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3
윤지협은 고마움과 멋쩍음에 래원의 등을 한 대 퍽 치고는,
아내와 아들에게 래원을 정식으로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주말 대낮에 남의 집에 쳐들어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이 나아요. 저녁에 모시면, 이 이가 술 먹고 싶어할 거라서요.”
“선배,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치료 중에 술이 웬 말이에요?”
“아아, 끊었어! 술 이제 안 마셔. 진짜야! 이 사람은 언제 적 얘기로 바가지를 긁는 거야.”
“치이, 당신 어제도 저녁 식사 중에 맥주 마셨잖아.”
“간만에 딱 1/3 잔 마신 거였잖아. 반주로 살짝 곁들인 건데 그건 봐줘야지.”
“됐거든요. 그것도 술은 술이거든.”
래원은 티격태격하는 윤지협 선배 부부를 보며 빙긋 웃었다.
말은 티격태격이었지만 서로를 위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도 마음도 착한 아내와
나를 닮은 귀여운 아이.
남자라면 누구나 이처럼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만,
지난 삶의 래원에게는 40살이 다 되도록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윤지협은 투덜대면서도,
아내 곁에 꼭 붙어서 그녀를 도와 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누군가 래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카봇 삼초온! 이것 좀 같이 만들어주째여..!”
덕분에 래원은 윤지협의 아들을 데리고 카봇 장난감과 한참을 씨름했다.
잠시 후.
“오래 기다리셨죠? 다 됐어요, 식사하세요. 아들도 밥 먹고 마저 만들자. 엄마가 도와줄게.”
“싫어. 카봇 삼촌이 더 잘해.”
래원은 아이를 번쩍 들어서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이는 뭐가 좋은지 래원을 보며 연신 꺄르륵 댔다.
“하하하. 우리 아들이 래원이를 잘 따르네?”
“도 감독님도 어서 장가드셔야겠는데요? 여자 친구 있으시죠?”
윤지협 내외가 래원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었으나,
“하하. 아뇨. 솔로예요.”
“아⋯. 죄송해요. 전 당연히 있으실 줄 알고⋯.”
“래원이야 뭐⋯. 마음만 먹으면 골라 만날 수 있는데, 드라마에만 빠져 사느라 곁을 안 주는 게 문제지.”
“하하. 그럴 리가요. 매일 편집실에서 썩고 집에서도 대본 읽고 콘티만 짜는데,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여자 없어요.”
래원의 싱거운 답에,
윤지협이 답답한 듯 자기 일 인양 목소리를 높였고,
“이놈이 이렇게 어둡다니까. 여자가 왜 없냐? 드라마국에만 해도⋯. 아냐, 말을 말아야지. 주위를 찬찬히 둘러봐라. 한둘이 아닐 테니까.”
래원은 대수롭지 않게 들으며
윤지협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많이 먹어. 그래야 삼촌이 카봇 완성하는 거 도와줄 거야.”
“네에! 카봇 삼초온!”
아이의 씩씩한 대답에 모두가 빙긋 웃었다.
“언제쯤 복귀하세요, 선배?”
“글쎄. 치료 경과가 좋아서 내년 상반기면 가능할 거 같은데, 이 사람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 좀 더 쉬었다가 하반기에 들어가려고.”
“잘 생각하셨어요.”
“넌? 차기작 언제쯤 들어가냐?”
“가을 편성 받았어요.”
“뭐? 돌아오는 수요일이 페르소나 막방 아니냐?”
“네. 맞아요.”
“그럼 별로 쉬지도 못하고 차기작 준비해야겠네?”
“네. 이미 프리 프러덕션 꾸려서 대본 준비 중이에요.”
“허허⋯. 야, 너도 진짜 대단한 일벌레다⋯. 놀러 다니고 여자도 좀 만나! 아깝지도 않냐, 청춘이?”
전혀.
래원에게 ‘다시 얻은 청춘’이란,
만들고 싶은 드라마를 실컷 만들 기회였다.
래원은 윤지협의 핀잔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대신 그에게 드라마국 소식과 차기작에 대해 들려주었다.
“황태수 선배가 국장 명패 달았다는 건 진짜 또 들어도 놀라워. 국장실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주기훈 선배가 책임 프로듀서 해주셨었는데, 서로 나쁘지 않아서 다음 작도 같이하기로 했어요.”
“맞아. 그 표현이 딱 맞지, 주기훈 선배는. 딱 그거. 나쁘지 않은 선배⋯. B팀은? 누구 데리고 하냐?”
“그게 문제예요.”
래원은 한숨을 푹 쉬며 지혜영과 하인혁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하인혁의 비밀은 지켜주면서 말이다.
“야, 뭘 고민해. 당연히 혜영이지. B팀을 상전으로 모실 일 있냐?”
