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5
제195화
렌의 파격적인 선언에 대련장엔 또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대부분은 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 반응하지 못했고 극소수만이 렌이 하는 말을 알아채고 충격에 휩싸였다.
‘뇌신류를……, 저놈이 어떻게 아는 거지?’
쇄비류의 수장 아이센은 안 그래도 거슬리던 놈이 역사에 묻혀 있던 뇌신류까지 언급하자, 렌에 대한 경계심을 극도로 올렸다.
‘뇌신류는 부활하면 안 된다.’
삼대 유파의 수장들 중 유일하게 뇌신류의 존재를 아는 것이 쇄비류였다.
‘뇌기를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미 전검(電劍)으로 불리고 있는 에덴 아르젠이 뇌신류의 유산을 어디서 얻은 게 아닌가 싶어 견제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다.
에덴을 견제할 게 아니라 렌을 견제했어야 했다.
렌 아르젠. 그가 이렇게 급격히 강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뇌신류.
과거 아르젠의 사대 유파 중 가장 강하고 뛰어났던 유파.
하지만 내부의 견제와 공작으로 인해 과거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그 검술의 유산이 렌의 손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아이센이 뇌신류의 존재를 아는 건, 뇌신류를 없애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게 쇄비류였기 때문이었다.
쇄비류 수장들에게는 앞으로도 다시는 뇌신류가 부활하지 못하게 막으라는 지령이 대대로 내려져 왔었다.
근데 검의 입회식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뇌신류의 부활을 선언하는 직계가 있을 줄이야.
아이센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센 수장님.”
렌이 그를 올려다보며 가볍게 웃는다.
“뭐가 그렇게 당황스러우십니까?”
자신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그가 황급히 표정을 굳히고 대답했다.
“흥! 자만이 지나치군. 뇌신류?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유파를 만들어낸다고? 자만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정말로 못 들어보셨습니까?”
“그래.”
아이센의 뻔뻔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렌.
“분명 아르한을 이긴 제 검은 아르젠의 검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제가 쇄비류의 마스터를 이긴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으십니까? 아이센 수장님.”
원래라면 이따위 말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백이 넘는 기사들이 오롯이 렌과 아이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젠의 검.
조금 전 렌이 보였던 충격적인 검술과 더불어 뇌신류라는 새로운 유파의 선언.
이것들이 맞물린 지금, 렌의 도발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아르젠이다.
대(大) 아르젠 가문의 삼대 유파 수장이 이제 막 입회식에 참여한 기사의 도발을 겁먹어 피한다면 누가 그를 따를까.
그리된다면 오히려 아이센을 따르던 이들은 렌의 의지와 대담함에 감명받아 그를 따르게 될 테지.
“좋다. 과연 네놈이 그리할 수 있을지 지켜보마.”
내기를 건 것은 렌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불리한 것 또한 렌이었다.
콜린에 이어 아르한과 싸운 직후였다.
쉴 틈도 없이 바로 마스터인 기사와 대련이라니.
지금까지 검의 입회식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상황이었다.
“렌 아르젠.”
플레처 아르젠이 그를 불렀다.
“예. 가주님.”
“네게 많은 의문들이 있지만, 증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묻지 않겠다. 새로운 유파의 설립은 그만한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일. 검의 입회식에 통과하는 것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플레처의 말에 가문의 일원들이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유파의 설립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자격을 증명하면 뇌신류의 설립을 허가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가주는 그의 터무니없는 선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궁금했다.
도대체 렌이 말한 그 최강의 유파란 무엇인지 뇌신류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유파인지 말이다.
“증명하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당당한 목소리.
각 유파의 수장들은 불안함을 느꼈다.
분명 가주가 말한 증명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어려운 걸 렌이 해낼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렌이 한 모든 것들이 어려운 일은 맞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일까.
렌에게서 느껴지는 이 위압감은. 온몸을 휘감는 이 불길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더스틴, 클로에, 딜리스.”
렌은 각 유파의 기사들을 불렀다.
‘……너무 무리수를 두는군.’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호먼, 울리히, 아이센.
각 유파의 수장들은 렌이 지목한 기사들의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 둘과 상급 기사 최상위 하나.
지금 입회식에 참여한 각 유파에서 가장 강한 셋을 고른 것이다.
