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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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2)
“도래원, 너.
지금부터 내 막내 조연출 해라.”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래원은 활짝 웃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황태수의 입에서 저 말을 들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현재 SBC 최고 기대작 의 A팀 막내 조연출.
갓 입사한 신입 PD가 달 수 있는 최고의 직함이었다.
그때 하인혁이 애써 태연한 척 표정 관리하는 게, 도래원의 눈에는 훤히 다 보였다.
래원은 이를 놓치지 않고 먼저 말을 건넸다.
“그러면 제 직속 사수는 하인혁 선배님이 되시는 거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인혁은 특유의 사람 좋은 척하는 그 미소를 지으며 도래원에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내가 잘 부탁드려야죠, 래원 후배님.”
황태수-하인혁-도래원
A팀 연출부 라인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유찬과 지혜영은 이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에게도 래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동기였다.
“그럼 유찬이는 자동으로 내 조연출이겠네? 좋지?”
황태수의 마지막 연출작을 도와주기 위해 B팀을 자처한 변덕규.
변덕규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유찬은 기합이 잔뜩 든 목소리로 답했다.
“자⋯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유찬의 입장에서는 B팀 조연출 이래도 어쨌든 곧 현장 투입될 프러덕션에 소속된 것 자체가 감지덕지였다.
세 신입을 지켜보는 하인혁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황태수는 이번 대본 메일은 도래원이 돌렸음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하인혁이 도래원에게 시킨 것을 슬쩍 보았기 때문.
자기 일을 하면서도 안테나를 뻗어 신입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 기별 없던 엄하늘이 이번에 반응했다는 건, 분명 도래원 저 놈이 일처리를 무지하게 잘 했다는 뜻인데⋯.’
드라마는 사람끼리 만드는 일이다 보니, 사람을 잘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황태수는 턱 끝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일단은 가까이 둘 만한 놈이야.’
한편 이 국장은 상석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며 회식 분위기 전체를 관망하고 있었다.
판이하게 달라진 신입들의 평판을 살피고 있었던 것.
‘아무도 안 데려가려던 저 폭탄이 뭘 했길래, 일주일 만에 최지철 형이랑 황태수 눈에 들었지?’
이 국장이 흘깃 옆자리 김 부국장 그리고 최지철 부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지철은 껄껄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의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번 신입들 아주 잘 들어왔어. 그렇지 이 국장, 김 부국장?”
“그러게. 우리 때 생각도 나고.”
술잔을 사이에 두고, 아닌 척 서로를 견제하는 이 국장과 최 부장의 눈빛이 매서웠다.
* * *
SBC 건물 앞 중화 요릿집, 2층 가장 안쪽의 룸.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는 원형 테이블에는, 가장 상석에 엄하늘 배우가 있었고 황태수-하인혁-도래원이 이어 앉아 있다.
엄하늘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길게 늘어뜨린 웨이브 머리칼을 한 손으로 비비 꼬고 있었다.
이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세 명의 PD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밖에 없었다.
엄하늘이 하이힐을 신은 기다란 다리를 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레드립이 짙게 발린 입술을 열었다.
“여진 선생 역할.
왜 나를 고집하시는지 연출부 입장을 듣고 싶어서 뵙자고 했어요. 왜 나여야만 하죠?”
시청률을 노리고 자신의 스타성에 기대려는 심산인지 파악하려는 질문이다.
예상했다는 듯 황태수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여진 선생은 드라마 의 주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메릴 스트립에 빗댈 만큼 중요한 역이니, 인지도 높은 배우를 쓰겠다? 까놓고 말해서 ‘엄하늘의 연기 변신’으로 이슈를 만들려는 거네요?”
엄하늘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나오자, 황태수는 당황했다.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다.
“그래요. 이해해요. 이슈 만드는 거 좋죠. 그럼 내 입장에서는요?
나는 이 작품으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멘토 역할인데, 내가 동안이라 오히려 불리한 건 다들 인정하시죠?”
뒤이은 엄하늘의 물음.
모두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에 눈만 껌벅였다.
