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칼이 정색하면? 검정색! 하하하핫 (1)
결국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우리는 다시 상자를 열었다. 시끄럽다는 것만 제외하면, 라기아는 훌륭한 검이었다. 늘씬한 몸체와 하늘빛이 도는 검신. 손잡이는 파도가 새겨져 있었고, 마력에도 민감한지 내 마력이나 자연에 흐르는 마력에까지 공명하는 게 느껴졌다.
[하! 인간들 참 매정해. 바닷속에서 그물로 건져줬을 때는 착한가 싶었는데 말이야.]그건 그냥, 물고기처럼 잘못 걸려든 것 아닌가.
[갑자기 숨 막히게 천으로 둘둘 싸서 나를 상자에 처박질 않나.]“…….”
[아, 아하? 이거 유머인데? 다들 유머 감각도 없구나. 검은 숨을 쉬지 않지롱! 하하하하하핫!]피핀이 나를 보며 음침하게 물었다.
“뚜껑 다시 닫을까요? 아니면 멀리 던져놓고 올까요?”
“후우…….”
헬리오는 곤란하다는 듯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런, 이상한 면이 있는 줄은 몰랐어. 원래는 황태자 전하께 진상할 물건이었는데, 전하께서 너한테 선물로 주라고 하셨단 말이야. 나는 아무튼 잘못 없어. 아니지, 차라리 황태자님께서 이런 망측하고 품위 없는 물건을 드리지 않았으니 잘된 일일지도.”
헬리오가 자리에서 도망칠 듯 뒤를 돌았다. 나는 그의 뒷덜미를 날쌔게 잡아챘다.
“어디 불량품을 떠넘긴 채 달아나려고.”
[그래! 나도 낯선 사람의 검이 되는 건 사양이야. 원래 주인이 있단 말이야.]우리는 말하는 검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이 검, 마수 토벌에서 쓸 수 있을까?
서커스단에 팔아넘겨야 할 것만 같은 검이 실전용으로 도착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아, 바다! 나의 고향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엔비를 만나야 해! 싫어도 그게 내 숙명이라고. 엔비를 알아? 다들 모르겠지. 인간이라. 이번 대의 인어 왕이 될 사내지. 강하고 아름답고, 성격은 좀 그래. 성격은 좀 많이 맛이 갔어. 아무리 나라도 옹호해줄 수 없을 정도로.]‘엔비’라는 이름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래, 이번 마수 토벌에서 내가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엔비’였다. 인어족의 후계자. 강한 전사.
생각해 보면 놈에게 이런 검이 있었던 것도 같다. 호감도를 전부 채우면, 엔비가 여주인공에게 마수 토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전설의 검을 보상으로 준다.
지금 보니 그 검이 바로 이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엔비는 여주인공에게 생각보다 골 때리는 물건을 사랑의 증표로 선물했던 것이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그저 보검, 명검 정도로 표현됐던 거라, 이런 자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아이템은 인벤토리에서 대충 사용하는 게 전부였으니, 검에게 말을 걸어본 기억도 없고.
이 검은 여주인공이 마수 토벌을 할 때마다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는 상급 무기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다.
[아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엔비, 잘 지내니! 물론 넌 날 좋아하지만, 나는 널 안 좋아한단다! 그래도 바다에 돌아가고 싶어. 이건 내 맘! 하하하핫!]라기아는 계속 바다에 돌아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내 맘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만일 라기아가 바다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주인은 엔비가 될 것이다. 엔비는 이 검을 후에 여주인공에게 떠넘기겠지. 그렇다면 여주인공은 마수 토벌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남주인공 중에서 당연히 시에라 공작을 제외하면, 남는 사람은 다섯.
황태자, 피핀, 엔비, 사제, 드래곤.
이들은 여주인공의 강한 모습에 반한다. 여주인공 아네모네가 강력한 활약을 하게 두면, 우리 달리아에게 쪽팔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후에 여주인공과 달리아가 마주쳤을 때, 달리아가 그녀만 못하게 보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 차라리 이 시끄러운 검은 내가 맡아두자. 정 쓸모가 없다면 파괴하면 되니까. 저택 깊은 곳에 숨겨 두거나, 후에 달리아가 자랐을 때 선물로 주거나.
어떻게 처리하든 절대 여주인공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순 없어.
헬리오가 피핀과 협력해 상자를 다시 봉인하는 동안, 나는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 두 사람을 만류했다.
“잠시. 생각이 바뀌었어.”
“예? 부숴서 버리시게요? 역시 그편이 확실하게 조용하겠죠.”
피핀이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자 안에서 라기아가 꿈틀거리며 반항했다.
“아냐. 우리가 갖겠다는 거야.”
나는 헬리오를 쳐다봤다. 헬리오는 머쓱함과 민망함, 의외라는 표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검, 어차피 우리 주는 거죠?”
“그, 그렇지. 황태자 전하의 명령이니까.”
나는 상자를 발로 차서 뒤로 밀었다.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지만,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귀한 검,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하께 전해 주십시오.”
“정말, 가져도 괜찮겠어? 시에라 공작, 내가…….”
“노아마즈 제국 최고의, 아니 세계 최고의 무기 상단 헬리오헬리안의 선택 아닙니까. 분명 큰 뜻이 있었을 겁니다.”
거짓말과 인사치레는 나의 본질과도 같다. 내 영혼을 쪼개면 안에서 인사말과 거짓말이 우르르 떨어질 것이다.
“이 검은 우리 글러토니 공작가에서 가보로 삼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으리, 진심이세요? 아직도 시끄러운데요.”
