만들어내는 강력한 압력.
주변의 대기가 그의 검에 빨려 들어가듯 일그러지고.
화아아악!!
초혼을 녹여낼 것처럼 새하얗게 화한 화염이 검에 달라붙어 그 열기를 한껏 달군다.
“……!!”
초혼을 망가트릴 작정으로 전력을 다한 화염이었다.
하지만 초혼에 달라붙은 새하얀 화염은 초혼을 녹이기는커녕 일말의 흠집도 내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백염(白焰)을 피워낼 때, 검을 녹이지는 못해도 날이 상하거나 망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웬만한 명검들도 대부분 버티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저 은은한 녹빛의 검은 무언가에 보호라도 받는 것처럼 화염을 모조리 버텨내고 밀어내기까지 하고 있다.
‘당황스럽겠지.’
영력을 불어넣은 초혼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보검에 가까우니.
“흡!”
큰 공격을 했다면 그에 따른 빈틈 또한 생기는 법.
가볍게 화염을 털어낸 렌이 그대로 반격에 들어갔다.
스텝을 빗겨 밟으면서 쏘아내는 섬광 같은 연격.
큰 기술에 실패하고 난 직후의 망가진 자세로는 절대 막아내지 못할 절묘한 타이밍.
“크윽!”
푸른 전광을 뿜어내며 뻗어나간 초혼이 그의 어깨를 꿰뚫고 사방으로 피를 흩뿌린다.
속절없이 얻어맞은 검격에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린 그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런 미친.”
“저 검은 뭐지? 루카스의 백염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완전히 허명은 아니었나.”
뒤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차갑게 굳어버린 안색. 여유롭던 그들의 눈빛이 하나 같이 진지하게 일변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공방 속에 담긴 그 깊은 심상과 수 싸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심오한 격차.
상급 기사 중위급에 이르는 루카스가 상대조차 되지 않았음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뭘 뭐가 어떻게 돼? 화염을 막아내고 반격해서 싸움 끝난 거지.”
“미쳤다. 미쳤어! 개 멋있어!!”
아카데미 생도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들의 우상인 제국 황실의 기사를 단번에 압도한 렌 아르젠의 모습에 반한 이들도 생겼다.
북부의 대영웅이라는 이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상급 기사를 가볍게 이겨내는 실력자. 북부에서 마스터급의 괴수를 잡아냈다는 소문이 마냥 헛소문은 아니라는 게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렌 아르젠이 진짜 마스터라고?’
‘그래, 최소 상급 기사 상위급…, 아니 최상위급이다. 그 정도라면 저렇게 쉽게 이기는 게 당연해.’
루카스를 이겼지만 기사들은 아직 렌을 마스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마스터의 경지. 제국 황실에서도 검주급만이 오른 그 절대의 경지에 저 젊은 기사가 올랐을 리가 없다.
결정적으로 렌에게서는 검주들이 내뿜는 투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러 투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기사들은 그러한 가정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괜찮나?”
“크윽…, 그래…….”
망연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쥔 루카스가 렌을 노려보고는 천천히 일어선다.
렌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그들의 기세에 속으로 혀를 찼다.
‘마스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구나.’
이해는 됐다. 이전에 흑마법의 능력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흑성 남부 사막 지부의 지부장 겔맨조차 죽음의 순간까지 렌이 마스터라는 걸 믿기 싫어했으니.
그만큼 상급 기사와 마스터의 격차는 아득하다.
상급 기사 최상위에 이르러도 평생 마스터가 되지 못하거나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겔맨 같은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편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그 벽을 넘어설 자신이 없으니.
“아까 그랬지. 다 같이 덤비라고.”
“그래.”
루카스를 부축하던 기사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셋도 마치 사전에 이야기라도 했던 것처럼 일제히 검을 들었다.
“마스터라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 그렇다면 이렇게 4명이 덤비는 것도 상관없겠지.”
그 말에 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마스터라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저 눈가에 기름처럼 들끓는 살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겠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생도들이 보고 있으니, 자신들의 이 불명예스러운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것이었다.
“검주는 지금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군.”
렌이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에 기사들이 움찔한다.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이 행동들이 검주의 얼굴에 얼마나 먹칠을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이대로 물러서면 자신들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먼저 시비를 걸고 져버렸으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군.”
“시끄럽다…!!”
정곡을 찔려버린 기사 하나가 이를 아드득 갈며 소리치고는 기사들에게 눈짓한다.
단번에 훈련장 위로 뛰어오른 그들이 렌을 둘러싸고는 검을 겨눴다.
“이게 제국의 기사인가! 기사의 명예는 도대체 어디…으읍!”
그 모습에 분노를 내뱉으며 소리친 우루칸의 입을 생도들이 막으며 말렸다.
