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3
열일하는 과금 기사 12화
“명령대로.”
헌드레드는 다섯의 장정을 부려 장비들을 가져간 후 무장을 마친 마흔 명의 병사들을 추려 지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무기에 맞춰 보직을 결정하고 간단하게나마 진형과 분대를 구성하는 것이다.
기사란 어릴 적부터 훈련받은 전쟁 전문가.
거기에 산적이나 용병으로서의 경험자가 많은 영지 특성상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이가 많다는 장점이 겹쳐져 패배 의식에 빠져 있던 병사들의 기세가 점점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식사 시간입니다!”
“고기 먹고 하세요!”
열댓 명밖에 남지 않은 아낙들을 이끌고 있는 하녀장 플라워가 소리 높여 사람들을 모은다. 커다란 냄비에서 고기 스튜가 끓고 있고 장정 몇이 달라붙은 모닥불 위에는 멧돼지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다.
우적.
멧돼지 뒷다리를 잡아 뜯는다.
‘느끼해. 거기에 고기 잡내까지…….’
고기 육질은 나쁘지 않지만 조미료의 부재가 심각하다. 소금만 뿌려 먹어도 훨씬 낫겠지만, 변방이라 해도 우리 영지와 바다까지의 거리는 수백 킬로미터가 넘었다.
더구나 그 사이에 짐승과 짐승이 진화해 만들어진 마수, 산적, 그리고 산적과 다를 바 없는 화전민들이 가득한 상황이었기에 영주인 나조차 쉽게 구할 수 없던 상황.
영지를 잃고 달아나는 중인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면…….’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병사들이 가져다 준 스튜와 고기를 씹어 먹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데이터 쪼가리를 먹고 있는 건가?’
지구의 물건은 아르데니아로 가져올 수 없고, 마찬가지로 아르데니아의 물건도 지구로 가져갈 수 없다.
오직 내 몸.
오직 이 육신만이 두 세계의 접점이다.
정확히는 ‘이었다.’라고 할 수 있겠지. 이 리벤지가 끼어들기 전에는 그렇다는 말.
‘진짜 말도 안 된다니까.’
마우스 클릭으로 잡은 멧돼지의 다리를 먹어 현실에서 배를 불리는 게 물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뿐이 아니다.
“로그아웃.”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씹고 있던 멧돼지 고기를 퉤 하고 바닥에 뱉었다.
철퍽.
멧돼지 고기가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약 1분 후.
치직!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기가 마치 한 대 얻어맞은 디스플레이처럼 일그러진다. 그리고 잠시 후.
[멧]-[돼지]-[다리]-[고기].지직!
고깃덩어리가 일그러지며 사라져 가고 그 자리를 텍스트가 대신한다. 심지어 그 텍스트도 이내 일그러져 사라지고 바닥에는 고기에 섞여 있던 침 몇 방울만이 남았다.
“뭐냐고, 대체…… 진짜 데이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에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로그인해 아르데니아로 넘어간다.
‘뭐.’
누군가는 혼란에 빠질 만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가볍게 떨쳐 냈다.
‘이득이면 그만이지.’
“더 드시겠습니까, 영주님?”
“줘.”
용병 일을 그만두고 영지 유일의 식당 <도살자의 쉼터>를 운영하던 부처(Butcher)가 바짝 익힌 뒷다리 살을 베어 준다.
“……음?”
조금 전과 다르게 입안에 퍼지는 허브 향에 고개를 돌리자 부쳐가 눈을 찡긋거린다. 나름 요리사라고 쟁여 놓은 물건들이 있던 모양이다.
‘그나마 먹을 만하네. 그래 봤자 한계가 있지만.’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찬 일이다. 말 한 마디면 식당이 잔뜩 있는 지구로 갈 수 있으면서 모든 끼니를 아르데니아에서 해결해야 하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돈이 없어.’
내 전 재산은 현재 8만 3천 원. 저렴한 메뉴만 골라도 한 달은커녕 보름도 버티기 힘든 돈이다.
심지어…….
이 돈도 과금하는 데 써야 한다.
‘아! 계획적으로 과금했어야 했는데!’
4000천만 원 정도면 장비, 스킬, 수호령, 펫 등 모든 걸 영웅급으로 맞출 수 있었는데 전설 클래스에 미쳐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전설 클래스라도 뽑았으면 괜찮은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우적우적.
