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8
“어련하시겠어. 꺄르르.”
“모자 효과 좋네. 이제 아무도 안 건드린다. 진작 씌워줄걸!”
커다란 챙과 그 그림자에
래미의 작은 얼굴 대부분이 가려졌다.
그 덕분에 래원과 래미는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오빠는 드라마 잘 돼가? 이제 방영 얼마 안 남았지?”
“그러게. 벌써 2-3주 남았네. 시간 너무 빨라.”
“기대된다! 세라 언니한테 대충 들었는데 완전 내 취향이었어! 내용도 엄청 신선하고!”
“맞다. 브라이트 걸스 연관 검색어에 우리 드라마 뜨더라.”
“에헴. 그거 누구 덕분?”
“··· 네 덕분.”
래원은 얼마 전 SBC 인기K팝 1위 소감에서, 래미가 래원의 이름과 ‘페르소나’를 언급했던 것을 떠올렸다.
래미가 다시 한번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까르르 웃었다.
“오빠는 좋겠다. 동생이 도래미라서!”
* * *
SBC 임원진과 이사진들 사이에서 치러진 드라마국 국장 선거.
그 결과가 오늘 발표됐다.
이변은 없었다.
드라마국 게시판에 이름 세 글자가 뜨자,
모두들 각자의 이유로 흥분 상태가 됐다.
“황 부장님, 아니 이제 황 국장님이시죠!”
“황 선배, 승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황태수의 자리에 많이 이들이 드나들며 축하 인사가 쏟아졌고, 벌써 화환을 보낸 이도 있었다.
“황 국장! 드라마국 잘 부탁해!”
큰 소리를 내며 드라마국 복도에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배미란 사장이었다.
그녀는 황태수를 향해 찡긋 웃어 보였다.
배 사장의 행차 소식에,
국장실에서 짐을 정리하던 이 국장이 밖으로 뛰쳐나와 인사했다.
“전임 국장님께서는 이제 다시 책임 프로듀서로서 후배들을 북돋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드라마로 실력 발휘하실 게···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배미란이 건넨 말에서 왠지 뼈가 느껴졌다.
주위에 늘어선 드라마국 식구들을 빙 둘러보다가 도래원을 발견한 그녀.
“도 피디, 전처럼 황 국장 옆에서 잘 돕고, 어려운 거 있거나 혹여 황 국장이 허튼짓하면 이제는 나한테 직접 일러줘. 크하하.”
농담처럼 던진 배 사장의 말에
드라마국 식구들이 하나같이 놀란 듯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황태수와 도래원만 빼고 말이다.
방금 배미란이 대외적으로 못박은 바람에,
지금 이 순간,
드라마국 안에는 래원이 SBC의 성골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됐다.
외근 중이거나 촬영 중이던 PD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는 중이었다.
지금 휴대폰을 들고 부리나케 단톡방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뒤늦게 상황 파악을 끝낸 김 부국장과 최지철 부장.
두 사람이 사색이 되어 래원을 바라보았다.
래원은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김 부국장과 최 부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래원의 기세에 눌려 그 어떤 액션도 취할 수 없었다.
드라마국 국장과 SBC 사장까지 단단하게 이어진 골든 라인.
이에 해당하는 멤버는,
드라마국의 평 PD는 물론 부장급까지 합쳐서 도래원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00화 – 리디북스
“잘 생각하셨어요, 선배.”
“검진 일정 잡아서 연락할게. 미리 잘 부탁한다.”
윤지협의 결정에 래원이 씨익 웃어 보였다.
“저번에 선배 아드님 똘똘하니 귀엽던데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가족들 먼저 생각하셔야죠.”
“귀엽지? 네 말이 맞지. 내 새끼랑 마누라 생각해서라도 정신 차리고 내 몸 챙겨야지···.”
두 사람은 화장실 대화를 이쯤에서 멈추고 다시 회식 자리로 돌아갔다.
황태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지협이 괜찮냐?”
“네, 속이 좀 안 좋았는데 이젠 괜찮습니다.”
김 부국장도 쓴소리를 건넸다.
“너 인마, 건강 잘 챙겨. 너도 이제 예전처럼 몸 혹사하다가는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크하하. 그렇더라고요. 저는 제가 아직 젊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안 그래도 지금 래원이한테 먼저 한 소리 듣고 오는 길입니다.”