기사들도 우루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눈가를 씰룩인다.
“재밌겠네. 너희들을 이기면 다음은 검주인가?”
“감히……!”
렌의 도발에 기를 끌어올리며 기사들이 덤벼들려던 그때.
훈련장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이야, 벌써 누가 훈련하고 있나? 어?”
어딘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목소리. 콧수염이 동그랗게 말린 기사와 중후하게 생긴 기사가 선두에서 들어오며 훈련장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 렌 경 아닌가!”
“렌? 렌 아르젠 경?”
로자리아 왕국의 장미 기사단 단장인 쟌과 백화 기사단 단장인 소렌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기사단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반갑게 다가가려던 쟌과 소렌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모습에 다가가 묻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제국의 기사들이 왜 렌 경을 둘러싸고 있나?”
“로자리아 왕국의 기사단인가? 신경 끄고 가던 길 가라.”
불청객의 등장에 얼굴을 구긴 제국 기사들이 짜증스레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렌 경에게 받은 도움이 있어서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 말한 쟌과 소렌이 훈련장 위를 성큼 올라갔다.
“오랜만입니다. 쟌 경, 소렌 경.”
렌은 여유롭게 그들에게 인사했다.
북부 연합군으로 카리나와 함께 지원을 왔던 왕실의 두 기사단장을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절단으로 왔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훈련이라도 하러 온 건가.
“오랜만이네. 그나저나…….”
제국의 기사들을 노려보며 말꼬리를 흐린 쟌이 슬쩍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쯧, 꼬라지를 보아하니, 기사란 것들이 4명이 1명을 공격하려 한 건가? 요즘 바란의 기사들은 명예도 모르는군.”
소렌이 대놓고 질타하며 언제든 검을 빼낼 수 있게 기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우린 정당한 대련을 하려 한 것뿐이다.”
그리 말한 제국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집어넣었다.
“렌 아르젠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사. 상급 기사인 우리가 1:1로 붙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기에 이리 한 것이다. 더구나 렌 아르젠이 직접 우리 모두를 훈련장으로 불렀지.”
그 말에 살기를 가라앉힌 쟌과 소렌이 검에서 손을 뗐다.
“그런 거였군.”
“난 또 브릴런트 출신이라고 바란에서 텃세를 부리나 했지.”
그리 말하며 허허 웃는 두 사람이 렌에게 다가간다.
표정을 굳힌 네 기사가 루카스를 데리고 훈련장을 벗어났다.
“그럼 저희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렌 경.”
찰스가 렌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는 빨리 방금 보았던 검술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기사들의 자존심이 뭉개지든 명예가 땅에 떨어지든 그런 건 알 바가 아니었다.
“우리가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
쟌이 물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선뜻 나서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나서야지! 우리가 렌 자네에게 얼마나 큰 목숨 빚을 졌나?”
소렌이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재차 물으며 말했다.
“맞아. 근데 저놈들 꼴이 꼭 물에 젖은 쥐새끼들 같군.”
“저 건방진 바란 놈들이 저렇게 물러나는 꼴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역시! 바란의 황실 기사단 놈들도 렌 경 앞에서는 쪽을 못 쓰는군요!”
“크하하하하하!! 도망가는 꼴이 어찌나 꼬시던지. 벌써부터 또 보고 싶습니다.”
뒤에 있단 기사들이 박장대소하며 신나게 떠들었다.
그만큼 콧대 높은 황실 기사단에게 당한 게 많았다는 뜻. 렌은 자신에게도 저리 대하는 놈들이 이 기사들에게는 어찌했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 이런.”
쟌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자신의 머리를 툭 치고는 탄식을 흘린다.
“왜 그러나?”
“우리가 큰 실수를 했구만.”
“무슨 실수? 렌 경도 괜찮다고-.”
“아니지, 그대로 놔뒀으면 저놈들이 넷이서 덤비다가 렌 경에게 얻어맞고 땅바닥을 구르지 않았겠나? 그 꼴이 더 보기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제야 탄성을 내뱉은 소렌이 헛숨을 크게 들이킨다.
“아! 이런 등신 같은!”
“괜찮습니다. 저것들 눈빛 못 보셨습니까?”
렌의 말에 비열한 웃음을 짓는 쟌과 소렌.
그들도 알고 있었다.
“크흐흐. 검주한테는 절대 못 말할 거네.”
“당분간 렌 경만 따라다녀야겠구만. 재밌는 광경을 놓칠 수 없지.”
저 기사들이 절대 이대로 포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거란 것을.
기사들이란 족속들이 다들 그렇다. 신사답고 명예로운 척하지만, 실상은 모두가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놈들일 뿐.
“검주가 직접 온다면 더 재밌겠죠.”
렌은 한술 더 떠 오히려 그쪽을 더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