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seong Detective Agency RAW novel - Chapter 133
00111 황금광 시대 =========================================================================
소화는 빠른 걸음으로 향운정 안채를 지났다. 이미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한 뒤라 처마에 걸린 등이 어둑하게 잠겨든 발치를 밝히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장 안쪽 방 앞에 선 소화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평소 손님이 아주 많을 때가 아니면 잘 열어 놓지 않는 방으로, 간혹 해경이 은밀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때나 비워 주는 방이었다. 안에서 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 장지문을 살짝 열자 이미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시계를 보고 있던 해경이 잠깐 놀란 표정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후 내내 사무실을 비웠던 해경은 김석란의 일로 만날 사람이 있다며 향운정으로 온 터였다. 소화는 고개만 들이밀고 물었다.
“제가 있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해경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마치 소화가 이리 올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양 해경이 가리킨 곳에는 방석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인혜가 놓아 둔 모양이었다. 소화는 방 안으로 들어서 문을 닫고는 해경의 곁에 앉았다. 아직 초대한 손님은 오지 않은 터였다. 조용한 방 안에 나란히 앉자 침묵이 감돌았다. 소화는 어쩐지 어색해져 고개를 숙인 채 무릎만 보고 있다가 눈을 들어 해경의 옆얼굴을 흘끔 훔쳐보았다. 언제나처럼 깎아 놓은 듯한 옆모습이었다. 그러나 해경이 피곤한 듯 손끝으로 눈가를 눌렀을 때, 소화는 해경의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것을 알아차렸다. 깜짝 놀란 소화는 저도 모르게 해경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선생님, 눈이…….”
무의식중에 목소리가 커졌다. 해경이 멈칫하다 눈가로 다시 손을 가져갔다. 소화는 그 손을 얼른 잡아 내리며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해경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해경이 먼저 눈을 피했으나 소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눈을 보고 있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또 잠을 아니 주무신 거지요? 어제 저녁은 드셨나요? 제가 퇴근할 때 꼭 저녁도 챙겨 드시고 푹 주무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지 않아요.”
환까지 해경을 꼭 제때 자게 하고 제때 먹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간 탓에 소화도 해경에게 부쩍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나가다 해경의 서랍에 무슨 약인가가 들어 있는 것을 보기는 했으나, 며칠 사이로 그 약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보아 아마도 아스피린일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는 터였다. 상처는 다 나았다고 했는데 통증이 아직도 있어 약을 먹는 것인가 싶어 내심 걱정이 아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드물게도 눈에 핏발까지 선 것을 보니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다. 해경이 손을 저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밤에 책을 읽다가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선생님, 늦게까지 그리 무리하시면 아니 되어요. 절대 안정이라고 병원에서도…….”
그때 문이 열려 소화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을 본 해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소화는 속으로 아휴 참,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손님이 들어온 탓에 해경에게 더 무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것은 둥근 얼굴에 혈색이 좋은 중년의 남자로, 머리는 반쯤 벗겨진 채였다. 남자는 쓰고 있던 회색 중절모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해경이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해경이라 합니다.”
“이름은 익히 들었소. 조덕대요.”
남자가 해경의 손을 잡았다 놓으며 자기 이름을 밝혔다. 이 일의 시발점이 된 자가 조덕대였으므로, 일단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해경이 그를 향운정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선뜻 초대에 응하지 않으려던 덕대는 환의 소개를 받았다는 말 한 마디에 바로 태세를 전환했던 터였다. 덕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옆의 아가씨는?”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박소화 양입니다.”
“음, 그래요?”
덕대가 소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화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자 덕대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들은 이야기, 특히 금광에 대한 것은 무엇이든 내 허락이 있기 전에는 발설 금지요. 이 조항을 지킨다고 약조해야 이야기를 하겠소. 아가씨도 마찬가지고.”
“물론입니다.”
해경이 대신 대답했다. 덕대는 정종이 든 주전자를 가리켰다. 해경이 주전자를 들어 덕대 앞의 잔을 채우자, 덕대가 그 주전자를 받아들어 해경의 잔도 채워 주고는 먼저 한 잔을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술 한 잔을 비운 덕대가 입가를 닦으며 해경을 마주보았다.
“그래, 이환 공의 소개를 받으셨다고? 투자할 만한 곳을 찾고 계신 거요?”
“아직 금광에 투자할 만큼 자금이 충분치는 못해서요. 윤자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 모신 것입니다.”