하지만 포커페이스에 가려진 래원의 머릿속은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연출님이 한번 말씀해보시죠.
내가 다른 작품 대신 이걸 택해야 하는 이유를.”
엄하늘의 시선이 하인혁에게 꽂혔다. 하인혁이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 ⋯ 극 중 여진의 모델 경력과 지위가 배우님의 연기 족적과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역할이고,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연기 족적. 며칠 전 래원이 쓴 메일에 있던 문장이었다.
하인혁이 래원에게 과하다며 지우라고 했던 바로 그 문장.
‘그럼 그렇지. 남의 것 베끼고 뺏는 게 하인혁 네 특기지.’
래원은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건 엄하늘이었다.
“계속 제대로 된 답들을 못 내놓으시네요? 나 말고도 그런 30대 중반 여배우는 많잖아요. 혜진 언니나 도정이도 지금 작품 없고.”
“······.”
엄하늘의 높아진 언성 뒤에 정적만이 흘렀다.
‘아이씨, 명 작가를 데려왔어야 했어! 엄하늘, 지가 직접 거절하면 이미지 나빠지니까 트집 잡아서 핑계 만들려고 우릴 불렀구만.’
황태수는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었다.
이제 엄하늘은 맨 끝자리의 도래원에게 물었다.
“거기 막내 분?”
“저.. 말씀입니까?”
래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네, 청춘물이니만큼 가장 젊은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죠.
요지는, 멘토 역할인데 내가 동안이라 미스 캐스팅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이 작품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
도래원은 엄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 과하다.
엄하늘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연출부를 불러 내놓고 트집을 잡을만한 사람도 아니다.
래원이 아는 한 그랬다.
저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래, ‘두려움’이다.
자존심이 강한 터라 들키지 않으려 언성을 높이고 까탈스럽게 배역을 고르는 것처럼 포장했을 뿐.
저건 분명히 배우로서 새 작품, 새 역할을 맡을 때의 ‘두려움’이다.
‘지금 엄하늘한테는, 미스 캐스팅이나 연기력 논란으로 욕먹지 않을 확신이 필요한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과거에 메이킹 영상에서 봤던 엄하늘이 생각났다.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인 만큼 부담스러웠다고, 외모도 동안이라 자신 때문에 드라마 전체가 가벼워질 수 있음을 걱정했다던 엄하늘.
드라마가 잘 되고 난 후에야 시원하게 후일담을 털어놓던 그 표정이 기억났다.
‘그거 겸손한 척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진심이었어?’
도래원이 엄하늘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외람되지만, 저희 작품이 배우님께 손해나 논란이 되진 않을 겁니다.
전 배우님이 동안이셔서 오히려 여진 선생 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요.”
엄하늘이 눈빛을 달리했다.
“나이만 갖고 연장자를 존중하는 시대는 지났죠. 요즘 젊은 세대가 원하는 건 정보만 가르치는 꼰대가 아니라, 경험을 공유해줄 멘토죠.”
엄하늘과 황태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도래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여진 선생 역은 기존 스테레오 타입의 선생이나 꼰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즘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멘토이자 진정한 롤모델이죠. 드라마 배경이 패션계인 만큼 비쥬얼이나 이미지로도 배우님이 제격이고요.”
래원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니 동안이면서도 세련된 커리어 우먼 이미지의 배우님이라면, 미스 캐스팅 논란은 절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피식-
엄하늘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졌네요.”
“네···?”
황태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엄하늘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여진 선생 역, 제가 할게요.”
황태수는 아까 엄하늘의 언성이 높아질 때 다 틀렸다고 생각해서 이미 반포기 상태였다.
“정말..이죠? 정말 하시는 거죠?”
“대신. 약속 꼭 지키세요.
엄하늘의 여진 선생을 한국의 메릴 스트립, 요즘 세대가 원하는 롤모델로 만들어주셔야 해요.”
엄하늘이 황태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여부가 있나요. 우리 이번에 끝장나게 좋은 드라마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의 주요 배역 중 유일한 공석 ‘여진 선생’ 역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조연출님 되게 앳돼 보이시는데 굉장히 예리하시네요?”
