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older brother of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7)
탑스타의 친오빠가 되었다 97화
역시나.
윤아의 장악력은 항상 내 예상을 뛰어 넘는다.
형편 없는 랩 실력이지만, 그 특유의 아우라로 단숨에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합격을 주진 않겠지?’
윤아가 걱정 되어 저 뒤에서 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여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미친. 너무 귀여워.”
“뭐야. 왜 이게 듣기 좋은 거지?”
“한번 더 들려 주면 안 되나?”
과연 모두 칭찬일색이다.
분명 이들도 수많은 랩을 들어봤으니, 윤아의 랩 실력이 어떤지는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
이런 게 바로 마법이 아닐까.
그런데,
“정윤아 씨······.”
나는 주머니에서 합격 체인을 꺼내려고 하는 렛트를 보게 되었다.
‘뭐야. 설마 진짜 합격 목걸이를 주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합격을 줘버리면······.
“아! 죄송해요.”
그때 윤아가 갑자기 렛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제가 오늘 여기 나온 건 꼭 한번 이 예선 무대에 참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제 버킷리스트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합격을 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물론, 합격 목걸이를 주지도 않으셨겠지만.”
윤아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여기 예선 무대에 참가하는 지원자들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오늘 제 형편 없는 랩을 들어 주시느라 모두 감사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고 물러갈게요.”
그리고 응원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오늘 예선에 참가하신 분들, 꼭 열심히 해서 본선까지 올라와 주세요. 그럼 제가 꼭 본선에서 부르시는 노래 피쳐링을 해드릴게요!”
“······!?”
그 말에 예선장이 술렁였다.
“저, 정윤아가 피쳐링을 해준다고?”
“미친. 그럼 정윤아랑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거야?”
“본선에만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
“무조건 올라간다. 무조건!”
심사위원들 앞에 주눅이 들어 있던 참가자들이 갑자기 열기를 활활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늘 예선에서는 심사위원들이 고생을 좀 할 것 같았다.
* * *
“오빠~!”
윤아는 홀가분한 얼굴로 내게 총총 뛰어왔다.
“헤헤. 많이 기다렸지?”
“아니야. 잘하고 왔어?”
“웅! 진짜 재밌었어. 오길 잘한 거 같아.”
그러면서 윤아는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내가 꼭 여기 나와 보고 싶었거든.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
“버킷리스트?”
“몰라? 죽기 전에 해야 하는 그런 목표들 있잖아.”
“그거야 알지. 그런데 벌써부터 버킷리스트를 만들었어?”
“그럼~ 아무리 우리가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잖아.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빨리 이루는 게 낫지. 오빠는 버킷리스트 같은 거 없어?”
버킷리스트라-
흠. 딱히 생각해 본 건 없었다.
예전에 매니저 생활하면서 한번쯤 생각해 봤던 게 있다면······.
“골프?”
“잉? 골프?”
“그냥 좀 궁금했었어. 워낙 사람들이 치는 걸 좋아하니까. 아버지도 골프 엄청 좋아하시잖아.”
연예인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연예인 중에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보통 권투, 유도, 축구 같이 거칠게 몸을 쓰는 운동만 해서 그런지, 대체 왜 가만히 서서 공만 채로 때리는 운동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프로도 아닌데, 그것에 목숨을 걸고 날마다 바쁜 스케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장을 나가는 연예인들을 보며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 배워 보겠다는 마음만 먹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구나······. 의외네.”
“그치? 뭐, 언젠가 배울 기회가 오겠지. 근데 넌 버킷리스트가 또 뭐 있는 거야?”
“음~ 저번에 병원 가서 봉사활동한 거랑, 여기 나와서 예선 무대 참가하는 거랑, 그리고 해외에서 노래 부르는 거랑~”
윤아는 하나씩 리스트를 말해 주었다.
듣고 보니 이제까지 우리가 다 한번씩은 했던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아직 더 남아 있긴 해. 조금씩 이뤄나가려고.”
해맑게 웃고 있던 윤아는 곧 안색을 굳히며 배를 매만졌다.
“배고파······.”
그래. 왜 그 얘기가 안 나오나 했다.
나는 축 처진 윤아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안 그래도 오빠가 여기 근처 맛집 하나 알아 왔어.”
“응? 뭐 파는 곳인데?”
“떡볶이.”
“!?”
잠시 생기를 잃었던 윤아의 눈빛이 번쩍 뜨였다.
* * *
“오빠. 화이팅~! 잘하고 와야 돼?”
“응. 고마워.”
“이것도 챙겨가. 배고프면 먹어.”
나는 윤아의 응원이 듬뿍 담긴 피자빵을 받았다.
윤아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빵이었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알겠어.”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촬영장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이쿠. 어서 와.”
“우리 스타께서 오셨네. 하하.”
내가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늘상 봐왔던 촬영장 분위기는 딱딱했다.
선후배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고, 군기 같은 것도 있어서 뭔가 불편했는데, 여긴 사뭇 달랐다.
딱딱하기 보다는, 많이 부드러운 느낌이다.
“다 우리 윤성 씨 덕분이죠.”
“······네?”
“원래 분위기가 무거울 만도 한데, 윤성 씨 덕분에 많이 풀어진 느낌이랄까요? 하하.”
PD는 그 공을 전적으로 내게 돌리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윤성 씨가 나오는 장면은 분량이 많지 않아요. 딱 등장만 하는 느낌이랄까?”
