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사람도 사령도 도서관에서는 정숙 (1)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여주인공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굴길래, 자기 사람은 다 아끼는 인물인 줄 알았다.
어쩌면 피핀도 황태자의 밑에 있었더라면 같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마침 저 미친놈이 피핀을 쳐다보며 의식했다. 귀족도 아닌 낯선 얼굴이 맹하게 서 있으니 신경이 쓰일 법도 했다.
“이쪽은 저의 호위 기사 피핀입니다. 피핀, 황태자 전하께 어서 인사드려.”
피핀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뻣뻣한 인사를 건넸다. 황태자는 답하지 않고 피핀과 눈싸움을 계속했다.
마치 야생동물 두 마리가 서로의 영역에서 잘못 마주쳐서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 야생동물이 조금 더 약해 보이는 것 같은데, 착각이기를.
황태자가 원래 자기 사람이 될 피핀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적의를 보일 줄은 몰랐다. 이런 대우를 받을 바에 내가 피핀을 채와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봐라, 타이머스 황태자. 얘는 원래 네 호위 기사였다. 이젠 내 거지만.
나는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는데, 멍청한 내 호위 기사는 인상을 팍 쓴 채 콧물이나 훌쩍거렸다.
“쓸 만한 검을 찾은 모양이네.”
황태자 나름의 칭찬인 듯했다. 그러나 그 말투는 냉랭했고, 표정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놈의 정체를 파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상태창을 확인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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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타이머스 세콰이어 노아마즈
직업 : 지배자
성격 : 인색 – 타인의 호감도를 올리기는 어렵지만, 보상 획득 확률이 올라갑니다
특성 : 규율 – 호감도와 무관하게 상대의 기술이나 힘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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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재수 없는 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호감도였다.
[♥♥]호감도가 검은색이 아니라 빨간색? 그것도 2개?
믿을 수 없어서 다시 살펴봤지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저 쌀쌀맞고 위협적인 얼굴이, 호감 가는 친구를 보는 얼굴이란 말인가? 애당초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긴 한다고? 아니면 그냥 좀 높게 평가한다는 정도인가?
황태자는 호감도랑 다르게 살가운 맛이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나에게도 더 볼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데지데리움에게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런 놈을 홀린 듯이 쫓아갔다.
“너 혹시 나랑 친구야?”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럴 순 없고.
일단 오키드가 친 사고의 보상을 받긴 해야 했다.
“데스트루도가 사고를 쳤나 보지.”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황태자는 자연스럽게 내 목적을 파악했다.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 데스트루도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엄청 화려하게 일을 저지르고 가셨습니다.”
“보상은 따로 하지. 가봐.”
도대체 이게 무슨 친구야.
이쪽도 그냥 가버리고 싶지만, 목적이 있으니 못 가는 거라고. 나는 진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보상이라면 따로 원하는 게 있습니다.”
황태자가 데지데리움의 위협적인 이빨을 매만져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흡사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째서인지 데지데리움도 눈을 치켜뜨며 나를 흘겨봤다. 숨 막히는 분위기에 도망치고 싶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범생이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다.
“황실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왜.”
“찾아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황태자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그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뭘 찾아보고 싶은 건데.”
“…….”
사령술사에 관해 알아보고 싶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제국에서 사령술사란 역적보다 못한 존재였으니까.
더군다나 황태자는 사령술사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놈이다. 다행히 둘러댈 말이 있었다.
“곧 마수 토벌이 아닙니까.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수수리 해역은 저에게 낯선 장소이니까요. 또 어떤 마수를 만나게 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고민이고…….”
“시에라 글러토니가 드디어 도움이 될 생각을 하나 보지.”
말 정말 밉게 한다. 이런 놈과 친구 먹는 녀석이 세상에 있을까?
속으로 잔뜩 이죽거리는데, 보다 보니 황태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가 자세를 고치고 나를 바라보는데, 표정이 꼭 사납기만 한 건 아니다.
염려스럽다는 듯, 나를 걱정한다기보다 별다른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눈치는 정확했다.
“지금은 도서관에 갈 수 없다. 허가해 주고 싶어도 안 돼.”
“어째서입니까?”
“…황실 도서관에 사령이 출몰하고 있다.”
“사령?”
오히려 좋아.
“어떻게 된 일입니까? 황실 도서관에 사령이라니…….”
강한 사령이면, 내가 잡아가도 될까? 벌써 두근거리는데!
“얼마 전 황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갔다가, 의문의 사령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더군.”
황태자는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역겨웠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뒤 도서관은 폐쇄했지.”
“…직접 물리치지는 않으시고요?”
황태자의 표정이 대번 날카로워졌다. 맞는 말을 했는데 왜?
그때 멀찍이 서 있던 오키드 주교가 내게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사령을 매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오키드의 말에 황태자가 또 그 매서운 눈을 부라렸다. 데스트루도였다면 무섭다고 펄펄 뛸 만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들으니 알 만하다.
