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프랜시스.
성인이 될 때까지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몸에 성흔이 새겨지며 인생이 달라진다.
부모는 없고 고아로 살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이곳 브릴런트에 정착했다.
성흔은 성직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갖게 되는 특성.
성흔을 가진 이는 무조건적으로 엄청난 신성력을 얻게 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성흔을 가진 이를 발견하면 강제로 교회에 편입시킨다.
타국인이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 강성한 바란 제국의 시민이어도 성흔이 발견되면 교회의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신성 왕국이 가진 영향력이 대륙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란 제국이나 로자리아 왕국의 힘이 강하다 해도 그들과 반목할 수는 없었다.
프랜시스는 그렇기에 브릴런트에 둥지를 튼 것이었다. 브릴런트라면 가장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마족이 처음 브릴런트에 나타난 날. 나는 프랜시스를 만날 수 있었고 그녀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대신 그녀의 그 까칠하고 의심 많은 피곤한 성격을 그대로 받아내야 했지만.
‘성격은 여전하군.’
그 당시에 그녀와 꽤 많은 얘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가…….
아르젠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때의 프랜시스는 일말의 적대감도 없었다.
근데 지금 이 반응은 뭔가?
당장이라도 신성력을 써서 저 주먹을 내 얼굴에 냅다 꽂을 것만 같다.
“자, 잠깐!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해? 가해자들은 모르겠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씁, 어떡하지?
“나, 나는 버려졌습니다!”
다짜고짜 내던진 말에 그녀의 꿈틀거리던 근육이 잠잠해졌다.
과거 그녀로부터 고아라고 들은 적 있었기에 꺼낸 이야기였다.
다행히 그녀도 관심이 생겼는지 이번엔 들어보려는 듯했다.
“사실 저는…….”
가문에서 버려진 것과 그들이 내게 했던 추악한 행동들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그러자, 그녀의 적대감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전 아르젠이지만 아르젠이라 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뭐 그런 상황이죠.”
“그래……?”
완벽하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생각했건만.
아직까지 완전히 나에 대한 의심을 지우진 않은 모습이다.
이해는 가는 게, 그녀는 몸을 숨기고 있는 입장이니 난 그녀에게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다짜고짜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만…….”
내 진심 어린 사과의 그녀가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래서 어쩌다 그렇게 다쳤는데?”
“아 그게…….”
왕국 병사인데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이렇게 됐다고 대충 둘러댔다.
레이먼이 왕국의 준기사는 맞으니까.
“흐음……. 이 근방에 산적이 있던가?”
“있어. 우리가 당했으니까.”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나를 훑는다.
“왜?”
“왜 반말이야?”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뭐 어때?”
내 나이가 더 많다.
화가 풀린 것 같길래 슬쩍 나도 말을 놓았다.
“하.”
그녀가 헛웃음을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맘대로 하고. 내가 너희 도와줬잖아. 어떻게 보상할 거야?”
“아…….”
드디어 나왔다.
근데 정말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다.
“너 때문에 마당이랑 침대가 피범벅이 됐어. 어떡할 거야?”
“그건 미안해. 그리고 치료해 준 건 무조건 보답할게.”
이건 진심이었다.
상황이 어찌 됐든 은둔하고 있는 그녀를 귀찮게 만든 건 사실이니.
그녀의 입장에선 그냥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몸을 숨기는 데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성력까지 사용해서 우릴 구해줬으니,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는 게 맞았다.
“내가 근데 지금은 돈이 별로 없어서…….”
“돈은 됐고, 너희……검 좀 쓰니?”
“어?”
“고마우면 나 좀 도와서 일해.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돕겠지? 대신 몸은 확실히 회복시켜줄게.”
프랜시스와 이참에 연을 이어가면 좋은 쪽은 오히려 나다.
그녀가 확실히 회복시켜준다고 하면 이런 부탁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교회에 가서 성직자에게 신성 회복을 받는 데 드는 돈이 얼만데.
물론 프랜시스는 자기가 신성력을 쓰는 걸 밝힐 수 없으니, 그걸 계산에 집어넣지는 못하겠지만.
‘후후…….’
“당연하지! 뭐든 시켜만 줘.”
“좋아. 근데…….”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바라본다.
“왜 이리 기분이 나쁘지? 뭔가 네 표정 맘에 안 드는데…….”