“그렇죠⋯?”
“그리고 너 하인혁, 그 소문 못 들었어?”
“어떤 소문이요?”
“‘슬카생’ 전에 자기 동기 작품 B팀 들어가서, 다운 그레이드 시키고, 거기서 못쓰게 된 좋은 대사랑 연출 기법 빼내온 거로 이번에 ‘슬카생’에 고대로 넣었잖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근데 왜 저는 못 들었⋯.”
“그야 빤하지. 동기잖냐. 어느 메인 연출이 자기 도와주겠다고 머리 숙이고 B팀 들어와 준 동기를 욕하겠어? 그래봤자 병신처럼 자기 작품 못 지킨 자기 얼굴에 침 뱉기밖에 더 돼?”
“⋯⋯.”
“나야 지금 휴직하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니까, 다들 나한테 연락해서 그렇게 욕을 하더라고. 내가 무슨 대나무숲도 아니고.”
열변을 토하는 윤지협.
이에 래원의 머릿속에도 지난 일화가 하나둘 스쳤다.
래원이 입사하자마자 의 엄하늘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하인혁은 래원이 메일로 보내려던 프로포즈 문구를 삭제하게 만들더니,
나중에 본인이 엄하늘의 면전에서 그 멘트를 고대로 읊었더랬다.
전생에서는 수도 없었다.
하인혁이 래원을 조연출로 굴리며 앗아갔던 수많은 기회와 아이디어.
가장 결정적으로,
하인혁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받았던 .
원래는 래원에게 배정됐던 기획이었다.
“그러게요. 제가 잠시 잊었네요. 하인혁 선배 별명이 하이에나였다는 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걔네 동기들끼리 쉬쉬하면서 부르던데?”
“아⋯. 우연히 들었어요.”
“암튼 걔, 선배들 앞에서는 알랑방귀 장난 아니고, 만만한 동기랑 후배들 등쳐먹기로 유명하니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네. 마음 편하게 혜영이랑 해야겠네요.”
“그래.”
이렇게 드라마 의 마지막 빈칸을 채운 래원.
전생에 하인혁은 ‘배미란 사장 – 황태수 국장’을 잇는 금 동아줄을 잡아서 승승장구했더랬다.
그때는 SBC 드라마국이 그의 세상이었으니 활개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하인혁은 래원에게 밀려난 채로 빌빌대고 있었으니까.
즉, 과거와 모든 것이 똑같이 가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역시 안전하게 혜영이랑 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하인혁을 계속 주시해 봐야겠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가능성을 열어둬서 나쁠 건 없지.’
래원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윤지협의 아내가 후식으로 과일을 내왔다.
“카봇 삼초온! 나 이 사과도 잘 머거요!”
“정말? 진짜?”
“그럼요오! 봐볼래요? 앙!”
“오구! 잘 먹네!”
“이제 나랑 카봇 만들어 줄 거지..요?”
“그래. 그러자.”
옷자락을 잡아끄는 꼬마 녀석 덕에 래원은 허허 웃으며 거실로 끌려갔다.
윤지협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도래원 짜식, 내 은인이지⋯. 막말로 녀석 덕에 목숨 건지고 내 가족 지킨 거나 다름없으니. 건강하게 복귀해서 언젠가 이 빚, 갚아줘야지.’
래원의 인생에, 전생에는 없었던 아군이 한 명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16화 – 리디북스
* * *
“오빠아!!! 잘 지냈어? 나 없이 심심했지?”
래미가 간만에 집에 왔다.
브라이트 걸스 활동이 휴식기에 돌입하면서 2주간의 자유가 주어진 것.
래미는 곧장 래원이 있는 본가로 돌아왔다.
알람 없이 늦잠을 푹 자고,
래원이 차려준 밥을 먹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며 간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작년 이맘때 너 데리고 여행 가려고 했었는데, 데뷔 준비로 바빠지고, 데뷔하니까 더 바빠져서 여행도 못 갔네.”
“내년에 가면 되지.”
래원이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쉬운 투로 말하자,
래미는 크리스마스용 전나무 모형에 빨간색 장식을 매달며 대답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유닛 활동한다며.”
“웅. 대표님한테 들었어? 노노카 언니랑 같이 보컬 활동하기로 했어. 그리고 하반기에는 개인 활동 기회 주신다던데?”
“래미 넌 뭐 하고 싶은데?”
“글쎄. 이번에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그럼 오빠랑 여행은 언제가?”
“오빠 차기작 들어가기 전에?”
“지금 이미 들어갔어. 프리 프러덕션 단계야.”
“벌써? 편성 언제로 받았는데?”
래미는 래원 덕분에 드라마국의 사정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가을.”
