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47
제247화
데케인에 모인 렌과 바실 그리고 코헨.
루이즈와 알란이 왕성으로 돌아가고 세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논을 나누고 있었다.
“대장, 흑성 놈들의 계략이 점점 더 지독해지고 있네. 오리온 녀석이 오면서 우리 세력도 제법 강해졌지. 슬슬 확실히 세력을 규정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주군, 저는 반대입니다. 지금의 브릴런트는 렌 아르젠이라는 든든한 지지대가 있기에 폭풍우를 버티며 이제야 슬슬 열매를 맺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지지대가 사라진다면 브릴런트는 언제 또다시 휘청할지 모릅니다.”
“브릴런트의 지지를 철회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대장의 이름 아래 새로운 집단을 정확히 규정하자는 거지.”
“그거야 알고 있지만, 주군의 이름 아래 집단이 제대로 형성된다면 브릴런트는 주군을 견제해야 할 수밖에 없으니 하는 말이네.”
“……그것도 맞는 말이야.”
렌은 애초에 브릴런트와 척을 질 생각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국가라는 특성상 그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 나타나면 필연적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렌이 그의 밑으로 수많은 이들을 끌어모았지만, 제대로 한 집단을 규정한 적이 없기에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었던 것.
이제 와서 그가 브릴런트 내에 집단을 만들면 루이즈 아래 모인 충신들은 그 집단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저야 물론 주군의 편이지만, 저희 트레비스 가문은 브릴런트의 공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루이즈 폐하께서 주군을 견제할 리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요.”
“하! 브릴런트에서 감히 대장을 견제한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의 브릴런트가 누구 때문에 있는데?”
“바실, 정치란 게 그렇게 순리대로만 흐르는 게 아니다. 루이즈 국왕 폐하가 살아계실 때까지 절대 그럴 일 없을지라도 그가 사라진다면 언제고 브릴런트는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는 법이다.”
“쯧, 그건 반박을 못 하겠군.”
바실 또한 용병 일을 몇십 년간 해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브릴런트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렌 아르젠이란 그늘이 필요했을지라도 막상 성장이 끝난 후에는 렌 아르젠이란 그늘이 햇빛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니.
“전 주군의 의지를 따를 것입니다. 그저 브릴런트와 척을 지게 될 수도 있는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대장,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본 루이즈 국왕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우선은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하지만 방금 코헨 경이 말했다시피 우리의 움직임을 조심할 필요가 있어. 이제 왕국에는 새로운 재상이 들어왔으니까 말이지.”
“알란을 말하는 건가? 그게 어쨌다고?”
“알란 왕자…, 아니, 알란 재상은 셈에 능하고 사람을 다루는 데 특화된 인물이지. 아무리 왕실 사람들이 내게 호의를 가졌다고 해도 그들의 마음을 빼앗는 건 시간 문제야.”
왕성에 루이즈만 있었다면 코헨의 말에도 딱히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 알란이 있게 되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루이즈와 달리 알란은 충분히 경계할 만한 대상이었다.
‘지금이야 겉으로든 속으로든 동맹 관계지만, 언젠가는 정말 틀어지게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집단의 기반을 잡아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알란을 구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 브릴런트가 번영하기 위해선 그가 필요해.’
원래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렌은 그저 흑성을 궤멸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놈들을 쓸어버리고 난 뒤에는 한적하게 가족과 사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너무 많이 생겼으니. 흑성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성국의 사절단과 로자리아의 사절단은?”
“성국의 사절단은 이미 루이즈 국왕 폐하를 만나고 있고 로자리아의 사절단은 대기 중입니다. 주군.”
“그럼 내가 먼저 카리나를 만나야겠어. 곧 브릴런트를 떠나야 하니 시간이 없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에드리크 님에게 전해줘. 먼저 아비트라리에 가 있으라고, 곧 뒤따라갈 테니.”
“그러지.”
* * *
브릴런트 왕성 알현실.
왕좌에 앉은 루이즈와 양옆으로 늘어선 신하들. 그중 루이즈의 바로 오른쪽에 있던 알란은 알현실을 찾아온 성국의 사절단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왕국의 재상인 알란 헤르티아라고 합니다. 하하, 애스턴 캐쉬 교황 성하께선 일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브릴런트에 변고가 생겼을 당시에 뵈었었습니다. 그때는 워낙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눴는데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때와 지금은 또 새로운 느낌이군요. 저희 폐하께서는 성하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지난번엔 큰 빚을 지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었습니다. 성국의 중대한 위기를 두 번이나 렌 아르젠 경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하하, 서로 도우며 국가가 번영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제는 각국의 수장들끼리 더욱 긴밀한 교류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스턴.
그의 말처럼 이제는 성국의 추기경이 아닌 교황으로서, 타국의 왕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렌 님이 곧 브릴런트이지 않은가. 더구나 루이즈 헤르티아 국왕은 렌 님이 믿을 정도로 청렴한 인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욱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
애스턴이 웃으며 손짓하자, 뒤에 있던 뽀글머리 헤론 추기경이 금색 함을 열어 보였다.
함에 담긴 삼은 척 보기에도 고운 빛깔과 깊은 향 때문에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20년간 저희 왕국의 대성당 지하에서 재배하던 삼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신성력이 가득한 지하 재배지에서 자라난 삼이라 먹는 것만으로 온몸의 활력이 돋고 내부의 노폐물을 배출해주는 효능이 있지요.”
“오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그 삼이란 말인가……?”
수십 년을 숙성하며 자라나는 와중에도 지속되는 신성력을 버티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삼들이 많아 수량이 많지 않다고 전해지는 삼.