엄하늘은 하인혁을 그냥 지나치고는, 도래원에게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말씀하신 거처럼 요즘은 나이나 어려 보이는 외모는 정말 중요치 않네요.”
래원은 예의 빙긋 웃는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황태수는 이 모습을 기특하다는 듯이 허허거리며 지켜봤고, 하인혁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엄하늘은 언제 까탈을 부렸냐는 듯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다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먼저 엄하늘이 깐쇼새우를 집었고
황태수, 하인혁, 도래원도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하인혁은 표정 관리를 하는 듯했으나 점점 더 굳어지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황태수와 도래원의 표정은 대조적으로 환했다.
‘도래원. 이거 폭탄감이 아니라, 폭죽 터트리는 대박감인데?’
황태수는 양장피를 입안 가득 넣으며 폭죽이 팡팡 터지는 듯한 황홀경을 느꼈다.
* * *
입사 2주 차 첫날.
OJT 일주일간 입었던 정장은 벗고, 이제는 자유 복장으로 출근한다.
래원은 동생 래미가 코디해준대로 블랙 진에 보라색 니트 차림으로 출근했다.
신입답게 경쾌해 보여야 한다는 게 래미의 지론이었다.
“이야···! 래원이 형, 사복 입으니까 대학생이래도 믿겠는데요?”
유찬은 골덴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지혜영은 스키니 진에 블라우스를 입고서 로비에서 마주쳤다.
편한 복장으로 자유로이 SBC 건물을 드나드니 이제 정말 제대로 PD가 됐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까똑-
“우와! 우리 단톡방 초대됐어요, 형!”
이제 도래원과 유찬은 팀 단톡방에 초대되며 정식으로 드라마국의 일원이 되었다.
[찬] B팀 조연출 유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래원] A팀 조연출 도래원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지혜영은 머지않아 촬영 현장에 투입될 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그녀 역시 하반기 편성을 앞둔 팀의 막내로서 내근하며 나름의 실무를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제가 곧바로 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래원.. 오빠 조언 덕분이에요.”
“에이, 혜영 씨 능력 덕이죠.”
“정말 감사했어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편하실 대로.”
“오빠두 말 편하게 하세요.”
래원을 향해 찡긋 웃는 지혜영.
이건 지난 삶에서는 맺지 못했던 관계다.
세 신입 PD는 동지애를 바탕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막내 조연출로서의 처음 한 달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형, 뭐 마셔?”
“아아.”
SBC 1층 카페.
유찬이 피곤에 쩔어 누렇게 뜬 얼굴로 래원에게 묻고는 주문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유찬과 래원은 간만에 정시 퇴근의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거 거의 한 달 만인 듯?”
“내일부턴 더 바빠질 거다.”
“여기서 더 바빠진다고? 환청이 들릴 정돈데···. 유찬아, FD한테 스케줄 언제 픽스되냐고 물어봐.
유찬아, 아역 오디션 명단은? 다 넘어온 거 맞아? 유찬아, 유찬아··· 어휴···.”
“나도 그래. 가만히 있어도 카톡 진동 오는 것 같다. 래원 피디님, 아직 안 자죠? 대본 회의 좀 잡아줘요.
래원 후배님, 주연 배우들 미팅 스케줄 좀 조정해줘야겠는데?
래원아, 로케 헌팅가는 거 헤드 감독님들한테 다 공지했지?”
“형도 그래? 몰랐네. 워낙 능숙해 보여서 다 적응한 줄. 레알 전쟁통이 따로 없다니까.”
“그래도 우리 팀 정도면 척척 잘 진행되는 편이야.”
“진짜? 형은 가만 보면 신입 같지가 않단 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지?”
“··· 그냥, 선배들 말하는 거 들었어.”
“혜영이 누나도 형이 애늙은이 같대.”
“애늙은이?”
“비주얼은 대딩인데 생각이나 말은 동기 아니고 선배 같다고⋯.”
“뭐, 듣기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네.”
