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9
래원에게는 올드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이렇게 안 찍었을 텐데···. 할 수 없지 뭐. 오늘 여기는 내 현장이 아니라 윤지협 선배의 현장이니까. 선배의 콘티대로 찍기로 내가 먼저 호언장담했으니까.’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자,
신영진 감독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이었다.
“래원아, 이거 꼭 콘티대로 찍어야겠냐?”
“네?”
“재미가 없잖냐. 나도 이거 네 스타일 아닌 거 빤히 알고···.”
“그래도 오답은 아니잖아요. 이 콘티 안에서 최선을 다해 찍어볼게요.”
래원이라면,
[요한(유진)]과 [보라]를 같은 앵글 안에 넣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래원이라면,
한 마디 한 마디에 변하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을 순간순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보라]가 뒤돌아서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게다가, 함현우와 민세라는 이 같은 연출을 소화할 만한 수준급 연기력을 갖추고 있었다.
신영진 감독의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읽은 래원.
허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선박의 선장은 단 한 명이어야 하며,
드라마 현장의 구심점은 두 개일 수 없으니까.
“감독님, 여긴 윤 선배의 현장이고, 저는 지금 일종의 아바타로 나와 있는 거잖아요. 윤 선배의 작업을 최대한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때,
분장을 고친 민세라가 또각또각 다가오더니 참았던 것을 터트리듯 입을 열었다.
“윤 감독님을 존중하려는 의도는 좋은데, 이건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콘티 아쉬운 거 배우들도 알고 신영진 감독님도 알고, 래원 감독님도 아는데 ‘존중’이라는 명목하에 그대로 따라주는 건 아니죠. 우리는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뭉친, 같은 팀이잖아요.”
래원도 민세라가 하려는 말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타로 나와 있는 래원의 상황에서, 아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래원 감독님한테 지금 이거 최선 아니잖아요. 더 잘 찍고 싶으시고, 더 잘 찍으실 수 있잖아요.”
민세라가 특유의 저돌적인 태도로 래원의 마음을 자꾸만 건드렸다.
어쩌면 래원이 듣고 싶었던, 바라왔던 그런 말들을 퍼부어주는 민세라.
“그럼 그렇게 찍으셔야죠. 래원 감독님이 찍고 싶은대로. 지금 메가폰을 쥔 건 감독님이니까.”
래원과 민세라.
두 사람의 마주한 눈이 같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01화 – 리디북스
지금 이 순간, 민세라의 성깔이 나름의 쓸모를 다 하고 있었다.
민세라의 말이 여러 사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었으니까.
는 윤지협 감독의 드라마이기도 했지만,
이 현장 모두의 작품이기도 했다.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고 있었다.
“윤지협 감독님께 이 장면 새로운 콘티는, 제가 건의했던 거라고 말씀드릴게요. 이젠 저도 아니까요, 현장이 잘 돌아가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이에 래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세라가 씨익 웃었고,
신영진 감독도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두 개 다 찍어보지, 뭐. 잘 찍어서 결과로 지협 감독님 설득하면 되는 거잖냐.”
“좋습니다. 새로운 콘티로 리허설부터 해볼게요.”
리허설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함현우와 민세라의 감정 연기는 더욱 깊어져 있었고,
둘은 베테랑답게 카메라에 잡힐 표정과 눈빛을 계산해서 표현할 줄 알았다.
‘과거 민세라가 이 작품을 찍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이유를 알겠다. 연기가 완전 무르익었네.’
인기와 악플은 비례한다는 말처럼,
과거의 민세라는 를 하면서 전에 없던 인기와 구설수 그리고 악평을 모두 한 몸에 받았더랬다.
민세라의 연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래원에게 그 당시 일들이 떠올랐다.
‘이번 삶은 다를 거야···. 달라져야만 해···.’
래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현장에 집중했다.
“신 감독님, [요한(유진)]이 마지막 대사 칠 때, [보라] 얼굴도 구치소 면회실 아크릴판에 반사되게 같이 한 화면에 담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그렇게 찍어보려고 렌즈 바꾸는 중이야, 도 감독.”
신영진 촬영감독과 래원은 척하면 척이었다.
다양한 시도를 좋아하는 것까지 말이다.
지금도 다채로운 구도로 최선을 다하는 그는,
래원과 취향이 맞는 촬영감독이었다.
그 덕분에 굳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이윽고,
새로운 콘티의 리허설을 순조롭게 마친 뒤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레디, 액션!’을 외치는 래원이었다.