“잔소리는 이쯤 하라는 거지? 알겠다.”
새로 갈아서 깨끗한 불판 위에는 오겹살이 노릇노릇 익고 있었다.
김 부국장은 이를 집어 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고기를 씹으면서 할 말을 곱씹는 것 같던 김 부국장이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니들 곧 차기 국장 선거 있는 거 알지?”
“알죠. 이번에는 부국장님이 국장 자리 앉으셔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크하하.”
윤지협이 거들었고,
반면 황태수는 김 부국장의 눈을 피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래원은 가만히 세 사람을 지켜보며 그들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간 평화로웠던 김 부국장 라인에 곧 피바람이 불겠네.’
이번에는 자신이 국장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김 부국장,
윤지협처럼 김 부국장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일부 평 PD들,
그리고 지금 이들의 시선을 피하며 동상이몽을 꾀하고 있는 황태수까지.
차기 드라마국 국장은
빛 좋은 개살구인 김 부국장도, 최지철 부장도 아닌,
실속있는 황태수의 초고속 승진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래원이었다.
때문에 래원에게는 이번 차기 국장 선거가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결과를 알고 하는 관전 또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래원에게는 금 동아줄이 되어줄 것이 자명했으니까.
* * *
며칠 후, 래원은 도래미의 데뷔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누군가가 래원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도래원 피디님?”
김윤하였다.
4부작 단막극 으로 래원과 함께 입봉했던 그 작가 말이다.
오랜만이었다.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래원과 김윤하는 서로 반가워하다가,
백화점 내의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 B팀 들어가신 이야기 들었어요. 요즘 한창 촬영 때문에 바쁘시겠어요?”
“저도 작가님 TBN이랑 일하시는 거 들었어요. 안그래도 방영 전에 한 번 연락해야지 했었는데···.”
두 사람은 반가운 나머지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김윤하는 과거에 말을 더듬던 버릇을 고쳤는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 생의 첫 만남에 민트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이처럼 웃던 그녀였는데,
몇 년 사이 성숙한 느낌을 풍기고 있는 것이 래원이 보기에 신기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래원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래원이 김윤하와의 단막극 작업 이후 2개의 미니시리즈를 할 동안,
김윤하 역시 미니시리즈 입봉을 했더랬다.
그다지 화려한 입봉은 아니었으나,
대신 그녀에게는 이번 두 번째 미니시리즈가 아마도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모원호 감독님은 어때요, 작가님?”
“배울 점이 많은 분이세요.”
“취향은 잘 맞으시고요?”
“네. 모 감독님이 소화하실 수 있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다 보니까, 거의 저한테 맞춰주시는 느낌인 것 같지만요. 헤헤.”
“원작이 영국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어떤 작품이에요?”
“원작 제목은 ‘투 킵 페이스(To Keep Faith)’ 라고 사랑을 넘어 이제는 의리로 살던 20년 차 부부에게 생긴 시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리 버전의 제목은 미정이고요.”
“오오, 사랑이면 불륜? 약간 막장 드라마 과인가요?”
“줄거리만 보면 막장 느낌이 나는데, 연출이 굉장히 고급져서 드라마 전체를 보면 막장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덕분에 각색하면서 어깨가 무거웠어요.”
“대본 작업은 얼마나 하셨어요?”
“크하하하. 도래원 피디님, 지금 거의 스파이한테 정보 빼내는 느낌인데요?”
“아, 아녜요. 저한테는 동 시간대 라이벌 작품이기 전에 김윤하 작가님 차기작이라 관심이 많은 겁니다.”
“크하하. 알아요. 저도 그냥 감독님 한 번 놀려본 거예요.”
순진한 얼굴로 바들바들 떨리던 목소리의 김윤하 작가가 이제 이런 농담을 던진다?
그녀의 순진했던 과거와, 지난 삶의 비뚤어진 미래까지 모두 알고 있는 래원이기에 돌연 피식 웃음이 났다.
‘이대로라면, 지난 삶의 그 미래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도 반 사전제작이죠?”
“네, 작가님네도요?”
“네네. 모원호 감독님이 엄청 꼼꼼하세요.”
“아,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결과물도 항상 좋고요.”
“반 사전제작인데 거의 완전 사전 제작 수준으로 대본을 요구하셔서, 겨우내 죽는 줄 알았어요.”
