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90
열일하는 과금 기사 289화
뇌가 정지한다.
‘이게 뭔 미친 소리지?’
나는 어이가 없어 항의했다.
“은하철도가 우주적인 교통수단인 건 인정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마왕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마왕(魔王).
흔히 육마왕(六魔王)이라 불리는 그들은 대차원을 구성하는 육계(물질계, 신계, 천계, 마계, 영계, 명계) 중 하나인 마계의 지배자다. 물질계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다고 해도 하나의 계(界)를 지배하는 그들의 힘과 권능은 신에 비견될 정도.
문제는 그들의 성향이다.
“그렇긴 하지. 마족은 모두의 공적(公敵)이니까.”
마계는 대우주의 부정 에너지가 모이는 공간이고 그런 마계에서 태어난 마족들은 수없이 많은 종족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태생이 태생인 만큼 마이너스 감정이 비대화되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 절망, 슬픔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쾌락.
물질계에 나타나면 그저 죽이고 고문할 생각으로 가득한 존재와 친하게 지낼 세력 따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태워 줬어요?”
“드래고니안의 요청이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는 마왕이긴 해도 마족은 아니니까.”
그 말에 나는 대번에 마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유명한 존재다.
“……검마왕.”
“그래.”
까마득한 과거에 존재했다는 올림포스 신족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다는 주신급 신, 크로노스(Cronus).
그러나 올림포스 신족은 멸망하고.
오직 크로노스만이 창조신께 애걸하여 살아남았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죄악(罪惡)을 따로 떼어 내버린 후 시간의 신으로서 살아남게 되었는데, 이때 버려져 마계까지 흘러간 크로노스의 일부가 무(武)의 힘을 얻어 마계의 밑바닥부터 마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하여 검마왕(劍魔王).
신 출신의 마왕의 탄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왕이 왜 은하철도에 타는데요?”
“대중교통을 타는 이유가 뭐겠어 이동이지. 듣기로는 드래고니아와 연합한다고 하던데.”
“마왕이…… 연합?”
기막힌 단어에 웃는다.
“마계도 어지간히 개판인가 보네요.”
“개판일 수밖에 없지. 단합이 안 되는 것들이니…… 그 천계조차 폐쇄했던 차원문을 열고 절대 받아들이지 않던 과학 병기들을 수입하는 상황이니까.”
34지구가 평화로워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 몬스터 사태가 일으킨 변화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마치 수백 년 전 벌어졌던 대전쟁(大戰爭) 때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과 규칙이 재편성될 지경.
적당히 상황을 이해한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열차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러면 드래고니아 책임이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검마왕은 루시퍼와 더불어 어느 정도 경우를 아는 마왕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둘 다 마족이 아니네요.”
루시퍼는 흔히 말하는 타천사(墮天使)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 녀석도 태생 마족은 아니다.
“뭐, 어쨌든 알고는 가라는 말이야. 괜히 충돌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조심하죠.”
안내 방송과 함께 빛나는 마법진 위로 보람과 함께 올라선다.
[우로보로스. 우로보로스 가는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워프를 시작합니다. 3. 2. 1…….]팟!
단숨에 배경이 변하고 우리는 열차 안으로 이동했다.
현일이 탑승 전 굳이 주의를 준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오…….”
“와 미친…….”
크로노스와 마주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칸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건 녀석이 기세를 뿌려 댄다거나 마나를 풍긴다거나 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 존재 자체.
세계에 새겨질 정도의 존재감이 초월의 감각을 짓누르고 있다.
“일단…… 앉자.”
“그러죠.”
나와 보람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걱정과 달리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마왕이 탔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그도 목적은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니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더 이상하다.
물론 진짜로 평범한 여행은 아니었다.
“검주님. 4번 칸에 마왕이 있데요. 구경 가실래요?”
두꺼운 검을 품에 안고 있는 꼬마의 말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식겁한다.
“미친놈아…… 여기서도 다리가 떨리는데 직접 보라고?”
“지근거리에서 목숨의 위험 없이 마왕을 볼 일이 죽을 때까지 있을까요? 거기다 검마왕 크로노스는 검황보다도 고강한 검의 고수라는데.”
“……그, 그럼 5번 칸으로 이동하는 척하며 볼까?”
은하철도는 철도치고는 넉넉한 규모를 가지고 있고 원한다면 격벽을 세워 좌석을 외부와 차단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격벽을 세우는 승객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신기하니까.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거든.”
보람의 말대로 은하철도에 탑승하는 이들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다.
초월자, 혹은 거기에 준하는 존재. 그게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세력과 힘을 가진 존재들.
그들은 은하철도를 오가며 다른 승객들의 모습을 훔쳐보거나 나아가 사교를 나누기도 했다.
적어도 수천, 심하면 수십억 광년이라는 물리적 거리로 다시는 못 볼 존재들이지만, 한 행성에 하나, 한 문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이들에게 동등한 격(格)을 지닌 다수의 존재와 마주하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귀중하기 때문이다.
“와. 아무리 그래도 마왕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분이 제우스의 아버지라면서요?”
“우리 행성에는 제우스신을 모시는 교단도 있는데…… 굳이 말하면 그 조각이라지만.”
