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38
열일하는 과금 기사 337화
“그로테스크가 뜯긴 힘이군.”
인펙터(Infecter).
98지구를 멸망시켰던…… 감염자(感染者). 혹은 감염체(感染體)라 불리는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후우…… 후우…….”
나는 거칠게 호흡을 내뱉고 있는 인펙터의 모습을 살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떠들어 대던 내용과 달리 그녀는 내장을 질질 흘리거나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다.
그저 온몸의 지방이 바짝 메말라 뼈와 근육이 도드라져 있을 뿐.
‘뭐 이것도 흉물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감염체군. 언데드에 반쯤 걸친 하품이 아냐.’
그로테스크 킹이 X-벨트, 그러니까 흑풍(黑風)이라 불리는 대전입자로 대충 휩쓰는 대신 제대로 감염시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토큰을 지불했습니다!] [망자. 알리사가 아군으로 합류했습니다!]5층까지 클리어하며 획득한 토큰 대부분을 지불하자 반쯤 투명하던 감염체가 실체화되어 내 옆에 선다.
알리사는 여성임에도 180이 넘는 신장에 어지간한 남성 이상으로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다. 흠집이 많은 강철 갑주는 그녀가 경험 많은 전사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현대는 아니고 하위 문명 출신인가.”
결국은 몬스터에 당한 망자일 뿐이지만 이렇게 장비를 갖춘 기사가 아군으로 들어온다는 건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당연한 일이다. 적을 만났을 때 나 혼자 상대하는 것과 충실히 무장을 갖춘 전사가 앞에 서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안정감이 들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다만 이 [망자 시스템]이 단순히 미궁에 들어선 사람들을 돕기 위한 시스템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업 강탈 방지용이군…… 물론 방지 가능한 건 한 번뿐, 이 시체가 다시 죽으면 꽝인 것 같아.”
몬스터가 물질계의 지성체를 죽이면 대상의 영혼은 물론이고 업과 격을 강탈해 간다. 그리고 그렇게 강탈당한 것들을 모아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러나 그로테스크의 권능. 감염(感染)은 적어도 한 번은 그것을 막아 낸다. [그녀]의 권능을 막아 낸다기보다 몬스터에게 강탈당해야 하는 영혼을 감염시켜 유예를 얻어 내는 방식이다.
죽어 명계에 가야 할 육신의 업과 격을 감염시켜 마음대로 쓰던 그로테스크의 악명이 자자한 권능이 긍정적으로 활용된 아이러니한 현장!
심지어 초월적인 감각으로 살펴 본 망자에게서는 그 어떤 낙인이나 연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로테스크가 이 망자에 어떤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와, 우주적인 양아치가 용케 이런 조건을 받아들였군.”
나는 다리안의 말을 떠올렸다.
“해야지. 제멋대로 사는 녀석이라도 분위기 파악이라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걸 못하면 죽거나 도태된다. 그게 바로 사회생활이지.”
다리안과 그로테스크의 킹을 굳이 비교하자면 킹이 훨씬 더 강하다.
당연한 일이다. 다리안은 최상급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상급 신이고 킹은 그냥 최상급 신이 아니던가? 정면으로 만나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냥 짓밟힐 뿐이겠지.
그러나 다리안은 나조차 좋다고, 인간 친화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신이다.
‘문제는 그거겠지.’
신들 중에서도 극히 드문 좋은 신.
당연히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해도 친구 하나 없는 독불장군이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나저나.”
나는 고개를 돌려 알리사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한재연] [레벨 3전사 알리사]“대놓고 게임이네.”
그러고 보면 올라오며 만났던 몬스터들도 [레벨 2 고블린]이라던가 [레벨 10 죽음의 기사] 등 레벨과 정체가 쓰여 있었다.
적의 수준을 파악하라고 준 정보일 것이다. 깜냥이 안 되면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질계의 지성체는 뒤로 세 발짝 걷는 것만으로 [후퇴]가 가능하니 못 이길 적이면 일찌감치 도망가야 한다.
‘물론 미궁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이동하거나 적을 처치하기 전까지는 후퇴가 불가능하니 절대적으로 안전한 건 아닌 모양이지만.’
나는 다시 미궁을 걷기 시작했다.
1층부터 5층까지가 석재 복도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방식의 미로였지만 6층부터는 환경이 완전히 달랐다.
‘정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과 거대한 나무들이 시선이 닿는 곳곳에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위를 올려다 보니 거대한 높이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다시피 빼곡하게 자리하고 이따금 보이는 하늘에는 새를 비롯해 날개가 달린 것들이 지나갔다.