“우움. 그럼 내 유닛 활동 끝나고, 오빠가 본격 촬영 들어가기 전에? 그쯤 얼추 비슷하게 맞지 않을까?”
“그러기 바라야지. 유닛 일정 나오면 알려줘.”
“웅. 오빠한테 바로! 톡 할게.”
“너, 대학은?”
“대학?”
“담임 선생님 말로는 올해는 안 간다고 했다던데. 정말이야?”
“웅. 정확히 말하면 올해 안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안 가려고, 대학.”
“대학을 아예 안 간다고?”
“웅. 브라이트 걸스 활동 기간이 원래 계획보다 길어지면서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대학에 갈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
“대학에 갈 이유라···.”
“그렇잖아. 난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살 건데, 예고 때부터 지금껏 배우고 있고, 앞으로 실전에 부딪히면서 계속 배울 텐데. 따로 대학에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렇긴 하지. 근데 나중에 후회 안 하겠어?”
“대학 가봤자 활동하느라 출석도 별로 못 할 거고. 그럴 바에야 나 말고 진짜 대학이 필요한 친구들이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괜히 자리 하나 뺏기 보다는.”
래원은 래미의 말에 어느새 설득당했다.
래원은 그녀의 오빠이자 일종의 부모 같은 입장으로서, 막연하게 래미가 대학을 나왔으면 했으나,
지금 들은 래미의 말이 전부 일리가 있었다.
래미는 여느 20대 초중반 또래처럼 평범한 생활을 포기하는 대신, 대학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거고,
그러니 대학 생활은, 래미보다 더 기회가 필요한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게 모두를 위해 옳은 일처럼 생각됐다.
래원은 소파에서 내려와,
래미의 옆 거실 바닥에 앉았다.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매달며 다시 입을 연 래원.
“우리 래미, 어른 다 됐네. 언제 이렇게 컸지?”
“오빠가 드라마 만들 동안 난 뭐 놀기만 했을까?”
내면도 외면도 한층 단단해진 래미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래원의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졌다.
‘전생에 이맘때 래미는 그 개새끼랑 만나면서 인생을 빼앗겼더랬지. 잘 키웠어. 지금 모습 참 보기 좋네. 잘 컸어, 우리 래미.’
* * *
그날 밤.
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수요일.
드디어 12화 마지막 방송의 타이틀이 떴다.
래미가 텐션이 한껏 업 돼서는 신나게 소리쳤다.
“두구두구두구. 대망의 마지막 화!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도래원 감독님?”
“홀가분합니다!”
래원은 간만에 래미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모니터하는 이 시간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졌다.
래미의 장난을 받아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도 어느덧 진지한 얼굴로 숨을 죽이며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드라마만 시청하던 두 사람.
브라운관 속에서 누가 [유진]이고 누가 [요한]인지 모를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지금 막 10년간의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상황이다.
“그거 알아? 내가 배우가 된 건 형 덕분이야. 아빠 돌아가시고 캄캄하기만 했는데, 연기는 빛이었어. 형은 내 빛이었어.”
“유진아···. 우린 어쩌면 그 따뜻한 추억들이 그리워서 연기를 못 놓고 있는 걸까?”
“다시 돌아갈 순 없겠지, 그때로? 아니 적어도 우리가 바뀌지 않았던 때로.”
두 사람이 함께 라이터에 불을 지핀다.
그 순간, 활활 타오르는 효과음이 잠깐 나오더니,
화면이 블랙 아웃 된다.
이렇게 90분간의 마지막 방송이 모두 끝났다.
인사 멘트의 배경으로 엔딩 화면에 박힌 사진.
제주도의 로케이션 때 찍은 마지막 단체 사진이었다.
편집실에서는 별 느낌 없었는데,
지금 브라운관으로 꽉 채워서 보는 촬영장 단체 사진에,
래원의 머릿속에 그간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윤지협 선배를 대신해서 를 책임지기 위한 래원의 남모를 사투,
민세라를 지키기 위해 벌였던 노력들,
후반부 미장센을 위해 제주도 로케이션을 고집했던 것도.
‘이제는 다 과거고, 추억이 되어버렸네?’
지이잉—
래원이 상념에 잠길 틈도 주지 않고,
엔딩 타이틀이 뜨자마자 진동하는 휴대폰.
필시 단톡방에 시청률 소식일 것이다.
래원은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유찬] 막방 최고 시청률 33% 나왔습니다. 내일 아침 닐슨 뜨면 다시 정확한 수치 공유 드리겠습니다만, 아마도 30%는 무난히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합니다. 일단 오늘은 모두 두 다리 뻗고 주무십시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유찬의 전언에 스텝과 배우들이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와 각종 이모티콘을 날리기 시작하며 단톡방이 시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