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a golden spoon songwriting genius RAW novel - Chapter 81
82. 돌아가기금수저 작곡천재가 되었다
쌤쌤
손여울은 근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꽁꽁 가리고 있다는 게 특이하긴 했지만, 가디건에 청바지 패션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코디였다.
그럼에도 몸짓 하나 하나에서 연예인 티가 난다.
나는 몸을 완전히 돌려 손여울에게로 갔다.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목소리를 듣자 확신이 들었는지, 손여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를 눈짓하며 물었다.
“앉아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여기 삼십 분 정도 있었는데, 아무도 안 앉더라고요.”
손여울이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십 분이나 이러고 있었다고?
가족이 아프기라도 한 걸까.
나는 의문을 가진 채 옆에 앉았다.
“저, 피디님. 정말로 여기서 피디님을 볼 거라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혹시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손여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다.
뭐라고 답을 해야할까.
아버지 산소를 갔다 오는 길에 전생의 흔적까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은 진실이다.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예전에 친구의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이 병원에 자주 들렀었어요. 지금은 친구랑 연락이 끊긴 상태라 한 번 와본 겁니다.”
“······정말 친한 친구였나 봐요. 어머니 병문안까지 가실 정도면.”
손여울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원래라면 서로의 존재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친했죠. 언젠가 와봐야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영 안 나더라고요.”
“어머, 그러셨구나. 그래서 촬영 쉬는 날에 오신 거구나.”
드라마라도 보는 듯, 이입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손여울.
최선을 다해 경청하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찾으시는 분은 있었어요?”
“아뇨. 그때 상태가 안 좋으셨으니, 아마 돌아가셨을 거예요.”
“아······친구분이랑 연락은 안 되고요?”
나는 말없이 시선을 멀리 했다.
손여울이 주저하다 위로하듯 말했다.
“잘 지내고 계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손여울 씨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냉큼 인사를 하고선 내가 물었다.
의미없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손여울이 답했다.
“······제가 가끔 여기 와서 아이들을 보고 가곤 하거든요.”
“아이들?”
“소아병동에 있는 아이들이요. 주로 소아암 환자예요.”
봉사활동 같은 건가?
손여울이 기부를 많이 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말을 안 할 뿐, 이렇게 찾아올 정도면 이 병원에도 분명 기부를 했을 거다.
“그중에 예은이라는 애가 있는데, 어제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어제.
손여울한테 번호를 물어볼 때 그녀의 폰으로 전화가 왔었다.
받고 표정이 안 좋더니, 이 전화였던 듯싶다.
“그런데······손여울 씨한테 바로 전화가 갔다고요?”
“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해지면 연락하라고, 어머니한테 번호를 드렸었어요.”
아니,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어제 하나연에게 뒤통수 조심하라고 했는데, 손여울은 진짜인 것 같았다.
“어제는 촬영이라 못 가서 오늘이라도 와봤더니 아직도 의식이 불분명하다고······. 그래서 아까 얼굴만 보고 나와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여기 있어봤자 할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혹시나 올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거겠지.
나도 손여울처럼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렸던 적이 많았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공감할 수는 있었다.
이럴 때는 주의를 돌리는 게 최고였다.
“점심은 드셨어요?”
“점심요? 아직······.”
시간이 벌써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만 보고 집으로 가서 느긋하게 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손여울이랑 만나게 된 이상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저랑 먹으러 갈래요?”
“지금요? 하지만 연락이 올 지도 모르는데.”
“멀리는 말고요. 근처에 맛있는 곳을 알거든요.”
손여울이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저는 괜찮······.”
-꼬르륵.
작게 들리는 소리.
손여울이 민망한 듯 눈을 굴렸다.
그래, 아무리 촬영 기간이라 해도 그렇지.
밥도 안 먹고 그러면 힘이 나겠냐고.
나는 모자를 고쳐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면에서보다 더 말라보이는 손여울에게 말했다.
“갑시다.”
#
‘누구? 뭐? ······김도하? 뭘 먹으러 간다고? 잠깐만, 여울아!’
손여울은 아까 매니저와 했던 통화를 떠올렸다.
그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샐러드나 조금 집어먹으려 했는데, 느닷없이 가정식 가게에 오게 되다니.
‘앗, 맛있겠다.’
그래도 배가 고프긴 했는지 갓 나온 불고기백반을 보자 자연스레 시선이 따라갔다.
“맛있겠죠?”
