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전설의 용을 임시보호합니다 (1)
나는 그때까지도 엘세노테가 담긴 배낭을 들고 있었다. 어찌나 무거운지 팔이 후들거렸는데, 놓쳤다가는 작은 엘세노테마저 말라 죽어버릴까 봐 그럴 수 없었다.
“달리아와 데이지는요?”
“인간들이 데리고 있…….”
엔비의 고개가 고장 난 듯 기기기긱,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엘세노테의 사체로 향했다.
엔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발은 모래에 잠겨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죽은 엘세노테의 패각 또한 공작성으로 챙겨갈 생각이었기에, 일꾼들이 달라붙어 가죽 포대와 노끈으로 포장하는 중이었다. 엔비는 엘세노테의 껍데기를 마저 부수고, 살코기를 걷어내는 사람들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다가, 몸을 변이시켰다.
“지금 이게 무슨-!”
엔비의 목에 핏줄이 서고, 덩치가 미친 듯이 부풀었다. 놈의 두 눈이 금세 흰자위를 잃었다. 그의 머리를 타고 지느러미가 솟기 시작한 그때.
나는 황급히 배낭을 내밀었다.
“엘세노테! 안 죽었어! 엘세노테! 엘세노테 님은 여기에 있어요!”
배낭을 엔비의 코 밑에 밀어붙이며 다리로는 놈의 정강이를 퍽퍽 쳤다. 엔비는 내 말을 단숨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피핀과 라기아까지 나서서 놈을 진정시키자 효과가 생겼다.
“엘세, 엘세노테 님이라고……?”
“여기에 있어요! 저건 진짜가 아냐! 물론, 한때는 진짜였지만 지금은 진짜가 아냐. 내 말을 들어봐요. 여기, 이걸 봐!”
엔비는 알코올중독자처럼 손을 떨면서 배낭을 받아 들었다.
“엘세노테 님……? 정말, 엘세노테 님이라고?”
꾹 닫힌 가방을 열어보는 엔비는 점점 쭈그러들어서,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눈자위만큼은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새카맣게 물든 채 돌아오지 못했다.
“엘세노테 님…….”
엔비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엔비가 손을 너무 떨어대는 바람에 배낭에 담긴 물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엔비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엔비가 졸도할까 봐 놈의 뺨을 찰싹찰싹 치며 말했다.
“보세요. 살아 계십니다. 수룡 헤일로의 공격을 받고 패각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기 있는 에드먼드 성자님이 분신을 찾아주셨어요. 분신이라고 할지, 새로운 몸이라고 할지…….”
“아아…….”
엔비의 새카만 눈에서 눈물이 퐁퐁 샘솟았다.
“아…….”
엔비는 배낭 안에 머리를 완전히 집어넣을 것처럼 하고, 이를 사리물고서는 울었다.
“아아아아!”
엔비는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그는 목에 핏대가 서도록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배낭을 추슬렀다. 엔비의 손 위에서 작은 엘세노테와 엘세노테가 담긴 물이 허공으로 솟아났다. 배낭 없이도 물은 완벽한 구형을 이루며 허공에 떠올랐다.
엘세노테를 바라보는 엔비의 눈빛은 애절했다. 가리비는 엔비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패각을 여닫으며 반응을 보였다.
나와 피핀은 머쓱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서로 먼저 엔비에게 말을 걸어보라는 눈치를 주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나도 피핀도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피핀이 평소처럼 ‘물고기 녀석 궁상떨기는’ 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고마워, 시에라. 고맙다, 피핀. 엘세노테 님을 구해줘서…….”
괴로운 침묵을 깨고 엔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엔비의 평소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겸허하고 정중한 인사였다. 엔비는 엘세노테가 담긴 투명한 어항을 몸 가까이에 둥둥 띄운 뒤, 계속 멍하니 바라봤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엔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맞아요. 우리가 구했죠. 위기에 처한 엘세노테 님을.”
피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당장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피핀의 얼굴을 멀찌감치 치워내고, 엔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피핀이 아니었다면 엘세노테 님은 헤일로에게……. 끔찍한 얘기는 하지 말죠. 다행히 제가 육지에 떠밀려온 엘세노테 님을 발견하고 바닷물에 넣어드렸으니 망정이지.”
“으응, 고맙다. 시에라.”
“엔비 님께서 그렇게 고마워하신다니 저도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만 보람을 느껴서야 의미가 없고…….”
엔비가 눈썹을 축 내리며 불쌍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대가……. 대가를 원하는 건가? 하지만 난 줄 수 있는 게 없어. 네가 말한 그대로야. 빈손으로 육지에 온 나는 내놓을 게 없지. 나약하고 어리석어서 엘세노테 님을 지키지도 못했어. 엘세노테 님의 성전은 무너졌지…….”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이번에도 엔비 님보다 똑똑한 제가 정해드릴게요.”
엔비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가볍게 다독였다.
“브랙큰이 폭주했을 때, 달리아와 데이지를 지켜주셨죠? 그 공을 저도 높게 평가합니다. 엔비 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달리아와 데이지가 위험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래, 내가 도움이 됐다. 내가……!”
“객식구는 더 늘리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죠. 엘세노테 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세요. 대신 이제부터 엔비 님은 달리아의 호위 기사가 되어주시는 겁니다.”
“아……!”
“엘세노테 님도 함께 집으로 가죠. 곁에서 지키고 있으면 엔비 님도 좀 안심이 될 테니까.”
“시에라!”
엔비의 얼굴이 단숨에 환해졌다.
“내가, 도움이 됐구나?”
“그렇다고 봐야겠죠.”
“내가 도움이 됐어…….”
