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a golden spoon songwriting genius RAW novel - Chapter 21
21. 돌아가기금수저 작곡천재가 되었다
대면 (2)
-달그락.
전에도 와 봤지만.
새삼 집 진짜 좋네.
넓다란 벽에 걸려있는 이름모를 그림을 쳐다보고 있자니, 김도하의 어머니가 차를 내주셨다.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니 조금 놀란 표정으로 보다 살짝 웃는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얼굴 보기 싫다고 했을 텐데, 뭐 때문에 온 거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가 불만스레 다문 입으로 나를 쳐다봤다.
한번 말해보라는 소리겠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꺼냈다.
“전에 하셨던 말씀, 아직 유효하죠?”
“무슨?”
“누나가 전해준 말이요. 아버지가 만족하실만한 성과를 보이면 전처럼 저를 지원해주시겠다는.”
그가 굵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지원을 받고 싶다, 이 말이냐?”
“네.”
“그래. 너라면 지금쯤 돈이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맞긴 하지만.
보이스매치 건도 있고, 마이크나 플러그인도 새로 지르느라 예상보다 더 빨리 떨어진 거지.
내 씀씀이가 김도하처럼 헤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매달 유지비로 나가는 돈만 해도 꽤 되고.
내 대답에 그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전에 기획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딱 이런 말을 했어.”
나왔다.
김도하의 업보.
나는 기억을 떠올려냈다.
“그때도 나름대로 아버지께 증명했잖아요. 몰래 학원도 다녀가면서.”
“그래. 그래서 내가 속았었지. 그것만 보고 네가 제대로 할 의지가 있는 줄 착각했다. 조금 늦은 나이라 어렵다고 하는데도 어떻게든 부탁해서 밀어넣어 줬더니, 문제나 일으키고 말이야······.”
“그건 반성하고 있습니다.”
내가 순순히 말하자 그가 말을 멈췄다.
그 틈을 타 나는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것 같아요.”
“길?”
“가람에 있으면서 깨달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작곡이라는 걸. 그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러 온 거고요.”
사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그래, 그 사이에 뭔가 하긴 했더구나.”
“네. 노래를 몇 곡 냈죠. 혹시 들어보셨어요?”
“들어는 봤다. 도연이가 호들갑 떨면서 네 노래가 몇 등이라고 알려줬지.”
호들갑을 떨었다고?
김도연 그 인간이?
이건 좀 믿기지 않는데.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여태 네가 낸 노래는 고작 두세 개다. 요행으로 잠깐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그게 쭉 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요행이라.
요행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 세상에는 묻힌 명곡들이 많았다.
단 한 번의 조명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날개를 펼 수 있는 그런 명곡들 말이다.
그런 곡들이 아니라 내가 만든 노래가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요행이 맞았다.
하지만.
“요행도 실력이죠. 제 성공이 요행인지 아닌지, 한번 보시면 되잖아요.”
당당하게 나온 말에 그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을 때.
[와하하하! 남영진 씨,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뒤에서 티비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볼륨을 한껏 줄여놓아 배경소리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는 저게 무슨 프로그램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보, 리모컨 좀.”
소리가 거슬렸는지 김남혁 사장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말했다.
“챌린저스.”
“음?”
“저 프로그램에서 보여드릴게요. 제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뜬금없는 소리로 들렸을 거다.
갑자기 챌린저스라니.
역시나 사장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소리냐?”
“챌린저스에서 매 시즌마다 진행하는 가요제 프로젝트. 아세요?”
챌린저스의 다섯 멤버들과 아티스트들의 콜라보로 진행되는 가요제 프로젝트.
아직까지는 두 번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지난번 가요제 때 게스트로 손여울이 나왔던 탓에 현재 그 관심도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당장 검색을 해봐도 벌써부터 누가 나왔으면 좋겠다, 무슨 노래가 나올지 궁금하다는 반응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사장이 턱을 살짝 당기며 긍정을 표하자 나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출연을 제의받았거든요.”
“······챌린저스에서 말이냐?”
사장이 놀란 어조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알아주는 예능에서 섭외가 들어왔다고 하니 입질이 오는 모양이다.
