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46
제246화
콰아아앙!!
칼날 같은 바람을 쏟아내며 지면을 싹 쓸어가는 파동.
점점 밀리던 모건이 미간을 좁히며 기회를 엿본다.
‘확실히…, 아직 내 기량으로는 힘들군.’
일전에 렌과 상대했을 때보다는 실력이 좀 더 올라오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렌과 필적, 혹은 그 이상이라 평가받는 바실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확실히 시기상조였다.
“끄윽!”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실의 공격.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두 사람의 공간을 뚫고 뇌전이 쇄도한다.
‘왔군!’
미리 합을 맞추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렌이 무엇을 원하는지.
뇌전을 감지한 바실이 슬쩍 빠지려는 타이밍에 오히려 몸을 더 파고들며 검을 찔러 넣었다.
뇌전을 피하려 한다면 검에 찔리고 검을 피하려 한다면 뇌전에 얻어맞는다.
바실의 선택은 차라리 뇌전에 맞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심장을 찌를 듯이 들어오는 모건의 검에 찔리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크으윽…!”
렌이 날려 보낸 뇌전에 얻어맞은 바실이 호수의 수면에 튕기듯 날아가 그대로 풍덩 빠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이네요.”
돌아오며 회수한 초혼을 그대로 땅에 박아 넣고 영혼을 부르는 렌.
[강령 – 아루스테스 그레이움]바실이 귀신이라도 씐 사람처럼 모건을 공격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현자를 불러왔다.
“도대체 뭡니까?”
– 여기는 아르카의 힘이 잠든 곳. 저 검사의 몸에 흐르는 이 힘은 분명 아르카의 주술입니다.
“아르카가 누군지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순간 호수에 빠졌던 바실이 더 흉포한 기세를 내뿜으며 걸어 올라왔다.
시간이 없다. 바실은 렌조차도 버거운 인물. 아무리 모건과 힘을 합친다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사지 멀쩡한 상태로 제압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아무래도 저 호수 아래에 아르카의 힘이 담긴 장치가 있는 것 같군요. 그것을 부수면 될 겁니다.
“모건 경! 제가 바실을 돌려놓겠습니다. 잠깐만 막아주십시오!”
“그러지.”
렌이 바로 호수를 향해 달리자, 바실이 모건에게 달려들다 말고 방향을 틀었다.
“어딜! 네 상대는 나다! 바실!”
모건이 가로막자 몸을 강제로 들이밀며 뚫으려 하는 바실.
팔다리를 베어버릴 만큼의 빈틈이 생겼지만, 모건은 그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정도의 생채기만 낼 수밖에 없었다.
‘죽일 수가 없으니 까다롭군.’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며 들어오는 상대를 막을 수는 없다.
실력의 차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오히려 바실이 모건에 비해 한 수 위인 상황에서 제약까지 걸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래도 즉사할 만한 곳에 검을 들이대니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다. 덕분에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빨리 끝내라 렌.’
호수 아래로 뛰어든 렌은 석상이 튀어나온 지면의 밑바닥에 남은 악마의 문양과 마법진을 발견했다.
– 아르카의 문양입니다. 이 마법진이 발동하며 아르카의 힘이 새어 나온 것 같습니다. 마법진을 부수면 그의 힘 또한 사라질 겁니다.
렌은 망설임 없이 마법진을 내리쳤다.
생각 외로 마법진은 너무나도 쉽게 망가졌다. 대신 지면이 갈라지고 붉은 빛이 흐르며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
하늘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물줄기.
그 안에서 내던져지듯 물줄기에 딸려 나온 렌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바닥에 착지한다.
호수로 들어가려던 바실이 쏟아지는 물세례를 맞고 머리를 뒤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대장……?”
“성공했군.”
어느새 눈빛이 돌아온 바실이 렌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한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네가 호수에 잠들어 있던 악마의 세뇌에 걸려서 우리를 공격했어. 모건 경이 너를 막은 사이에 내가 그 마법진을 파괴했고.”
“미안하다. 대장. 못 볼 꼴을-.”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 지면을 타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진동은 분명 전투의 여파로 인한 것이었다.
“젠장! 폐하가 위험하다!”
모건이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가자, 렌과 바실도 따라갔다.
한참을 내달리자 보이는 루이즈와 코헨 그리고 알란까지.
난장판이 된 숲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세 사람이 간신히 숨을 고르며 버티고 있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모건이 다급히 루이즈의 상태를 살폈다.
셋 중에서 가장 부상이 심한 루이즈가 거의 혼절 직전인 상태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제가 봐 보죠.”
“하아…, 렌…….”
“조금만 참으십시오. 폐하.”
렌이 신성력을 흘려보내 그의 상처를 회복했다.
딘의 강령을 몇 차례나 해서 그런지 이제는 강령 없이도 신성력의 회복을 할 수 있게 된 렌은 제법 능숙하게 그를 치료했다.
“됐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회복한 루이즈가 조금 편해진 모습으로 몸을 일으킨다.
“고맙다.”
“아닙니다. 빨리 왕성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알란이 저답지 않게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평소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루이즈가 그의 팔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형님.”
“……폐하.”
알란의 입에서 폐하란 호칭이 나오자 렌은 물론이고 모건과 바실까지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본다.
루이즈는 힘겹게 일어서며 그의 손을 붙잡고 시선을 맞췄다.
“저는 형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이 몸을 굴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폐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그만! 모건,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도 나아가는 길이다.”
알란은 그저 입을 다물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형님.”
