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2
열일하는 과금 기사 11화
chapter2. 무과금 겜생
게임 능력을 현실에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 잊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리벤지는.
쓰레기 같은 게임이다.
‘만약 내게 적용된 게임이 다른 종류였다면 어땠을까?’
50년 동안 34지구 최고의 인기 게임으로 군림했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리얼 스테이지>, 고위 능력자들이 가득하다는 실력 겜 <블래이드&매직>, 기가스 조종사들의 필수 코스라는 <대전쟁4>. 등장한 지 1년 만에 게임방 점유율을 모조리 잡아먹고 있는 <엠퍼러 퀘스트> 등등.
그런 게임의 시스템이 내게 적용되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저, 그 게임을 열심히 하면 된다. 공략을 익히고 시스템을 연구해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파밍해 아르데니아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저 숙련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스킬을 획득했을 것이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전설 장비들을 획득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조건을 달성해 전직하고 퀘스트를 달성해 특별한 보상을 획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리벤지는 어떠한가?
직업?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장비? 어느 선까지는 파밍으로 해결하지만 위로 가려면 돈을 쓸 수밖에 없다.
레벨?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은총이 아니면 올릴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스킬? 역시나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아니 미친 게임이네, 이거.”
다른 걸 다 떠나서 스킬도 돈 주고 사야 하는 건 진짜 제정신인가 싶다. 인게임 재화인 골드로 살 수 있는 스킬은 일반이나 고급 등급뿐이고(그마저도 엄청 비싸다)희귀 이상의 스킬은 스킬 랜덤 박스를 구매해야 한다.
누군가는 ‘몬스터에게서 드랍되는 아이템을 파밍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묻겠지만 그 드랍률이 어떤 수준이냐가 문제다.
리벤지의 드랍률이 어떠하냐면.
[악어 늪지에서 미취학아동님께서 심장 가르기(희귀)를 획득하셨습니다!]희귀급 하나 얻었다고 월드 메시지로 스킬명과 함께 아이디가 뜬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들이 볼 수 있는 전체 공지!
“악어 늪지면 남부 지대에 있는 곳이잖아…… 거의 대륙 반대편인데 그게 여기서도 보이네.”
아르데니아에서 20년이나 살아온 내가 모를 수 없는 곳이다. 거의 수십 킬로미터나 되는 무지막지한 범위의 습지로 마수 [두 발 악어]들이 서식하는 마경 중의 마경!
‘거리로 치면 족히 2000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인데 그걸 알려주다니.’
기막혀 했지만 사실 거리는 문제가 아니다. 영웅, 전설, 신화는 고사하고 고작 희귀급에서 월드 메시지가 뜬다는 것이 진짜 문제.
희귀급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어찌 월드 메시지로 알려주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어쩌면 수백만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사냥을 하고 있을 텐데.
“인간적으로 희귀 정도는 일반 몬스터를 잡아도 막 쏟아져야 하는 거 아니냐? 게임이잖아, 게임!”
투덜거렸지만 이유 자체는 알고 있다.
리벤지는 장비 레벨도, 장비 제한도 없는 게임.
장비 레벨이 없고 오직 등급만 있기 때문에 장비의 가치가 잘 변하지 않는다.
10년 전의 1레벨 캐릭터가 운 좋게 전설 무기를 얻었다면, 농담이 아니라 그는 10년 내내 그 전설 장비를 계속 쓰게 될 것이다.
다른 게임들과 달리 리벤지의 등급은 정말 그 장비나 스킬 자체의 가치를 의미한다. 일반 무기는 일반 무기인거고 희귀 무기는 정말로 희귀하게 나온다.
전설 무기는 문자 그대로 전설 속의 존재.
‘10레벨 전설 무기보다 50레벨 일반 무기가 강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
농담이 아니라 몇 년을 이 게임에 쏟아 부어도 전설 무기를 못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금을 하지 않으면 24시간 동안 몇 년을 플레이해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없는 게임. 그게 바로 리벤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금만능주의 게임에서.
이제부터 난 무과금 플레이를 해야만 한다.
‘하…… 전 재산을 꼬라박았는데. 거의 4천만 원을 부었는데 무과금이라니.’
그러나 과금으로 얻은 클래스들을 죄다 아르데니아로 보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고객 센터에 연락해서 복구해 달라고 해 볼까?’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위험한 일이다.
당장 나부터가 게임 시스템이 육신에 적용되는 이 현상이 어떤 원리인지 알지 못한다. 리벤지 개발자나 운영진이 지금 이 현상과 연관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상황에 함부로 움직였다가 이 능력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세상을 알게 된 지금 모든 걸 잃어버리면 정말 난 목을 매달지도 모른다.
퍽! 퍽! 퍽! 창! 치잉!
꾸이익!
