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110
* * *
이성우는 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삼켜진 채로.
불현듯 정신이 든 건,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긴······?’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기분.
애써 머릿속에 드리운 안개를 걷어내자, 점차 기억이 선명해졌다.
“그래, 그랬었지.”
대마법사이자 대연금술사, 비밀결사 다트 에메트의 창시자이기도 한 풀카넬리.
불완전한 신격으로 승천을 감행해 ‘탐식의 의지’가 되어버린 뒤틀린 승천자.
그에게 삼켜졌다.
‘그럼, 여긴 밤의 마수. 그 내부인가?’
캄캄한 어둠을 향해 손을 뻗자, 연기 같은 어둠이 약간의 저항감을 주며 스르륵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뭐랄까, 물을 휘젓는 듯한 감각?
‘그렇다는 건 역시, 내 예상대로 됐다는 건데.’
확인차 시스템 창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렇다는 건, 여긴 ‘현실’이라기 보다는 풀카넬리의 심상세계라는 의미.
이성우는 안도하는 한편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아, 일단 진입에는 성공했다.”
만일 풀카넬리에게 탐식 당해 ‘죽음’을 맞이했다면?
초신성의 [위성]으로 등록해놓은 고위 악마 ‘니오레벤’의 본질, [아홉 개의 목숨] 덕에 진즉에 되살아났을 터.
하지만 죽지도 않고, 어둠에 잠식당하지도 않은 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내 안에 깃든 ‘신격의 조각’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지.”
풀카넬리가 온전한 신격을 토대로 완전한 승천을 이뤘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결함이 있는 승천자로서 다른 ‘신격’을 집어삼키는 건 무리였을 거다.
물론, 이쪽도 온전한 신격이 아니라 ‘조각’을 쥐고 있을 뿐이라 도박수였던 거지만.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이거지.”
이제는 사방에 가득한 탐식의 의지를 뚫고, 어딘가에 남아 있을 풀카넬리의 이성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온 천지가 어둡기만 해서 방향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
그때, 뒤쪽에서 이질적인 기척을 느낀 이성우가 고개를 돌렸다.
웬 여성이 탐식의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으아아! 이거 놓아요!”
“아이담?”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아니라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
이성우가 반신반의하며 묻자, 아이담이 겁먹은 아이처럼 허겁지겁 외쳤다.
“사, 살려줘요!”
슈욱―
중력을 조작해 끌고 오자, 아이담에게 달라붙은 어둠이 아쉽다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물러났다.
“왜 따라왔어?”
“전인께선 주인님에 관해 잘 모르시잖아요.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하지만 넘어오자마자 민폐가 됐다.
그게 미안한 듯 아이담은 풀이 죽어 있었다.
“그, 그래도! 저, 도움이 될 거예요. 이 공간······ 저한텐 익숙하거든요.”
“그래?”
아이담이 팔다리를 들어 보더니, 피부를 가볍게 꼬집어봤다.
살이 진짜 사람처럼 눌리고 늘어났다.
“주인님께선 하드웨어에 묶여 있어야 하는 제 신세를 안타깝게 여기시면서, 때때로 자신의 심상 공간에 저를 초대해주시곤 하셨어요. 거기선 저도 진짜 인간처럼 뛰어놀 수 있었죠.”
고개를 들어 사방에 자욱한 어둠을 응시하는 아이담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러니 알 수 있어요. 여긴 주인님의 내면 세계라는 걸.”
역시 짐작이 맞았나.
“이쪽이에요. 저 끝에서 주인님의 기척이 느껴져요.”
이성우는 안내자를 자임하는 아이담의 손끝을 따라, 공허와 같은 어둠을 헤치고 비행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돌연 어둠이 화악, 하고 걷히면서 시뻘건 화염과 유황의 악취, 거친 포효가 오감을 자극했다.
“악마들이에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악마의 물결이, 흐르는 어둠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풀카넬리에게 삼켜진 놈들이다.”
아이담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많은 걸······.”
쿠궁―!
그때, 아이담이 향하던 방향으로부터 ‘밤의 마수’의 촉수가 마구 뻗어 나왔다.
크와아아아!
쿠어어억!
끼이이아아아―!
어둠의 늪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악마들.
그걸 잡아먹는 촉수들이 꿈틀대는 아비규환.
하나, 마수의 촉수들이 마냥 설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퍼억―!
너무 많은 악마를 집어삼킨 나머지 부풀다가 터져버리는 촉수들이 있는가 하면.
어째서인지 붉은빛이 감돌면서 악마가 아니라 촉수를 잡아먹는 촉수들도 생겨났으니까.
이성우는 ‘기생의 악마’ 말라디우스에 의해 타락한 세계수에게서 비슷한 빛을 본 적이 있었다.
‘집어삼킨 악마의 힘이······ 한편으론 풀카넬리를 좀먹고 있는 거야.’
이내, ‘타락’한 촉수를 진압하려는 싸움까지 더해져 아래의 전장은 그야말로 아귀다툼의 소용돌이였다.
“세상에, 이건······.”
