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6
열일하는 과금 기사 35화
전투는 금세 마무리되었다. 고블린들 입장에서도 광역 마법을 날리기 위해 내던지다시피 했던 병력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피해는?”
“방패병이 열, 검방병이 열다섯, 창병이 스물하나입니다. 부상자는 그 두 배 정도 되지만 힐러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많군…….”
“죄송합니다.”
“아니.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니 누굴 탓할 수는 없지.”
최근 전투들에서 정예병들이 단 한 명의 피해 없이 자신들의 두 배 이상의 적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충실한 방어구와 빽빽할 정도의 밀집 대형 덕분이었다.
고블린들이 아무리 악을 쓰고 덤벼도 뚫지도, 파고 들지도 못하니 훨씬 많은 수의 적이라도 상대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렇게 밀집된 병력 안에서 광역 마법이 터진다면?
평소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1클래스만 되어도 어엿한 마법사. 2클래스면 숙련 마법사. 3클래스면 고위 마법사인 아르데니아에서는 전투 중 광역 마법이 터지는 상황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지구인인 내 입장은 달라야 했다.
아무래도 차크라 수련에 너무 신났던 모양이다.
“소드맨. 사망자의 가족 관계를 파악해 보상하고 결원이 생긴 파티를 조사 해 와라. 피해가 두 명 이하인 파티가 있다면 내가 대기자를 정예병으로 만들어 투입할 테니 그 이상인 파티는 서로 간에 의견을 조율해서 합치든지 새로운 정예병을 받든지 해.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내일까지 용맥을 확보한다.”
“네, 영주님.”
“스틸스톤, 헌드레드, 스마일, 플라워 이렇게 넷은 개인 정비하고 충분히 쉬어 둬. 내일 던전에 들어간다.”
“네!”
간부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만만치 않군.’
오늘 고블린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단 한 방에 50에 가까운 피해라니.
만일 녀석을 놓쳐 오늘 같은 습격을 더 받았다면 수백 명도 넘는 정예병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로그아웃.”
마차에 들어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지구로 돌아간다. 접속기로 들어가 소향에게 새로운 차크라에 대해 배우기 위함이었다.
‘신체의 앎을 더 깊게 해 봐야 하등 쓸모가 없어. 어차피 나는 1층 고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룰 수 있는 요소의 수를 늘려 상황 대응 능력을 키우는 편이 이득이리라.
[이얍! 토끼토끼 등장!] [부베 평원에 십렙토끼가 나타났습니다!]“어?”
느닷없는 소리에 모니터를 돌아보자 열심히 사냥하고 있던 내 캐릭터 근처에 반짝이는 이펙트와 함께 토끼 귀 달린 소녀가 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십렙 토끼(고급)
“이벤트 몬스터다!”
나는 황급히 자동 사냥하고 있던 캐릭터를 조종해 십렙 토끼를 공격했다.
“좋아. 잡을 만하다!”
이벤트 몬스터에 고급 등급이라 그런지 그다지 강하지는 않다.
고급 등급 치고 생명력이 조금 많다는 게 문제였지만 MP 포션을 팍팍 빨며 버프 스킬들을 돌리자 순조로이 HP가 깎여 나간다.
팟! 팟!
그때 화면 여기저기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텔레포트 주문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그들은 한 줄의 채팅도 없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것들이 스틸하려고!”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십렙 토끼의 HP는 이미 절반 가깝게 줄어든 상태.
선타도 내가 쳤는데 전투 기여도도 이 정도라면 새로 온 녀석들이 한 방에 십렙 토끼를 죽여도 드랍 아이템의 소유권은 내게 들어오게 되어 있다.
“늦었어!”
그렇게 외치는 순간 달려온 엘프 캐릭터가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일격에 죽는다.
내 캐릭터가.
[당신은 죽었습니다. 부활하시겠습니까?] [네] OR [아니오]“……!?”
잠시 현실을 받아 들지 못하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퍽!
이어지는 화살에 십렙 토끼가 죽는다.
그리고 아이템이 떨어졌다.
탱크 바디 (희귀)
“……!”
나는 황급히 채팅을 쳤다.
킬리언스투 :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왜 절 죽이세요?
핫 바디 : 죄송.
“뭐? 죄송? 죄에에송?”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엘프 캐릭터가 땅에 떨어진 스킬 북 위에 선다.
그러나 먹지 못한다.