결국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거 아냐.
사령이 죽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녀석, 좀비 영화는 절대 못 보겠구만.
다음 설명은 오키드가 도와줬다.
“사령의 모습이 워낙 끔찍하다 보니, 다들 겁을 먹고 퇴치를 꺼리고 있습니다. 저 또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해서……. 교회에서 구마사제를 보내준다고 했지만 일이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제가 해결하면 어떻습니까?”
나는 황태자에게 대뜸 고개를 들이밀었다. 황태자가 내 어깨를 밀어내며 무뚝뚝하게 받아쳤다.
“오만한 객기를 부리는군.”
“겸손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죠.”
“할 수 있다면 해봐.”
황태자의 거만한 허가가 떨어졌다.
“사령을 물리치고, 트라이 아포스라는 책을 찾아와. 그렇다면, 그걸 해낸다면… 앞으로 도서관 자유 출입을 허가해 주지.”
“무르기 없습니다.”
나는 피핀에게 턱짓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
“가자, 피핀.”
***
나와 피핀은 황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책이 많은 방 정도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황실 도서관은 공작성의 별관만큼 거대한 성이었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은 유적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입구 또한 크고 화려했다. 도서관의 규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피핀의 눈이 번뜩였다.
“마수에 관련된 책이 잔뜩 있겠죠? 두근두근해요. 나으리께서 일하시고 저는 책 보면 안 될까요? 안 되겠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우리뿐이었다. 여러 조각상이 놓인 홀을 지나, 도서관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문지기가 한 명 있었는데, 이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황태자 부하구나, 성격 안 좋겠구나, 하는 직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지기가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호위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도서관 사서인가? 오키드 못지않게 키가 작고 왜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피라냐처럼 사납게 벼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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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벤자민 카모마일
직업 : 사서
성격 : 질투 –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만, 성취도가 높습니다
특성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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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검은색 하트다. 세 개나 주다니 인심도 후하셔라.
보아하니 카모마일 가문의 막내인 것 같은데…….
“우리는 황태자 전하의 명을 받고 입장하려는 겁니다.”
“아하. 벌을 받는 모양이지? 사령에게 한 번 당해봐야 하는 놈들이 온 거잖아.”
나는 상태창을 살피며, 놈의 신경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왠지 이렇게 싹퉁머리 없이 나오는 타입은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진단 말이야.
마침 놈의 성격은 ‘질투’. 호레이 주교를 대할 때와 비슷한 유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카모마일 가문의 막내아들은 게임 속 엑스트라 중 엑스트라다. 이름은 언급되지만, ‘가문의 떨거지’ 정도로 표현되는 안쓰러운 운명의 소유자. 사생아라서 황태자에게 들러붙고, 그런 놈에게 여주인공이 따끔하게 한 소리 하는 에피소드가 분량의 전부.
그렇다면 놈이 기분 나빠할 만한 말은 뻔하다.
“그럴 리가요. 저는 시에라 글러토니 공작입니다. 못 알아보셨나 본데, 황태자 전하의 소꿉친구이자 직접 명령을 받을 정도로 신임받는 귀족이지요. 오늘도 문제를 해결하라고 직접 ‘파견’하신 거거든요.”
그리고 이죽거리며 덧붙였다.
“문지기님은 귀족가에 관해 잘 모르시나 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어서 비켜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내 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문지기 카모마일이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카모마일 백작가의 어엿한 소생입니다. 아무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이런. 저는 무시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오해를 하게 해드려 죄송하군요.”
내가 너무 심술 맞았는지, 피핀이 옆에서 나를 툭툭 건드리며 만류했다. 하지만 원래 말리는 사람이 더 얄미워 보이는 법이다.
카모마일은 피핀을 보고도 씩씩거리다가, 한결 풀죽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그래봤자 공작님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무시무시한 놈들이 도서관을 차지했다고요. 아무도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나서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카모마일은 맹목적일 정도로 황태자를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부하를 뒀다니 그 이상한 놈이 받기엔 아까운 애정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도 카모마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황태자가 용 때려잡는 모습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용의 뿔을 휘어잡아 내리치던 모습이란.
그렇게 강한 놈이 지금까지 도서관의 유령을 내버려 둔 데는 이유가 있다.
“황태자 전하는 사령을 몹시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싫어하는 것뿐이라면 직접 해치웠을 것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무서워하시는지도 모르겠군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카모마일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분명 화가 난 거겠지. 하지만 저도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 금방 고개를 떨궜다.
“어쩌면 공작님 말이 맞아요. 하지만 두려워하시는 게 아닙니다. 괴로워하시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죠?”
카모마일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눈치를 살폈다.
“아무튼 내가 말할 순 없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나 말해주십시오. 황태자 전하의 허락, 아니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으니까요.”
어휴우우. 조그만 대가리가 한숨을 한 번 푸우욱 쉬더니 아까보다 훨씬 풀 죽은 모습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 사령이 발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