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89
성호 엄마의 직장 문제가 있어 이곳에 머무는 건 힘들었다.
그러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그때, 마리아 수녀님이 말씀하셨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
“네?”
“선생님께서 성호와 대화를 나눠 보시겠어요?”
“제가요?”
“성호가 선생님을 얼마나 찾았는데요. 선생님이 성호와 잘 얘기를 나누면, 성호도 마음을 열고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성호는 선생님 옆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하다고 했어요. 한번 편하게 얘기 나누어 보세요.”
“네.”
역시, 마리아 수녀님은 아이를 잘 안다.
여섯 살의 아이에게 엄마란 존재는 인생의 전부와도 같다.
한데, 지금은 낯설 뿐이다.
성호가 태어난 엄마의 품에 한 번만 안긴다면, 성호도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겠지.
마리아 수녀님은 성호가 생활관 내부에 있다고 했다.
복도를 벗어나 생활관 내부로 들어갔다.
그곳에 성호가 홀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성호야!”
“아저씨!”
성호가 내게 달려들어 와락 안겼다.
유전은 못 속인다더니 성호도 울고 있었나 보다.
“성호 울었어?”
“아니요!”
성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두 눈이 팅팅 부었는데 안 울긴.
홀로 소리 없이 울었겠지.
“울더라도 소리 내서 엉엉 울어. 숨죽여 울면 안 돼. 알았지?”
“네! 아저씨!”
성호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성호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창가 너머로 회화나무가 보였다.
노랗게 물든 잎이 바람에 나부끼며 창문을 때렸다.
“성호야.”
“네.”
“성호 엄마가 찾아왔는데, 기분은 어때?”
“….”
성호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성호 엄마잖아. 이렇게 예쁘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성호를 낳아준 엄마. 성호는 엄마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요.”
“엄마도 성호가 많이 보고 싶었대. 그래서 성호를 데리러 온 거야. 성호도 이제 엄마랑 같이 살 수 있어.”
성호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엄마가 저를 버렸다고 들었어요.”
“응? 누가 그런 얘기를 해?”
“다 알아요.”
성호가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이곳은 육아원이었다.
아마,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버림 받았음을 자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틀렸다.
결코 버린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도 성호같이 예쁜 딸이 있었어.”
“…..”
“아저씨도 그랬거든..성호 엄마가 성호를 두고 갔듯이, 아저씨도 그랬어. 그런데, 그건 아저씨가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러면요?”
“딸을 너무 사랑했거든. 너무 사랑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랬어.”
“……”
“성호가 이곳에서 행복했듯이 말이야.”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나는 속에서 오랫동안 감춰왔던 진심을 토해내고 있었다.
“성호야. 아저씨랑 약속하나 할래?”
“네.”
“이제부터 다시는 엄마가 성호 손을 놓지 않을 거야. 아저씨도 성호 손을 놓지 않을게.”
“정말요?”
“그럼. 아저씨도 성호를 아들처럼 생각하거든.”
성호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풍이 곱게 물든 회화나무 잎을 바라봤다.
가을은 내게 이별을 상징했거늘.
이젠 과거를 깨고 새로운 만남이고 싶다.
“성호야, 엄마 보러 갈까?”
“네!”
성호를 일으켜 생활실을 나왔다.
회화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하니 성호의 엄마가 아직까지도 서글피 울고 있었다.
나는 성호를 품에 안고 성호의 작은 귀에 귓속말을 했다.
“성호야.”
“네.”
“엄마한테 달려가서 안겨볼래? 할 수 있겠어?”
“네!”
성호를 내려줬더니,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처럼 엄마 곁으로 달려갔다.
성호가 엄마를 향해 외쳤다.
“엄마!”
성호가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는 그간의 설움이 복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성호야. 엄마가 다신 그러지 않을게.”
“엄마..”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으며 울었다.
“참 잘 됐네요.”
마리아 수녀님이 내 곁으로 다가와 말씀하셨다. 마리아 수녀님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네. 수녀님.”
나는 엄마와 성호가 행복하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 * *
성호의 엄마 나이는 27살이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21살의 나이에 성호를 낳은 것이었다.
성호를 육아원에 놓고 간 사연을 듣게 됐는데, 성호의 아버지는 도박에 중독되어 카드빚만 남겨놓고 도망갔다고 한다.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찾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카드빚이 얼마였는데요?”
“카드빚도 카드빚이지만, 그 사람이 이리저리 제 명의로 대출을 많이 받아서 빚이 1억 가까이 됐어요.”