“아, 네.”
“금방 찍고 퇴근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내가 촬영할 분량은 정말 짧았다.
그냥 나라는 등장인물이 있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는, 딱 등장만 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금방 찍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짧은 장면이긴 해도 제대로 보여 주는 게 좋겠지?’
비록 분량이 짧은 장면이라고 해도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 배우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역시 다들 아우라가 장난 아니야.’
배우에게도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중이었다.
이들의 연기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나는 이 두 눈으로 판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진짜였다.
신인은 거의 없고, 베테랑들만 모여서 그런지 모두 촬영할 때마다 아우라가 미쳐 날뛰는 것이 보였다.
‘이러니 드라마가 잘 됐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하다.
그것이 흥행 요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여기 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배우들의 아우라를 천천히 흡수했다.
그들의 강렬하고 충만한 연기력이 내 몸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윤성 씨. 그럼 촬영 들어갈게요.”
“네.”
나는 감독의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쿠쿵-!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아, 이런.”
오늘 분명 일기예보에는 비 올 확률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또 속은 건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죠, 감독님?”
“오늘 촬영, 이대로 쫑입니까?”
“음-”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 때문에 스텝들이 헐레벌떡 천막을 세우고 배우들은 그 안으로 들어와 비를 피했다.
“오늘 촬영 못 하면 스케줄이 또 다 꼬여 버리는데.”
김기한 PD는 미간을 좁히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가들과 상의하며 비가 약해지는 걸 기다렸지만,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젠장. 어쩔 수 없나.”
이대로 강행하든가, 아니면 다시 날을 잡든가.
둘 중 하나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원래 대본대로라면 화창한 날씨에 하는 것이 맞잖아요?”
“네. 그런데 스케줄을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대본을 바꿔서 촬영하는 게 어떨지······.”
“배우들 의견부터 한번 물어보죠.”
배우들의 의견도 나뉘었다.
어차피 실내에서 촬영하는 거니 상관없는 배우도 있고, 야외에서 촬영하는 배우들은 온몸을 비에 적셔야 하니 꺼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 오히려 좋다고 보는데요?”
정윤성의 의견은 달랐다.
“윤성 씨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 찍어야 되는데. 괜찮아?”
“네. 전 오히려 밝은 날씨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여기 극중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사생아라는 신분 때문에 무시를 받잖아요? 그 착잡하고 슬픈 마음이 날씨를 통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음.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
김기한 PD가 작가들에게 고개를 스윽 돌려보았다.
그들도 정윤성의 의견이 나쁘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해봅시다. 일단 윤성 씨 것부터 촬영을 해보는 걸로. 만약 괜찮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찍고. 어때요?”
정윤성이 먼저 찍겠다고 나서는데,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의견을 모은 뒤, 촬영을 시작했다.
“좋아요. 촬영 들어갑니다. 모두 준비해 주시고······큐.”
감독의 외침에 따라 여러 카메라가 동시에 움직이고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으며 감정을 잡고 있던 정윤성도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터벅- 터벅-
주르륵 내리는 빗물에 온몸이 젖은 정윤성.
맑은 날씨에, 화사한 얼굴로 등장하며 여주인공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원래 대본이었지만,
“······.”
지금은 우중충한 날씨에 그 마음을 대변하듯, 원통함이 가득한 얼굴로 빗물 섞인 눈물을 흘리며 그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걸어 나오면서 여주인공과 눈을 마주쳤다.
“······.”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그런 침묵이 어색하지 않게 퍼져 나오는 빗소리.
여주인공이 보내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정윤성에게서 나오는 아련한 눈빛이 섞여 들어가며 정말이지 넋을 놓게 되는 완벽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컷.”
그렇게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한참을 초과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을 찍던 김기한 감독은 뒤늦게 넋을 놓고 있던 정신을 차리고 컷 사인을 내렸다.
“와.”
“방금 뭐야?”
촬영장에 있던 모든 배우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녹화된 결과물을 보진 못했지만, 모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 장면이 얼마나 극적으로 잘 촬영되었는지를.
“방금 장면은 무조건 써야겠어요, 감독님.”
작가의 말에 김기한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무조건 써야 하는 장면임이 확실했다.
‘이런 걸 두고 하늘이 돕는다고 하는 건가?’
잘 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하는 것마다 술술 풀린다는 설이 있다.
안 될 놈은 싹수가 노래서 처음부터 안 된다고, 그와 반대로 잘 될 놈은 알아서 일이 풀리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도 그렇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비가 내려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인지.
‘아니. 단순히 구도 문제가 아니야.’
만약 다른 배우였다면 이 장면을 어떻게 소화했을까.
처음 이 장면을 찍으면서 정윤성이 화면에 잡혔을 때, 김기한 PD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철렁였다.
빗물에 젖어 있고, 침통해 보이는 저 얼굴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사기적인 저 비주얼도 한몫했지만, 감정 연기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이 기회를 그냥 날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여기서 조금 더, 조금만 더 정윤성 안에 있는 포텐셜을 터트린다면 얼마나 더 뛰어나고 심장 떨리는 장면이 나올지 기대가 됐다.
“저기 우리······.”
그는 홀딱 젖어 있는 정윤성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하, 한번만 더 찍어보면 안 될까요?”
그때 정윤성이 보이던 눈빛을 김기한 감독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