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94
열일하는 과금 기사 193화
이건 마치, 나를 분노하게 만들려는 수작 같지 않은가?
‘뭔가, 뭔가 큰 음모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죄를]기계적인 정의가.
[너에게 새기리라.]나에게 임했다.
화끈!
내 볼에서 느닷없는 작열통이 느껴졌다. 지금의 내가 인두로 피부를 지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초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실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재연 씨?”
“이게 무슨…….”
당황하는 F·D의 반응에 체다를 허공에 띄워 거울 모드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보았다. 내 볼에 새겨진 문신.
[죄의 낙인]을.“이런 미친…….”
그것은 목을 매달고 죽은 사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그것은 자살한 아버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죄의…… 낙인!”
“근친살해의 대죄……!”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들 말로만 들었지 도시 어디에서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게 바로 죄의 낙인인데 연예인에 초월자인 나에게 죄의 낙인이 찍힌 것이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이제 와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낙인 비슷한 것도 없던, 그것도 20년이 더 지난 일이 [죄]가 된다니.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정의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
‘정의신에게 문제가 생겼나? 다른 차원의 신이 쳐들어오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삼신. 그러니까 정의신, 진실신, 명예신은 중급 신위를 가진 존재지만 그들이 실제로 휘두르는 권능은 상급 신에 필적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의 방향성을 제한한 일종의 ‘시스템’이 됨으로써 스스로의 권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만!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재연 씨를 체포라도 하려고?”
사랑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내 쪽을 향해 다가오던 경비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사장님. [죄인]은 최소 구금되기라도 해야 합니다. 난폭한 취급을 하지는 않을 테니…….”
그러나 사랑을 설득하려 드는 경비원들의 손에는 이미 권총, 장검, 거울이 들려 있다.
그것은 어지간한 특급 마법기보다도 강한 정의신관들의 아이덴티티.
‘정의무구(正義武具). 저스티스 웨폰(Justice Weapon).’
사랑이 그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허튼짓하지 마. 설마 정의무구를 들었다고 너희가 재연 씨를 체포할 수 있기라도 하단 말이야?”
“지금 그 발언…… 너무나 위험한 말씀이십니다. 사장님, 체포에 불응하시면 죄가 오히려 더 커질 거예요.”
“이야…… 이거 가만 가만히 있으니까 우리가 존나 가마니로 보이는 모양이네? 34지구가 초월자 우습게 보는 건 알았지만 별꼴을 다 봐.”
“진짜 궁금하긴 하네. 우리 다섯 명이 작정하고 난동을 피워도…… 진짜 체포되나? 게임 마스터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F·D가 으르렁거리며 정의신관들의 앞을 막아선다. 고집불통이기로 유명한 정의신관이라도 그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들은 검찰청의 검사가 아닌 연구소의 경비원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대로 싸움이 일어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랑이 앞으로 나서 그들을 말린다.
“진정하세요. 그리고 너희. 기회가 나타났다고 섣불리 움직이지 마.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라는 걸 몰라?”
“하지만…….”
“정의를 거스르겠다는 게 아니라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자는 거야! 게다가 이 낙인을 봐! 말이 좋아 대죄지 크기가 별로 크지도 않아! 초월자를 적대할 정도의 성장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
그녀가 경비원들을 설득하고 있을 때였다.
고오오-!
연구소 밖에서 마나가 일렁인다. 긴급 텔레포트였다.
‘아, 설마 진짜 검찰청이 움직였나?’
급변하는 상황에 인상을 찡그릴 때 사내 식당의 문이 열리고 거대한 덩치의 사내…… 아니, 거대한 덩치의 북극곰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현일 청장이다!”
“낙인 때문에 온 건가?”
“아니, 낙인 문제면 검찰청장이 와야지 왜 용병청장이…….”
당혹스러워하는 연구원들을 보며 천현일 청장이 말한다.
“용병 관리법 5조 3항에 의거 우주 용병 한재연을 긴급 관리에 들어갑니다. 관련 내용은 용병 관리청 홈페이지에 게시될 테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천현일 청장이 내게 다가온다.
“넌 또 뭐야?”
루비가 인상을 쓰며 그 앞을 가로막는다.
중학생에 불과한 신장의 루비와 건장한 덩치의 백곰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덩치 차이가 있었지만, 기세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F·D 님이군요. 노래를 잘 듣고 있습니다.”
“나도 예능이랑 다큐 둘 다 챙겨 보는 편이야.”
작은 소녀와 거대한 북극곰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짝!
손과 앞발이 마주치고 루비가 길을 비킨다.
현일이 말했다.
“가지.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것 없다.”
“……그러죠.”
천현일 청장이 오색으로 빛나는 용병 등록증을 꺼낸다.
나 역시 검은색 용병 등록증을 꺼내고.
파앗!
공간을 넘는다. 어느새 나는 용병 등록을 할 때 방문했던 현일의 사무실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가 그 소문의 용병 관리청이군요.”
“진짜 주변에 산뿐이네…….”
“와! 저거 우주 괴수 사체 아냐?”
다만, 이동한 것은 나와 현일만이 아니다.
내 주위에는 F·D 멤버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녀들은 우리의 공간 이동에 편승해 날아온 것이다.
“알려진 것보다 마법 능력이 더 뛰어나시군요.”
“틀림없는 사실이니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후후’하고 웃는 사파이어.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플라워가 진지한 태도로 묻는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은 뭐죠? 위명이 쟁쟁한 정의신의 시스템이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을 내렸는데.”
플라워가 내 얼굴을 본다. 정확히는 거기에 박혀 있는 낙인을 본 것일 터다.