“아….”
“6년 만에 다 갚았어요.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했거든요. 헤헤.”
27살의 나이에 열심히 일해서 1억을 벌었는데, 빚을 갚는데 써버렸다니.
엄마의 모성애가 실로 대단히 느껴졌다.
국화꽃 한 송이를 성호의 품에 놓고 간 것은, 언젠가 성호를 데리러 찾아왔을 때 스스로 엄마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모성의 지혜였다.
“같이 살 곳이 따로 있나요?”
마리아 수녀님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육아원의 원장인 마리아 수녀님도 엄마의 형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공장에서 기숙 생활을 하다가 이번에 월세방 하나를 구했어요. 비록 방은 작지만, 성호와 둘이서 생활할 정도는 돼요.”
성호의 엄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일을 나갔을 경우에는 성호를 봐줄 종일반 유치원도 알아봤다고 한다.
마리아 수녀님이 엄마의 근성에 감동을 받은 듯하였다.
하지만, 절차는 더 남았다.
“성호가 머물 곳을 함께 둘러봤으면 해요.”
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성호의 엄마는 마리아 수녀님의 단호한 말에 거절할 수 없는 선함을 느꼈다.
“네. 수녀님.”
* * *
뒷좌석에는 성호의 엄마와 성호가 탔고, 조수석에는 마리아 수녀님이 탔다.
성호가 지낼 곳을 직접 가보겠다는데, 마리아 수녀님을 말릴 수가 없었다.
“성호야!”
“네! 아저씨!”
“엄마 집에 가니까 좋아?”
“네! 아저씨도 가고 마리아 수녀님도 다 같이 가잖아요!”
성호가 신난 듯 엄마 손을 부여잡으며 해맑게 웃었다.
“성호야 잘 가!”
“성호야 건강해야 돼!”
“자주 놀러 올 거지?”
육아원 생활을 함께 한 아이들이 성호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성호가 뒷좌석 창문에 턱을 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또 올게!”
수녀님들과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트럭을 출발했다.
* * *
‘찾아오길 잘했어.’
너무 열악했다.
큰 기대는 안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환기가 잘 되지 않은 반 지하라 방 안에 곰팡이 냄새가 풀풀 났으며, 원룸이라 화장실이 방안에 붙어 있었다.
집 주인이 방을 쪼개어 급조한 전형적인 단칸방이었다.
마리아 수녀님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자연과 함께 뛰어논 성호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 과도 같은 곳이었다.
“성호야 그렇게 좋아?”
“네!”
그런 성호는 나와 마리아 수녀님의 마음도 모르고 마냥 좋다고 바닥을 뒹군다.
우리는 성호 엄마가 차려준 다과 식탁에 앉았다.
마리아 수녀님이 물었다.
“어머님, 월세가 어떻게 돼요?”
“월세는 20만 원 받고, 관리비가 3만원이에요. 보증금은 100만 원 정도 들어갔어요. 성호와 함께 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요.”
“아…”
마리아 수녀님과 나는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감정을 공유했다.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어.’
대책이 필요했다.
“어머님.”
“네?”
“공장에서 월급을 얼마나 주던가요?”
“240만 원 정도 받아요. 예전에는 야간에 근무해서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주간 근무라 조금 적어요.”
240만 원이면 성호를 키우는데 부족함은 없겠지만, 이런 환경은 안 된다.
“혹시..어머님.”
“네.”
“시골에서 살아볼 생각은 없으세요?”
“시골이요?”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일거예요. 성호도 자연 속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이고, 제가 근처에 있으니 잘 돌봐줄 수도 있고요.”
“그런데..제가 직장을 다녀야 해서요.”
“밭을 일구어서 약초 농사를 지으면 수입이 꽤 될 거예요.”
“제가 땅이 없는데..”
“땅 있어요. 천 평 정도 되는 땅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무거나 심어도 돼요. 제가 잘 도와드릴게요.”
못미더워 하는 기색이라, 나는 그 자리에서 김권 회장에게 전화했다.
-네. 김 선생.
“제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제가 땅 천 평 정도에 하수오 농사를 지을 생각인데, 삼정 측에서 구매 좀 해주시죠. 아시다시피 평범한 하수오가 아닌 거, 아시잖아요.”
김권 회장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호탕하게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죠. 천 평 땅에 하수오라. 그거 말고 다른 거는 안 심나요? 가령, 기력에 좋은 약초라든지.
“다음에 전화 드릴게요.”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