로그아웃해 원룸으로 돌아온 난 고기를 계속 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기다리자. 9월 1일이면 기본 소득도 들어올 테니.’
대한민국은 부유한 동시에 사회복지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 국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일을 하건 매달 120만 원의 기본 소득이 주어지고, 나처럼 군인으로 복무했다면 기본 소득에 추가금이 붙는다. 내가 35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3년 군 생활을 했으니 이것도 매달 100만 원씩 9개월은 나올 것이다.
즉 일을 안 해도 매달 들어오는 돈이 220만 원은 된다는 것.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장소도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룸 타워, 그것조차 심지어 내 소유이기에 낭비하지 않는 이상 전기세와 수도세도 무료.
식비가 문제지만 이 또한 아르데니아에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한동안 무과금으로 버티면서 아르데니아에 집중한다.’
어차피 한동안은 나, 그리고 영지민들이 먹을 식량 때문에라도 사냥터를 옮길 수 없는 상황. 미적미적 쌓이는 경험치와 골드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니 바람막이 고원에서 버티는 게 합리적이리라.
“거기에 스킬도 사야 하지.”
희귀, 영웅, 전설 등급의 스킬들은 꿈도 못 꾸지만 일반, 고급 스킬들은 스킬 상점에서 골드를 주고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클래스마다 스킬이 다르다는 것이다.
클래스 체인지를 하게 되면 다른 계열의 스킬들은 죄다 비활성화된다. 혹시 아르데니아가 현실이 되면서 스킬 제한에도 자유롭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스킬 적용은 시스템의 보정이기 때문인지 전혀 사용할 수 없다.
“듀얼리스트도 나쁘지 않지만…….”
같은 계열의 직업들은 스킬들을 공유한다. 즉, 소드맨(일반) -> 숙련 검사(고급) -> 검귀(희귀) -> 검왕(영웅) -> 검성(전설)처럼 같은 계통은 동일한 스킬을 공유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분기가 일어나면, 그러니까 소드맨(일반) -> 펜서(고급) -> 플래시 팬서(희귀) -> 듀얼리스트(영웅) -> 그랜드 챔피언(전설)을 예로 들면 고급 클래스부터 이미 스킬 공유가 안 된다.
팬서 계열 스킬을 구매하고 다른 직업으로 클래스 체인지를 하면 관련 스킬은 죄다 묶여 버린다는 뜻이다.
혹여 나중에 검성이 나오더라도 기껏 산 스킬들이 묶여 버린다는 것!
“하다못해 검왕이라도 나왔으면 고민할 게 없는데…….”
전설도 아니고 영웅급인 검왕도 안 나오다니 기가 찬다. 물론 영웅급 직업이 워낙 많으니 있을 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클래스를 뽑았는데 이게 안 나오다니.
‘듀얼리스트도 그리 나쁜 직업은 아냐. 리벤지에서는 오히려 검왕보다 높게 평가 될 정도니까.’
그러나 듀얼리스트의 스킬들은 죄다 일대일 콘셉트라 1대 다수, 혹은 다수 대 다수의 전투를 해야 하는 내 입장상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듀얼리스트는 크리 검사야. 스킬을 많이 익히면 익힐수록 손해다.’
스킬들이 죄다 치명타 확률 증가, 소/중/대 공격 속도만큼 치명타 확률 증가, 스킬 사용 후 패링 성공 시 치명타 확률 증가…… 이런 식이라 태반이 쓸모가 없다. 어차피 나는 크리 100% 고정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닌가?
치명타 확률이 높다고 팔다리처럼 치명적이지 않은 장소를 때릴 때도 치명타가 터져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궁수나 탱커를 할 수도 없고…… 법사나 사제는 더더욱 말이 안 되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듀얼리스트의 스킬을 구매했다. 다만 너무 많이 투자할 수는 없어 일반 스킬 하나와 고급 스킬 하나를 샀다.
[플래시(일반)(패시브)]치명타 데미지 10% 증가.
[결투자의 맹세(고급)(액티브)]스테미나와 마나를 소모해 공격 속도 30% 증가, 치명타 데미지 50% 증가.
스킬이 꽤 많았지만 죄다 치명타 확률 증가라서 이것들만 골랐다. 문제는 가격으로, 일반 스킬 북은 6천 500골드였지만 고급 스킬 북은 7만 7천 골드다.
“미친. 10배가 넘게 뛰네…….”