“……루이즈. 내가 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제가 증명하겠습니다. 형님의 존재가 불편한 존재가 아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왜 그리 나를 원하는 것이냐?”
루이즈는 그의 말에 추억을 회상하며 입꼬리를 늘어뜨렸다.
“형님은 어린 시절부터 제가 닮고 싶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뛰어넘고 싶은 사람이었죠. 또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
“기억하십니까? 제가 검술 실력을 늘리겠다며 무모하게 고블린들을 따라가다가 고블린 부락에서 고블린들에게 포위당했을 때를 말입니다.”
“……기억난다.”
“그때의 형님은 철없는 저를 걱정하며 따라오다가 위험에 빠질 뻔하셨죠. 하지만 자기만 믿으라며 저를 다독여 주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겁먹어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랬지. 그때의 난 너를 지켜야 했으니 말이다.”
“형님은 이미 고블린 부락에서 사고가 날 것을 예견하고 성을 나오기 전부터 사람을 불러놓으셨죠. 덕분에 제시간에 호위 기사들이 와서 저희를 구해주었고 저희는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형님을 닮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사람은 누구에게다 장점이 존재하는 법이다. 내게 없는 걸 네가 가지고 있듯이 말이지.”
알란의 그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헤르티아 검술. 그 하나의 차이로 알란은 국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드러났다. 대놓고 국왕의 자리를 그 하나 때문에 놓쳤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루이즈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했다.
“형님이 말씀하셨듯,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형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브릴런트의 재상이 되어 저를 도와 브릴런트를 대륙 최고의 국가로 만들어주십시오.”
“……나에게 재상이 되어달라고? 나는 지금도 국왕의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했었다. 그런 내게 그러한 감투를 주겠다는 말이냐?”
“예. 형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미치겠군.”
알란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말을 하면 할수록 지는 기분이었다.
루이즈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국왕의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릇이 작은 건 나였군…….’
이쯤 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재상…, 차라리 좋을 지도 모르겠군. 모든 책임은 국왕이 지고 나는 그 부담감 없이 국정 운영에 조언만 던지면 되는 게 아닌가?”
알란의 말은 실상 비선 실세가 되겠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말에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렌은 아마 저것이 알란이 가진 ‘매력’ 특성의 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초에 진심으로 하는 말도 아니겠지만.’
루이즈가 그를 놓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맞습니다. 책임은 국왕인 제가 지어야죠. 그게 제가 할 일입니다. 그러니 형님의 생각을 내뱉는 것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 하하하! 하하하하!!”
“애초에 이 자리가 내 자리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폐하.”
“……형님.”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던 알란이 눈빛을 싹 바꾸더니 한쪽 팔을 접고 고개를 숙인다.
“신 알란 헤르티아, 브릴런트 왕국의 재상으로서 루이즈 헤르티아 국왕 폐하께 평생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알란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던 루이즈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부터 재상은 우리 왕국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주길…바랍니다. 그게 나의 첫 명령…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두 사람의 감격스러운 재회가 이뤄지고 있을 때쯤, 어둠이 가시고 새벽의 여명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폐하, 빛이 더 밝기 전에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래, 그만 돌아가지.”
* * *
꾸드득- 꾸득!!
“크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신전의 바닥에 새겨진 역오망성.
거꾸로 그려진 별의 중앙에 선 흑성의 단장 아베리노 이페리스의 온몸에 검은 마기가 들러붙어 있다.
콰득! 우직!!
살과 뼈마디가 비틀리는 기괴한 소리가 한참 동안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나서야 그의 비명이 사그라들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결이 연신 흘러나오며 검은 마기의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온 단장이 비틀거리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단장님.”
“후우…, 그래. 드디어 다리까지 이식을 끝냈군.”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급하게 신체를 이식하시다 잘못되기라도 하시면…….”
“걱정 마라. 내 목적을 이루기 전까진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자신의 새로운 다리를 까닥까닥 움직이던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렌 아르젠, 그놈을 죽이려면 더 빨라야 해.”
“안 그래도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르카의 요람이 파괴되고 알란 헤르티아를 렌 아르젠에게 빼앗겼습니다.”
“렌 아르젠? 그놈이 나타났단 말이지? 그럼 어쩔 수 없군.”
흑성의 간부, 스노비쉬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렌 아르젠과 붙어보고 싶었습니다.”
“스노비쉬, 그놈은 위험한 인간이다. 아무리 너라도 렌 아르젠과 맞붙는 건 피해야 한다.”
“렌 아르젠이 강한 신성력을 가졌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검술과 창술로 붙는다면, 이길 자신 있습니다.”
“그래, 너의 창술은 대륙에서 따라올 자가 거의 없지. 그래도 안 돼. 스노비쉬, 여러 번 말하게 만들지 마.”
단장의 경고에 입을 다문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작전이나 빠르게 진행해라. 악마의 신체를 이식하려면 더 대단한 영혼의 힘이 필요해. 아비트라리에 전대 암황의 시체가 있다는 정보는 확실한 거겠지?”
“그렇습니다. 이미 그랜트가 아비트라리의 일대를 뒤지고 있으니 곧 나타날 것입니다.”
“빠르게 확보해. 또 렌 아르젠 그 녀석이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걱정 마십시오. 그놈이 갑자기 브릴런트의 일은 내버리고 아비트라리로 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나가 봐.”
스노비쉬가 나가자 단장은 벽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액자 안에는 붉은 머리의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레베카. 조금만 기다려라. 이 아비가 곧 너를 데리러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