쉬지도 않고 이 셋을 모두 상대해서 이긴다는 건 아무리 렌 아르젠이 뛰어나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오연히 상석에 앉은 플레처 아르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면 충분하겠냐고 말하듯.
그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좋다.”
그리고 플레처는 대답했다.
기사들의 관심이 오롯이 렌을 향했다.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렌이 만약 쇄비류의 더스틴까지 이겨낸다면 가문 내에서 그를 향해 기대를 거는 이들이 분명 생겨날 터.
이후에 다른 두 기사에게 지더라도 렌이 보인 의지와 패기에 감명받은 기사들이 그를 따를 거다.
‘정말 이걸로 충분한 거냐. 렌.’
리안은 관중석에 앉아 초조하게 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는 그의 의도대로 잘 흘러갔지만, 이제는 정말 힘든 싸움이었다.
성공한다는 게 기적일 정도로.
리안은 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냐 물었지만, 렌은 뜬금없게도 대련장에 그럴싸한 빈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그 무덤에 스스로 들어가려는 건가 싶었지만, 우선은 그 말을 들어주었다.
대련장 한구석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무덤을 바라보던 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정말로 뇌신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리안은 그 뇌신류의 일원으로 자신이 들어가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렌을 가주로 만들어 아르젠이라는 가문의 힘을 대륙 전체로 뻗어가겠다 다짐했다.
“나오십시오. 더스틴 경.”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대련장의 무대 위로 올라오는 더스틴.
발검하고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눈다.
“자네가 지쳤다고 해서 봐줄 일은 없을 걸세.”
“걱정 마십시오. 그런 약해빠진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
“마음에 드는 소리군.”
더스틴의 칼끝이 살짝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화살처럼 쏘아진 그의 검이 렌의 초혼과 격돌한다.
카앙!!
쇄비류의 검술은 빠르고 은밀하다.
상대의 시선을 현혹하고 보이지 않는 칼날로 목숨을 앗아가는 검술.
쇄비류의 최강자답게 더스틴의 검은 그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제가 왜 더스틴 님을 불렀는지 아십니까?”
서로 검을 맞댄 상태에서 들려오는 렌의 물음.
렌이 여유를 부리고 있다 생각해 표정을 굳힌 그가 오히려 더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가각!!
더스틴의 녹빛 검기를 모조리 막아낸 렌이 뒤로 살짝 물러서고.
“아이센 님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불편함을 대놓고 드러내며 더스틴이 대답한다.
“아닙니다.”
[영혼 부르기 – 레이몬드 아르젠]아르젠의 21대 가주의 영혼이 대련장에 강림하고.
[강령 – 레이몬드 아르젠]렌에게 빙의한 그가 렌의 시선으로 쇄비류의 기사를 보았다.
“변명을 듣지 않기 위해섭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각 유파의 최고를 꺾어야 제 말에 대해 반발하지 않을 테니까요.”
“더스틴 경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보여보십시오.”
“…….”
“아니,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지금의 삼대 유파가 잊고 있는 것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동화율이 최대치로 올라갑니다.]렌의 몸을 완전히 지배한 레이몬드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전장의 공기에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초혼의 위로 흘러드는 바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바람의 흐름이 순식간에 거센 파도가 되어 휘몰아친다.
“아르젠 검술은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갑자기 변해버린 렌의 분위기.
그의 주변으로 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며 더스틴이 이를 악물었다.
“바람…….”
“쇄비류는 바람. 부드럽고 가벼우며 날래고 은밀하지.”
초혼이 물결 위에 올라탄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압감.
눈앞에서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마주한 것만 무력감이 더스틴을 짓눌렀다.
아르한이 폭풍을 불러냈을 때도 놀랍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도대체 이건…….’
렌의 검이 움직였다.
희미한 잔상을 남기며 그의 검이 환영을 남기고 쇄도한다.
카앙!!
“크윽……!!”
간신히 반응했다.
잔상으로 남겨진 초혼이 난데없이 치고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검이 진짜 검인가?
무엇이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가?
어느새 전장을 뒤덮은 바람의 폭풍 속에서 수십 개의 칼날이 더스틴을 둘러싸고 있었다.
‘깨야 한다.’
조금 전 렌이 아르한을 상대로 했던 것처럼.