“가요제 프로젝트를 보셨다면 거기서 제가 뭘 하게 될지 당연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챌린저스에서 네가 만든 노래를 들어봐라고? 그걸로 네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소리냐?”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단언했다.
“그 노래로 차트 1위를 할 거니까요.”
#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구나.”
내 말에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리던 사장이 입을 열었다.
무슨 자신감이냐니.
“말씀드렸잖아요. 저 진지하다고. 이 정도 자신감도 없이 아버지한테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진지하긴 하지.
여기서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작업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될 거다
지금까지처럼 아무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지원이라 해도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기반을 다질 때까지만이라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거긴 하지만.
내 말에 사장이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내 아들은 맞는데 말이지.”
유감이지만, 아닙니다.
“네가 한 말에 책임질 수는 있겠지?”
책임?
고개를 갸웃하자 엄격한 어조로 말한다.
“1등 못 하면 작곡 나부랭이는 그만두고 회사로 들어와라. 네가 아는 게 없으니 당장 관리직에 앉히는 건 어렵겠지만,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빠르게 올라올 수 있도록 해주마.”
“······.”
기회가 여러번인 줄 알았더니.
딱 한 번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자 사모가 말리듯 그를 불렀다.
“여보.”
“대신.”
사장이 손가락을 들었다.
“만약 정말로 1등을 한다면, 너를 얼마든지 지원해주겠다. 가능한 한 네가 원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이건 좀 파격적인데.
나는 내심 놀랐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생활비 걱정만 더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어느 정도의 자본은 대준다는 소리였으니까.
적어도 돈 때문에 행동을 망설이게 될 일은 없어질 것이다.
좋은 조건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솔직한 말로, 1위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다만 가요제 곡들이 모두 상위권으로 차트인 했었다는 점.
특히나 손여울과의 콜라보 곡은 3주 연속 1위를 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의 가능성이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 안 해도 어차피 1위를 생각하고 왔어.’
최소한의 가능성만 있다면 걸어볼 만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대답에 사장이 진심어린 웃음을 지었다.
“하하, 기세는 좋구나. 꼭 옛날 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옛날 모습?
어리둥절하게 그를 보는데.
‘하하, 이 녀석. 이거 쳐보고 싶어서 그래?’
어김없이 김도하의 기억이 떠올랐다.
짧은 김도하의 팔과 아직 젊은 사장의 얼굴을 보니, 대략 8살 때쯤의 기억인 것 같았다.
‘응! 내가 쳐볼래.’
김도하의 호기심 어린 말에 사장이 기타를 건넸다.
낯익은 모델이었다.
조그만 손이 기타를 잡고서 아무렇게나 뚱땅거린다.
‘그게 아니지. 이렇게 하는거야.’
사장은 웃으며 기타를 가져갔다.
그리고.
‘언젠가 너에게 불러주려고 했었던 이 노래♬······.’
하성훈의 <편지에 적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악기 없이 순수한 통기타 소리와 그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에게는 최고의 무대였을 것이다.
‘와아! 이건 무슨 노래야?’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너는 말해도 모를 거다. 어때. 마음에 들어?’
좋냐는 질문에 멋모르는데다 당돌하기까지 한 김도하는 이렇게 답했다.
‘응! 근데 그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만들어 줄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다시 기타를 쥐었고.
손끝에서 나오는 멜로디는 당연히 엉망일 뿐이었다.
그에 사장이 껄껄 웃으며 ‘이거는 파는 거니까 더는 안 된다’며 가져가는 모습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다.
‘그러니까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애의 행태랑 현재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이 말이지.
쓴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이 싫지는 않았다.
싫다기 보다, 오히려 감사한 수준이었다.
‘하성훈의 <편지에 적은 노래>. 이런 노래 취향이란 말이지.’
사실 오늘 본가를 방문한 건 이걸 알아내기 위함도 있었다.
만약에 차트 이야기가 먹히지 않을 때를 대비해, 사장 취향의 곡을 만들어 반응을 보려고 했던 것.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 차선책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내가 해야할 건.
‘1위를 해야겠어.’
이것 하나였다.
챌린저스에 출연해 1위를 할 만큼의 곡을 뽑아내는 것.
