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03)
EP.347 개판 # 7
떨어진 괴수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보니까 멋들어진 검이 땅에 박혀 있었다. 마치 괴수의 몸통과 머리를 끊어버리는 선처럼 우뚝 서 있는 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봤다.
“네 녀석이 하루종일 드잡이질을 하던 그 나약한 괴수.”
빌딩 위에 선 류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거만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그딴 건 직접 칼을 휘두를 필요조차 없다.”
이 새끼?
“그저 던지기만 하면, 그대로 죽어버릴 테니까.”
ㅡ파앗.
가볍게 땅을 박찬 류씨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상태 그대로 떨어지면서 지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ㅡ쑤욱.
그리고는 지면에 박힌 자신의 검을 뽑아냈다.
“언제까지 엎어져 있을 생각이지, 탈레반? 아니. 정정하지. 네놈은 엎드려 있는 게 퍽 어울린다.”
지랄 맞은 썩소…!
“아, 이 새끼 늦게 와놓고 개깝치네!”
“그러는 네놈은 복날 개새끼마냥 개털려놓고 목소리만 크군. 역시 어쩔 수 없는 차이인가? 이것이 바로 나와 네놈의 격이라는 거겠지.”
“지랄. 지쳐서 그래, 지쳐서. 내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싸웠는 줄 아냐? 닌 임마 지금까지 쉬다 와서 쌩쌩한 거지, 나는 몇 시간 내내 싸웠다고.”
“저열한 핑계에 불과하다. 탈레반.”
이 새끼 늦게 와놓고 어떻게 저런 여유로운 표정을!
“그리고 쉬다 와? 뭘 모르는군. 나 역시 아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쉬다니. 얼빠진 녀석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아, 그런데 지금 여기 엎어져서 쉬는 녀석이 있군?”
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좆됐다.
뭐가 됐든 방금 류씨가 날 구한 상태. 상황이 이 지랄이 나 버리면 내가 류씨한테 찍소리도 할 수가 없게 된다…!
“크… 아무튼 우리의 ‘협공’으로 이 강력한 괴수를 참살했군? 류씨?”
협공으로 묻어가려던 찰나.
“크하하하하하!”
류씨가 빅웃음을 터트렸다.
“협공이라니? 이건 일방적으로 당하던 탈레반 네놈을 내가 살려준 상황같다만?”
“이, 이런…!”
“이걸 어떻게 생각하지, 탈레반? 설마 영웅생도라는 녀석이 여기서 그냥 넘어갈 작정인가? 나참. 그야말로 탈레반다운 근성이로군.”
이런 류씨 나부랭이에게 도움을 받게 되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여기서 그냥 넘어가는 것 역시 내 자존심이 용납치 않는다.
“아, 시발! 살려줘서 고맙다, 류씨! 덕분에 살았어!”
그래서 감사 인사를 전하니.
“크하하하하하!”
류씨가 세상 즐겁다는 듯이 박장대소했다.
“그런데 감사하는 자의 태도가 아닌-”
“류천휘! 얼굴 봐서 반갑고 빨리 도와주세요! 여기 상황이 말이 아니에요!”
“…”
레오나의 다급한 외침.
보니까 레오나랑 유리 둘 다 날개 달린 상위괴수를 참살한 상태였다.
“그래야겠군.”
“그래, 류씨! 쉬다 왔으면 빨리 힘을 보태라고!”
“다른 일 하다 왔다고 방금 말한 참이다만! 뭐, 지금 네놈과 드잡이질을 할 시간 따윈 없다!”
ㅡ파앗!
그리 외친 류씨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ㅡ촤학!
호쾌한 검격이 지상괴수들을 도륙한다. 아니, 근데 저 새끼 저거 다른 일 하고 왔다는 놈이 체력이 아주 그냥 빵빵한데?
아무튼 무슨 일을 하고 온 건진 몰라도 아주 강한 전력이 생겼다.
“그럼 나도 가자!”
이거 류씨까지 오니까 정말 든든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시후는 뭘 하고 있을까? 류씨가 다른 일을 하고 왔다면 시후도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지금 생각할 시간은 없다.
“이 개놈 새끼들이!!!”
나는 류씨에게 도움받은 굴욕을 잊기 위해 괴수들을 도륙하면서 기합성을 내질렀다. 상위괴수는 내 기준으로도 상당히 강한 녀석이었으나 다른 일반 녀석들은 별거 아니다!
뭐 그러면서도 바닥나가는 체력 배분을 착실히 했다.
싸우기도 하고 지휘도 했지.