“후…… 다행히 짐작 가는 이유는 있소.”
현일이 허공에 손짓하자 그 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그것은 거대한 함선으로 그것이 땅에 내려서자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초대형 이민 선단. 에덴3이다. 몬스터 사태로 멸망하거나 탈출한 문명의 이민자들을 옮기고 있지.”
34지구는 여전한 평화를 유지 중이지만……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 수많은 문명과 세력들이 몬스터 사태로 고통 받고 있다.
그리고 개중 상당수는, 멸망의 위기로 마주하기도 한다.
“용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을 구하고 있어. 그리고 개중 상당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 새로운 이민자가 대거 추가된 거야.”
현일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잠깐만요. 설마 추가된 이민자의 수가…….”
“현재까지 23억 명이다.”
“와. 그래 봐야 행성 하나인데 엄청난 규모네.”
“34지구 여력이 대단하긴 하군요.”
감탄하는 F·D 멤버들과 달리 나는 문제가 뭔지 깨달았다.
“물을…… 탔군요.”
“그래.”
정의신의 판결은 어딘가에 몰래 만들어 둔 거대한 법전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만일 그런 식이었다면 34지구가 지금처럼 평화로이 유지되지 못 했겠지.
정의신의 기준은 아주 간결하다.
[남]이 보는 시선.34지구에 편입된 모든 지성체는 영계, 혹은 성역이라 할 만한 영적 공간에서 스스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기독교인지, 이슬람교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무지의 장막]이 씌워진 채로 서로의 죄를 판결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과반수를 넘어서는 이들이 죄악이라고 판결해야 마침내 죄악이 [낙인]으로 찍히는 것.
정의신의 심판이라 흔히 부르지만…….
사실 판결을 내리는 것도, 받는 것도 인간이다.
[남]의 죄악이기 때문에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판단을 내리고. [내]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너무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방식은 거의 완벽해서 34지구는 우주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치안 수준과 드높은 신뢰 지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세상에 정말로 완벽한 시스템은 없는 법이어서 이 [무지의 판결]이라 불리는 시스템에도 약점이 존재한다.
결국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약점이.
‘새로 투입된 이주민 놈들이…… 판결을 가혹하게 틀어 버리고 있다.’
누군가 술을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다 가로등을 들이박는다.
이 경우 그는 수십, 어쩌면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이는 법적인 처벌.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음주 운전은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 그는 예비 살인마이니 살인 미수로 처벌하여야 한다!’
이는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 누군가는 음주 운전자가 직업도 잃고 아예 인생이 파멸하기를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지.’
물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잣대 또한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던 사람이 본인이 음주 운전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딱 한 번 실수로 그런 것이다!’
‘피해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이는 그 사람이 특별히 사악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
남에게는 지독히 깐깐한 이들도 자신에게만은 한없이 너그러운 법이고, 반대로 자기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면 엄벌주의는 끝도 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누군가 주차를 함부로 한다는 이유로 그가 죽길 바라는 게 바로 사람인 것이다.
“……그럼 낙인이 생긴 게 저 한 명은 아니겠군요.”
“그래. 정의신을 오염시킨……. ‘엄벌주의’가 죄가 아니던 일을 죄로 만들고 있다.”
새로 34지구에 들어온 이민자들이 아버지를 때려눕혀 자살하게 만든 내 행동을 죄라고 판단했듯이, 과반수에 살짝 못 미치던 다른 사람들의 죄 역시 낙인으로 새겨진 상황.
흑요가 현일을 보며 혀를 찼다.
“뭐야. 그럼 지금 이 사태에 용병청도 큰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무턱대고 이민자들을 구해 오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나?”
“변명하자면 단지 이민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수억에 불과하던 34지구의 인구가 110억이 되기까지…… 대규모 이민자는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요.”
즉,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나를 노린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우연한 타이밍이라기에는 너무나 공교롭다.
“누군가의 악의가 끼어들었다?”
“그래.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준비된…… 잠시만.”
현일이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드는 가오리의 배를 툭툭 친다.
“……역시. 요번에 넘어온 이주민들에게 재연의 다큐멘터리를 틀어 준 정황이 포착되었어. 이민자 의원회의 짓이군.”
“이민자 의원회라면……?”
플라워의 말에 현일이 대답한다.
“기존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이민자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일자리를 그들에게 할애했다고는 들었지만 어째서 이런 테러나 다름없는 짓을…….”
어이없어하던 현일의 표정이 굳는다.
“왜 그러십니까?”
내 물음에 현일이 아무 말 없이 벽을 가리킨다. 그의 손짓과 함께 한쪽 벽이 통째로 디스플레이가 되어 뉴스 채널을 띄운다.
[충격적인 대학살!] [피해자 3만 2천여 명!] [정의로운 살육!?]“무슨 소리야? 학살이라니?”
“적이라도 쳐들어왔나요?”
F·D멤버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의아해했지만 34지구 사람인 나는 현일과 마찬가지로 대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야단났군.”
내게 죄악의 낙인이 새겨졌을 때.
고작 경비원에 불과한 정의신의 사제들조차 내게 적의를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초월자인 나를 상대로도 그랬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했겠는가?
‘정의신의 사제는…… 정의를 수행함으로써 사제로서의 등급을 높일 수 있지. 심지어 정말 빠른 방법은 따로 있다.’
바로.
‘[악인]을 죽이는 것.’
* * *
시간이 지났다.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렀음에도 34지구의 혼란은 그치질 않았다. 사바에서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고 셀 수 없이 많은 시위와 고소 고발이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 기습적으로 모인 무지막지한 인파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그들이 든 팻말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정의는 누가 심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