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older brother of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0)
탑스타의 친오빠가 되었다 120화
따라라란~!!
화려하게 이어지는 건반의 움직임.
땀방울이 그 위를 적시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역시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최예림은 오직 한 생각에만 사로잡힌 채로 연주를 이어 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윽고,
따앙-!!
그녀는 건반을 부술 듯이 누르다 연주를 멈췄다.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키며 최예림은 그날 3차 스테이지에서 보았던 정윤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쇼팽의 2번 소나타는 우울하고 한 없이 바닥으로 끌어 당기는 듯한 곡이다.
그래서 최예림은 그 곡을 마스터한 뒤로는 아예 치지 않았다.
그녀의 기분마저 잡아 먹히는 듯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런 곡들이 있다.
연주자의 정신을 갉아 먹는 듯한 곡 말이다.
쇼팽 2번 소나타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하지만 정윤성이 그날 보여 준 곡은 그녀가 지금껏 쳐왔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시작은 평범한 소나타였지만, 점점 끝으로 치달아 갈수록 미묘하게 바뀐 박자들이 곡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미세하게 박자를 비틀면서 음표의 변화 없이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다니.
최예림은 감히 생각지도 못 한 경지였다.
‘대체 넌 어떻게 그런 걸······.’
분명 나이도 자신과 같을 텐데, 이것이 재능의 벽이라는 것인가.
바로 그때였다.
“예림아~”
최예림의 엄마, 은희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함을 터트렸다.
“이, 이게 뭐야?”
연습실에 습기가 찰 정도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땀범벅이 된 최예림의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어머어머! 예림아! 괜찮아?”
최예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물에 담가 식혔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꼭 그렇게까지 무리를 해야겠어? 이러다가 결승 전에 쓰러질 거야.”
땀을 닦아 주던 은희는 딸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됐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러자 최예림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안 돼. 연습해야 돼.”
은희는 최예림이 원래 연습벌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집착하는 건 처음 봤다.
‘정윤성의 공연을 보고 나서부터였지.’
세 번째 스테이지에 나온 정윤성의 무대를 본 이후부터 쭉 이렇다.
이러다가는 정말 결승 무대를 밟아 보기도 전에 쓰러질 판이었다.
“정신 차려, 최예림!”
찰싹-!
최예림은 화끈한 등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엄마가 자기를 세게 때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 엄마 말 들어.”
“······.”
“일단 씻고 밥부터 먹자. 진짜 이쁜 얼굴이 이렇게 상해서 되겠어? 결승 무대에서 사람들이 네 얼굴 보고 다 도망치겠다.”
최예림은 결국 엄마 손에 붙잡혀 밖으로 나오게 됐다.
쇼팽 콩쿨 참가자에게 연습실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바르샤바 음악 대학을 나와 호텔에서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꼭대기 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엄마. 나 이제 정말 괜찮아. 그러니깐······.”
“예림아. 오늘은 이제 그만.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니? 그러다 진짜 쓰러져.”
은희는 어떻게든 최예림에게 밥을 먹이려고 했다.
그렇게 음식을 깨작거리다 예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이거 다 먹고 가야지.”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 응. 그러렴.”
예림은 한숨을 내쉬며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정말이지 엄마는 걱정도 태산이라니깐.
난 결승 전까지 더 많이 연습해야 하는······.
“와. 진짜 너무 잘생겼다.”
“그 사람 맞지? 정윤성? 이번 콩쿨에 나오는.”
그때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영어를 쓰는 두 여자의 말에 최예림은 앞을 바라보았다.
정윤성?
“헉!”
복도에 길쭉하게 서 있는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작은 얼굴과 유려한 턱선, 높이 솟은 콧대.
전형적인 미남상을 보여 주는 표본 그 자체였다.
진짜 정윤성이었던 것이다.
“······.”
최예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는 멍하니 정윤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마주쳐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 예림 씨?”
“!?”
정윤성이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최예림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정윤성의 모습이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화장실 앞 어두운 복도에 밝은 조명이 사방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 안녕하세요.”
“네, 결승 올라가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최예림은 슬쩍 눈치를 보다 말을 이었다.
“윤성 씨도 축하해요.”
“네? 아, 네. 어쩌다 보니 저도 운 좋게 결승에 올라갔네요.”
하지만 그 말에 최예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 운이라니요! 그게 어떻게 운이에요?”
“아······. 그럼 오로지 실력으로 올라갔다고 정정할까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최예림은 잠시 말을 끌다 이내 벽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윤성 씨는 어떻게 그렇게 피아노를 잘 쳐요?”
“네? 그런 말을 예림 씨한테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세 번째 스테이지에서 보여줬던 그 곡. 의도한 건가요? 연습 때부터?”
“······.”
정윤성도 짧게 숨을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음-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네. 솔직하게.”
“그럼 우리 말 놓을까요?”
“네?”
어버버 거리는 최예림의 모습에 정윤성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나이도 동갑인데. 안 돼요?”
“아. 돼, 돼요. 아니. 돼.”
얼떨결에 말을 놓게 된 최예림이었다.
정윤성도 덕분에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뭐, 사실 연습 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야.”
“그럼?”
