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9
068화 경여당의 섭 대행수
그러자 등자경과 호위들이 앞으로 나서더니 범사철을 따라온 종들은 붙잡아 놓고 흠씬 패주고, 욕을 한 어린 종은 부채로 뺨을 여러 대 때려 주었다. 범한을 따라온 이들은 원래 사남 백작 범건이 부리던 자들이었다. 그러니 백작가에서 자신들보다 지위가 한참 낮은 종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게다가 범한을 호위하기 시작한 후에는 조정 상서직에 있는 관리의 아들을 흠씬 패고도 별 탈 없이 넘어갔으니, 이제는 어디서든 위풍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니 종들에게 손을 대는 것 정도는 이들에게는 한 치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한차례 매서운 교육이 끝났다. 그러자 범사철을 따라온 종들은 고통과 두려움 섞인 눈으로 잔뜩 위축된 채 뒤로 물러섰다. 어린 종은 두 뺨이 시뻘겋게 부은 채로 목 놓아 울었다.
범한이 겁에 질린 범사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 때린다고 했어? 하지만 네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그때는 내가 때려 줄 거야. 뭘 믿고 이런 소리를 하냐고? 간단해. 너는 주먹으로도 날 못 이기고 욕으로도 날 이기지 못하거든. 게다가 아버지께도 감히 이르지 못하겠지. 그러니 만약 네가 잘못을 저질러서 나를 도발한다면 그건 네가 자청해서 맞는 게 되겠지?”
범사철은 범한이 자신을 때릴 의사는 없어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자신의 수하들이 범한의 호위들에게 맞은 부분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뼛속부터 아랫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권문세가 자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범한과 관련해서는 비록 이번 일로 체면이 조금 상하기는 했어도 범한과 함께 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상인의 감으로 계산해 보고는 범한에게 밉보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들어가서 상황을 바로 잡아 놓고 와.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 가게에 가보자고 하지 않았나?”
범한은 말을 마치자마자 소매를 툭툭 털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글방 밖에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범씨 종친들이 있었다. 그들은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서자가 감히 벌건 대낮에 흠잡을 데 없는 사남 백작가 진짜 도련님을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며 범한의 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범한의 눈빛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범한은 그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밖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범사철을 기다렸다. 잠시 후, 글방 안에서 비명 소리와 뺨 때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간간이 오만하게 날뛰는 범사철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제대로 하란 말이야! 또다시 훈장님께 불경하게 굴어 봐! 내가 너희들 뺨을 또 갈겨 버릴지도 몰라!”
범한에게 들은 말을 비슷하게 하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백작가의 이 작은 도련님은 형 때문에 화난 것을 아이들에게 모두 풀어 버리는 중인 것 같았다.
이내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줄곧 밖에서 지키고 서 있기만 하던 종친들의 마부들과 어린 종들은 주인이 글방 안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자 잠시 범한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사철은 이들에게 끌려 나왔다.
범사철은 아직도 분풀이를 덜 했는지 욕을 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말고 덤벼. 네 이놈들, 사남 백작가 사람에게는 감히 손도 못 대겠지!”
그런데 정말로 범사철이 말한 그대로였다. 종들은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는 했어도 주인을 보호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감히 범사철에게 손을 휘두르며 반격하지 못했다. 그러니 사남 백작가가 특별한 지위에 있는 건 분명해 보았다.
범사철의 주먹질이 끝나자 범한은 자신이 초래한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의 목을 잡고 마차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곁에 있던 등자경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도련님, 저분들의 행동이 갈수록 말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경도에서는 집안 어른입니다. 어떤 일들은 저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너무 많은 사람에게 인심을 잃으시면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러자 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까짓 게 뭐가 무섭습니까?”
범한은 그들이 확실히 힘깨나 쓰는 것 같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곧 임완아와 혼인하고 나면 황제 폐하를 외삼촌으로 둔 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니, 자신은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 저런 변변찮은 녀석들을 제대로 가르쳐 놓지 않으면 답답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것만 같았다.
“마음껏 때렸니?”
범한이 물었다. 그러자 범사철은 궁금한 게 있다는 듯 반응했다.
“그건 그렇네. 평소에도 자주 사람들을 때렸는데 오늘처럼 맘껏 때린 적이 없었네. 왜 이런 거지?”
범사철은 앞서 형에게 한 소리 듣고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런데 영웅처럼 용맹하게 사람들을 때리고 나니 그 화가 싹 사라져 이상했다.
“이유는 간단해. 사람을 때릴 때에도 명분은 있어야 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지. 공명정대한 이유가 있으면 때릴 때 마음에 짐이 생기지 않거든. 옛날에 조정에서 북위로 진격할 때도 그들이 먼저 우리 국경을 침범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범한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무슨 일이든 다 마찬가지야. 대의명분부터 챙겨야 해. 대의명분, 알겠니?”
“잘 모르겠는데.”
범사철이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범한 일행은 동천로에 위치한 서점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입지 조건이 꽤 좋았다. 우선 이곳까지 오는 데 주변 교통 여건이 좋았다. 그리고 태학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말은, 전국 각지에서 경도로 올라와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거의 매일 이 앞을 지나다닌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지막은 입지 조건 중 가장 좋은 점으로 사람들이 지나치게 북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각 왕부에 사는 군주, 관리들의 딸들이 여종을 보내 책을 빌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범사철과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맞은편에 보이는 백작가 식객들을 향해 손을 맞잡고 가슴팍까지 올려 공손히 인사했다.