의 프리 프러덕션 일정은 과거에도 그랬듯 물 흐르듯 척척 진행됐다.
“엄하늘이 그 영화를 깠다고?”
“쉿! 목소리 낮춰!”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구석 테이블에서 로드 매니저로 보이는 무리가 속삭이듯 대화 중이었다.
“그렇다니깐. 대신 여기 SBC 미니 한대. 청춘 런웨이.”
“그거, 주연들 다 20대 초중반 아녔어?”
“주연 아니고 주조연으로 들어간댄다. 그 블록버스터를 까고.”
“엄하늘 정도면 계속 주연해도 되잖아? 뭐지? 대본이 엄청 좋았나?”
“몰라. 하늘이 누나면 아직 로코도 쌉가능인데···.”
“인정. 얼핏 보면 30대의 고급진 섹시함도 있고, 계속보면 20대의 풋풋함과 귀여움도 같이 있다니까.”
“완벽해. 내 이상형이야.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아씨···. 엄하늘이 청춘 런웨이 하는 줄 알았으면 우리 세라한테도 그 작품 밀어붙였을 텐데···. 그럼 내가 로드했을 거고, 그럼 엄하늘도 자주 볼 수 있었잖아.”
“세라? 걔 이제 연기해?”
“어. 여자 주인공 제의 왔었어. 문걸즈 계약이 곧 끝나거든. 애들도 이젠 각자도생해야지.”
숨죽인 채 커피를 빨며 이 대화를 엿듣던 도래원과 유찬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래원이 조용히 입 모양을 뻥긋거렸고,
둘은 슬며시 일어나 SBC 건물을 빠져나갔다.
“문걸즈 곧 해체하나 봐, 형.”
“그러게.”
“문걸즈 세라한테 여자 주인공 한나은 역할 제의가 갔었구나. 아깝다.”
“배역은 일종의 운명이다. 우리 배우들이 잘 할 거야.”
“그렇겠지? 근데 우리 드라마가 기대작이긴 한 듯?”
“그렇대.”
“연예계 카더라도 주워듣고, 내가 속한 팀이 관심도 받고. 진짜 방송국에서 일하는 거 실감 나네. 그치?”
래원은 유찬을 보며 과거 신입 시절의 그와 자신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골목길 안쪽 깊숙이 들어서자 족발집 [족과의 동침] 간판이 보였다.
“와. 이런 데에 족발집? 족과의 동침?”
“앞으로 우리가 단골 될 곳이야.”
“단골? 그렇게 맛있어 여기? 형은 벌써 몇 번 와봤나 봐? 누구랑?”
“그런 건 알 거 없고. 내일부터는 진짜 체력전이니까 많이 먹어둬.”
둘은 3인분짜리 세트 메뉴를 시켜서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으아, 드디어 유튜브 영상으로만 보던 드라마 상견례! 대본 리딩에 이 몸도 참여하는구나!”
드디어 드라마 의 모든 출연진과 스테프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전부 모이는 상견례이자, 첫 대본 리딩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프리 프러덕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뭘 고작 대본 리딩 가지고···. 너 나중에 첫 촬영 땐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으아, 배우들 실물도 기대되고···.”
래원은 그간 수없이 겪었던 과정이기에 무심히 대꾸했다.
허나 속마음은 이상하게도 유찬처럼 정말 신입 PD로 첫 조연출을 하는 듯 설렜다.
지난 삶의 마지막 식사가 바로 이 집 족발과 소주였다.
그때도 유찬과 둘이 함께였다.
그때보다 풋풋한 얼굴을 한 그를 보며, 래원은 생각했다.
‘찬아, 나 이번엔 확실하게 능력 발휘하면서 살 거다. 사람이랑 숫자 둘 다 가져가는 인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한 후,
“잘 먹었습니다. 이모님 족발은 항상 최고예요.”
“맛있게 먹어줘서 내가 고맙지.”
밖으로 나오자 초봄의 꽃샘추위가 옷 속을 파고들었다.
오늘 먹은 족발은 과거보다 더 맛있고 쫄깃하고 달달했다.
지금 래원의 기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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