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66
제266화
대련 당일.
황제가 공표한 공식 행사이니만큼, 엄청난 규모의 대련장은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렌 아르젠과 황제의 직속 호위 기사인 마리아의 대결.
암중에선 둘 사이의 대련 결과에 따른 도박판도 크게 열릴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최고 상석에 앉은 황제와 그의 아래 모여 앉은 황실 사람들.
고작 두 기사의 대련일 뿐이었지만, 그게 현 대륙을 진동시키는 렌 아르젠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다.
소문은 자자하지만 실제로 렌 아르젠의 싸움을 본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제국에서는 렌 아르젠이 제대로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그의 진짜 실력을 모른다.
“로젠트.”
“예, 아버지.”
발렌베리 가문의 가주인 디에고 발렌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자식들에게 렌 아르젠의 위용을 전달 들었을 뿐이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렌 아르젠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로젠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본 건 신성력을 사용한 렌 아르젠이었습니다. 검술 실력만 본다면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저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에고는 그 대답이 오히려 더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로젠트가 동 나이 대비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뿐.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모든 게 보일 정도라면 렌 아르젠도 그 정도일 뿐이겠지만, 로젠트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제발…, 실력을 보여라. 렌 아르젠.’
이번에 렌에게 따로 받은 부탁은 발렌베리가 어느 하나의 밧줄밖에 잡지 못하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2황자의 뒤를 캐는 일이었다. 만약 2황자가 황제가 된다면 이 사실은 언젠가는 드러날 테고 발렌베리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터.
하지만 렌 아르젠이 2황자를 꺾고 아르젠이 날아오른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결국 디에고는 렌 아르젠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이제는 그가 이기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라는 저 기사가 그리 강한 기사입니까?”
로젠트는 의아했다. 아무리 마리아라는 기사가 황제의 직속 호위라 해도 설마 렌 아르젠과 비교할 수준일까.
그저 호위 기사일 뿐이다. 렌 아르젠은 현 검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자라고 정평이 나 있었고.
“마리아는 1검주에게 인정받은 천재다.”
“……1검주 님으로부터 말입니까?”
“그래.”
제국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1검주. 그는 검을 평가하는 데에 매우 까다롭고 박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이 불세출의 천재인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그만큼을 바라는 것.
현 3검주조차 1검주에게는 항상 박한 평가만 받지 않던가.
“미래에 제국 제일 검이 될 거라는 말도 나돌지.”
“하지만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것도 한참 예전 일이었으니. 지금은 암중에서 황제 폐하의 호위로 있어서 사람들은 모를 거다.”
제국 내에서도 고위층의 극소수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마저도 정보 통제가 되어 있어서 제대로 알려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마리아라는 기사의 실력이 드러나겠지.
몇 년간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던 천재 기사 마리아가, 지금은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렌 아르젠을 이길 수 있을까.
“이제 시작하려나 보군.”
때마침 렌과 마리아가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아르젠 쪽 기사들의 분위기가 꽤 심각했고, 특히 아르한과 클로에는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쪽이 포기하든지, 더 이상의 대련 속행이 불가능이라 판단될 때 대련은 종료됩니다.”
경기의 규칙은 간단했다.
상석에 있던 황제가 손을 들자, 뿔피리 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부우우우우우우웅―!
렌과 마리아가 발검하며 자세를 취한다.
황제의 연설 같은 건 없었다. 그의 지론이 무의미한 연설은 필요 없다는 주의였으니.
이번 대련이 끝나고 나서야 황제는 입을 열 것이었다.
타앗!
렌과 마리아가 동시에 달려들어 대련장 중앙에서 격돌한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검술.
황제의 곁을 지키는 호위 기사임이 확실히 느껴지는 검이었다.
그녀의 검에 붉은 검기가 흐르더니 그대로 쏘아진다.
콰아아아앙!!
섬광과도 같은 검기가 일직선으로 날아와 렌의 초혼과 충돌하고.
콰득!
잠깐 흔들리는 듯하던 검기가 튕겨 나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혀 돌가루를 흩날린다.
직후 떠오른 돌덩이들을 일일이 검면으로 쳐내 날려 보내는 마리아.
그저 돌덩이를 쳐낸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화살처럼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모두 쳐내고 피하는 사이 생겨난 빈틈을 뚫고 마리아가 검을 내지른다.
카앙!!
상대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빈틈없이 이어지는 연계에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검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리아는 펼쳐내고 있었다.
‘선공을 내주는 순간 전세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검술이야.’
모든 상황에 적절한 판단과 상대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감각이 없다면 펼칠 수 없는 검술.
어설프게 시도했다간 되레 당하기 쉬울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실수 따위 없을 거라는 확신에 찬 사람처럼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오오…….”
“호위 기사가 더 강한 거 아니야?”
“렌 아르젠이 밀리고 있어!!”
관객석은 예상과 다른 양상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기사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에 놀라는 이들도 많았다.
“총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국 아케데미의 수석 교수 찰스 버켈러가 물었다.
“흠…, 지금은 마리아 경이 더 우세해 보이는군요. 수석 교수가 보기엔 어떤가요?”
리아나 윈드러너는 솔직히 봐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경지가 너무 높기도 했고, 그녀는 검술에는 그리 안목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기에.
그저 렌 아르젠이 조금 더 밀리고 있다는 것 정도만 보였다.
“확실히 지금은 렌 님께서 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나중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예. 저도 이렇다 할 확신은 못 드리겠지만, 렌 님께선 항상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셨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확신을 깨는 검술을 선보였죠.”