반 농담으로 덕대의 말을 받아넘긴 해경이 대답하자 덕대의 눈이 잠깐 커졌다. 자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온 모양이었다. 눈을 굴리던 덕대가 팔짱을 끼었다.
“무엇이 궁금하신 게요?”
“윤자희 씨에게 투자처를 하나 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리 하신 것입니까?”
해경의 물음에 덕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아니, 금광 브로커가 금광 권하는 데 무슨 연유가 있겠소? 금이 난다기에 권한 것이지.”
“권하신 곳이 사유지로 출입이 금지된 땅이라 하던데요.”
해경이 즉각 대답하자 덕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덕대는 두 손을 비비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 다 알고 오신 판에 내가 딱히 숨길 것은 없겠군. 김석란이 가진 시흥군 땅 말하는 것이지? 윤자희가 혹여 내가 사기를 치는 것인가 알아봐 달라 했소?”
덕대의 말투에는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하기야 삼릉 재벌의 전속으로 일하는 이가 고작 윤자희 하나를 등쳐먹으려 그런 수고를 감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진짜 자희에게 사기를 칠 작정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고작 이 정도의 떠보기에 흔들릴 사람도 아니었다. 해경이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우자 덕대는 다시 잔을 비우고는 내려놓았다.
“김석란이 그 땅을 사들인 건 몇 년 전이오. 아마 삼사 년쯤 되었으려나? 그보다 더 되었을 수도 있고.”
“삼사 년 전이라고요?”
해경이 되묻자 덕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로 학교 부지로 쓸 것이라고 해서 샀다는데, 부지 경계에 별장을 하나 지었다더군. 가본 적은 없어 위치는 모르겠소. 아무튼 그런데 그 근처에 내가 교동광산 덕대로 있던 시절 내 밑에서 인부로 일하다 덕대가 되었던 이만춘이라는 자가 살고 있단 말이야. 덕대로 칠팔 년 일을 하다가 광산에서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었소. 그런데 이만춘이가 김석란이 그 땅을 사기 직전부터 나한테 시흥군에 오래된 금맥이 있단 말을 한 적이 있단 말이지.”
“거기에 금맥이 있다?”
“음, 그 동네에 개천이 하나 있는데 동네 어르신 말로 몇 백 년 전부터 거기서 사금이 났다는 거요. 그래서 내가 수백 년 지났으면 어지간한 금맥도 씨가 마른다며 웃어 넘겼는데, 그 뒤에 이만춘이 금분 섞인 광석을 세 개 가져온 게야. 어디서 났냐 하니 김석란이 사들인 땅 근방이라는데, 기가 막히게 자기가 그 돌을 캤을 즈음부터 사방을 막아 출입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게 아닌가. 혹 출원을 했는지 바로 알아보았는데 아직 출원이 되지 않았기에 김석란에게 넌지시 먼저 언질을 주었소. 그런데 그쪽에서는 설령 금맥이 있다 해도 학교 부지로 쓸 땅이고 후에 농지(農地)로도 쓸 것이니 땅만 망친다고 들은 척도 아니 하더라 이거요.”
소화는 덕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해경의 옆모습을 흘끔 훔쳐보았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해경은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몹시 집중하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해경은 잠시 무슨 생각인가를 하더니 덕대에게 물었다.
“그래서 윤자희 씨에게 대신 땅을 사라고 바람을 넣으신 겁니까?”
“음, 무어 김석란은 땅 비싸게 팔아 좋고 윤자희는 금 찾아 좋고 한 것 아닌가. 나도 얼마 정도 떼어 먹고. 나야 그것 팔아 봤자 용돈밖에 더 하겠소? 그런데 김석란이 꿈쩍도 아니하더라는 게지. 시세의 세 배를 불렀는데도 아니 팔겠다 했다는 거요. 그 땅에 무슨 좋은 보물을 그리 묻어 놓았기에 그러는지……스무 군데 서른 군데 파도 아니 나오는 것이 금맥인데, 그리 꽁꽁 숨기니 왠지 저기를 파면 금덩이가 딱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 윤자희가 그러니 더 애가 달아 매달리는 게지.”