나는 모니터 안에서 부지런히 사냥하고 있는 아바타를 보았다. 스타터 패키지도 아르데니아로 보내 버렸기에 일반 등급 아처라는 직업에 컬렉션 또한 드랍으로 떨어지는 일반 등급 아이템들만 등록한 내 캐릭터. [킬리언스]는 극도로 약하다.
리벤지 안에서 그야말로 바닥에 깔린 천민 같은 존재.
이 캐릭터가 얼마나 약하냐면 24시간 풀로 10일째 게임을 돌렸음에도 여전히 [일반]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다.
[고급] 등급의 몬스터 존에서 사냥하면 오토로 사용되는 포션값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레벨이 37이나 되는데 이거야 원.”
심지어 높아질수록 필요 경험치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지는 리벤지의 레벨 시스템 때문에 레벨 업 속도가 가면 갈수록 끔찍하게 느려진다.
오늘은 24시간 내내 사냥을 돌렸는데도 경험치를 30%도 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레벨 업 시 주어지는 자유 스텟 포인트로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
즉 게임을 해도 해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
“이게 게임이냐?”
그저 골드 조금씩 쌓는 보람으로 오토를 돌리는 셈이다. 그마저도 고급 스킬 하나 사기에 부족한 돈이지만 말이다.
띠링!
[인벤토리 중량이 50%를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50%를 초과하여 생명력과 마나가 자연 치유되지 않습니다!]화면에 떠오르는 텍스트를 보고 PC 앞에 앉았다. 내게 배를 두들겨지고 있던 체다 역시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 옆에 주저앉는다.
“다 찼네.”
내 캐릭터는 스타팅 서쪽에 위치한 [바람막이 고원]에서 [고원 멧돼지(일반)]를 사냥하고 있다. 대충 15초에 1마리를 사냥하니 1분에 4마리, 1시간에 240마리를 사냥하는 셈이다.
‘고원 멧돼지의 드랍 테이블은…….’
홈페이지를 켜 몬스터 정보를 확인한다.
[고원 멧돼지(일반) 드랍 아이템]일반 클래스 소환권(등급 없음), 뼈 단검(일반). 뼈 장검(일반), 가죽 방패(일반).
멧돼지 뒷다리(재료), 멧돼지 가죽(재료), 멧돼지 어금니(상점 판매), 골드.
“장비는 단검, 검, 방패 이렇게 세 개고 나머지는 고기랑 가죽인가.”
고급 아이템 하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드랍 테이블.
물론 그 안에는 클래스 소환권이 있지만 거들떠도 안 본다. 여기에서 멧돼지만 200시간 넘게 잡고 있음에도 구경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이 먹는 것도 못 봤다. 주위에 있는 다른 캐릭터들도 거의 무한대로 사냥을 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비우기 전에.”
나는 사냥터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캐릭터들 옆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들을 회수했다.
뼈 단검(일반)을 획득했습니다!
가죽 방패(일반)를 획득했습니다!
멧돼지 뒷다리(재료)X12개를 획득했습니다!
뼈 장검을……
리벤지에서 아이템이 드랍되면 1분 동안은 소유권이 유지되지만 그 이상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주울 수 있게 되고 10분이 지나면 소멸되어 버린다.
내가 아이템을 주워 가도 다른 플레이어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바닥에 이렇게 아이템이 쌓여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옵션에서 그것들을 줍지 않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인벤토리 중량을 채울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기야 여기는 가죽 노가다를 하러 오는 곳이니 나머지는 다 무거운 쓰레기일 뿐이지.’
리벤지에는 제작 콘텐츠라는 게 있고 그중에서도 가죽은 꽤 많이 쓰이는 소재다.
물론 고원 멧돼지가 주는 가죽의 등급은 하급에 불과하지만 하급 가죽 10개와 1000골드를 소모해 조합하면 중급 가죽을 얻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상급, 최상급 가죽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사냥터임에도 오토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이야. 버려지는 게 가죽이 아니라 고기라서.’
멧돼지 뒷다리는 요리 콘텐츠에 들어가는 물건이지만 가죽과는 취급이 전혀 다르다.
가죽과 달리 멧돼지 뒷다리는 그냥 고유한 요리 재료라 상위 고기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요리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한번 먹으면 적어도 1시간은 유지되는 요리 버프를 이런 최하급 음식으로 채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플레이어들에게 멧돼지 뒷다리는 인벤토리 중량을 늘리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인벤토리 중량이 75%를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75%를 초과하여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100%를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100%를 초과하여 이동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고 체력, 생명력, 마나가 천천히 감소합니다!]인벤토리가 가득 찰 때까지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챙긴다.
“좋아. 그럼 로그인.”
말하는 순간.
나는 아르데니아에 있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괜찮으십니까?”