“야! 너 임마 체력 떨어졌으면 뒤로 빠져!”
힘들어 보이는 애가 있으면 나 역시 적당히 전선에서 물러나면서 그 옆으로 다가가 명령을 내렸다.
“더, 더 싸울 수 있어! 부회장!”
“체력 회복하고 더 싸우라고! 빨리 가! 평생 쉬란 것도 아니고 숨 돌리고 와서 더 죽이면 되잖아!”
“어, 어! 그러네!”
전투 흥분 때문에 더 싸우고 싶어 하는 애들의 어깨를 잡고 뒤로 질질 끌고 가고, 제일 후방에서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싸우고 있던 녀석을 앞으로 보낸다.
“켄! 너 저쪽 좀 맡아줘!”
“알겠다, 비명맨!”
“브라이언 이 새끼 뒤로 빠져!”
“노우!”
“빠지라고!”
그런 식으로 지휘와 전투를 병행하면서 전체적인 판을 봤다.
다행히 상위괴수가 죽은 탓인지 아까 같은 폭발적인 웨이브는 없었다. 나도 그렇고 레오나와 유리 역시 체력 배분을 하면서 움직였다.
근데.
ㅡ콰아앙!
류씨만 존나 신났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 모조리 내 검에 파쇄되어라!”
아주 그냥 검기 뻥뻥 터트리면서 난리가 났어.
“제가 봤을 때 김근철이랑 류씨랑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비슷하다니까.”
“아니, 내가 왜 저런 녀석이랑.”
전혀 닮지 않았단 말이다.
아무튼.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클리어! 게이트 다수 소멸 확인!”
피칠갑을 한 선배 영웅들 쪽에서 그런 말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구역을 클리어한 것인가? 우리가 빠질 정도라면 적 전력이 유의미하게 거덜 났다는 뜻이다.
“후퇴 명령 떨어졌다! 얘들아! 뒤로 쭉쭉 빼자! 지휘관 있지! B-1지점까지 애들 데려가!”
“네! 그렇게 할게요! 김근철이! 후퇴 명령이에요! 바로 빼죠!”
“그래! 얘들아! 짐 챙겨라! 앞에 있던 게이트 몇 개 게이트 소멸했댄다! 후퇴하자!”
“오오오오오오오오!”
어우, 진짜 힘들어 뒤지는 줄 알았다.
“크허어…!”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하자마자 안심이 된 탓에 긴 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몸에서 힘이 쪽 빠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격하게 싸웠네.
수련이랑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다. 초인인 내 체력이 곧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는 중이야.
“김근철이. 고생했어요.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말도 마라… 죽을 것 같애.”
“후후후, 죽을 정도로 열심히 싸웠죠. 보세요. 김근철이가 올린 킬 수를.”
“…”
고개를 들었다.
“아.”
사방이 괴수 시체다.
지상기동형 새부리 칼손괴수. 저 질럿같은 강력한 괴수들은 전차의 주포를 맞춰야 처치할 수 있는 놈들인데, 체감상 말만큼이나 빨랐다.
지금 그걸 선배 영웅들이 끼어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우리끼리 어마어마한 수를 참살한 것이다.
“정말 믿음직스럽네요. 지휘도 잘했고. 김근철이 이거 훈장감 아니에요?”
“뭐 이딴 새끼가 훈장을 받아.”
“김근철이 정도면 받을 수 있죠.”
훈장이라.
“진짜 훈장 안 주면 1인 시위한다. 이건 우리반 애들 전원에게 줘야 한다고.”
“그것도 그러네요.”
그렇게 우리들은 짐을 챙겨서 함께 걸으며 후퇴했다. 다들 녹초가 된 모습이다. 말은 안 했지만 레오나랑 유리도 얼굴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게 땀을 많이 흘린 상태다.
“근데 류씨는 어디 갔지?”
“갑자기 사라졌네요 또. 하여간 김근철이. 제대로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까 구해줬잖아요.”
“아이고…!”
진짜 앞날이 깜깜하구나.
이젠 내가 놀림 받는 거 아니냐?
“다들 고생 많았다.”
“엇!”
그리 후퇴지점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우리를 반겨줬다.
“교관님!”
“보고 싶었어요!”
“으아아아!”
교관님을 본 애들이 발작하면서 뛰어갔다! 그만큼이나 반가운 존재, 우리 반의 우두머리!
“두목님!”
왜 짱구가 원장 선생님보고 맨날 두목님이 이 지랄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야!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비켜! 내가 먼저 갈 거야!”
“오우, 노우!”
“으아아아아아!”
