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아무래도 들켜버렸다
호평을 받은 포지션 평가 일주일 후,
그 사이 한 해가 지났고, 보컬 포지션 평가의 결과는 보컬 A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결과는 56대 44. 박빙이라 생각했던 무대 퀄리티 속에서, 현장평가단들은 유빈의 말대로 더 끌리는 쪽을 선택했다.
도입부의 임팩트와 탄탄한 보컬의 조화가 인상 깊었던 무대.
그런 호평과 함께 무사히 생존에 성공했더랬다.
“다들 무사히…살아남았네요.”
서하임은 핸드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예고편 영상을 빨리감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하게도 시청자 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포지션 평가에서 무사히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얼마나 떨었는지.
지난번 1차 순위 선발식에서 3위를 확정지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번 운명공동체 포지션 평가는 그만큼 변수가 있는 경연이었으니까.
이변을 일으켜 첫 번째 탈락 후보가 된 팀은 퍼포먼스 C팀, 바로 케빈이 속한 그룹이었다.
‘시청자 투표로 기사회생하려나.’
약쟁이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이번 타이밍에 탈락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손 안 대고 코 풀어주면 감사하지. 물론 세상일이 늘 그렇게 수월하게 풀리지만은 않겠지만.
시청자 투표가 들어간다면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케빈의 생존 가능성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때, 명랑한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하이-.”
진세현, 서하임, 하준서.
늘 보던 그 조합, 익숙한 멤버들 틈새에 조금 낯선 얼굴이 끼어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네? 아.”
차성빈이다.
대체 누가 데려온 건지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같은 방에 있었던 미친 친화력의 인간.
차성빈이 아는 척을 하며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기분 좋은 상상이려나? 명창 도서한 선생님 무사 진출 축하드립니다.”
여기에 있는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보컬 A팀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이러다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팬들이 이를 악물고 나를 위해 투표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12점이나 앞선 점수로 보컬 B팀을 이겼을 때,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어찌나 놀랐던지 카메라가 있다는 것도 잊고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응, 하필이면 그게 이번 예고편에 올라왔지.
이미 벌써 그 짤은 ‘화들짝 햄찌 GIF’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화들짝!”
날 놀리는 데 진심인 서하임이 바로 옆에서 그 당시 내 표정을 재현한다.
툭-
나도 모르게 물병을 떨어뜨렸던 장면까지 섬세하게….
“그만하라고!”
적당히 해, 이 인간아!
서하임은 몸을 억지로 파르르 떨면서 능청스레 말을 더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목청도 커진 거 봐. 악!”
“하여간 맞을 때까지 해요.”
진세현은 익숙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준서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맞다. 전광판이 떴다는데…. 인증샷 한번 찍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아, 전광판.
서하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즉각 대답했다.
“좋아요.”
“다 같이 가면 될 것 같은데요.”
“나도 좋아!”
전광판이 올라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요근래 평가 때문에 하도 정신이 없었던 터라 신경 쓰지 못했다.
하준서가 원래도 이런 걸 섬세하게 잘 챙기는 편이지.
감사의 인증샷을 찍으러 가야 하는데, 곧 있을 순위 선발식 전에는 가는 게 좋을 듯싶었다.
다음 평가가 시작하면 한창 또 바빠질 테니까.
하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꼽았다.
“그러면 하임이랑, 세현이, 서한이 다 간다는 거지?”
“네!”
“내일 저녁 먹고 다들 시간 돼…?”
그 순간, 빤히 느껴지는 한 사람의 눈동자.
부담스러운 시선에, 차마 모른 체를 할 수 없었다.
하준서는 흠칫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같이…가시게요?”
아니, 우리가 언제 같이 봤다고.
애초에 저 사람 내 방에 왜 있는 거지?
내 빤한 시선에 차성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우, 저는 안 가도 돼요.”
“아… 그래요?”
“네, 비록 같이 갈 사람은 없지만.”
응?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다녀와야 할 것 같지만….”
“어쩌면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신 친구 많잖아!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시리네.”
주섬주섬.
난방 따닷하게 잘되고 있는 실내에서 옷가지를 여미는 차성빈을 본 진세현이 빠르게 결론 내렸다.