좌석 사이의 복도로 두 마리의 사슴이 사뿐사뿐 걸어가며 대화를 나눈다.
나도 신기해서 그들을 보았다.
‘사슴은 또 뭐야…… 영물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
“앗!”
“으핫……!?”
복도를 거닐던 사슴도, 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들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사슴들이 당황했다.
“우, 우리 쫓아오는 거 아니지?”
“내, 내가 인사해서 그런가? 맘에 안 들었나?”
하나같이 쟁쟁한 존재임에도 겁에 질린 토끼 같다. 검마왕의 존재감은 그만한 수준이다.
‘완전체 오룡이라면…… 아니, 어려워. 녀석의 몸이 정상이라도 역부족이다.’
“뭐야. 이쪽으로 오는데? 아닌가? 지나가는 건가?”
보람 역시 다가오는 기세에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황제 클래스도 무섭지 않다더니 마왕은 이야기가 다른 모양이다.
‘마왕도 황제 클래스이긴 한데 말이야.’
그러나 똑같은 황제 클래스라 해도 마왕은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 황제 클래스의 영역에 들어선 데다가 마왕의 자리에 오를 때 마신으로부터 권능(權能)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전투력 면에서는 상급신에 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족은 죽여도 합법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감히 누가 마왕 앞에서 그딴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윙!
문이 열리고 우리 칸으로 한 사내가 들어선다.
“…….”
“헙…….”
객실이 단번에 침묵에 잠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내였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통나무보다 두꺼운 옆통을 가진 천하장사 체형이지만 외형 자체는 그리 특이하지 않다.
‘마치 인간처럼 보이는군.’
그렇다. 그렇게 보인다. 나처럼 눈에서 은은한 빛이 아는 것도 아니고 어둠이 깃든 머리칼이 일렁이지도 않는 모습.
그러나 그럼에도.
‘와.’
그를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
웅장하게 세워진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검으로 벼려 내면 행성을 일격에 가르고, 모아내 굳히면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의념(意念).
우주천마 역시 같은 경지라고는 하나, 지금 느껴지는 힘은 그야말로 격이 다르다.
이것이 홀로 대우주에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
“……놀랍군.”
그리고 그렇게 내가 그를 볼 때.
크로노스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훌륭한 육체는 처음이야. 레온하르트 제국에서 생체력이라는 걸 만들었을 때 신기해하긴 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라니.”
그의 칭찬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훌륭합니다.”
“……뭐? 하하하!”
크로노스가 호탕하게 웃는다. 무시무시한 마왕의 이미지와 달리 제법 털털한 모습이다.
“마누라 등쌀에 나왔다가 재미있는 걸 보는군. 다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기묘해. 심검은 왜 안 벼린 거지? 의지는 왜 받침대로만 쓰고?”
알 수 없다는 목소리에는 현기(玄機)가 실려 있다. 최상급 신의 일부였으나 마계로 추락, 오직 검 하나로 마계의 정점에 도달한 존재의 말.
나는 솔직히 답했다.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방벽이 이 정도인데…… 너무 나태했던 것 아닌가? 아니면 실력으로 얻어 낸 힘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제가 아직…….”
“우리 재연이는 서른 살도 안 됐습니다. 천천히 익혀 갈 거예요.”
툭 끼어드는 보람의 말에 크로노스가 그녀를 가리킨다.
“아? 마법소녀로군. 장인께 말은 들었다. 그 변태적…… 잠깐. 뭐라고?”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가다 멈칫한다.
“……서른?”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내심 한탄했다.
‘서른 아닌데…….’
내가 아르데니아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어느새 내 나이도 60대.
예전이면 환갑잔치도 했을 나이인데 그 사실을 못 밝히다 보니 연인들도 그렇고 다들 나를 애 취급한다.
심지어 마왕조차 그렇다.
“아무리 인간이 빨리 피고 진다고 하지만 그건 좀…….”
기막히다는 표정에 변명한다.
“실력이나 재능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게임신의 사도이니 권능 문제지요.”
“확실히 정상적인 성장은 아닌 모양이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무슨. 허…….”
크로노스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대우주가 넓긴 넓군. 인중신 같은 녀석이 어디서 나타난 했는데 이런 식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크로노스가 씩 웃고 말했다.
“시간이 없었다니, 그 상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 조언해 주자면.”
거기까지 말하고 크로노스가 말을 멈춘다.
‘아니 왜 말을 하다 말아?’
조심스럽게 묻는다.
“해 주자면?”
내 물음에 크로노스가 시선을 돌려 내 왼팔에 차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초월병기, [운명 선택]이다.
“……어리다고 해도 최상급 신인가. 무학에 대해 잘 모를 텐데도 이미 방도를 마련해 두었군.”
“……?”
“쓸데없는 간섭이었어.”
그렇게까지 말하고 휑하고 가 버린다. 나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아니, 간섭 더 하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크로노스는 가 버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잡는다고 다시 답변해 줄 분위기가 아니다.
“포기해. 마왕이잖아.”
“제법 친절하던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에 차고 있는 운명 선택을 다시 본다.
‘이미 방도를 마련해 두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