앞서 모원호 감독의 칭찬에 입이 마를 줄 모르던 김윤하가 이렇게 투덜대는 모습이,
래원의 입장에서 싫지만은 않았다.
“래원 피디님, 저랑 했던 약속 잊지 않으셨죠?”
“네?”
“밴프 상 받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약속이요.”
“아아, 기억하죠. 우리 다음에 작업 또 같이하기로 했던 거.”
“맞아요. 기억하시면 됐어요. 헤헤. 저 그동안 이랑 재밌게 봤거든요. 이번 도 기대 중이에요.”
“저도 작가님과 모원호 감독님의 작품,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김윤하가 싱긋 웃었다.
“작가님, 분위기가 많이 성숙해진 거 같아요. 좋은 쪽으로요.”
“‘레장여’ 때는 제가 아무것도 몰랐죠. 그때 생각하면, 감독님이 저를 키워주신 거나 다름없어요.”
김윤하 작가의 말에 래원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굉장히 뿌듯했다.
말투나 태도에서 이제는 제법 커리어 우먼 느낌이 풍기는 그녀였다.
이번 작품의 동 시간대 라이벌이자, 과거 전우와의 만남.
이 예상치 못한 만남에 래원은 궁금했던 상대방의 작업 상황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뜻밖의 에너지도 얻은 듯했다.
* * *
“레디! 액션!”
오늘도 래원은 세트장에서 메가폰을 쥔 채로 커다란 함선의 선장이 됐다.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오늘 이 함선은 원래 래원의 배는 아니고
윤지협 선배의 A팀 배라는 것이다.
윤지협은 래원과 약속한 대로, 지금 이 시각 대학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고 있었다.
“컷! 다음 테이크 이어서 바로 다시 가볼게요. ··· 레디, 액션!”
.
.
[보라]의 집.–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경찰은 어머니를 살해하고 방화를 저지른 요한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습니다.
뉴스를 보던 [보라]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휴대폰을 들고 초조하게 집안을 서성인다.
전화를 할까 말까 할까 말까···.
.
.
래원은 민세라에게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저 테이크를 한 번 더 갔을 뿐인데
민세라는 래원이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을 다 고쳐서 연기하고 있었다.
이제는 래원의 취향과 작업 스타일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민세라 라서 표정만 봐도 척하면 척이었다.
‘민세라. 저 표정이랑 눈빛 디테일 뭐야···. 대사 없이도 순간순간 복잡 다단한 감정선 변화가 얼굴에 다 담기네. 와우, 연기 진짜 많이 늘었다. 민세라, 배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모니터를 보던 래원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순간, 민세라의 연기를 계속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민세라가 래원을 향해 활짝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서 확실히 전작과는 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된 듯 보였다.
다음 촬영분은 본격적인 감정 씬이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요한]을 만나러 간 [보라]의 장면.
대기하던 함현우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고
래원이 또다시 ‘레디, 액션!’을 외쳤다.
.
.
“누구··· 시죠?”
“헤어진 사이는 이제 남보다도 못한 거야? 벌써 잊었어?”
“······.”
“걱정돼서 와 봤어.”
[요한(유진)]. 즉, 요한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유진은 [보라]의 말을 듣고 머리를 굴려 깨닫는다.눈앞의 이 사람은 형 [요한]의 헤어진 애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잊기는. 그냥 장난 한번 쳐봤어.”
“진짜야? 정말로 네가 어머니를··· 아니지? 내가 아는 넌 그럴 리가 없어. 너, 아닌 거지? 뭔가 오해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녀의 믿음을 짓밟고 싶어진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도 없던 도발을 하고 만다.
“내가 그런 거 맞는데? 네가 헤어지자 그래서 그래! 되는 노릇이 하나도 없잖아. 홧김에 엄마도 죽이고, 불도 지르고, 나도 확 죽어 버리려고 했어. 다 형 때문··· 다 너 때문이야!! 꺼져!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이에 [보라]가 상처받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뒷걸음질 치며 멀어진다.
.
.
“컷! ··· 수고하셨어요. 5분만 쉬었다가 다시 갈게요.”
어쩐 일인지 래원은 물론이고 신영진 촬영감독과 함현우, 민세라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윤지협 선배를 건강 검진 보내고 앉은 A팀 감독의 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유쾌하지 않았다.
발이 묶인 듯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래원은 방금 테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는 이 장면에 윤지협이 짜둔 콘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