그의 말에 리아나는 침음을 삼켰다. 찰스 수석 교수는 검술에 한해서는 아카데미의 그 누구보다 안목이 뛰어나다.
그가 이리 말할 정도라면 정말 렌 아르젠이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솔직히 이번에 렌이 자신에게 한 부탁도 들어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황제가 이번 대련을 공표한 이상 렌이 이길 확률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는 황제는 뻔히 질 내기 따위 할 위인이 아니었으니.
‘렌 아르젠 경…, 이번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어요?’
리아나는 그가 제국이라는 거대한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쿠웅!!
대련장의 중앙이 크게 요동치며 돌가루가 비산한다.
파직!!
빠르게 서로 거리를 벌리고 뇌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지면을 타고 뱀처럼 흘러드는 뇌기를 모조리 밀어내며 상대의 기척을 감지하고 검을 휘둘렀다.
카앙!!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는다.
점점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는 렌을 보며 혀를 내두른 그녀가 렌의 팔에 상처를 냄과 동시에 자신의 옆구리를 베였다.
“크윽…!”
불에 지진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온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통인가. 한동안 안주해 있던 그녀가 뇌리를 찌르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런 실력으로 왜 호의나 하고 있던 거지?”
렌의 물음에 그녀가 미간을 좁힌 채 대답한다.
“폐하를 또 욕보이는군.”
쾅!
밀어내도 밀어내도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공세의 우위를 가져갔던 것도 어느새 다시 반반의 상황으로 돌아섰다.
“정말 욕보인다고 생각하나?”
렌은 여유롭게 웃었다.
마리아는 그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렌 아르젠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 여유롭게 대화하며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흡!”
몇 분 흐르지도 않았건만 벌써 수십 번이 넘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아직 지치지는 않았지만, 렌 아르젠의 검술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도대체가…….’
마치 한 사람이 수십 개의 검술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떨 때는 무겁고, 어떨 때는 가볍다.
또 부드러우면서 거칠고 변화무쌍하면서도 정직하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검술이 존재한다기보다는 그러한 특징을 가진 모든 검술을 구사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넌 정체가 뭐지?”
그녀는 끝내 참았던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렌의 입가가 비틀렸다.
“악마 사냥꾼.”
뜬금없는 말이었다. 다른 이들은 연이어 터지는 굉음과 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듣지 못했을 테지만, 그녀에게만큼은 똑똑하게 들렸다.
순간 그녀의 등줄기에 살얼음을 끼얹은 것 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렌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번뜩이고 그의 검이 순간적으로 가속했다.
촤악―!
오른쪽 가슴팍을 가로질러 어깨를 베고 지나가는 검격.
입고 있던 흉갑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어깨가 너덜너덜해졌으리라.
“크윽!”
핏물이 앞섬을 적시며 순간 그녀가 휘청였다.
관중석에선 거센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경기를 주관하던 이가 멈칫하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요지부동인 그의 태도에 심판이 다시 마리아를 본다.
마리아는 괜찮은 듯 꿋꿋이 검을 들었다.
“방심하면 안 되지.”
렌은 뻔뻔하게 그리 말했고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렌 아르젠이 자신의 몸속에 잠든 악마의 힘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마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대놓고 신성 마법으로 검사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신성 마법의 경지가 뛰어나지 않으면 찾지 못한다.
근데 렌 아르젠은 신성력을 펼친 적도 없었다.
‘제기랄…….’
렌 아르젠이 어떻게 알았든, 악마라는 말에 동요하여 치명상을 입어 버렸다.
이대로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테니…….
‘그냥 이대로 기권을 선언…….’
후웅―! 카앙!!
갑자기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는 렌 아르젠.
하나하나의 검격이 마치 자신을 죽이려는 듯 쏟아진다.
“뭐…하자는 거지?”
서로가 검을 맞댄 채로 그녀가 물었다.
“뭐긴? 이 자리에서 난 널 죽일 생각이다.”
“폐하께서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해?”
티잉!
검을 밀쳐내어 멀어지지만 이내 다시 달라붙기를 반복하며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흑성에 넘어간 간자 때문에 분노하시진 않으실 것 같군.”
“흥! 헛소리!”
카앙!
렌의 검을 쳐낸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점점 오른팔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인가? 전력을 다해야 할 거야. 다음 일격에 넌 죽을 테니까.”
렌은 나지막이 경고를 내뱉고는 뇌기를 끌어올렸다.
“죽일 거면 죽여라. 차라리 너의 몰락을-.”
“그리하면 2황자가 네게 고마워하며 살 것 같나?”
뜬금없이 렌의 입에서 나온 2황자라는 말.
“……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동시에 쇄도하는 뇌격일섬을 막아내기 위해 그녀가 전력을 끌어올려 그것을 쳐낸다.
“하아…, 하아…….”
“제법인데, 이제는 정말 한계인 것 같군.”
“2황자 님을 왜 말하는 거냐?”
“이대로 죽는 게 억울하지도 않나? 지금 네가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전혀 나서지도 않는 인간인데 말이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녀의 감정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몰려야 진짜 본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황제 곁에서 몇 년을 수행하던 그녀의 본모습을 끌어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2황자는 어제도 자신의 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데…, 반면에 너는-.”
“닥쳐!!”
카앙!!
잠자고 있던 화산이 폭발하듯 그녀의 기세가 점차 거세지며 짙은 투기가 휘몰아친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일렁이는 검은 기운.
그녀의 붉은 투기와 뒤섞이며 그녀의 기운이 점점 짙고 어둡게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