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용이나 도마뱀이나 다섯 살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 (4)
달리아에게 도마뱀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공룡이 미취학 아동의 아이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맞나?
스위트피는 왜 도마뱀 이야기를 받아주고 있었던 거지? 스위트피도 달리아만큼 도마뱀을 좋아하는 건가?
도대체 도마뱀이 뭐가 어쨌는데! 이 세계의 도마뱀은 뭔가 다른 거냐고!
속으로 백날 의문을 표해봤자 달리아의 도마뱀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도마뱀이 중요한 건 아니지. 달리아나 스위트피는 그 시각 도마뱀 얘기나 하면서 놀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 깨어 있기는 했지만 이상한 낌새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명이라도 들었다면 이에 관한 언급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아젤은 아이들의 대화가 ‘이상하긴 했지만 사건을 눈치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어린아이들의 증언을 들을 필요는 없다. 가급적 선원의 죽음에 관해서는 숨기는 게 좋겠다. 누군가의 죽음을 어릴 때부터 접할 필요는 없으니.
내가 다음으로 찾아간 건 라기아였다. 그때 낄낄거렸던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분명 뭔가 알고 있는 것이리라.
“라기아. 묻고 싶은 게 있어.”
침대 옆에 세워둔 라기아가 진동하며 내게 반응했다. 바깥의 소란 덕분인지 라기아도 대강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는 듯했다.
[여어, 시에라.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같더라? 사람이 죽은 모양이지?]“역시 라기아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거지?”
[글쎄다.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최대한 빨리 범인을 알아내고 싶어. 범인을 격리하든지 처리해야 앞으로의 항해가 순탄할 테니까.”
[미안하지만 나도 범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해. 알잖아! 나한테는 다리가 없는 거! 게다가 사건 당시에 나는 네 옆에 있었고.]“음……. 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다가, 퍼뜩 눈을 들었다. 라기아의 말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건 당시가 언제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아하하하핫!]“네 말은 대부분 맞아. 넌 무기니까 움직일 수 없지. 사건 당시에도 침실에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때 분명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고, 지금도 말을 이상하게 해. 뭔가 알고 있는 거지? 말해줘!”
[나는 거짓말은 안 했어!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했지. 그 기운이 살의를 품었다는 것까지는 감지를 했는데 말이야,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잘 몰라. 난 눈이 없으니까! 아하하하!]“농담으로 얼버무리려 하지 말고!”
[이 배에 숨어든 손님이 있어. 아주 독특한 기운을 풍기고 있지. 살의는 그들에게서 나왔어.]“숨어든 손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
[알면 말해주지! 아하하하! 하지만 나는 눈이 없거든. 인형 눈을 붙여준다고 해도 못 본다? 아하하핫! 그러니 직접 찾아보도록 해. 너희와 함께 출발한 선원의 짓은 결코 아니니까 말이야.]라기아는 의미심장한 힌트를 남겨주고는 혼자 낄낄거리며 이상한 농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걸 알았다.
범인은 우리와 함께 출발한 선원이 아니다. 외부인이야. 그렇다면 서류와 실제 인물을 대조해보면 알겠지.
“공작님. 선원들을 샅샅이 조사해봤지만, 톰슨에게 원한이 있었다거나 특별히 갈등을 빚는 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배에 타고 있는 선원 모두의 신원 서류를 가지고 있지? 가져와. 그리고 한 명씩 면담해 보겠다.”
“알겠습니다.”
선장의 안내에 따라 선원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모두 살인사건에 관해 취조를 받느라 지쳐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배에 처음 타고 있었던 선원은 나의 일행을 제외하고 16명. 한 명이 죽었으니 이제 15명이다.
서류를 검토하고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16번째의 미스테리한 살인범은 나오지 않았다. 아네모네에게 창고 등지를 수색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쪽에서도 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수색해도 외부인은 나오지 않아. 설마 진짜 범인은 우리 쪽에 있는 건가?”
만일 우리 쪽에 범인이 있다면…….
나는 왜 자꾸 코카만 의심하게 되는 걸까. 그 선원이 도둑질이라도 하는 걸 발견해서, 일단 죽인 게 아닐까? 죽이고 나서 ‘참, 명령이 없었는데 괜히 죽였다’ 하고 모르는 척 도주한 건 아닐까.
범행 도구였던 칼을 두고 지문이라도 대조해보면 일이 쉽게 풀릴 텐데, 이 세계에 당장 지문 대조 기술을 도입하려면 선진 문명 외계인 다섯 마리는 잡아 와야 할 것이다.
‘코카에게는 미안하지만, 유력한 범인 후보이기는 해.’
이때가 늦은 저녁. 떨떠름한 식사를 마치고 나는 코카를 내 방으로 불러냈다.
“코카. 오늘 고생 많았지?”
“…공작님……. 사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코카는 낮은 스툴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조금 혼란스러워요, 공작님…….”
이건 거의 자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는 코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다가가기로 했다. 보통 야생동물 잡을 때 전문가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코카의 옆자리로 천천히 다가가서, 녀석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동료애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콱 잡아서 어디 도망 못 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다 털어놔도 돼, 코카.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이해할 수 있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코카의 어린 시절은 삭막하다 못해 새카맸다. 윤리의식이란 건 우주 저 멀리 내던진 환경에서 태어나, 사람을 죽이느냐 죽이지 않느냐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 삶이었다.
그러니 이번 사고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코카는 재미로 살인을 하는 미친놈은 아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나는 코카를 위해 황실에 무슨 변명이라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이머스가 나타난다면 코카를 희생양으로 삼아 거기 버려두고 나올 것이다. 아무튼 나의 의리는 이 정도 깊이는 된다는 뜻이다.