영지민 무리를 따라잡자 영지민들을 이끌고 있던 기사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녀석의 이름은 헌드레드 실버소드. 우리 영지에 둘밖에 없는 기사 중 하나다.
스틸스톤이 평민에서 산적, 용병, 기사로 복잡하게 전직해 온 것과 다르게, 녀석은 위명이 쟁쟁한 실버소드 백작가에서 태어나 15살에 기사가 된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슨 권력이 있는 건 아니지.’
실버소드 백작가의 가주 일라인은 12남 19녀라는 무지막지한 수의 자식을 낳았고 헌드레드는 그중 스물다섯 번째 자식이다.
심지어 그의 모친은 백작을 지키던 여기사였기 때문에 실버소드 백작가를 이을 가능성은 0.1%도 없다.
‘하기야 그러니 이런 변방으로 보내진 거겠지.’
나는 잡념을 떨치고 헌드레드에게 말했다.
“문제없다. 완전히 따돌렸고 거리도 한참 벌렸으니 더 이상 추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대단하시군요. 그 괴물 같은 놈들을…….”
상시 관리되어 반짝거리던 그의 자랑스러운 전신 갑주는 오크들과의 전투로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다. 하지만 그가 영지민들을 위해 오크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을 생각해 보면 저 정도 손상으로 그친 게 오히려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징글징글한 놈들이긴 하지. 그보다 저녁이나 먹지.”
“앗! 네. 알겠습니다, 영주님. 자! 저녁 시간이다!”
“저녁 시간이다! 영주님 오셨다!”
“불 피워! 냄비 올려!”
“밥 먹자!”
힘들게 산길을 걷고 있던 영지민들이 기뻐하며 자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무가 그득그득한 숲속이었기에 땔감 걱정은 없다. 물론 걱정이 없는 건 땔감뿐이고 1000명이나 되는 영지민들을 먹일 식량이 문제였지만.
“차례대로 받아 가라!”
“넵! 줄 서서 받아가! 바로 굽기 시작해!”
지금 이곳에는 무한의 멧돼지 뒷다리가 있다!
나는 리벤지의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뒷다리를 꺼내 던졌다.
“와! 이거 봐! 뒷다리 다시 봐도 엄청 크다.”
“근데 대체 이만한 수의 멧돼지가 어디 있어서 잡아 오신 거지?”
“게다가 죄다 오른쪽 뒷다리야. 다른 다리하고 몸통은 어디 있고 오른쪽 뒷다리만…….”
영지민들은 벌써 몇 번씩 벌어진 기사에 의아해했지만 순순히 뒷다리들을 받아 가서 굽거나 끓이는 식으로 조리를 시작했다.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을 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먹거리는 충분해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나는 미리 한쪽에 모아 놓았던 영지민들에게 멧돼지 가죽 수십 장을 넘겼다.
아직 여름이지만 내 영지는 기본적으로 북방에 위치했고 우리는 거기에서도 더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얼어 죽기 싫으면 충분한 방한 대책이 필요하다.
“영주님.”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헌드레드가 입을 연다.
“무슨 일이냐?”
“이런 걸 여쭤볼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대체 이 가죽들은 뭡니까? 무두질까지 완벽히 끝나 있는 멧돼지 가죽이라니.”
“설명하기 어렵군. 세상이 이렇게 되면서……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멀리 있는 물건을 가져올 수 있지. 너도 오크 녀석들이 죽었을 때 물건들이 떨어지는 걸 봤겠지?”
현재 아르데니아에서는 누가 몬스터를 죽여도 아이템과 골드가 드랍된다.
여신의 가호(캐시 서비스, 경험치와 드랍률에 막대한 버프)가 없어서 확률은 낮지만 아무리 드랍률이 낮아도 골드는 곧잘 떨어지는 법이니 헌드레드 역시 그 모습을 보았을 터이다.
“정말…… 세상이 알 수 없게 변해 버렸군요.”
“그래. 그보다.”
나는 인벤토리에 잔뜩 있는 뼈 단검(일반), 뼈 장검(일반), 가죽 방패(일반)를 죄다 꺼냈다.
장비들을 분해하면 수호령을 강화할 수 있는 [혼의 결정]을 얻을 수 있지만 장비 분해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상점에서 구매해야(공짜가 없다.)하는 용해석이 들어가는 데다 성공과 대성공, 실패까지 있기 때문에 일반 장비들을 분해하기엔 단가가 안 맞는다.
“영지민들을 무장시켜라. 개중에서 힘이 좋은 놈들은 방패도 들게 해.”
“하지만 영주님, 오크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다고…….”
“다른 영지는 멀쩡할 것 같나? 괴물들이 나온 영지가 우리뿐이라고 생각해?”
“…….”
“무장시켜.”
“명령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