“그냥 같이 가죠.”
* * *
검은 비니, 검은 선글라스, 얼굴의 절반을 덮는 마스크까지 착용한 하준서가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가렸는지 앞이 보이긴 하나 의문이 들 수준이었다.
서하임은 하준서를 보고선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패션 대애박!”
“그렇게 멋있어?”
“지인짜 수상해 보여요!”
하준서는 서하임의 팩폭에 얻어맞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내가 봐도 좀 많이 수상해 보여.
“곧 있으면 현상수배도 들어갈 것 같아요, 형.”
아무리 연예인들이 꽁꽁 싸매고 나간다지만… 저 정도 패션이면 오히려 더 어그로가 끌리지 않나?
이쪽은 너무 과해서 문제고, 이쪽은….
“서한아!”
서하임은 맨 얼굴을 쓸어내리며 내쪽을 돌아보았다.
“솔직히 이러고 나가도 모르지 않을까?”
“그건 아닐걸요.”
하준서가 유난인 건 맞지만 그건 너무 당당하잖아!
이미 지난 생에서 한 차례 겪어본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홍대 가면 전광판까지 가지도 못하고 사람들 몰려들 거예요. 절대 안 돼요.”
“에이.”
“진짠데…. 빨리 뭐라도 가려요.”
스타더스트 프로젝트가 끝나고 반년이었나.
적어도 그맘때까지는 어딜 가면 피리 부는 사나이마냥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하물며 인기가 절정일 지금?
여기저기 도망 다닐 거 아니라면 무리다.
“도서한 연예인병 걸렸어…억!”
나는 서하임의 종알거림을 무시하고 그 맨 얼굴 위에 검은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흡사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는 듯한 하준서의 패션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명색이 방송물 먹은 연습생인데 적당히 숨기고 다니기는 해야지.
그래 봤자 결국 들키기는 할 테지만.
서하임은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얼굴을 가렸고, 그 모습을 본 하준서는 오히려 더 꽁꽁 싸매버렸다. 덕분에 곧 굴러갈 것 같은 비주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는 동안, 차성빈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 섰다.
하준서와 같은 조가 된 뒤로 은근히 붙어 다니는 모양이던데, 아직 나와는 어색한 사이였다.
애초에 친구도 많은 사람이 왜 이 조합에 끼어들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어찌 되었건, 차성빈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내게 아는 척을 해오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저 너무 긴장되는데.”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인데.
“너어무 떨린다….”
차성빈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이도경 2호 마냥 능구렁이 같은 저 인간이 어째서 훗날 개복치가 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사람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아무튼, 전광판 투어가 떨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7년 전 전광판 투어를 돌았을 때의 기억이 전생 마냥 흐릿해졌기도 하고…. 혹시 팬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서.
또, 매니저를 대동하고 가는 것도 아닌지라, 혹시 모를 불상사가 없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태산인데, 출발해야 할 시간은 다가왔다.
시계를 힐끗 확인한 하준서가 목을 꽁꽁 싼 목도리를 풀고선 말했다.
“슬슬 출발하자.”
* * *
평일 오전의 홍대입구역.
직장인들은 이미 출근했을 애매한 시각, 다섯 명의 인영이 조심스레 역 근처에 내렸다.
아무리 배짱이 좋았어도 차마 지하철을 당당히 이용하는 무모함을 보이진 않았다.
흡사 007 비밀작전 마냥 하준서의 자가용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다섯 사람은 잔뜩 경계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람… 왜 많아?”
“그러게요. 바로 걸릴 거 같은데.”
“역시 더 싸맸어야 했어.”
이 애매한 시각에도 홍대 입구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번화가다.
서한은 귀를 쫑긋 세운 채 역 아래로 내려갔다.
하준서가 다소 튀는 패션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서하임은 방방 뛰며 계단을 내려가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당.”
홍대입구역도 들려야 하고, 합정역도 들려야 하고. 오늘 하루 만에 가야 할 곳이 많다.
다 둘러보려면 지금부터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 도서한 전광판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섯 명은 두 눈을 굴리며 강남역의 전광판들을 스캔했다.
“어!”