“그냥 그날 연주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쇼팽은 과연 이 곡을 이렇게 치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 다르게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을까. 원래 그런 작곡가들이 악보에 이것저것 장난을 많이 쳐놓잖아. 쇼팽도 그런 쪽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봤던 거야.”
최예림은 눈을 껌뻑거리며 정윤성을 돌아보았다.
“그걸······연습 때 하지 않고 세 번째 스테이지에서 치고 있던 와중에 떠올린 거라고?”
“음. 아마도? 내가 곡에 너무 몰입하면 기억이 잘 안 나거든.”
“그러니까 그, 그걸 즉흥적으로 했던 거라는 거야?”
“그런 셈이지.”
“말도 안 돼. 거짓말!”
정윤성은 눈을 동그랗게 뜬 최예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며. 그래서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야.”
“······.”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그 연주를 즉흥적으로 해냈다는 것인데······.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능력이었다.
“예림이 네 연주는 항상 잘 듣고 있어. 진짜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는 게 항상 느껴져.”
“응? 아······.”
갑작스러운 칭찬에 최예림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가끔은 너무 멀리 도망치는 기분이 들어.”
“응?”
“쫓기는 듯한 느낌. 얼른 자유로워지고 싶다, 라는 느낌. 그런 게 가끔은 노골적으로 느껴졌어.”
“······.”
“그런 것에만 벗어난다면 좀 더 좋은 연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최예림이란 피아니스트의 잠재력을 100% 끌어 올리는 거지.”
최예림은 멍하니 정윤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조언을 해주는 건가?
끼익-.
그때 여자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정윤아가 비틀거리며 나왔다.
“으으. 오빠.”
“어휴.”
정윤성은 그런 정윤아를 부축해 주었다.
뭔가 심하게 안에서 고생을 한 듯 보이는 정윤아.
그녀는 최예림을 보고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 그쪽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팬이에요오······.”
“아, 네.”
정윤성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제랑 오늘 과식하더니. 쯧.”
“이이이잉. 배아파.”
“가자. 약이라도 먹게.”
정윤성은 최예림에게 눈인사한 뒤 정윤아를 데리고 먼저 복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
최예림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윤성이 남긴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뭔가 막혔던 것이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오빠~”
“속은 괜찮아?”
“웅! 내가 위장은 튼튼하잖아.”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활기가 넘치는 윤아였다.
그런 윤아의 등짝을 어머니가 찰진 소리로 때리셨다.
“말도 마라. 얘 어제 새벽 내내 화장실에만 있었어.”
“윽. 아파.”
“그러게 작작 먹어.”
“하지만 여기 맛있는 게 너무 많은걸? 오늘 가면 내가 폴란드 음식을 또 언제 먹어 보겠어?”
“그래 봐야 닭요리만 먹는 게.”
“헤헤.”
나는 웃으며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녀올게요.”
“응. 그래. 오늘 리허설 잘하고. 알겠지?”
“어후. 근데 왜 리허설을 한 번밖에 못 하는 거야? 연습 좀만 오래 시켜주지.”
쇼팽 파이널 무대.
결승 무대에서는 오직 두 곡 중 하나만 칠 수 있다.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이었다.
그것도 세계에서 수준급으로 꼽히는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추게 된다.
문제는 결승 무대에 진출한 10명의 도전자에게 허락된 리허설은 딱 1번.
즉, 내가 뭘 잘못 쳤든, 박자를 놓쳤든, 딱 1번의 연주만 허락된다는 것이다.
고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리허설 일정이 빡빡해 정말 합만 맞춰 보는 것이었다.
“잘하고 올게. 자. 윤아는 이거.”
“응?”
난 윤아에게 핸드폰을 맡겼다.
“이건 왜?”
“오빠 대신 오늘 던전 다 돌고 있어. 알겠지? 이따 핫타임이라서 오빠가 못 해. 대신해놓으렴.”
“······.”
윤아에게 숙제를 맡긴 뒤 나는 결승 무대가 펼쳐지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도전자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 만한 정은 없었다.
왕좌를 놓고 싸우는 경쟁자들이기 때문에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다.
그들의 몸에 흐르는 칼날 같은 아우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음?”
순서가 돼서 리허설 무대로 올라서는 최예림이 보였다.
근데 그녀의 아우라가 평소 봤던 것과 무척 달랐다.
분명 어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아우라가 엉키고 설켜 엉망진창으로 보였는데.
‘고작 하루 만에 정리가 끝난 건가?’
지금은 아우라가 무척 아름다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풍긴다고 해야 할까.
이윽고 그녀의 협주곡이 시작되었다.
따라란~!
오케스트라의 연주 이후 들어가는 박자가 완벽했다.
그리고 항상 날이 바짝 서 있던 아우라가 차분하게 바뀌면서 그녀의 연주 역시 달라졌다.
강렬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편안함이 풀풀 흘러 나오는 중이었다.
“아······.”
나는 그녀의 아우라가 점점 이 콘서트 홀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꽃을 피우며 벚꽃처럼 잎을 흩날렸다.
“······.”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나는 멍하니 그녀의 연주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격렬하고도 아름다웠던 최예림의 연주가 끝났을 땐,
“와아-”
리허설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나 역시 헛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입꼬리에 걸린 희미한 미소에 난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괘, 괜히 알려줬나?’
군 면제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