김도하가 꿰뚫어보듯 말했다.
손여울은 마스크를 벗으며 인정했다.
“엄청요.”
“배고프실 텐데, 얼른 드세요.”
김도하의 메뉴도 백반이었다.
손여울은 밥을 먹기 전, 가게를 다시금 둘러보았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관리하긴 했지만 오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가게.
메뉴들도 모두 싼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손여울은 고기를 집어먹고선 김도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런 데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저요?”
혼자서 먹는 것에 익숙한 듯, 김도하는 식사에 집중하다 눈을 들었다.
그가 알 것 같다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지가 안 맞죠?”
“······조금요.”
생각보다 자기객관화가 되어있어서 놀랐다.
김도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맛집은 기억해두는 편이라.”
“정말 맛있긴 해요. 저도 기억해둬야 할 것 같아요.”
“여울 씨가 계속 오기엔 좀 그럴 텐데.”
“왜요?”
손여울은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김도하는 어떨지 몰라도, 그녀의 어린시절은 가정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성공해서 태생이 금수저였던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시절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은 없었다.
설마 이런 음식점은 안 가는 사람으로 판단한 건가 싶었지만.
“아까 들어보니까 매니저분이 꽤 엄하신 것 같아서. 아니에요? 여긴 룸도 없어서 막 다니기엔 힘들걸요.”
나온 말은 예상과는 달랐다.
손여울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대답했다.
“아······. 맞아요. 그렇죠······.”
어쩌면 꼬인 건 자신이 아닐까.
손여울은 귀가 홧홧해졌다.
‘소문을 너무 신경썼나 봐.’
김도하는 요즘 한창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소속사에서도 소문이 들렸다.
사기 엔터에서 하나연을 구해줬다는 떡밥은 이미 식을 대로 식은 뒤니 그렇다 쳐도.
가람 연습생 때 망나니처럼 굴었다는 소문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증언은 많은데 실제 김도하의 행보와 너무 차이가 나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전에 한 번, 손여울은 후배 가수에게 김도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연습생 시절 김도하와 만난 적이 있다는 그녀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이야기 해줬었다.
내심 아니기를 바랐던 손여울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연 이야기에 꽤나 감명을 받았었기 때문.
‘그래서 실제로 만나면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여러모로 소문과는 달랐다.
아니, 번호를 따려는 듯한 행동은 역시나 싶었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눠본 김도하는 상당한 호감형이었다.
“왜요?”
자신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는지, 김도하가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여울은 고개를 젓고선 생각했다.
‘나연이가 따를만 해.’
하나연은 재능이 넘치는 신예였다.
어딜 가도 환영받을 만한 인재.
그런 애가 왜 일개 프로듀서에게만 붙어있는지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손여울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예은이의 어머니였다.
손여울이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네. 휴우, 다행이에요. 네······.”
그녀가 밥을 먹으러 간 사이에 예은이의 의식이 돌아와, 현재 무사히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해서 면회는 못 가게 되었지만 다행인 일이었다.
전화를 끊자 김도하가 물었다.
“애는 괜찮대요?”
“네. 막 깨어났대요.”
손여울이 대답했다.
“고마워요. 김도하 피디님 아니었으면 점심도 굶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냥 기다렸을 거예요.”
“밥심이 얼마나 중요한데, 굶으면 안 되죠.”
“아하하. 그렇죠.”
손여울이 밝은 웃음을 지었다.
어제부터 콱 막힌 듯 답답하던 가슴이 뚫린 기분이었다.
이제 가서 연기 연습을 하면 개운하게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김도하가 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전에 여쭤보다가 만 건데······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이제는 대놓고 말씀하시네요.”
손여울이 빙그레 미소짓자 김도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닌 척 하는 것보다는 정공법으로 가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아하, 여자분이 말한 거죠? 인기 많겠다.”
“글쎄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손여울은 기꺼이 번호를 찍어줬다.
“여기요.”
“고마워요.”
김도하가 폰을 돌려받으며 화면을 쳐다보았다.
신기해하는 듯한 모습에 손여울은 웃음이 나왔다.
“저희 동갑이잖아요.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요.”
“그럽시다.”
김도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손여울의 폰이 울렸다.
참다 참다 또 전화를 한 매니저였다.
이번에는 무시할 수 없어서, 손여울은 전화를 받고 ‘지금 간다’는 말을 전했다.
“전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밥 잘 먹었어요. 내일 촬영장에서 봐요.”