“아! 그래 저 아이템은 내 소유야!”
나는 황급히 마을 부활을 한 다음 탈 것을 소환해 사냥터로 달려갔다.
십렙 토끼 사냥에 가장 높은 기여도를 가진 것은 나다.
“얼른 다시 가서 주우면……!”
퍽!
[당신은 죽었습니다. 부활하시겠습니까?] [네] OR [아니오]“…….”
나는 달려온 내 캐릭을 죽이고 스킬 북 위에 서 있는 엘프 캐릭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1분이 지나면 아무나 주울 수 있게 되지.”
사람들이 줍지 않던 멧돼지 뒷다리를 내가 주울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킬리언스투 : 저기요…… 제가 죽인 건데…….
애처롭게 말해 보았지만 핫 바디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탱크 바디는 1,100다이아.
현금으로도 11만 원짜리 아이템. 먹을 수 있으면 당연히 먹지, 양보하는 게 비정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팟.
핫 바디가 탱크 바디(희귀)를 습득했다.
[부베 평원에서 핫바디님께서 탱크 바디(희귀)를 획득하셨습니다!]월드 메시지가 뜬다. 할 일을 마친 핫 바디가 나에게 말한다.
핫 바디 : 저기요
킬리언스투 : 네?
핫 바디 : 약하면 이벤트 몬스터는 치지 마세요.
킬리언스투 : ……
그렇게 핫 바디는 떠나갔다.
“아니…… 하하하. 이런…… 하하하!”
잠시 헛웃음을 흘린다. 그러다 깨닫는다.
“고작 게임에 왜 그리 돈을 쓰나 했더니. 이런 이유였나.”
빡쳐서 과금하고 싶어진다. 이토록 약한 내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짜증나는 일은 그뿐이 아니다.
아이템이 손실되었습니다. 복구하시겠습니까?
지불 금액 : 10다이아
[네] OR [아니오]아니오를 누른다. 킬리언스 투가 장착한 아이템들은 일반 아니면 고급 등급이라 다이아를 써서 복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경험치 손실 복구는 하루에 5번까지 무료라서 다행이었다.
“열 받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과금으로 현실의 몸이 강해지는 내가 그만한 기회비용을 게임 캐릭터에 투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정예병이 수십이나 죽어 나간 상황이 아니던가?
게임 캐릭터 강화시킬 돈이 있으면 내 병사들을 강화시키는 게 당연하다.
“병사들도…… 수호령하고 펫이 있으면 전력이 급상승할 테니까.”
분을 가라앉히고 접속기에 들어간다.
수업의 시작이다.
“전투에 적합한 요소는 역시 병기(兵器)가 있다. [검], [창], [활], [방패] 등등.”
“하지만 속성이 더 쓸모 있지 않나요?”
차크라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파고드는 요소가 바로 속성이다.
불, 물, 바람, 빛, 어둠, 번개…… 자연 현상은 너무도 강력한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위력이 준수하면서도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맞는 말이지만 속성력이 있을 때의 일이지. 보니까 넌 모든 속성력이 0에 수렴해. 차라리 어떤 한 속성이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전 속성 0이라니……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 봤다.”
이해 안 가는 무언가를 보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소향이 이내 고개를 흔들고 말한다.
“무기나 선택해. 잘 다루는 거로. [병기] 같이 포괄적인 걸로 하면 단계를 올리는 데 애로 사항이 꽃필 테니 특정한 병기를 고르는 게 좋을 거다.”
차르르륵!
말과 동시에 온갖 무기가 걸려 있는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뿐이 아니다.
쿵!
오른쪽으로 수십 권의 책이 들어차 있는 책장이 떨어져 내린다.
“책들은 뭡니까?”
“신체의 차크라가 중문(重門)을 열었더군. 장차 신체의 현문(賢門)을 열고 싶다면 지금부터 의학 지식을 쌓아야 한다. 스스로의 몸을 잘 제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
뜻밖의 말에 묻는다.
“공부라니…… 어느 정도 배워야 합니까?”
“의대(醫大)에 갈 정도는 돼야지. 모든 영역을 다 배울 필요는 없고 해부학을 중심으로 공부해. 공부머리가 있으면 이삼 년 정도면 되고 머리가 안 좋으면 십 년은 해야 한다.”
“…….”