변한 것은 층의 콘셉트뿐 아니라 공기도 포함이어서 건조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습기와 열기로 가득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턱하고 숨이 막힐 정도.
다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이 무성한 정글에 벌레 하나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가.”
내 명령에 알리사가 앞으로 나아간다.
“정지.”
멈춘다.
“앉아. 일어나.”
앉았다 일어난다.
“거기 그 열매 따 와.”
“……?”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능이 높지는 않군.”
하기야 신경 써 감염시켰다 해도 고작 1~2기에 불과한 인펙터다. 생전의 그녀가 전사라는 걸 생각해 보면 살아생전의 전투력조차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지끈!
와드득!
길을 막는 나무를 적당히 밀어 버리며 전진한다.
정글처럼 보이는 이곳 역시 미궁.
무질서하게 있는 서 있는 나무들은 그 안을 거니는 사람들의 방향 감각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키에엑!”
그때 건너편에서 커다란 덩치의 도마뱀 인간과 마주한다.
녀석의 머리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레벨 6 리자드맨 투사.]“키엑키에엑!”
녀석은 나무 막대기 끝에 흑요석을 묶어 만든 어설픈 창을 들고 있었지만 기세 하나는 제법이다.
실제로 녀석이 들고 있는 창에서 오러가 흐르고 있다.
퍼억! 쾅! 콰직!
“끅!”
알리사는 두 합 정도 버텼지만 결국 어깨를 창에 꿰뚫리고는 쓰러진다.
“흠. 그래 뭐 이 정도겠지.”
“키익!”
기세를 올린 리자드맨이 알리사를 내버려 두고 내게 달려온다. 나는 잠시 녀석을 지켜보다 대충 사커킥을 날렸다.
쩍!
리자드맨의 하체가 그대로 삭제되어 버리고 상체가 바닥을 뒹군다.
“그만.”
다시 일어나 마무리를 하려는 알리사를 제지한 뒤 리자드맨의 목을 잡아든다.
쇼크가 온 듯 움찔거리는 리자드맨을 들고 걷다 보니 오크 전사와 흡혈박쥐가 나타나 그것들도 잡았다.
죽이지는 않는다. 실험해 볼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한 10분쯤 걷자 수풀 속에 은신하고 있던 사내 하나가 소총을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군인. 다만 34지구 출신은 아니군.’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개구리 군복에 금속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브리건딘(brigandine)을 겹쳐 입고 있다.
이 언밸런스한 패션은 그가 이 몽환의 미궁 내에서 몬스터들을 죽여서, 혹은 망자를 발견해 파밍한 장비를 착용했다는 뜻.
녀석의 머리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인간. 이기훈]“심플하네. 역시 사람은 레벨 표시가 안 되는 건가.”
“어…… 어? 이게 뭐야. 중급…… 초월자 한재연?”
“아. 그렇게 쓰여 있습니까?”
막상 내 정보는 안 보여 몰랐는데 칭호 비슷한 걸 달아 주는 모양.
사내, 이기훈이 슬그머니 총구를 내린다. 총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와 내 뒤에 둥둥 떠 있는 몬스터, 그리고 심상치 않은 칭호에 기가 죽은 듯했다.
“……저기, 중급 초월자가 뭡니까?”
초월자가 뭔지도 모르는 걸 보니, 34지구가 아닌 다른 하위 문명 지구 출신인 모양이다.
“하급 초월자 다음 초월자라는 뜻이죠. 군인이죠? 한국군?”
“아, 그, 환 제국군입니다.”
“아니 그건 또 뭐하는 지구야.”
황당해하며 근력으로 들고 있던 몬스터 다수를 바닥에 내던진다.
“키에엑.”
“크룩…….”
빈사상태의 몬스터들이 피와 신음을 흘린다.
“헛. 이 괴물들은.”
“질문 몇 개답하면 이것들을 드리죠.”
“드린다는 건.”
“죽이시라는 겁니다. 경험치가 오르겠죠?”
“앗, 네. 네!”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하는 그에게 묻는다.
“어쩌다 여기에 왔습니까?”
“자대에서 자다가 깨니 여기더군요. 2층에서 한번 나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딱 봐도 미심쩍은 곳인데 왜 다시 왔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한테는 무기도 있고요.”
그렇게 말하며 소총을 든다. 그러고 보니 그의 뒤로 보이는 군장에 탄약이 가득해 보인다.
‘현실의 무기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군.’
하기야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무슨 수로 몬스터와 싸우겠는가?
