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불청객이라고 무작정 내쫓을 순 없잖아 (6)
아네모네에게는 자신만의 정의와 신념이 있었다. 도둑질을 하더라도 평판이 나쁜 부잣집을 털었고, 죽도록 때리기는 했지만 진짜 죽게 두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하고 주관적인 정의의 선이 있었기에, 괴상망측한 일이 가득한 삶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아네모네는 시에라에게 큰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정의를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감옥을 부술 듯이 난동을 부리고 있지만, 의도만큼은 선량하다.
“이거 풀어! 내가 때려서라도 놈의 생각을 바로잡겠어!”
아네모네가 소리쳤다. 코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안 풀어드리는 거예요.”
코카의 단호한 태도를 본 아네모네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사람은 죽이지 않지만 거짓말은 한다. 아네모네의 논리는 오직 그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사실은 그냥 도련님이 보고 싶어서 그래…….”
처량한 목소리로 말하자 코카가 흠칫하며 귀를 기울였다.
‘역시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반응하는군.’
아네모네는 코카의 눈치를 살피며,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되는 거지만, 나를 두고 먼 대륙에 간다고 하니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어. 혹시 나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 말이야.”
흑흑, 가식적인 훌쩍임도 덧붙였다. 이 거짓말을 들은 아젤은 아네모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반응했다.
“이제 알았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거군요! 바람둥이 귀족 연인을 단속하기 위해 황급히 이곳으로 온 거였어요! 우리를 버린 게 아니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야!”
“그래. 도련님, 아니 시에라가 워낙…….”
시에라에 관한 칭찬을 늘어놓아야 할 타이밍인데, 아네모네는 말을 잃었다.
‘칭찬하고 싶은 게 없어.’
한참을 고민하던 아네모네는 떨떠름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워낙 그러니까.”
아네모네의 말도 안 되는 고백을 들은 코카는 “흐음…….” 하고 신중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공작님이 좀 그런 면이 있죠.”
자기 맘대로 해석해서 알아들은 코카는 이미 아네모네와 시에라가 모종의 관계일 것이라 단정 지은 상태였다. 피핀의 작은 서재에서 로맨스 소설만 골라 빌려 본 탓일까. 코카의 사고는 오염된 지 오래였고, 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작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활약하는 소녀라니……. 정말 엄청난 이야기예요…….”
코카는 있지도 않은 사랑에 감동하며 코끝을 매만졌다.
“공작님께 충성을 다하기로 한 제가 사랑의 장애물이 되는 거군요.”
“너도 그런 거 싫지? 괜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싫은 소리나 들어야 한다니 말이야. 말도 안 되잖아.”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코카의 우렁찬 대답에 아네모네가 흠칫 당황했다. 코카는 이 상황에 깊게 몰입한 나머지 귀까지 빨개졌다.
“당신을 두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공작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공작님도 지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계시지만 지금 마음이 복잡하실 거예요. 만일 용의 허리에 숨겨둔 다른 연인이 있다면……. 공작님은 지금 갈팡질팡…….”
그 와중에 아네모네의 표정은 차게 식었다.
“비록 두 사람을 두고 고민하는 게 못된 짓이라 할지라도! 저는 공작님의 편! 공작님께서 선택하는 분을 사모님으로 모셔야겠죠.”
코카가 주먹까지 쥐며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아네모네는 속으로 ‘가지가지 하는군.’ 하고 담백하게 코카를 경멸했는데, 아젤은 아니었다. 아젤 또한 코카와 비슷한 족속이었다. 순진하고 남의 말을 쉽게 믿는 타입이랄까.
“그런 게 어딨어!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당연히 우리 대장을 선택해야지! 엄청나게 강하고! 아름답고! 성격도 그, 좋고!”
아젤이 왁왁 시끄럽게 소리치며 아네모네를 대변하던 때에. 코카는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저는 공작님 편이긴 하지만, 아네모네 당신과도 조금의 정이 있잖아요? 내보내 주는 것 이외에 딱 한 가지만 부탁을 들어드릴게요. 공작님께 편지를 받아달라거나, 공작님께 말을 전해달라거나, 필요한 물건을 구해달라거나…….”
“필요한 물건?”
아네모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면 딱 한 가지만 구해다 줄 수 있어? 쉬울지도 몰라. 어려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이게 사실 시에라와 나의 사랑의 증거 같은 거거든?”
“네! 뭔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해드리죠.”
아네모네는 음흉한 미소를 억지로 참아가며 대답했다.
“데지데리움의 지팡이를 가져와 줘.”
“네? 하지만 그건…….”
데지데리움은 그때의 승부 이후로 다시 피핀의 작업실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다음 승부가 있을 때까지 숨을 고를 셈이라던데…….
“데지데리움은 제 권한 밖에 있어요. 그분도 어엿한 손님이라서요. 제가 오라 가라 할 처지가 못 돼요.”
“하지만 부탁은 할 수 있잖아. 데지데리움도 나의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야. 녀석도 얼마나 마음이 쓰이겠어?”
“그럼…….”
코카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머리를 괜히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물어는 보겠지만, 안 될 수도 있어요.”
“고마워.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아네모네가 처연하게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감명받은 코카는 외투를 두르고 지하감옥을 빠져나갔다. 데지데리움에게 지팡이로 변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래, 이건 다 공작님을 위해서야……!
“…….”
코카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아네모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지하감옥 기둥에 묶여있는 아젤이 있었다. 아젤의 눈시울이 붉었다.