“지금 의학 공부만 걱정하나 본데 무기도 무시하지 마라. 해당 무기를 달인의 경지까지 수련해야 하고 나중에는 직접 만들어도 봐야 해. 그래서 차크라 수련자는 다른 영능하고 병행하는 경우가 많지. 무기를 달인의 경지까지 수련하고 나면 억울해서라도 무공에 입문하게 되거든.”
“매체에서 보던 차크라 수련자들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매체에는 속성계나 특수한 개념을 다루는 녀석들이 주로 나오니까. 신체나 병기를 개문하면 아무래도 겉보기에 수수하거든. 아! 취직을 하기에는 [기계]도 좋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계공학을 배워야 하고.”
영화에서 본 차크라 수련자들은 삶의 애환이 가득한 얼굴로 모닥불을 몇 날 며칠 동안 바라본다든지, 북극 빙하 아래에서 잠을 잔다든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내면의 어둠과 대화를 나눈다든지……
뭐 하여튼 그런 신비로움이 있었는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공부라니…….
“일단…… 되는 데까지 외워 보죠.”
“좋은 자세야.”
추석 첫날은 거의 접속기 안에서 보냈다.
나는 [검] 요소를 추가로 개방했고 [해부 생리학]을 읽기 시작했다.
“…….”
내용이 너무 많아서 구토가 올라올 정도였다.
심법이나 서클링을 외울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근육이면 근육이고 뼈면 뼈지 뭔 명칭들이 이렇게 많아?’
암기조차 쉽게 되지 않는다. 전혀 관심 가지지 않던 분야라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게임 속 캐릭터는.
“송편! 송편을 줍자.”
나는 몬스터가 없는 길을 골라 대륙 중앙부를 향해 달렸다.
이유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때문이다.
[건의] greenyongyong : 오! 송편 제발 그만!드랍률 조정을 대체 어떻게 한 건지…… (한숨) 무슨 몬스터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송편이 세 접시씩 떨어져요?
이거 보니까 고렙 몬스터일수록 드랍률을 높게 해 놨나 본데…… 하…… 우리는 일고희(일반, 고급,희귀) 음식은 안 먹어요. 버프 시간은 또 짱 길어서 4시간이나 되네…….
희귀 송편도 인벤 자리 지나치게 차지하니까 드랍률 조절 좀 해 주세요.
아니면 하위 송편 100개로 상위 송편 교환 가능하게 해 주시던가요.
게시물의 내용은 그저 건의 사항이다. 누가 이득 볼 수 있는 정보는 전혀 없다.
그러나 내게는 전혀 다르다.
“도착했다.”
[사이클롭스 수련자들의 언덕]바둑판의 정중앙. 그러니까 천원(天元) 바로 옆 칸에 위치한 사냥터이다.
[던전]과 [분노의 탑]을 제외한 리벤지 최고 등급의 필드 사냥터.나는 언덕 여기저기에서 가부좌를 취하고 앉아 있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이클롭스 사무라이(전설).
“와. 전설 몬스터.”
등급이 전설인데 일반 몬스터(엘리트나 보스가 아님)라서 이름도 없다. 레벨별 사냥터의 불합리함이다.
‘여기 잡몹 중 한 마리만 저렙존으로 가도 대참사일 텐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설 몬스터가 아닌 바닥에 깔린 것들이다.
말하자면 쓰레기들.
[콩 송편(일반)], [콩 송편(일반)] [콩 송편(일반)], [쑥 송편(고급)] [콩 송편(일반)], [오색 송편(희귀)] [콩 송편(일반)], [콩 송편(일반)]……“……역시! 생각대로야!”
사이클롭스의 언덕은 최고 등급의 필드 사냥터 중 유일하게 몬스터들이 선공을 치지 않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영웅급 스킬 북을 떨구는 인기 사냥터이기에 언제나 플레이어들이 바글바글한 곳.
앵벌이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좋아!”
나는 즉시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송편들을 주웠다.
고작 10분 주웠을 뿐인데 인벤토리에 쌓인 송편의 수가 200개가 넘는다.
어디 그뿐인가!
“와, 미친! 희귀 송편을 안 줍네.”
고레벨 몬스터일수록 드랍률이 높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내 캐릭으로는 자동 사냥을 몇 시간 동안 돌려도 희귀 송편은 구경도 못했는데 여기에서는 줍지도 않을 정도라니.
“대박.”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벤트 아이템인 송편은 무게가 0g이었으며 유통 기한이 엄청나게 길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89년 10개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