나만 해도 지금 당장 신급 기가스 히페리온을 꺼내는 게 가능할 정도다.
“혹시 상태창 같은 것도 손에 넣었습니까?”
“[수련자]에 등록되었고 [삼라만상]이라는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좀 다르지만 말씀하시는 상태창하고 비슷한 느낌입니다.”
“직업도 있습니까?”
“사수(射手)입니다. 특성은 [은신처 설치]와 [속성 부여]를 얻어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숨김없는 답을 들으며 생각한다.
‘역시 게임이네.’
요새 이런 게 우주적으로 많아졌다고 듣긴 했다. 심지어 꼰대 신선이 가득한 선계조차 [투신전]이라는 게임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었습니다.”
“아, 저기…… 당신도 여기에 자다가 끌려 온 건가요?”
“꼭 자야 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공간 이동으로 올 수도 있죠.”
“공간 이동. 분명 1층에서 그런 안내를 듣긴 했었지만…….”
기막혀하는 그에게 시체들을 던져 준다.
기훈은 사양하는 일 없이 총 대신 대검을 들어 그것들의 목을 따 버렸다.
팟!
시체들을 다 죽이자 기훈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사라져 버린다.
7층으로 갔다는 뜻이리라.
“끝까지 잘 살아남으려나.”
총화기를 든 채로 그걸 강화하는 능력을 갖췄으니 당장의 효율은 좋겠지만 미래가 없다.
그가 자신의 직업과 능력을 제대로 쓰려면 역설적으로 사격술이 아닌 마법을 파고들어야 하리라.
‘저 방향성으로는 마탄술사(魔彈術士)밖에는 답이 없으니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적당히 사지를 불구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10분, 총 50킬로미터 정도 이동했을까?
[층을 충분히 탐험했습니다.] [7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역시 이렇군.”
굳이 꼭 몬스터&인간을 해치워야만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냥 인간이 하나도 못 들어오는 층을 만들어 모든 몬스터를 가둬 버렸겠지.
애초에 이 [미궁]이라는 것 자체가 출구를 만들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시스템.
상대를 죽이는 것과의 차이가 있다면 강제로 위로 올리느냐 아니면 선택지를 주느냐 정도다.
“흠. 에레보스.”
“^ㅡ^!”
내 부름에 내면세계에 있던 여의보검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한재연] [레벨 32 이기어검]“아니, 여기에도 이름을 박네.”
헛웃음 지으며 내 감각 안에 들어오는 수많은 몬스터, 그리고 사람들의 기척을 확인한다.
미궁은 엄청나게 넓어 자연경의 경지에 도달한 나조차 감히 그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와. 대충 감지되는 게 수백억이 넘는데 그게 끝도 아니네…… 어쩌면 조(兆) 단위, 아니 경(京) 단위로 있을지도 모르겠군.”
온 우주에 추가 설정을 적용한 셈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
나는 에레보스에게 말했다.
“돌아다니면서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 괜찮지?”
“(@^0^).”
“……그래. 맘에 든다니 다행이다.”
잠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여의보검이 빛살처럼 정글을 관통해 날아간다.
그리고.
“살려……! 어? 괴물이 죽었어?”
“저게 뭐야? 검? 에? 이기어검이라고?”
“이게 뭔 소리야…… 32레벨? 저 괴물이 7레벨인데…….”
정글이 뒤집어지기 시작한다. 그 어떤 몬스터도 에레보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다.
초월급 몬스터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니 이 플라잉 소드는 그야말로 자연 재해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다.
[7층으로 이동합니다!]위층으로 올라간다. 그나마 다행히 토큰은 제대로 들어온다.
[8층으로 이동합니다!] [9층으로 이동합니다!] [10층으로 이동합니다!]삽시간에 층들을 돌파해 11층에 도달하자 또다시 콘셉트가 바뀐다.
“컨셉은 5개 층마다 공유하는 모양이네.”
11층의 콘셉트는 고층 빌딩이 가득한 대도시.
익숙한 건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건물도 있다. 온 우주에 있는 빌딩을 모두 모아 놓은 듯 가지각색의 건축 양식.
문어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
건물 꼭대기에 눈이 달린 것처럼 보이는 마천루.
식물 줄기가 뒤엉켜 만든 건물.
쾅!
그때 그 빌딩 중 하나가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음?”
두두두두! 콰과광!
퍼버벙!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발견한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고층 빌딩 위에 서 있는 금발의 미소녀.
아는 얼굴이다.
“엘리스.”
그녀는 리전의 네임드, 기계신 아담의 딸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얼굴마담.
즉.
“가자.”
고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