나는 그녀의 의심에 아무것도 모른 척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간 눈치는 빠른 녀석은 귀찮다니까.
“후, 아무튼 너희 검 좀 쓸 줄 아는 거는 맞지? 고블린은 죽일 수 있어?”
칼빵 맞고 반 시체가 돼서 왔으니 못미더울만도 하다.
고블린이라……, 피어슨에 비하면 쉬운 상대겠지만, 인간과 괴수를 상대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뭐……, 그래도 고블린쯤은 괜찮겠지?’
이참에 프랜시스에게 확실히 친해지면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각인시켜줘야겠다.
* * *
레이먼의 정신이 들자, 나와 레이먼은 프랜시스가 차려준 음식으로 식사를 한 뒤 데케인으로 돌아갔다.
피범벅이었던 옷은 프랜시스가 준 다른 옷으로 바꿔 입었고 그 옷들은 다음번에 또 치료받으러 올 때 돌려주기로 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 3일에 한 번씩 프랜시스의 집에 찾아가기로 했고, 프랜시스가 회복시켜준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다.
레이먼은 먼저 짐을 챙겨 집으로 돌려보냈고, 나는 데케인에 남아 뒤처리를 했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안 왔네.”
올 사람도 없긴 하지만.
피어슨과 가렛의 시체가 그때 죽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핏물을 치우고 시체를 능숙하게 묻고 나니, 쾌적한 느낌이 든다.
“근데 이 녀석들의 망령은 안 나타나나?”
대충 두꺼운 나뭇가지를 꺾어 묘비 대신 세워주었는데, 너무 대충 만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금 막 묘가 생겨서 망령이 나타나지 않는 걸까?
“야야, 일어나 봐.”
발로 그들이 묻힌 묘의 둔덕을 툭툭 건드려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흠…….”
나는 한 5분 정도 그 묘를 지켜보다 다시 데케인으로 돌아갔다.
– 용케도 살아 있군.
“꼭 제가 뒈졌으면 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 그럴 리가.
놀리는 듯한 말투에 헛웃음을 내뱉은 나는 검을 한 곳에 세워두고 늦어진 훈련을 재개했다.
체력 훈련은 꾸준히 해야 한다. 검술의 기본은 체력이기에.
“후욱……, 후욱…….”
달리기 10km를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다.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개를 드니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체력이 0.1 올랐습니다.]
‘좋아.’
이렇게 빡세게 단련을 하다 보면 한 번씩 능력치가 오르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있으니 더욱 동기가 부여된다.
– 검이나 들어라.
어느새 옆에 둥둥 떠 있던 조상님이 내게 말했다.
옆구리도 아파서 힘들어 죽겠는데 쉴 시간도 주질 않는다.
조상님의 얼굴엔 뭔지 모를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 쯧, 그딴 놈들한테 옆구리 숭덩 잘려 나가는 꼴이 맘에 들지 않아.
“피어슨은 검기를 썼잖습니까?”
– 안 맞으면 그만이다.
“말이 쉽죠, 검끼리 부딪치면 제 검만 상하는데”
피어슨의 검기에 직격당한 내 검은 그대로 못쓰게 되었고, 난 피어슨의 마체테를 팔아넘기며 새로운 검을 구매해야 했다.
마침, 레이먼이 잘 아는 곳이 있어서 적당히 괜찮은 검으로 맞출 수 있었다.
– 피해서 베면 되지 않나.
“…….”
조상님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이미 스스로 보여주지 않았나?
그것도 삽으로.
“들었습니다.”
난 잔말 없이 검을 들었다.
– 적들과 싸우다 보면 옆구리도 베이고 어깨도 베이고 다리도 베이고 하는 법이다.
“알고 있습니다.”
– 그러니 부상일 때도 검을 놓으면 안 된다.
“그러다 상처가 덧나면 어떡합니까?”
– 상처가 덧나지 않을 만큼 육체를 단련해야겠지.
“그전에는요?”
– 참고 훈련하다 보면 그만큼 육체가 단련되어 있을 거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 아저씨는 육체도 뭐 강철이었나.
– 오늘은 수직 베기를 완벽히 열 번 이상 할 때까지 쉬는 시간은 없다.
“예?”
어제 칼침 맞은 게 그렇게도 열이 받으셨나.
부상자인데 훈련 강도가 더 강해졌다.