침음하는 아이담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성우도 알 것 같았다.
“그래, 여기가 진짜 지옥이군.”
풀카넬리의 싸움은, 인간성을 버리고 뒤틀린 신으로 승천하는 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악마를 집어삼키기 위해 싸우고, 집어삼킨 악마를 소멸하기 위해 싸우고, 그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한계에 달한 것 같고.’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이담이 다급히 외쳤다.
“어, 어서 주인님을 찾아야 해요!”
“동감이야. 하지만.”
이성우가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 전에 짐 좀 덜어주자고.”
“네?”
“요즘 좀 과식하신 것 같으니 말이야.”
이성우가 중력을 역전시키자, 아래에 들끓던 악마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불그스름하게 ‘타락’한 촉수들도, 모조리 뽑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중력의 방향을 조작해······ 전부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킨다.
우드득―
퍼걱!
크와아아악!
4,268%의 중력 조작력.
고작 하위, 중위에 불과한 악마들은 그 막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한낱 육편이 되어 커다란 고기 경단이 되어갔다.
“우욱······ 역겨운 악마놈들. 전인이여! 저것들을 뭉쳐서 뭘 어쩌려는 건가요?”
아이담은 비위가 상한 듯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악마들에게 욕설을 날려주는 걸 잊지 않았다.
“여긴 실제의 세상이 아니라, 심상의 세계잖아?”
그건, 여기선 ‘실제’의 제약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세계. 여기선 상상력과 정신력이 곧 존재의 강함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이성우는 이 공간을 빌어, 아직 얻지 못한 스킬을 심상으로서 구현해볼 셈이었다.
[운석 소환].이미지가 명확해, 상상하기 좋은 최상위권의 공격 스킬.
“사실, 운석을 불러내 보려고 했는데. 내 상상력이 풀카넬리의 심상이 만들어 낸 환경까지 깨버릴 수준은 안 되는 모양이야. 그래서 만들려고.”
“에?”
“재료야 넘쳐나니까.”
이성우를 쳐다보던 아이담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붉은 달이 있었다.
“어? 이게······ 뭔가 달라졌어요!”
“말했잖아, 여긴 실제가 아니라고.”
이성우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악마의 사체로 이루어진 붉은 달이 머리 위로 쏘아져 나갔다.
쿠구구구구구······
악마 군단 몇 개는 갈아 넣은 것 같은데, 아직도 지상은 악마의 물결로 넘실대고 있었다.
“정말, 많이도 잡아드셨군.”
저걸 다 소화할 자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런 걸 가렸다면 애초에 ‘탐식’의 화신이 아니겠지.
우뚝―
상공으로 쏘아 올린 붉은 달이 능력의 제어 사거리 끝자락에 다다랐다.
섭식 장애를 겪는 대마법사를 위한 소화제가 준비된 거다.
“큰 거 한 방 간다.”
위를 향하고 있던 손가락이 아래로 뒤집혔고.
[중력 강타]지구 중력의 82배에 달하는 힘이, 붉은 달을 일순간에 끌어당겨······.
고―오―오―오―
구구구구구······
꽈아아아아아앙―!
맹렬하게 내리꽂았다.
* * *
“당신, 인간 맞아요? 결사단 기록 보관소까지 오는 길에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긴 했지만······ 그때 측정 전력은 이 정돈 아니었는데?”
다시 풀카넬리의 정신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담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악마의 사체를 뭉쳐 만든 상상의 ‘운석’ 낙하는, 과연 가공할 위력을 발휘해······ 남아 있던 악마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여긴 심상 세계니, 실제 위력이 어떨지는 그때 가서 봐야 알겠지만.
악마 군단 5개 정도가 단숨에 쓸려나갔으니, 당장은 만족이다.
[운석 낙하].확보한다면, 앞으로 지옥 정벌에 요긴하겠지.
“그땐 던전이 무너지지 않게 신경 쓰느라,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거든.”
“뭐라고요? 하, 하긴, 주인님의 승천체마저 물러났으니······.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악마들과 아귀다툼을 벌이던 검은 촉수들은 운석 낙하의 충격에 반쯤은 망가지고, 반쯤은 도망치듯 자취를 감췄다.
“운석 떨어뜨리는 거?”
“그것도 그렇지만, 누군가 주인님을 압도하는 거요. 그땐 주인님을 대적할 자가 없었거든요.”
대마법사에 대연금술사라며.
하물며 영구기관을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자라면, 지금도 자웅을 나란히 할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네 주인이 정신을 차리게 하느냐인데.”
이성우는 목에 걸린 [주신의 눈] 세트, 후긴과 무닌을 만지작거렸다.
“아주 잠깐, 찰나만이라도 제정신이 들게 만들면 그 뒤는 어떻게든 할 수 있어.”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여긴 실제가 아니라면서요?”
이성우는 아이담의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을게.”
아이담의 눈매가 가늘어진 건 그때였다.
“······다왔네요. 여기가 의식(意識)의 중심이에요.”