“최 선생,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곧이어 그 최 선생이란 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 도련님, 이만한 서점에서 일 년에 겨우 몇 푼 벌어들인다고 이리도 많은 공을 들이십니까. 이곳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범한은 이들이 과거 호부에서 일했던 전임 관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은전 몇천 냥을 그냥 흘려보내는 장사가 이들 눈에 찰 리 없었다. 이에 범한이 웃으며 설명했다.
“아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 그냥 아우의 놀이터로 쓰려고 합니다.”
범한은 아버지 사남 백작을 계속 속일 수 없을 것 같아 사남 백작가 식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 선생에게 도움을 받는 걸 아버지가 허락하자, 범한은 두 아들이 백작가 밖에서 일을 벌이는 걸 아버지가 묵인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들은 안채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범사철은 붓대를 입에 물고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일단 눈앞에 장부가 보이면 다른 건 전부 잊고 열심히 계산에만 몰두하는 버릇이 있었다.
범한과 식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경여당에서 불러온 대행수가 도착했다. 경여당 대행수는 충직하고 온순해 보였다. 두 눈은 번쩍이지는 않았지만 꽤 맑고 투명했다. 눈동자가 맑은 사람이 몸가짐도 바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범사철은 그런 그가 살짝 마음에 들었는지 직접 나서서 그와 서점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범약약이 예순 몇 회에 달하는 《홍루몽》 원고를 이미 범사철에게 건넸고, 만송당에서는 최 선생이 보낸 사람이 인쇄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니, 무슨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범사철은 경도에서 한 방에 성공하는 걸 노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범한에게 계속 다음 편 원고를 재촉했지만, 범한은 최근 며칠 동안 《홍루몽》을 베낄 마음이 들지 않아 미루고만 있었다.
서점을 개점할 날짜도 정했고, 감찰원 8처에서 허가가 난 것도 미리 확인했으니 이제 이 뒷방에서 이들이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때가 되면 만송당에서 경서, 역사서, 철학서, 시문집이 들어올 테고 이어서 또 《석두기》를 주력 상품으로 밀면, 그 후로는 돈을 거둬들이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점원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경여당의 대행수가 한꺼번에 처리해 줄 것이니 백작가 범씨 형제들은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범한은 경여당이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살짝 궁금하던 터였다. 그래서 대행수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대행수는 성(姓)이 어찌 됩니까?”
대행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 성은 섭씨입니다.”
범한의 심장이 살짝 떨려 왔다. 그래서 재차 물어보았다.
“섭씨라고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대행수가 무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응대했다.
“그렇습니다. 경여당에는 모두 열일곱 명의 대행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성도 모두 섭씨입니다. 경도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만, 범 도련님?”
“전부 섭씨라고요?”
범한이 이맛살을 한껏 찡그린 채 질문을 이어 갔다.
“여러분들과 20년 전에 있던 섭가는 무슨 관계인가요?”
대행수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범한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살짝 격세지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정말 오래전 일인지라 요즘 젊은 분들은 섭가를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옛날에 섭가라는 상점의 대행수였습니다. 섭가에 문제가 생기자 황궁에서 섭가의 재산을 모두 몰수해 갔습니다. 저희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길을 찾아야 했지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정에서는 저희가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난처한 지경이 되었지요. 이후로 저희는 다른 사람들의 장사는 보살펴 줄 수는 있어도 직접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여당도 지금은 그와 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범한은 대행수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과거 어머니의 사람이었다니 범한은 그에게 절로 친근감이 들었다. 범한이 다시 궁금한 것이 있어 물었다.
“섭가에 문제가 생긴 후 조정에서는 왜······.”
범한이 말을 끝까지 한 것도 아닌데 대행수는 범한이 ‘뿌리까지 뽑아 버린다’는 말을 꺼내려던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조정에서 섭가의 사업을 강제로 장악하고 이들 노인들의 의사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행수는 문득 자기 앞에 있는 이 백작가 도련님이 절로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대답했다.
“저희가 보기에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두려움 속에서 살았답니다. 더군다나 조정에서는 저희가 경도를 떠나지도 못하도록 했으니까요. 결국 저희로서는 언젠가 무슨 일이 닥칠 거란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날을 잡아서 경여당 좀 구경시켜 주세요.”
경도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곳을 우연히 알게 된 범한은 기쁜 마음에 대행수의 어깨를 움켜잡고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물어볼 것이 정말로 많이 있거든요.”
* * *
귀가한 후 범한은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께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하다가 순간 궁금한 것이 생겨 물어보았다.
“경여당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옛날 섭가에 있었던 이들입니까?”
“물론이란다.”
범건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 짧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 사람들도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니야. 옛날에는 각 지역에 섭가의 분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분점의 총괄자였단다. 그래서 네 어머니가 권문귀족들에게 밉보이자 그들도 그와 같이 불행한 일을 당한 거란다. 이제 너도 옛날에 섭가가 얼마나 기세등등했는지 알게 되었구나. 조정도 순간 당황했어. 만약 섭가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이 경국도 수십 년 동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최종적으로 절충안 하나를 내놓게 되었단다. 우선 섭가를 황실에 귀속시켰다. 적어도 관리들이 혼란을 틈타 섭가의 재산을 훔칠 가능성을 명목상으로는 차단한 게다. 그런 후······.”
범한이 아버지의 말을 끊고 물었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는 결국에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줄곧 궁금했던 사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