“들어가세요.”
김도하와 헤어지고, 손여울은 병원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탔다.
매니저가 도끼눈을 뜨고 손여울을 쳐다봤다.
“밥만 먹었어?”
“그럼 뭘 또 해?”
손여울이 황당하다는 듯 말하자 매니저가 한숨을 쉬었다.
“소문 알잖아. 네 번호라도 따려고 한 건 아닌가 싶었지.”
어떻게 알았지?
언젠가 김도하가 했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며 손여울이 팔짱을 꼈다.
“사람 좋던데? 되게 착한 것 같았어.”
“전에도 그런 말 하지 않았나? 거기다 원하는 걸 얻으면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게 사람이라는 말도 했었지.”
“······.”
“아무튼 별일 없었다면 됐다. 병원에서는 뭐래?”
“괜찮아졌대. 그런데 면회는 안 된대.”
“오케이, 그럼 바로 출발한다. 내일 촬영 준비하러 가야지.”
매니저가 차를 출발시켰다.
손여울은 팔짱을 낀 채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데 정말 번호는 왜 물어본 거지?’
단순히 친해지고 싶었나?
아니면 일 관련으로?
여러 추측을 하던 손여울은 혹시나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 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김도하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문득 그녀는 억울해졌다.
‘나도 번호 받을 걸.’
왜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내일 촬영하러 가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손여울을 만난 다음 날.
오늘 촬영은 미리 말한 대로 경합 신이었다.
미아 앞에서 하나연과 손여울이 서로의 실력을 뽐내는 장면.
현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하나연의 노래는 최고였다.
컷 사인은 하나연이 노래를 다 부를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진지한 표정의 피디를 쳐다보았다.
일단 다 찍어놓고 편집할 생각인가.
어차피 나중에 노래를 따로 넣을 텐데 라이브로 시키는 걸 보면, 실력을 보고 뽑았다는 게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나를 놓지 말아요······.”
침묵 속에서 하나연의 노래가 끝났다.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진짜 경합처럼 박수가 터져나왔다.
“와, 나 소름 돋은 거 봐.”
“가수는 가수네. 확실히 잘 부른다.”
과하게 활기찬 이 분위기.
가장 어린데다 신인인 하나연의 기를 복돋아주기 위해 과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해도 저 감상평들은 진짜일 거다.
나조차도 소름이 돋았으니까.
“좋아, 좋아. 특히 노래 끝나고 싹 바뀌는 표정 연기, 딱 나서희 캐릭터에 맞게 잘 해석했어. 아주 복덩이가 왔네 그래.”
피디도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하나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손여울의 차례가 되었다.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어제의 걱정스러운 심정은 말끔히 사라진 기색이었다.
곧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 소리가 들리고.
“기대해요 언젠가 꿈이 이뤄질 날을. 꿋꿋하게 두 발 딛고 서 있을 거예요♬”
송여울이 청아한 목소리를 냈다.
‘꿈’.
바로 손여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었다.
드라마의 테마곡이기도 한 곡.
그만큼 익숙했지만, 직접 들으니 또 새로웠다.
‘저 음색이 내 노래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이번에도 감독은 노래가 다 끝난 뒤에야 컷을 외쳤다.
‘나중에 편집된 화면으로 보면 대단하겠는데.’
오늘 촬영한 경합 신은 5화의 장면이었다.
즉, 다음주에나 방영될 거란 얘기.
사실 나도 ‘더 벌스’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었기에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나연이는 이번주에 처음으로 등장하니까 반응 체크 좀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있는데, 잠시 쉬는가 싶던 손여울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 앞에서 멈춘 그녀가 머뭇거리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주세요.”
······나한테 뭐 맡겨놨나?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도 줘야되나 싶어서 가만히 있자 손여울이 땅을 쳐다보며 말했다.
“번호.”
“네?”
“피디님 번호요. 저만 못 받았잖아요.”
“아.”
나는 당황한 채 있다 번호를 찍어줬다.
손여울이 투덜대듯 말했다.
“문자라도 줄 줄 알았는데 아무 연락도 안 주고.”
“어제는 일을 좀 하느라······.”
“됐어요. 이제 쌤쌤이니까.”
손여울이 짐짓 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돌아갔다.
‘······방금 손여울이 내 번호를 따간 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눈만 깜빡였다.
그러다 이쪽을 보던 하나연과 눈이 마주쳤다.
척.
하나연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