대신들이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그 삼을 바라보며 탄성을 흘렸다.
“저희의 성의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헤론은 애스턴을 대신해 브릴런트에 지원할 수 있는 인력과 새로운 교회 설립, 사제 지원 물품 교역 등등을 이야기했다.
“역시, 성국입니다. 이 정도로 과분한 지원을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더 해드릴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죠. 혹여 더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생긴다면 저희가 렌 아르젠 경을 통해서-.”
“하하하, 아닙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에게 연락을 주시지요.”
헤론이 알란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도 알지 않느냐?’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알란의 표정엔 그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는 미소뿐이었다.
“굳이 렌 경을 통해서 왕국의 일을 전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그 과정에서 렌 경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하하, 압니다. 알다마다요.”
알란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헤론에게 다가갔다.
“렌 경께서는 브릴런트를 매우 아끼고 국왕 폐하를 믿고 계십니다. 구태여 이런 말까지 하기 그렇지만 최근엔 저를 구하러 직접 나서기까지 하셨죠. 굳이 렌 경의 의사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정도의 판단은 제 선에서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예, 더구나 렌 경은 매우 바쁜 몸입니다. 흑성과의 싸움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왕국의 대소사까지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게 더 나은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알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헤론이 턱을 매만진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헤론 추기경님. 렌 경에 대한 예우를 저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알란과 그걸 말없이 지켜보는 루이즈.
“이제는 저와 이야기를 하시지요. 제가 브릴런트 왕국의 재상이니.”
* * *
데케인의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는 카리나 엘리엇과 군단장 랜드알드로.
“렌 아르젠, 오랜만이구나.”
가벼운 복장으로 온 카리나가 렌을 발견하고 먼저 인사했다.
“예, 오랜만입니다. 카리나 공주님. 랜드알드로 군단장님도 성국에서 이후로 처음이군요.”
“허허, 이 늙은이를 기억해주니 고맙군. 그 명성 높은 렌 아르젠께서 말이야.”
낮게 깐 눈동자와 왠지 모를 가시 박힌 말투.
“군단장님!”
“크흠, 많이 바빠 보이는데 이렇게 시간 내주어 고맙네.”
“아닙니다. 두 분이라면 당연히 시간을 내어야죠. 앉으시죠.”
대놓고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며 툴툴거리는 그를 보던 렌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안 그래도 조만간 로자리아로 갈 것 같아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이제야?”
“그만, 그만하십시오. 군단장.”
“죄송합니다. 공주님.”
“하지만, 폐하께서 직접 부탁하신 일을 이렇게 계속 미루는 것도 조금 언짢은 감이 있구나.”
카리나의 시선을 받은 렌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번엔 정말입니다. 아비트라리에 들렀다가 바로 갈 생각이니 말입니다.”
“또 우리가 우선이 아니군.”
그 말에 움찔한 렌이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 너는 공사다망한 인물이지 않으냐?”
“죄송합니다. 아, 카리나 공주님이 오신다기에 제가 작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뭐지?”
선물이라는 말에 놀라 멈칫하는 카리나. 렌이 작은 나무 상자 속에서 자신의 팔뚝만 한 조각상 하나를 꺼냈다.
“카리나 공주님을 형상화한 조각상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회색과 하얀빛이 도는 조각상. 머릿결과 눈동자 등 매우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며 두 사람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
“허어……, 이런 수준의 조각상은 내 평생 처음 보는군.”
“이게…, 나란 말이냐?”
“예.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 말에 한 번 더 놀라는 두 사람.
“조각사를 알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제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긴…, 자네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근데 정말로 자네가 이거를 만들었다고? 믿기지가 않는군.”
카리나와 똑 닮은 조각상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랜드알드로.
그의 눈에 탐욕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혹시 나도 하나 만들어 줄 수-.”
“고맙다. 하지만 조금 기분이 좋지 않구나.”
“왜 그러십니까?”
자신의 조각상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그녀가 말한다.
“내가 이 정도로 못생겼단 말이냐?”
누가 보아도 못생겼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렌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의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제 실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크흠, 내가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이런 말을 한 건 아니다.”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와 작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랜드알드로.
렌은 고개를 저으며 조각상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린 것 같군.’
멜리사 여왕의 부탁으로 로자리아에 가기로 한 걸 여태 못 가서 눈치가 보였었는데, 이걸로 조금 풀어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귀족들이든 사제들이든 조각상이 효과가 좋은데. 더 써먹어야겠어.’
조각상이 사라지자, 아쉬움에 탄식을 흘리는 랜드알드로.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큼!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지. 로자리아에 가기 전에 아비트라리를 들른다고?”
“예.”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나?”
“음…, 너무 개인적인 볼 일이라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군요.”
“그렇다면 동행은 어떻지?”
갑작스러운 카리나의 제안에 당황한 렌이 그녀를 보았다.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비트라리까지 우리가 너를 데려가 주겠다. 어차피 로자리아에 가는 길이니. 일이 끝나면 우리와 함께 로자리아로 가는 거다. 어떠느냐?”
“……혹시 제가 또 안 가고 다른 길로 샐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그렇다.”
“흐흐…, 로자리아의 사절단을 수송용으로 쓰다니. 렌 아르젠의 위상이 엄청나군!”
“하, 하하…….”
렌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더 이상 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드리크 님을 먼저 보내길 잘했군. 아비트라리까지는 편하게 가겠어.’
어차피 에드리크에게 콜 로스의 무덤만 알려주고 올 거니 별일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