래원의 머릿속에 얼마 전 김윤하 작가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모원호 감독의 신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안주해서는 안 돼. 욕심을 더 내야 한다.’
* * *
[민세라] 지협 감독님! 건강검진은 잘 받으셨어요? 오늘 촬영장에서 감독님 빈자리가 꽤 컸어요. 그래도 도 감독님이랑 촬영 잘 마쳤습니다! 5화 17씬이요, 원래 감독님이 주신 콘티대로도 찍고, 조금 다르게도 찍어뒀어요. 제 욕심에 다르게 가보고 싶다고 고집 피웠던 거라서···. 일단 한 번 보시고, 지협 감독님 마음에도 드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푹 쉬시고, 다음 촬영 때 뵈어요!장장 12시간 넘는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민세라.
그녀답지 않게 사근사근하게 애교 섞인 문자를 한 통 보내고는 침대 위로 나가떨어졌다.
“으아아아···. 안 하던 거 하려니까 속까지 울렁거리네. 사회생활은 역시 힘들어···.”
과거의 그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으니까.
“민세라 성질 많이 죽었다.”
민세라가 이토록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민세라의 몸은 지금 천근만근 피곤했지만,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으로 마음만큼은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씻고 나오더니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침대 위에 펼치는 민세라.
자기 전에 내일 촬영분을 한 번 더 체크하려는 것이었다.
“내일은 B팀이구나. 내일도 래원 감독님이랑 찍네?”
민세라는 요즘처럼 촬영장에 나가는 것이 즐거운 적이 없었다.
침대 위에 누워 내일의 촬영을 기대하며 달콤한 상상으로 잠에 빠져드는 그녀였다.
* * *
다음 날, SBC의 어느 편집실.
윤지협은 민세라의 문자와, 래원이 찍어둔 결과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도래원, 역시 제법인데?”
5화 구치소 장면.
[요한(유진)].즉, 요한의 육체 속에 갇힌 유진은
영혼이 바뀐 초기에는 형의 몸으로 자유를 만끽했지만, 이내 자신이 힘들게 이뤄낸 영광을 대신 누리며 점점 우쭐해지는 형 [요한]에게 분노의 감정을 싹 틔우게 된다.
뒤바뀐 영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게다가 형 [요한]의 잘못으로 자신이 구치소에 들어와 있는 현실에,
[유진]의 마음속에 형 [요한]에 대한 반발심과 복수심이 점차 커져만 간다.이때,
[요한(유진)]의 앞에 등장한 [보라]는 그의 먹잇감이 되기에 시의적절했다. [유진]은 구치소로 면회 온 그녀를 이용해서 [요한]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잊기는. 그냥 장난 한번 쳐봤어.”
“진짜야? 정말로 네가 어머니를··· 아니지? 내가 아는 넌 그럴 리가 없어. 너, 아닌 거지? 뭔가 오해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내가 그런 거 맞는데? 네가 헤어지자 그래서 그래! 되는 노릇이 하나도 없잖아. 홧김에 엄마도 죽이고, 불도 지르고, 나도 확 죽어 버리려고 했어. 다 형 때문··· 다 너 때문이야!! 꺼져!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이 말에 상처받은 [보라]가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요한(유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
윤지협은 촬영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지협,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내 콘티대로 찍은 것보다 이게 훨씬 세련됐잖아. 두 인물의 감정선도 잘 살고, 그림도 괜찮고···.”
이 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돌려보는 윤지협.
조금 전에는 시청자의 눈으로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면밀히 분석해볼 요량이었다.
구치소의 대화 내내 두 인물은 계속 한 화면 안에 공존했다.
구치소 아크릴판에 한 사람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친다거나, 서로 마주 보고 있다거나,
두 사람의 감정선에 따라 다양한 구도로 담아둔 촬영분이었다.
윤지협이 래원의 공을 꼬아 생각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에 가진 애착이 크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경쟁심이나 질투심보다 더 강력한 감정이 바로 애정이었으니까.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 앞에서는 누구나 솔직해질 수 있었고 지금 윤지협이 그랬다.
몸이 건강했으면 인정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윤지협은 후배 도래원의 선전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윤지협이 다시 편집에 몰두하려는데,
“으앗!”
허리를 굽혔다가 펴자 순간적으로 복부에 이상 통증이 느껴졌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별일 아닐 거다, 복막염 회복기에도 이런 통증이 종종 있었잖아.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다시 휴직해야 할 일이 생긴대도 괜찮아···. 는 도래원이 있으니까.’