어쩌다 보니 교관님께 뛰어가기 경쟁이 되고 말았다. 물론 내가 제일 빠르다. 그렇게 교관님 앞에 가서 멈춰 서려고 했는데.
“…”
교관님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ㅡ화악.
양팔을 벌리고는.
“엇!”
그대로 나를 안아줬다…!
아니, 이게 무슨?!
“다들 와라.”
“교관니이이임!”
당황할 틈조차 없었다. 내 뒤에서 달려오던 애들이 무슨 만두놀이는 하는 것처럼 그대로 교관님께 모두 달라붙었으니까.
“으악! 아아아악!”
그거 때문에 가장 안쪽에 있는 내가 짓눌리게 되었다…!
아니, 몸이 너무 딱 붙어서!
발버둥을 치려고 했지만 그런 공간마저도 없었고, 결국 애들이 반가운 마음을 모조리 풀어버린 뒤에야 풀려날 수가 있었다.
“크하!”
죽는 줄 알았네.
아니, 근데 교관님같은 쿨한 분이 애들 온다고 안아주실 줄이야. 앞에서 멈추려고 했는데 의외였다.
아무튼 주저앉아 있으니 레오나가 교관님께 뭐라뭐라 말하는 게 들려왔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교관님! 도와주러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미안하다. 처음에 너희가 고립될 뻔했던 건… 큰 실책이었지. 다행히 김근철이가 지휘해서 빠져나왔다더군.”
“그렇습니다!”
“잘했다, 김근철이. 훌륭했어. 아무튼. 그땐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주 강한 녀석들이 달라붙은 탓에… 그걸 무시하고 너희에게 갔다간 너희가 위험해졌겠지.”
“아.”
그런 건가.
하긴.
교관님이 강하다고 말할 정도의 괴수를 붙인 채로 이쪽에 오면 위험해지는 건 우리들일 테니까.
“다 처리하고 갔더니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더군. 특히 김근철이가 지휘를 아주 잘했어. 그래서 나 역시 안심하고 다른 걸 처리하러 갈 수 있었다.”
와서 슥 보고 돌아가셨구나.
“그런 거였습니까?”
“그래.”
이제보니 교관님도 상당히 흐트러진 모습이다.
“다들 잘했다. 첫 실전인데 큰 부상 없이 임무를 완수했군. 잘 돌아왔다. 모두.”
그리 말하는 교관님은 아주 안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인다.
“흐흐흐, 기본이죠. 전 언제나 안전을 생각하면서 지휘합니다. 그런데 교관님. 이게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아십니까?”
“규모가 큰 침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 범위는 이쪽 한정이다. 다른 곳은 뭐 없더군.”
그럼 다행이다.
“미친 듯이 게이트가 생성되던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더군. 그래서 지금 순조롭게 밀고 들어가는 중이다.”
우리가 이겨간다는 뜻이다.
됐네 그럼.
“맞다! 야, 야! 그거! 거대괴수는!”
유리가 깨달았다는 듯 소리친다.
“어 맞어. 그거.”
“교관님? 그건 어떻게 됐나요?”
“거대 괴수 말인가? 류성 회장이랑 힘을 합쳐서 부수고 오는 길이다.”
“뭐라구요?!”
아니 그걸 류성아재랑 이소라 교관님이 부순 거였어?
“그걸 부쉈어요? 막 게이트에서 강림하고 있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중간에 게이트가 소멸했다. 그래서 놈도 반 정도만 강림한 상태였지. 게이트가 사라진 단면에서 촉수가 나오면서 복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상태에서 전력을 낼 수는 없었겠지. 빠르게 화력을 퍼부어서 부수고 왔다.”
“오오!”
정리하자면 미친 듯이 젠되고 있던 게이트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춤해졌고, 그 탓에 거대괴수가 온전히 강림하지 못해 쉽게 처치했다는 말이었다.
“근데 갑자기 왜 게이트가 사라졌을까요?”
레오나가 말했다.
“뭐,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른 일이 더 바쁘니까. 일이 다 정리되고 나면 보고서가 나올 테니 그때 논의해보도록 하지.”
그래야겠다.
“그런데, 김근철이. 이시후와 아직 만나지 못했나?”
“아, 예.”
아니, 근데 진짜 이시후 임마 이거 어디로 간 거야?
*
*
*
“딱 봐도 이거 같은데.”
어두운 공간에 들어선 이시후가 검을 잡아 들었다.
“…”
이것과 마주하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불안감일까?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ㅡ스르륵.
이시후의 검에서 기묘한 잔상이 생겨난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이 동그란 물체를 절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