그때, 가장 적극적으로 역 안을 헤집고 다니던 서하임의 레이더망에 익숙한 문구가 들어왔다.
[낭랑 18세 햄찌 도서한의 데뷔를 응원해]스타더스트 프로젝트 ‘도서한 연습생’에게 투표해 주세요!
“저기 전광판 있다.”
“어, 진짜요?”
서하임의 속삭이듯 뱉은 한 마디에 도서한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지하철역 벽 전체를 뒤덮을 만큼 커다란 전광판. 그 큼지막한 화면에 제 얼굴과 함께 저를 응원하는 문구들이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위로 붙은 수많은 팬들의 포스트잇까지.
처음이 아니다.
이전 생에도 봤었던 전광판이지만… 뭐랄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애초에 저 자리, 대충 봐도 정말 비싸 보이는데.
열여덟의 도서한은 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계산까지 마친 뒤, 감동이 울컥 밀려왔다.
이게 말이 되나?
전광판… 생각보다 진짜 큰데?
“…와.”
서한은 커다란 두 눈에 색색깔의 포스트잇들을 천천히 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이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지난 1차 평가 때의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
전광판 안의 서한은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한은 홀린 듯이 전광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섰다.
인증샷을 찍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저 본능이었다.
더 가까이 다가서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
“이게 다 뭐야….”
[서한아 빛나는 너의 무대처럼 더 빛나는 자리에서 데뷔하길 바랄게] [우리 귀여운 아가 햄찌 ㅠㅠ 섹시 컨셉은 안된다] [도서한 제발 데뷔해] [여기 와서 서한이가 보고 갔으면 좋겠다! 널 이렇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맴서한 사랑해 꼭 데뷔하자] [서한이 직캠 영상이 내 최애 영상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 돌려본다. 너는 정말 아름다운 별이야.]“하아….”
서한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뱉었다.
잠시 눈앞이 일렁였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던 탓이었다.
솔직히 누군가를 이렇게 응원한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먼 곳에서 여길 찾아와 자신이 볼지, 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응원 글귀들을 써놓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러한 전광판이 다른 역에도 몇 개 더 있다는 게 더욱 놀랍다.
이 전광판 위를 수놓은 수많은 응원 글귀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한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는 것이다.
낯선 감정이 울컥, 폐부를 치고 올라왔다.
“감사하네….”
서한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 차성빈이 물었다.
“에엥? 울어요?”
“네? 아닌데요.”
킁.
눈물이 찔끔 흐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서한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기분 탓이에요.”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서하임이 두 눈을 반짝였다.
“어라, 맞는 것 같은데. 눈이 약간 붉은데.”
“안구건조증이네요.”
“수상하다. 수상한 냄새가 나….”
“저리 비켜요.”
서한은 자신을 놀려먹으려 하는 서하임을 필사적으로 밀어내고선 포스트잇 몇 개를 떼었다.
힘들 때 하나씩 읽으면 힘이 날 것 같았다.
“이건 제가 좀 챙겨갈게요.”
“와, 진짜 많다…. 서한이 좋겠는데?”
다 뜯어가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신중하게 몇 개 고른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서한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전광판 투어의 하이라이트. 인증샷을 찍어야 했다.
수상해 보이는 일행들의 움직임도 급격히 분주해졌다. 검은 비니로 얼굴을 반쯤 가린 진세현은 황급히 자세를 잡은 채 휴대폰을 들었다.
조용히 찍고 가자던 인간들이 어째 말이 많아졌다.
“조금만 더 뒤로 갈까?”
“어, 서한아. 그 상태로 눈물 한 번 흘려보자.”
“…?”
“오우, 지금 포즈 좋은데?”
찰칵.
포스트잇을 양손에 들고 싱긋 웃어 보인 서한의 얼굴이 폰 화면에 담긴다.
또다시 찰칵-
그렇게 명랑한 셔터음이 지하철역에 울려퍼지던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수군대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은근한 시선들이 느껴졌던 것 같긴 한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 도서한이다!”
잠깐만.
“차성빈인데?”
“미친. 야. 진세현이잖아!”
“서하임…미친….”
“으아아아아악! 준서야!”
아무래도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