* * *
SBC의 꼭대기에 자리한 사장실.
“날이 덥지? 곧 여름인가 봐?”
배미란 사장이 창밖 멀리에 높이 솟은 63빌딩을 응시하며 말했고,
황태수와 도래원은 사장실 소파에 앉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본론을 기다렸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올 거고, 가을 전에 드라마국 국장이 바뀌겠지? 뭐, 이 국장이 또다시 연임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렇게는 내가 그냥 안 둘 거니까.”
“······.”
“······.”
도래원과 황태수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배미란이 몸을 돌려 두 사람이 있는 소파로 또각또각 걸어왔고,
상석에 앉으며 다시 두 입술을 뗐다.
“나는 이번 국장 선거···. 조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어.”
황태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래원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이 편안한 얼굴이었다.
‘물론 이전 생에서와 100%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 정황상 큰 이변은 없을 것 같은데?’
래원의 이러한 생각을 대변해주듯이,
배미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 부장이 차기 국장 자리에 앉는 그림말이야.”
“···네? 제가요?”
황태수는 반 정도는 예상한 듯한 눈치였지만, 놀라는 척 반문했다.
“우리가 예전에 세웠던 계획보다 많이 앞당겨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 못 할 것도 없잖아.”
“··· 사장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번에 황 부장을 꼭 국장 자리에 앉힐 거야. 드라마국을 위해 내 나름대로 사활을 걸 거라는 말이야. 고 부사장이나 박 감사하는 개짓거리를 더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말이지···.”
배미란의 말속에 등장한, SBC ‘고 부사장’과 ‘박 감사’.
그들은 배 사장의 지시에 자주 반기를 드는 두 인물이었다.
SBC의 여러 부서 중 핵심은 단연 드라마국이었다.
광고주들이 가장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수익 대부분을 창출하는 곳이었으니까.
따라서 임원진과 이사진이 항상 높은 관심을 보이는 곳도 드라마국이었다.
[고 부사장]의 드라마국 라인은,김 부국장 – 최지철 부장 – 변덕규 그리고 하인혁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들은 지금 몸을 사리는 척하고 있지만
이번 드라마국 국장 선거를 이용해 반등을 노리려는 세력이다.
또한, [박 감사]의 드라마국 라인은
이 국장 – 문겸 부장 – 임장호 등등 까지 뻗어있었다.
그간 이 국장의 임기 내내 활개를 떨치던 세력이었더랬다.
그 때문에, 배미란 사장의 처지에서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그녀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드라마국을 우리 쪽으로 돌려야 해. 요즘 이사회나 임원진들 분위기를 생각하면 최적기야.”
“조용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황 부장 승진 이후로 계속 근평이랑 성과가 괜찮았으니 충분히 승산 있다고. 내가 이사진들한테 꾸준히 자네에 대한 미담을 뿌리 둔 것도 있고. 다음 달 사내 소식지에 자네 인터뷰도 싣기로 했으니까···.”
“네, 그것도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도 피디도 황 부장이 선출될 수 있게, 동기나 주변에 신경 좀 쓰라고.”
“그럼요, 여부가 있나요.”
래원은 배 사장과 황태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 삶에서는 나에게 악재로 작용했던 황태수 선배의 초고속 국장 승진.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만약 이번에도 황태수가 차기 국장 자리에 앉는다면,
래원의 커리어에 금빛 날개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 * *
같은 시각, 윤지협 PD의 집.
윤지협은 건강 검진 결과지를 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 – –
MRI 및 혈액 검사 결과 복막 부위에 비특이적 의증 소견을 보여 조직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 임상 진단명 : Peritoneal Carcinoma
치료를 위해 속히 내원하시어 소화기 외과 전문의 진료를 권고드립니다.
– – –
Peritoneal Carcinoma.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복막암’이었다.
순간, 윤지협의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귀가 멍해졌다.
“아빠아아! 아빠아아?”
“당신,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어? 애가 부르는 것도 못 들을 만큼.”
“어..어? 별거 아냐, 그냥 대본이랑 스케줄.”
어린 아들과 아내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둘러댔지만,
윤지협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읏차!”
윤지협은 놀아달라고 양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아들을 들어 올렸다.
“우아아아아! 아빠 최고!”
신나게 비행기를 태워주며,
윤지협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돼. 별일 없을 거야···.’
지금 윤지협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한 드라마의 메인 PD로서 침착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해. 모두를 지키기 위해, 를 나 대신 잘 마무리 해 줄 사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03화 – 리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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