“……하아.”
나는 그렇게 쉬지도 못한 채 일주일간 미친 듯한 특훈을 진행했다.
그 사이 레이먼도 몸을 어느 정도 회복시킨 후에 다시 데케인에 올라왔다. 프랜시스의 추가 치료를 받아 검을 들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다시 훈련을 재개했다.
“사수님은 괜찮으십니까요?”
레이먼이 자신의 어깨를 매만지며 물었다.
“나는 뭐, 아직 아프긴 한데 괜찮아.”
“저는 앞으로 2주는 더 회복해야 다 나을 거랍니다요.”
“거의 한 달 정도 걸리는 건가?”
“예.”
“얼마 안 걸리네.”
“얼마 안 걸리다뇨? 그동안 제대로 훈련할 수 없습니다요!”
빨리 훈련을 하고 싶은지 레이먼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열흘 뒤에 프랜시스가 부탁한 의뢰가 있는데 제대로 몸 회복해야지. 당분간 훈련은 최대한 사리면서 해.”
“……예에.”
레이먼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내렸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근데 사수님이 계시잖습니까요? 제가 굳이 그 의뢰에 갈 필요가…….”
“없지 않지. 너는 도움을 받았는데 그렇게 모른 척한다고? 너 그런 놈이야?”
“예에? 아니, 저 그런 놈 아닙니다요!”
“그럼 당연히 가야지, 인마.”
“후우…….”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몰래 미소를 흘렸다.
“너도 그때 들었지?”
“뭘 말입니까요?”
“흑마법사. 도굴꾼 놈들이 그랬잖아.”
“아! 맞습니다요! 근데 흑마법사는 다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허상 아닙니까요?”
“쯧, 네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그럼 진짜라는 말씀이십니까요?”
“그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대비는 해 둬야 한다는 거야.”
레이먼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대비를 합니까요?”
“내가 저번에 도굴꾼 놈들을 파묻으면서 생각한 건데.”
“예.”
“여기 관리를 우리밖에 안 하잖아?”
“그렇습니다요.”
“그리고 누가 거의 찾아오지도 않고.”
“맞습니다요.”
레이먼이 계속해서 맞장구를 쳤다.
무슨 해답이 나올까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서 몰래 여기 있는 유골들을 다른 곳에 옮겨 버릴까 생각하는데. 어때?”
“예?”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레이먼이 입을 떡 벌리고 나를 꼬나본다.
“아니, 그러다 걸리면 저희 사형입니다요! 사형!”
“안 걸리면 되지.”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내가 여기 데케인 경력만 거의 20년-.”
“20년?”
“……같이 느껴질 정도로 오래 했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걱정 마라.”
레이먼이 미덥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평소에 그렇게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더니 왜 이래?
“근데 그냥 놈들 오면 사수님이 싹 다 조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요?”
“에이씨, 너 또 저번처럼 걸레짝 되고 싶냐?”
“그건 아니지만 서도…….”
“그럼 닥치고 까라면 까. 어디 사수가 하는 말에 따박따박 토를 달고 있어? 어린놈의 새끼가.”
“…….”
레이먼의 앙다물어진 입술이 꿈틀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애써 참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 할 말이 있어도 참아야 될 때가 있는 거지.
많이 발전했구나.
– 꼰대가 따로 없군.
그 말에 입을 떡 벌린 내가 조상님을 보았다.
내가 조상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갑자기 조금 전의 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지 내가 꼰대일 리가…….’
애써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레이먼을 노려보았다.
“뭐해?”
“예?”
“정해졌으면 실행을 해야지?”
나의 싸늘한 눈동자가 데케인을 한 번 훑고는 다시 레이먼에게 향했다.
“사수님은……안 하십니까요?”
“일단 네가 먼저 준비를 하고 있어 봐. 내가 옮길만한 곳을 봐둔 데가 있으니까. 먼저 답사 좀 하고 올게.”
“…….”
“자자! 빨리하고 후딱 끝내자고!”
레이먼이 또다시 어깨를 축 내리고는 삽을 가지러 터덜터덜 걸어간다.
몇 번째 저 모습을 보는 건지.
이쯤 되면 일부러 불쌍해 보이려고 저러는 거 아니야?
– 사수를 잘못 만났군.
나는 들려오는 조상님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미리 봐두었던 새로운 묘지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