“그럼 방송 확정되면 연락 드릴 테니까, 그때 봐주세요.”
나는 부모님한테 이렇게 말하고서 집을 나섰다.
내가 하연에 가리라 확신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1위를 약속하는 패기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오기 직전에 본 사장의 표정은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
‘일단 수락하겠다고 연락부터 해야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찌됐든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얼른 말하는 편이 좋으니까.
잠시간 제작진과 통화를 한 끝에 일정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사전미팅을 하고, 목요일에 첫 촬영을 시작.
기간은 약 한 달로, 수시로 출연자와 작업을 진행해줘야 한다고 했다.
음원 수익은 기부한다는 것 같지만 이 부분은 아무래도 좋았다.
‘만약 더 늦었다면 안 됐었겠네.’
지금이라도 결정한 게 다행인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서 나는 요즘 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해 작업실로 향했다.
어둑해진 거리를 지나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려는데.
“앗, 작곡가님.”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나연과 마주쳤다.
······얘 설마 계속 여기에 있었나?
“연락을 하지 그랬어.”
그렇게 묻자 하나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중이셔서요. 방해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어요.”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기다리다 안 오시면 집에 가려고 했죠.”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하나연.
나는 작업실 문을 열며 꾸짖었다.
“밤에는 위험하잖아. 다음부터는 이런 짓 하지 마.”
“네······.”
그래도 잘못한 건 아는지 부끄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들어올래?”
“아, 아니에요. 저 할 말이 있어서 잠깐 온 거라.”
“그런 녀석이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하염없이는 아닌데······.”
하나연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계약이요. 여러 군데서 연락이 왔었어요.”
그거야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묻자, 하나연이 주저하다 얘기를 꺼냈다.
“저, 솔직히 아무데도 안 가고 싶어요······그러니까 당분간은요.”
“뭐?”
“다른 곳 가면 작곡가님 같은 사람은 없을 거잖아요. 이전 대표님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구요.”
그때는 선택을 잘못한 거고.
하나연은 약간 빨개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그런데 심사위원으로 나오셨던 가수분, ‘미아’ 아시죠? 그분이 저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하셔서. 그분 밑에서 배우기로 했어요. 기획사랑은 별개로, 저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미아라면 괜찮지.
10대 후반에 이미 일본에서 차트를 휩쓸었던 사람이니.
실력은 확실했다.
아직은 모창 능력이 더 뛰어난 하나연에게 자신만의 음색을 가르쳐줄 수도 있었고.
종종 이런 식으로 인연이 이어져 사제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으니, 하나연에게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연이 말을 이었다.
“대신 저도 기획사에는 아직 안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도 상관없으시대요.”
“그럼 감사히 가르침 받아도 되겠네. 그런데 기획사 안 들어가고 네 음반은 어떻게 내려고?”
“그, 그게. 당장은 배우는 게 우선이겠지만, 만약 음반을 내게 된다면 그때는 공부해서 혼자 해보려고요. 작곡가님과 그랬던 것처럼 곡만 받아오면 되니까.”
쑥스러운 듯 땅을 쳐다보다, 고개를 들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이미 한 번 해봤으니까 할 수 있어요.”
이제 보니까.
이것 때문에 혼자 고민이 많았던 거였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나연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후에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미아 밑에서 배우다 너무 유명해지면 나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때 그 쩌리같은 작곡가는 잘 기억 안 난다, 이러면서.”
“헉. 설마요!”
장난으로 말하자 펄쩍 뛰면서 토끼눈을 한다.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어째 자꾸 놀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나는 웃음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 또 나랑 작업해줄 거지?”
“네?”
“너랑 어울리는 곡이 나오면 말이야.”
내 말에 하나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힘차게 대답했다.
“네! 그래 주신다면 제가 감사하죠!”
언제나 생각하지만, 대답은 늘 우렁차다.
어쨌든 그거면 됐다.
“그래. 미아한테서 열심히 배우고,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하나연이 배꼽인사를 하는데,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해줬다.
“참. 너 챌린저스 알지?”
“네? 네.”
“나 조만간 거기 나간다.”
“네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