“괜찮아, 괜찮아. 얼마나 귀한 검이면 계속 조잘거리겠냐.”
헬리오는 내 선택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물을 거절당하면 내가 황태자 전하께 면목이 없어지는데, 글러토니 공작, 좋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말하더니 사람을 시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정직한 사람에게 금도끼, 은도끼까지 넘겨주는 산신령에라도 빙의한 걸까.
헬리오는 선물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여기, 사실 글러토니 공작도 무기를 원했으니 가져온 게 있어.”
“이게 뭐죠?”
“쇠스랑.”
“…농기구 아닙니까?”
헬리오 이 자식, 쇠도끼를 주는 돌팔이 산신령이었다.
“저보고 농사나 지으라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게 비아냥거릴 의도로 가져온 것이었는지, 헬리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뭐. 농사는 삶의 근간이니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걸 가져다 달라며?”
“그게 무슨 개… 휴, 알겠습니다. 일단 이것도, 감사히 받아는 두겠습니다.”
한숨을 쉬며 쇠스랑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무기처럼 생기긴 했는데, 본질이 농기구 아닌가? 농기구를 든 사령술사라니, 꼴이 웃겼다.
“헬리오 경. 이왕 오셨으니, 저녁 식사라도 함께하고 가시죠.”
“그래도 되려나? 사실 손님이 한 분 더 계시는데…….”
“손님?”
“선물을 전해 줄 때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고 하셔서…….”
헬리오가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게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곧, 시끄러운 검 라기아보다 더 요란스러운 행렬과 함께, 조그만 소년이 등장했다.
‘저 녀석은…….’
생긴 게 타이머스 황태자와 판박이였다. 그런데 크기는 팍 줄여서, 달리아만큼이나 쪼그라들었달까.
무뚝뚝한 표정까지도 타이머스와 판박이인, 4황자 데이지 세콰이어 노아마즈였다.
“…….”
“4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여기까진 어인 일이신지?”
한쪽 무릎을 꿇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데이지는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쇠스랑을 응시했다. 어린애답지 않은 차가운 시선은 피핀과 저 멀리 상자에도 닿았다.
“당신의 것.”
“예?”
“아냐.”
“…….”
“주인에게 돌려줘.”
띄엄띄엄 하는 말에는 어조도 무엇도 없었다. 혹시 저 검이 하는 얘기를 들었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는 둥, 바다로 가고 싶다는 둥 했던 이야기 말이다.
헬리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데이지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데이지 전하, 저 시끄러운 검은 이제 글러토니 공작의 것이랍니다.”
“맞아.”
음?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지…….”
“이거. 막대기. 긴 거.”
데이지가 가리키는 건 쇠스랑이었다. 꼬맹이는 쇠스랑과 피핀을 이어 가리키며, “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상자에 넣어둔 요란스러운 검과 나를 함께 가리키며, “그의 것” 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린 황자의 눈에 내가 쇠스랑을 든 게 웃겼나 보다.
나는 하하 웃어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쇠스랑이 피핀의 것이고, 보검 라기아가 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모양입니다. 하긴, 공작이 농기구를 들고 있는 게 어색하게 보이기는 하시겠죠.”
대충 웃어넘기려는데, 데이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섯 살 꼬맹이가 아니라, 백 살은 족히 넘은 영감님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꼬까옷을 입어 귀엽기만 한데, 인상이 영 이상하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어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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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이지 세콰이어 노아마즈
직업 : 예언자
성격 : 무심 – 그 어떤 일에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특성 : 예언 –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감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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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라고? 이 조그만 꼬맹이가? 마법사가 아니라?
주변에서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예언자 꼬맹이는 나의 정체라도 꿰뚫으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예언자. 정말일까? 상태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다시 자세를 고치고 데이지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내가, 점쟁이를 만난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데이지 전하.”
“응.”
“제 동생 달리아는, 달리아는 열다섯에 행복해질까요?”
“…….”
데이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들어,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좁히기로 했다.
“우리 달리아는 커서 누구랑 결혼하게 될까요?”
남주인공들 중에 있나? 다들 성격 파탄에 여주인공 아네모네만 바라보는 멍청이들인데!
그럼 혹시 다른 사람? 다른 사람 중에 집안이 괜찮고 얼굴까지 잘생긴 캐릭터는 없었다.
게임 속 못난이들은 다 후보 아웃이다. 남주인공들은 더더욱 안 돼! 이 오라버니는 그런 거 용납 못 해! 차라리 혼자 살아!
“나으리. 달리아 아가씨는 이제 다섯 살이에요…….”
피핀이 한심스럽다는 듯 나를 붙잡고 말했다. 나는 눈을 희번덕 굴렸다.
“10년이면 약혼을 할 나이가 돼. 그사이 어중이떠중이들한테 속아 넘어가게 할 순 없어.”
“글쎄, 그러면 10년이나 남은 거잖아요.”
“데이지 전하!”
다들 내가 왜 데이지를 붙잡고 묻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래봤자 글러토니 공작의 유머감각이 허접하다는 소문이나 돌겠지.
“농담은 이만하고…….”
헬리오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궁금증이라고 할지, 화병이 돋았다고 할지, 자꾸 콧김이 세게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오라버니.”
때마침 달리아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검과 쇠스랑을 받는 과정에서 얌전히 기다리느라 지쳤던 모양이다.
“그래. 너도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야지. 뭐가 어찌 됐든, 내가 너만큼은 꼭 지켜줄게.”
달리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그때, 데이지가 달리아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