“정말이죠? 정말 다 털어놔도 되는 거죠? 공작님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인데도…….”
“어?”
음, 뭐지? 살해 동기 같은 건가?
그 선원이 내 뒷담화를 해서 홧김에 죽였다거나. 뭐 그런 시나리오인가 싶기도 하다.
“일단 말해 봐.”
“피핀 경에게 들었습니다. 아네모네 양과 아젤이 이 배에 동승했다면서요……. 저더러 꼭 함구하라고…….”
“아아, 그건 그렇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네모네가 배에 탄 건 의외였지만,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시체포식자를 잡지 못했을 경우에는, 테네리페가 아네모네를 사냥하도록 두는 게 내게 이롭다. 그러니 여차하면 두 사람을 용의 허리 어딘가에 버려두고 쏠랑 귀가할 생각이었다. 나와 주변 사람이 보호하고 있는 달리아보다, 고립된 아네모네를 공격하는 게 쉬울 게 아닌가.
이건 테네리페를 위한 선물이었다. 우리가 선물이나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아네모네 양이 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 것도 잠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에게 물을 전해주러 갔는데요, 글쎄 그런…….”
“왜? 무슨 일이야? 시점을 정확히 말해. 어제 일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오늘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있는 거야?”
“오늘이에요.”
“이런.”
코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괴로운 듯 말했다.
“아젤에게서 놀라운 말을 들었어요. 어젯밤 공작님이 소이 영애와 함께 계셔서 살인범일 가능성이 없다고.”
“아아…….”
나는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아젤 녀석, 그게 뭐 좋은 소식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거야? 코카가 내 측근이라 안심한 모양인데…….
하긴 소문꾼이라면 입이 싸다는 증거이기도 할 터. 장점이 단점이 되는 전형적인 상황이군.
그런데 코카는 아까부터 별 얘기 안 하고 있으면서 혼자 괴로워하는 걸까. 나는 코카의 어깨를 다독였다. 위로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입 좀 빨리 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고, 공작님께서는…….”
코카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나를 쳐다봤다. 약간의 경멸과 슬픔이 섞인 눈빛이었다.
“공작님께서는 아네모네 양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중이신가요?”
“엥?”
코카의 황당한 말이 이어졌다.
“아네모네 양이 그랬어요. 어젯밤 공작님과 소이 영애께서 오붓하게 밤하늘을 보며 미래를 약속했다고…….”
“걔가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닌데.”
아네모네가 툭 던진 말은 코카의 귀로 들어가 이상한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피핀이 빌려준 로맨스 소설로 잘못된 감수성만 부풀어가고 있는 암살자가 하나 내 눈앞에 있다.
“코카, 잠시만…….”
“저는 어느 분을 사모님으로 모셔야 하는 거죠? 신분으로 보면 소이 영애께서 공작부인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사실 아네모네 양이 첫사랑이신 거잖아요? 그렇죠? 이러다간 아네모네 양과 소이 영애 두 분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지고, 그런 모습을 본 달리아 아가씨가 사춘기를 겪다가 허황된 사랑을 외치는 남자에게 홀랑 빠져서 사랑의 도피라도 하면……. 이건 너무 끔찍한 길이에요!”
코카는 아예 엉엉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어이가 없어도 눈물이 나온다면, 바다의 절반은 내 눈물이었을 것이다.
“야 이 자식아. 달리아는 건드리지 마라. 달리아는 영원한 나의 공주님이라고. 우리 달리아는 사춘기 없어.”
나는 코카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코카는 울먹이며 헛소리를 이어 나갔다.
“공작님의 마음은 너무 가벼워요! 한 분에게 정착하셔야 해요! 그래야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지는 거라고요!”
“내 마음이 가볍다 한들 네 상상력만큼 가볍겠냐. 좀 진정하고 헛소리 좀 그만해. 이제 너도 마수도감 읽어. 로맨스 소설 좀 그만 보라고! 너 어젯밤에도 로맨스 소설 읽고 잤지! 볼 거면 더 건전한 로맨스 소설을 읽든가!”
“하지만……!”
코카의 멱살을 잡고 쥐고 흔들던 때에, 시체를 정리하고 온 피핀이 내 방에 들어섰다.
“나으리. 코카를 죽이실 셈이신가요? 그러다 목 졸려 죽겠는데요.”
“다음 사건은 내가 일으켜볼까 해.”
“그만두세요.”
피핀이 코카와 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배에 이상은 없었어? 시체는 어때?”
“시체는……. 뱃사람의 방식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납득은 가지만…….”
뱃사람의 방식이라면 아마 수장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코카의 목을 조르러 가던 손을 거뒀다. 그래, 코카를 바다에 던지고 갈 순 없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시체와 사건 현장을 살펴봤는데, 사망 원인은 따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상처가 깊지 않았어요.”
“뭐?”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손목 부근에 작은 짐승에게 물린 자국……. 이제 보니 퍼렇게 질려 있더군요.”
“작은 짐승이라니. 이 배에 짐승 같은 건…….”
그때 내 머리를 때리고 가는 단어가 있었다.
“도마뱀.”
“아, 도마뱀 정도라면 그런 상처를 낼 수 있겠네요. 이거 살인사건이 아니라 사고가 아닐까 합니다.”
“…….”
어쩌면 범인을 알고 있는 건, 우리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가지 않은 사람이 남아 있지……. 달리아가 잠들기 전에 얘기를 나눠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