덕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소화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그러면 김석란 씨가 잠잠해질 때까지 몇 년쯤 기다렸다가 금광 개발권을 출원하시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금광 가진 자들은 표적이 되기 쉬웠다. 수십 차례나 집이 털렸다는 최창학을 비롯하여 금광으로 이름 좀 날렸다 하는 자들은 허구한 날 절도나 강도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 철저히 정체를 숨기는 김석란이 공연히 눈에 띌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덕대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문이 잘 닫혔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 문가로 시선을 준 덕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김석란에게도 이미 그 이야기는 했소. 그건 아무 짝에도 소용없어. 금광 사업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사양길이오. 지금이야 일본이고 조선이고 다들 눈깔이 뒤집혀 달려들지만 조선 땅이라 해 봐야 손바닥만 한 땅이야. 땅 밑이 온통 금으로 뒤덮인 것도 아니고, 그 작은 땅 태반을 금광 찾겠다는 자들이 까뒤집었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금이 얼마나 되겠나? 나라고 파보지도 않은 땅 밑에 금맥이 있는지 어찌 알 것이고.”
“그러면 굳이 윤자희 씨에게 그 땅을 권할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아,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덕대가 자기 잔에 술을 채워 마시며 킬킬거렸다.
“이보게, 정해경 선생. 사람들은 아주 단순해요. 내가 백 명에게 금맥이 있을 법한 땅을 소개해 준다 치지. 그 중에 아흔아홉 명한테 소개시켜 준 땅이 나가리라도 한 사람만 금맥을 잡았다 하면 사람들은 조선 금맥은 다 내가 잡아 주는 줄 안단 말일세. 삼릉 재벌이라고 무어 다른 줄 아나? 그 치들도 금맥이 확실하다 해서 판 땅만 수백 군데고 날린 돈만 이미 수천만 원은 될 거요. 그런데 노다지 쏟아지는 광산 한두 개가 그 사이에 끼어 있으니 마치 노름꾼마냥 눈먼 돈을 계속 붓는 거란 말이오. 이 사업은 길어야 사오 년, 그 이상은 아니야.”
웃고는 있었으나 그 말투에는 냉소적인 구석이 있었다. 소화는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둥근 얼굴 사이에서 눈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발톱을 감추고 허공을 하릴없이 도는 매 같은 느낌이었다. 하기야 그 정도의 냉철함이 있으니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일 터였다. 잠깐 침묵하던 해경이 말을 돌렸다.
“김석란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음, 몇 년 전에, 그러니까 그 여자가 미리암여학교를 세우기 훨씬 전이지. 김석란의 조카라고 찾아온 남자가 있었소.”
“젊은 남자였습니까? 혹 이름이 장준학이었는지요?”
해경이 덕대의 말을 끊으며 묻자 덕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소. 장 군이 찾아와 자기 고모가 출원증 가진 것이 있는데 개발을 할 밑천이 없다며 팔기를 원한다 했지. 광산이 강원도 구석에 있다 했는데 그런 사기꾼이 하도 많아 직접 인부 몇을 데려가 확인을 했소. 손가락만한 금맥 잡은 것을 보여주더군. 족히 삼십 만원은 갈 금맥이라 일 할을 받기로 하고 호시노[星野]라는 일본인 사업가에게 삼십오만 원에 흥정을 해 넘겼지.”
덕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화는 문득 양호의 말을 떠올렸다. 양호는 몇 년 사이 금광 출원한 이들의 명단을 모두 뒤졌지만 김석란의 이름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준학이 조덕대에게 부탁하러 왔던 출원증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소화는 덕대가 다음 말을 잇기 전 서둘러 물었다.
“그 출원증이 김석란 씨 이름으로 되어 있던 것이었나요?”
덕대가 의아한 표정을 하며 소화를 마주보았다.
“그랬소만.”
“본인이 직접 출원을 했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그 출원증이 어디서 났겠소?”
“하지만…….”
소화가 김석란의 이름이 출원 명단에 없었다는 말을 꺼내려 하자 해경이 순간 상 아래로 소화의 손을 잡았다. 소화가 멈칫하자 해경이 재빨리 다른 손으로 덕대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화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김석란 씨를 직접 보신 적은 없었겠지요?”
덕대가 해경의 물음에 껄껄 웃고는 잔에 채워진 술을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은 덕대는 입가를 닦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실 진짜 있기는 한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소.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 사업에 관련된 모든 일은 장 군이 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굳이 김석란을 만날 필요가 없기도 할 것이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야 김석란이 실제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돈만 제때 나오면 되는 자들이니 무어…… 돈 들여 선생을 쓴 걸 보니 윤자희가 그 땅 못 산 것이 어지간히 분하긴 했던 모양이군.”