고원 멧돼지를 잡아 드랍되는 골드는 평균적으로 8골드 정도니 일반 스킬 북 하나를 사려면 멧돼지를 대략 800마리, 고급 스킬 북을 사려면 거의 만 마리 가깝게 잡아야 한다.
마을에 종종 들러 정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약 5천 마리의 멧돼지를 잡는 걸 생각했을 때 고급 스킬 하나 사려고 48시간을 내리 사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상점에 팔 수 있는 멧돼지 어금니가 있지만…… 화살값과 포션값을 충당하기도 버겁지.’
[인벤토리 중량이 50%를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50%를 초과하여 생명력과 마나가 자연 치유되지 않습니다!]체다의 배에 열어 놓은 가계부를 끄적이고 있는 사이, 캐릭터 킬리언스의 인벤토리가 또다시 찼다.
물론 가득 찬 것은 아니고 절반만 찼을 뿐이지만 너 한 대 나 한 대의 무식한 전투법을 구사하는 자동 사냥에서 자연 치유 능력이 사라지면 포션 소모량이 수입을 뛰어넘어 버린다.
“가뜩이나 드랍률도 거지같은데 마이너스 전투를 할 수는 없지.”
나는 지금까지처럼 사냥터를 한 바퀴 돌며 버려진 고기들과 무기들을 인벤토리 중량이 240%가 될 때까지 꽉꽉 채워 넣은 후 아르데니아로 들어갔다.
“아빠…… 다리 아파요.”
“그래그래. 내가 업어 줄 테니.”
“너부터 비실거리며 뭘 업어? 헛소리 말고 내 짐에 얹어!”
1000명의 영지민들이 산길을 타고 북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건장한 사내들이었음에도 행군 속도가 기절할 정도로 느리다.
‘짐도 별로 없이 이틀 동안 걸었는데 30킬로미터도 못 가다니…….’
내가 군대에 있을 때 1일 행군 거리는 150킬로미터였다. 그마저도 일반 부대라 얼마 안 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긴 그러니까 폐급 마나 적성을 가진 나도 따라갈 수 있었지만.’
간부 훈련소에서 1일 행군 거리는 300킬로미터가 기본이다. 특수부대는 1000킬로미터도 간다는데 그 쯤 되면 아예 날아가거나 전원이 경공을 사용하는 수준이니 일반적인 행군이라 보기는 어렵겠지.
나는 영지민들의 상태를 둘러보았다.
영지를 잃고 이동하는 상태였기에 분위기는 좋지 않다. 게다가 계속된 행군에 다들 지쳐 있는 상황.
‘좋지 않은데. 이러다 마수들이 습격이라도 하면.’
그리고 그때였다.
“영주님! 영주님!”
뒤쪽, 그러니까 남쪽에서부터 목이 터져라 외치며 한 병사가 달려온다.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 은신처에 대기시켜 놓았던 정찰병이다.
“뭐냐? 왜 이렇게 급하게 와?”
“뒤! 뒤쪽에! 헉헉. 오크 놈들이…… 헉.”
“숨부터 고르고 말해라. 오크 놈들은 발이 느려. 위치만 말해 주면 내가 가서…….”
“노, 놈들이 다 따라잡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쉬면서 체력을 비축한 너를 오크가 어떻게 따라잡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두두두두!
저 멀리에서부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 고개를 드니 산 너머에서 오크 대가리가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벌써 따라잡았다고?’
아르데니아 쪽의 인벤토리에서 시작의 검을 꺼내면서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크 놈들의 발은 절대 빠르지 않고 워낙 요란스러운 놈들이라 마수들의 습격까지 있을 텐데 영지에서 제일 잘 달리는 정찰병을 따라잡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녀석이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컹! 컹컹!”
“오~~ 로로로로!”
“하하하하! 찾았다! 인간 놈들이 저기에 있다!”
언덕 너머에서부터 수십의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녀석을 태우고 있는 늑대들 또한.
“이 미친…… 저 마수 놈들이 왜 오크를 태우고 와?!”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중앙에 늑대들 중에서도 가장 큰 늑대를 타고 있는, 가장 큰 덩치의 오크가 눈에 들어왔다. 늑대의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은 녀석이 백인마수(百人魔獸)라는 것을 뜻하고.
심지어 녀석의 등 뒤에 타고 있는 녀석은 나와 구면이다.
발칸 오크 투사(희귀)
함롬
내가 한 번 죽였던 몬스터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