“대장……. 대장에게 이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대장을 향한 나의 충성은, 대장이 귀족이 되더라도 달라지지 않아! 그러니 사랑을 좇아!”
아젤이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네모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젤에게 다가갔고, 발길질로 화답했다.
“으억. 여전히 강하구나, 대장은. 그런데 대장도 묶여있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일어났지?”
“멍청아…….”
아네모네는 코카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헛소리를 늘어놓는 동안, 다리에 묶여있던 끈을 풀어냈다.
“너는 너무 순진해서 탈이야.”
“내가?”
아네모네와 아젤은 서로에게 남은 끈을 풀어주었다. 코카를 데지데리움에게 보낸 건 이 때문이었다. 코카가 가능한 먼 곳에 가야 했다. 그래야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공작이 괜한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나서야겠어. 나까지 연루된 상황이라 도저히 모르는 척하질 못하겠다고.”
“대장은 마음씨도 곱구나!”
“너는 조용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일단 가자.”
아네모네는 아젤을 데리고 걸음을 서둘렀다. 시에라가 용의 허리에 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
“팔찌가 반응하고 있어. 아네모네가 지하감옥에서 도망쳤군. 코카 녀석 또 헛소리에 속아 넘어갔나 보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자꾸 로맨스 소설을 빌려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지. 아네모네와 그 부하가 달리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달리아는 속이기 쉬우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피핀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다른 명령은 내리지 않으시나요?”
“어떤 명령을 말하는 거야?”
“도망친 아네모네를 잡아 오라는 명령이요.”
아네모네의 탈출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노리기도 했다.
‘아네모네가 이대로 공작성에서 벗어난다면…….’
초월자 셋 중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상황. 시체포식자를 잡는 데 실패한다면, 다음에 없애야 하는 존재는 아네모네다.
하지만 이미 아네모네의 힘을 경험한 나는 쉽게 나설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놈이 아네모네를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시체포식자의 보호자, 테네리페라면 아네모네와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달리아라는 패를 절대 내보이지 않으면서, 초월자 중 하나를 없애야 해.’
아네모네가 나에게서 최대한 멀어진다면, 테네리페가 아네모네를 처리하기 더 쉬워질 것이다. 나와 아네모네가 무관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아네모네를 잡아 올 필요는 없어. 하지만 가급적 혼자 있게 만들어야 해. 녀석은 내가 용의 허리에 가지 못하게 막고 싶을 거다. 그러니 당장엔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렇게 내 주변을 맴돌면서 다른 동료들과는 합류하지 못하도록 방해해.”
“복잡하네요. 하지만 알겠습니다.”
“달리아를 보호해. 무조건. 아네모네와 달리아가 접촉할 수 없도록.”
“예.”
피핀은 곧장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집무실을 떠났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용의 허리에 도착하면 한시름 놓는 거야. 시체포식자를 없앤다. 그러면 모든 게 해결돼.’
간단한 일인데 왜 이렇게 착잡할까.
시체포식자의 이름을 외치며 울었다는 테네리페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시체포식자는, 괴물이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누굴 없애려 하는 걸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한숨을 쉬며 머리를 쥐어짰다. 오늘 밤, 편히 잠들기는 그른 것 같다.
***
에드먼드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있는 줄도 모르고, 도망자 둘이 공작가의 정원 수풀 사이로 숨어들었다.
‘초월자로군. 환각의 마녀는 글러토니 영애인 걸 확인했고. 시체포식자는 데미안……. 남은 건 폭풍의 마녀인가?’
가만히 있어도 풍기는 마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초월자 둘을 데리고 있었다니. 시에라 글러토니. 무시할 만한 놈이 아니야. 뭐, 초월자 중 하나는 방금 도망친 것 같지만.’
에드먼드는 아네모네의 마력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시에라 글러토니는 테네리페 러스트와 한패일 터. 심연의 악마를 막기 위해 폭풍의 마녀를 제물로 바칠 생각이군.’
완전하지는 않지만 엇비슷하게 시에라의 의도를 읽어낸 에드먼드였다. 그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또 다른 마력의 기운을 읽어내기 위해 애썼다. 그는 괜히 우수에 젖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똑똑.
창문턱 아래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한 것이다.
에드먼드가 창문의 잠금을 풀었다. 이어 창문 틈 사이로 식물 줄기가 침입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덩굴줄기는 창문을 활짝 열더니,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계단을 만들었다.
에드먼드의 손님은 식물로 된 계단을 밟고 조심스럽게 등장했다.
“오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신중한 분이시니까요.”
“많이 고민한 건 사실이지만, 오지 않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요.”
공작성에 몰래 숨어든 것은 오키드 리비도였다.
“데스트루도 님은?”
“잠재우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며칠은 버틸 수 있을 테죠. 약물로 기절시킨 것에 가까워서……. 조심해야 합니다. 데스트루도는 제 계획을 모를 테니까요. 아니, 안다고 해도 별수 없겠죠.”
오키드는 에드먼드의 팔을 속박하던 마도구를 풀어냈다. 마도구의 열쇠는 황태자의 측근만 접근할 수 있는 방에 보관돼 있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배신에 목덜미가 선득했다.
하지만 이까짓 일로 떨면 안 된다. 오키드 리비도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약속, 지키시는 겁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해낼 겁니다.”
에드먼드가 자유로워진 손목을 매만지며 웃었다.
“오키드 데스트루도 님을 시체포식자에게 먹이고, 당신은 온전한 한 명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