해경이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소화는 슬쩍 눈을 내리깔고 아직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해경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서늘하고 커다란 손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소화의 손을 한 번 더 감싸 쥐었다가 떨어졌다. 덕대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몇 모금을 빨던 덕대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우물거렸다.
“그런데 선생, 어지간하면 김석란한테서 손 떼는 편이 좋을 거요. 정체를 그리 숨기는 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단 말이야. 김석란이 산 사람인 이상 조선팔도에 그 정체 아는 사람이 한둘쯤 없겠소?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이상 낳아 준 부모라도 알 것 아니오. 그런데 여태 김석란 안다는 자가 하나도 없는 이유가 무어겠소? 김석란이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자기를 알 만한 이들을 모두 제거했다는 이야기겠지.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테고.”
담배를 접시 위에 눌러 끈 덕대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해경이 뒤따라 일어나자 덕대가 손을 저어 앉아 있으라는 표시를 하며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웃옷을 껴입었다. 중절모를 눌러 쓴 덕대가 방을 나가기 전 해경을 돌아보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지만 굴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거기가 범굴인지 여우굴인지 어찌 알고 들어갈 거요? 나같으면 그 범 아니 잡고 말겠소. 아무튼 김석란 일로 다시 만나지는 맙시다. 혹여 금광 투자에 생각이 있다면 그 때 연락하시오. 암만 끝물이라도 어딘가에 아직 사람이 안 판 금맥 한둘 정도 없으려고.”
“감사합니다.”
덕대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해경이 인사를 건네자 덕대가 손을 들어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소화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해경을 마주보았다.
“저리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미 발을 들인 이상 어쩔 수 없겠지요.”
해경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대답하고는 상 위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팔짱을 끼었다. 무슨 생각인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소화는 그 곁에 앉은 채 눈치를 살피다 문득 해경이 아까 자신의 말을 막았던 까닭이 궁금해졌다. 해경이 잡았던 손등을 만지작거리던 소화가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해경이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소화를 마주보았다.
“아까는 김석란의 이름으로 출원된 금광이 없었다는 걸 이야기하려고 한 겁니까?”
“네, 네. 맞아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란 소화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추며 대답했다. 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건 이상한 일입니다. 김석란의 이름으로 출원된 것이 없다면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출원증을 사고파는 것은 흔한 일이니 누군가에게 출원증을 샀을 수도 있고, 혹은 출원증을 낸 뒤에 이름을 바꾸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으로 출원증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경은 말끝을 흐렸다. 소화는 말없이 해경을 마주보았다. 둘만 남겨진 방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해경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못박혔다. 최근 들어 해경은 수시로 혼자 상념에 빠지곤 했다.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생각이 많으면 병이 된다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소화는 가만히 해경의 소매를 당겼다. 해경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소화를 마주보았다. 소화는 눈썹을 좁히며 해경에게 물었다.
“저어, 선생님. 그만 들어가서 쉬시면 아니 될까요?”
“네?”
“김석란 씨가 갑자기 어디로 도망가지도 아니할 테고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소화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말하면서도 지나치게 주제넘은 것은 아닌지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자신은 해경에게 겨우 함께 일하는 여직원, 잘 보아 준다 해도 고작 조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무슨 가족이라도 되는 양 이리 잔소리처럼 들릴 말을 늘어놓다 해경에게 미움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뒤늦게 찾아왔던 것이다. 해경은 대답 대신 물끄러미 소화를 마주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해경은 곧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래요. 오늘은 소화 양의 말대로 일찍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요.”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주제넘었지요?”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는 소화의 얼굴에 해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걱정해 주어 고맙군요.”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화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손을 모았다.
“저, 그럼 저는 먼저 별채로…….”
“소화 양.”
해경이 소화의 말을 끊으며 이름을 불렀다. 멈칫한 소화는 해경을 내려다보았다. 해경은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가 곧 미소를 띠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지요.”
해경답지 않은 태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것일까 궁금했으나 어쩐지 더 캐물을 수 없어, 소화는 네, 하고 작게 대답하고는 방을 물러나왔다. 문을 닫고 몸을 돌렸던 소화는 다시 한 번 장지문을 돌아보았다. 방 안의 불빛에 해경의 그림자가 비쳤다. 해경의 그림자는 마치 누군가 그려 놓기라도 한 듯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소화는 마당 가득 어둠이 내려앉고 처마의 홍등에 흰 저고리가 완전히 붉은 빛으로 물들 때까지 그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