더스틴도 흐름을 깨부수고 폭풍을 잠재워야 했다.
아르젠 검술 쇄비류
– 제3 검
– 무적참(無敵斬)
검기를 극도로 압축하여 검에 휘감고 한 번에 쏟아내는 기술.
녹빛의 검기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다가 렌의 검과 맞물려 쏟아진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
순식간에 렌을 휘감은 검기의 소용돌이를 확인하고는 쾌재를 불러보지만.
이내 안쪽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바람이 그 검기의 소용돌이를 모조리 밀어내며 되레 더스틴을 향해 날아갔다.
더스틴이 제대로 준비할 새도 없이 되받아친 일격.
이제껏 그가 경험했던 그 어떤 쇄비류의 기술보다도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순식간에 그를 휘감은 칼날의 소용돌이.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람의 칼날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그가 조금 전 무적참이 깨진 반동으로 피를 울컥 토해냈다.
“크허억!”
끝까지 발악하듯 검을 휘둘러보지만, 그를 뒤덮은 소용돌이의 칼날은 그의 온몸을 난자했다.
이대로 온몸이 갈려 죽으리라는 것을 절감한 그의 초점이 희미하게 빛을 잃으려는 그 순간.
화아악…!
신기루처럼 바람의 폭풍이 사라졌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베인 살점과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핏물.
“……흐어억.”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고 선 그가 초연한 눈으로 렌을 보았다.
“도대…체 그건…, 뭔가?”
당장에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도, 그는 궁금했다.
그가 자랑하는 무적참은 쇄비류에서도 쓸 수 있는 이가 몇 없을 정도로 어렵고 강력한 기술.
하지만 렌은 그것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처럼 가볍게 맞받아쳤다.
지금까지 그가 가꾸어놓은 모든 것들이 정면에서 부정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물었다.
지금 그 대답을 듣지 못하면 정말로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쇄비류 제 5검 폭풍(暴風)입니다.”
“그게…, 진짜 쇄비류의 검이란 말인가?”
조금 전 그 기술이 렌의 검에서 펼쳐졌다는 것도.
지친 상대와 싸웠음에도 허무하게 져버렸다는 것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보았던 그 엄청난 검술이 쇄비류의 검이라는 것에 만족스러울 뿐.
“그렇습니다.”
“……그런가.”
털썩.
더스틴이 그대로 쓰러졌다.
다급히 의료원들이 들어와 더스틴을 끌고 나갔다.
벌써 두 번째였다.
도대체 어떻게 렌이 쇄비류의 검술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가 쇄비류의 수장도 모르는 기술을 펼쳐내는 건지.
궁금한 이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가주가 증명이 끝나기 전까진 물어보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가 입을 열지 않는 한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만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까드득.
아이센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렌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이센의 모든 권력과 권한은 바닥에 처박힌 것과 다름없었다.
가문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직계, 원로원, 삼대 유파 그리고 가주까지 있는 자리.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할 거면 검을 들어야 했다.
아무리 그가 나이를 먹었어도 검을 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젠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렌 아르젠이라는 거인(巨人)의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저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과 열패감이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제기랄.
렌이 그를 향해 무인으로서 자존심도 없냐는 비아냥을 대더라도 나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저 끝없이 검을 휘두른 무인의 본능이었다.
나가는 순간 죽는다.
분명했다.
렌 아르젠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리고 있음에도 아이센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과거의 그였다면 나갔을 것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예를 지켰을 것이다.
근데……, 나이를 먹은 탓인가. 너무 오랫동안 상석에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의 아이센은 너무나 나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기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렌에게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검을 뽑는 용기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들의 수장은 그 정도의 그릇조차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렌은 아이센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끝이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린 순간부터, 아이센의 명예와 위상은 지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다음, 다음 나오십시오.”
렌의 부름에 클로에가 걸어 나왔다.
앞선 싸움을 목격한 이상에야 더 이상 방심은 있을 수 없는 일.
‘상상 이상의 괴물이다…….’
클로에는 렌 아르젠을 마주하며 일생일대의 대적을 마주하듯 투기를 끌어올렸다.
“이번엔 중무류군요.”
“중무류도 부족하다 생각하나?”
그녀의 물음에 렌이 코웃음을 치고는 대답했다.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