엔비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는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웃었다.
[♥♥♥♥♥]노력할 때는 그토록 올라가지 않던 호감도가, 드디어 꽉 찼다.
[호감도 조건을 달성했습니다.]상태창이 반짝이면서 엔비의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집채만 한 가리비와 그 앞에 무릎 꿇은 작은 소년이 보였다. 엔비의 과거였다.
‘호감도를 다 채웠을 때 볼 수 있는 이벤트 장면이구나…….’
엘세노테 앞의 엔비는 무척 작고 연약해 보였다. 광활하고 고요한 바닷속에 오로지 혼자 남아, 입을 꾹 다문 가리비를 꼭 껴안고 있는 소년.
어린 엔비가 엘세노테에게 무어라 말을 걸고 있는 게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 외로움이 서려 있으리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벤트 장면은 아른아른하게 흩어져갔다. 내 앞에 있는 건 훨씬 더 자란 엔비와 그의 작은 어항에 담긴 가리비였다.
“내게 맡겨줘. 달리아와 엘세노테 님을, 이번에는 꼭 지켜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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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엔비
직업 : 엘세노테의 성전
성격 : 질투 –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만, 성취도가 높습니다
특성 : 희열 – 전투에 희열을 느낍니다. 유효타를 줄 때마다 다음 공격이 더욱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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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의 상태창이 변했다. 전사였던 직업이 ‘엘세노테의 성전’으로 변했다. 근데…… 성전(聖殿)은 직업이 아니라 장소잖아?
직업이 이상하기는 했으나, 본인은 만족하는 모양새였다. 뻐끔거리는 가리비의 상태도 좋아 보였고.
“이런저런 일에 휘말렸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자, 루고사에서의 여정은 여기까지로 하고…….”
“나으리. 나으리. 아직이에요. 아직 마무리할 수 없는 게 남았어요.”
피핀이 내 말을 끊고 뒤를 가리켰다. 해변 한가운데, 배를 깔고 누운 폭풍의 용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건 어떻게 하죠?”
“…….”
타이머스 황태자가 아직 데지데리움을 찾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와 놈을 치워보려고 노력했지만, 용은 모래가 밀릴 정도로 세차게 콧방귀를 뀔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인이 알아서 찾아가겠지.”
“용을 민간인이 있는 곳에 내버려 두나요? 따지고 보면 용도 마수인데……. 거기다 황태자의 소유라면 더더욱,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
피핀의 잔소리를 듣는 동안 데지데리움과 눈이 마주쳤다. 데지데리움의 눈동자는 초록색으로 빛나며 나를 빤히, 아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안의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집요하고 강렬한 눈빛이었다.
“피핀. 날아본 적 있어?”
“예?”
나는 엔비와 피핀을 끌고 데지데리움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데지데리움은 나에게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기울여주기까지 했다.
거대한 머리가 수그러들고,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콧잔등을 매만졌다. 거칠거칠한 감촉은 달리아의 방에서 키우는 도마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했다.
“데, 데지데리움이 이렇게 얌전하다니…….”
피핀이 눈을 빛냈다. 엔비도 처음 보는 용의 모습이 신기한지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구경은 천천히 하면 될 거고.”
타이머스 황태자가 어디에 있을지는 뻔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직 브랙큰의 성전에 있을 것이다. 아직도 싸우고 있으려나? 지금쯤이면 결판이 났을지도.
“브랙큰의 성전까지 날아갈 거야.”
“예?”
“응?”
나는 힐끔 에드먼드를 쳐다봤다. 에드먼드는 이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나중에 걸어서 가든지 알아서 하겠지.
데지데리움의 콧잔등을 연신 쓰다듬던 나는, 어느 순간 데지데리움과 마음이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주문을 외웠다.
“개와 늑대의 시간.”
***
“우욱……. 웩…….”
브랙큰의 성전 터. 데지데리움에서 내리자마자 피핀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너는 무슨 기사가 뱃멀미랑 비행기 멀미를 다 하냐. 아, 비행기는 아니지……. 용 멀미……?”
“욱……. 우욱…….”
정신을 못 차리는 피핀의 등을 마구 두드리다가, 기다려 주기 지쳐서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브랙큰의 성전은 내가 떠나왔을 때보다 더 황폐하게 변해 있었다. 밤에는 그래도 건물의 기둥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터만 남았다.
성전을 완파시켜버린 범인은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먼지와 평생 인연이 없게 생겨서는……. 완전 험한 몰골이 됐네.’
테네리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폐허 위에 서 있는 황태자는 자신의 두 수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옷도 성치 못했고, 다리 쪽에 부상을 입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타이머스 전하!”
그의 안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크게 충격받은 것처럼 연기하며 허겁지겁 달려갔다.
“괜찮으십니까? 그 상처는……! 상대는 도망친 모양이군요. 전하가 걱정되어 급하게 날아왔습니다.”
“해변의 상황은?”
사람이 기껏 걱정해주는데, 타이머스의 반응은 뚱했다. 나의 정성에 감격하든,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계를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도통 정이 가지 않는 녀석이다.
무뚝뚝한 타이머스 대신, 릴리와 오키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인사했다. 나는 간략히 해변의 상황을 전했다.
“거의 다 정리됐습니다. 현장에는 아직 성자 에드먼드가 남아 있으니, 주민들은 안전할 겁니다.”
나는 그다지 궁금하진 않지만, 여기까지 온 거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괜히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갑자기 나타나셔서 정체불명의 괴한과 싸우시다니…….”
“시에라.”
“네.”
“네가 데려가. 데지데리움.”
“네?”
타이머스의 말은 그게 끝이었다.
데지데리움을 데려가라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