아이담이 가리킨 곳은, 거대한 촉수들이 수초처럼 서 있는 호수였다.
“지식의 호수. 주인님의 앎과 기억······ 모든 게 담긴 곳이죠. 이성은 저곳 수면 아래에 잠겨 있을 거예요.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죠.”
“그래, 가자.”
거리가 좁혀지자,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촉수들이 침입자를 감지한 듯 거세게 몸을 뒤틀었다.
“온다.”
부우웅―
중심부이기 때문일까?
멀리서 악마들을 쥐어짜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하고 굵었다.
“좌상단에서 와요! 그다음은 정면에서 찌르기!”
촉수의 수축과 이완을 보고 예상 경로를 그린 듯, 아이담이 경고를 보내왔고.
이성우는 능숙하게 비행하며 중력으로 촉수들을 쳐내고, 흘려버리면서 호수를 향해 거리를 좁혀 갔다.
“정면! 다시 정면, 그리고 우측과 좌측에서 동시에! 이거 피하고, 잠깐 멈춰요!”
부우우웅―
멈칫.
허공에 정지하자마자, 코앞을 훑고 지나가는 무수한 촉수들.
조금이라도 늦게 멈췄다면 능력을 써볼 겨를도 없이 묵사발이 될 뻔했다.
“휘유, 대단한데? 이런걸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도 있는 거야?”
“그것도 가능은 하지만······ 이건 주인님이 저와 검술 대련을 할 때 즐겨 쓰시던 패턴이에요. 하하······ 그때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으신가 봐요.”
“감상엔 조금 이따 젖도록 하고, 다시 간다.”
“지금부터는 좀 어려워져요. 다시 우측에서······.”
“괜찮아.”
뻗어 나오기 위해 움츠리는 촉수.
피하는 대신 이용하자.
[단거리 공간이동]으로 순식간에 공간을 접어 달린다.발바닥에 물렁하면서도 단단한 촉수의 근육이 느껴진다.
촉수는 갑작스런 위상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잔뜩 움츠린 몸을 휘두른다.
그 반발을 몸을 실어 몸을 날린다.
뒤늦게 침입자의 위치를 쫓아 분주하게 방향을 트는 촉수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기껏 빼앗은 호흡을, 쉽사리 돌려줄 수는 없지.
다급해진 촉수들이 ‘타격’을 시도하는 대신, 덩굴처럼 뒤얽혀서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사물들을 끌어당기는 [강착]을 ‘역전’시켜, 억지로 틈새를 벌린다.
이제 앞을 가로막은 건, 아무것도 없다.
“뒤에서 와요!”
다시 한번, [단거리 공간이동].
어느새 이성우는 풀카넬리의 의식 중심, 호수 위에 서 있었다.
고오오오―
분한 듯 나지막이 포효하는 거대한 촉수들을 올려다본다.
이성우가 의도한 대로, 촉수들은 저들끼리 뒤얽혀 반쯤 매듭이 져 있는 상태.
“한동안은 얌전하겠지. 가자.”
“뭐야, 자기들끼리 엉켜버렸잖아. 저렇게 될 확률이······ 어, 잠깐만. 혹시 저거, 의도한 거예요?”
“그냥 어쩌다 보니 됐네.”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담을 데리고 호수로 몸을 날리자, 밖에서 보던 것처럼 시커먼 물 대신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작은 공간이 이성우를 맞이했다.
호수 위와는 완전히 딴판인 별천지.
영롱한 빛깔만큼이나 공기와 마력도 청정하게 느껴졌다.
“······주인님이에요.”
공간의 가운데엔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거대한 수정이 서 있었는데, 그 안에 한 노인이 잠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전면화된 ‘탐식의 의지’ 탓에 무의식 속에 유폐된 풀카넬리의 ‘이성’.
그를 둘러 싼 수정에선 최상급 마정석 이상으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성우가 가볍게 손등으로 두드려보니, 강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젠, 이걸 깨는 게 문제로군.”
“탐식의 의지로부터 이성을 지켜낼 정도로 강한 방어기제에요. 자신의 의지로 나오지 않는 한, 강제로 뚫는 건 어렵겠죠.”
첩첩이 산중이다.
이성우는 위쪽을 노려보았다.
“탐식의 의지를 반쯤 죽여놓으면, 저절로 깨어나지 않을까?”
“저한테 맡겨주세요.”
가까이 다가서서 제 창조자를 마주하는 아이담.
수정을 쓰다듬는 손길도, 눈길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 보였다.
조금 뒤, 아이담이 수정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무어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스르르―
꽝꽝 굳어있던 수정이 위쪽에서부터 차츰 녹아내리고, 잠들어 있던 대마법사 풀카넬리가 눈을 뜨고 웃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이구나.”
“주인님······!”
“네가 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단다.”
“기다리고······ 계셨다고요?”
풀카넬리의 시선이 이성우에게로 옮겨졌다.
“이 아이를 여기까지 인도해줘서 고맙네.”
현묘한 빛이 일렁이는 듯한 눈빛이었다.
“염원의 별을 취한 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