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88
최승희 주무관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 어느 덧 오후 여섯 시였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 * *
“철수야 고생 많았어.”
“그래. 도일아.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좀 쉬자.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속에서 맴도는 것 같아.”
“그래, 얼른 들어가라!”
집으로 향하는 길.
운전대를 잡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마리아 수녀님과 헬레나 수녀님, 성호를 만나 축제를 즐겼고, 삼정 측으로부터 하수오 공급을 받아 축제를 원활하게 이끌 수가 있었다.
‘오늘은 눈 좀 제대로 붙여야겠어.’
집에 들어가는 길에 황복이를 위한 강아지 전용 연어와 황궁이를 위한 옥수수를 대량 샀다.
옥수수가 제철이라 아주 잘 익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긴 건 가족들이었다.
지금 이 기분은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치킨을 사가는 나의 옛 모습과 비슷했다.
그날 하루가 너무나 고단했던 탓에 가족들이 치킨을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함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전 처와 연이가 치킨 두 마리를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지.’
마찬가지로.
연어를 까다 줬더니 황복이가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천천히 좀 먹어!”
-월!월!
흥분한 황복이에게 개 껌 하나를 물려준 뒤 나는 황궁이에게 향했다.
‘옥수수를 먹는 건 처음이니까.’
옛날 우리 집 송아지는 옥수수를 참 잘 먹었다.
보통은 옥수수 줄기나 껍질을 주로 먹이곤 했는데, 옥수수 수확 철이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옥수수를 구해다가 특식으로 먹이곤 했었다.
나는 옥수수 알맹이를 몇 개 까다가 황궁이에게 건넸다.
처음 보는 동그랗고 노란 알맹이를 보며 황궁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번 풀이나 물만 먹던 녀석이라, 신기한가 보다.
“황궁아, 천천히 먹어봐.”
-음머어!
황궁이가 나의 손바닥 위에 있는 옥수수 알갱이를 혓바닥으로 핥아 먹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라 간에 기별도 안 가는지 음머어! 하며 더 달라며 재촉한다.
“한 번에 먹어봐.”
옥수수를 반으로 잘라 황궁이에게 건넸다.
황궁이가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옥수수의 단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소가 여물을 씹는 소리는 언제나 정겹다.
“더 줄까?”
-음머어!
옥수수를 많이 사오길 잘했다.
나는 옥수수를 잘게 잘라다가 여물통에 건초와 함께 섞었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 해 미안해. 황궁아.”
황궁이가 얼굴을 내밀며 내 팔에 비볐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괜찮다는 의미였다.
하긴,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져가고 있어 어디로 쉽게 데려갈 수가 없는 노릇이다.
‘쬐깐할 때는 어디든 데려갈 수가 있었는데.’
소는 정말 금방 자라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생의 칠부능선을 넘긴 수준의 덩치에다가, 1년만 지나면 황소가 되어버린다.
“황궁아. 나중에 덩치가 산만해지면 그때는 나랑 같이 밭도 갈자. 알았지?”
황궁이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듯 앞발로 땅을 치며 투레질을 했다.
나 또한 하수오를 심은 밭을 갈아엎고 다른 작물을 심어보고 싶건만.
‘오늘은 참자.’
좀 쉬자.
황궁이와 황복이에게 특식을 주고 나서야, 나만의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간단히 밥을 차려먹고 샤워를 한 뒤 긴 여행의 여독을 푼다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빠져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헬레나 수녀님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선생님! 혹시 통화 괜찮으신가요?
“네! 그럼요!”
-성호의 어머님이 찾아오셨는데, 성호가 엄마를 따라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네요. 이걸 어쩌죠. 성호가 선생님만 찾아요.
“저만 찾는다고요?”
-네..지금 울고불고 난리예요. 선생님…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철수에게 전화했다.
또 다시 가게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야.”
-응?
“미안하고 고맙다.”
-뭐야? 미리 사과하고 고맙다니!
“그런 게 있어. 좀 늦을 것 같아. 육아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육아원 얘기를 꺼내자 철수가 금방 승낙했다.
-그래. 잘 갔다 와라. 여긴 걱정하지 말고!
나는 성호가 있는 육아원으로 향했다.
단풍나무 (1)
성호를 만나러 가는 길, 왜 나의 딸 연이가 생각이 나는 걸까.
성호를 볼 때 마다 그렇다.
마치 연이를 보는 모습이었다.
이혼을 하고 집안의 짐을 챙기고 홀로 집을 나왔을 때, 연이가 홀로 숨죽여 울었었다.
성호와 연이는 같은 아픔을 안고 있다.
그래서 성호를 보면 연이 생각이 난다.
이혼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게 최선이었을까. 최선이었다면 나는 왜 연이를 두고 나와야 했을까.
지금은 후회해봐야 늦지만,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연이의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그 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을 때,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지금도 단풍나무를 보면 그때 생각이 하염없이 난다.
그래서 가을은 내게 이별의 계절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해도 가을이었고, 내가 이혼을 했던 해도 가을이었다.
‘가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성호를 만나러 가는 길도 또 다른 이별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다.
* * *
단풍이 진 국도의 가로수를 한참 지나 육아원 앞에 도착했다.
회화나무 한 그루가 단풍이 곱게 물들어 노랗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무 아래 벤치에는 성호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여성과 헬레나 수녀님이 앉아 있었다.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여성은 꽤 젊어 보였다.
30대 정도 됐을까.
나는 헬레나 수녀님 앞으로 다가갔다.
“수녀님..”
“선생님..오셨어요?”
헬레나 수녀님이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수척한 헬레나 수녀님의 얼굴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엿보였다.
구슬피우는 성호의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발갛게 부었다.
“김도일 선생님 되시나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성호가 그토록 찾으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
“우리 성호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성호의 어머님이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섣불리 입을 열수가 없었다. 무어라 말을 해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성호 칭찬을 했다.
“성호가 워낙에 씩씩하고 밝은 아이라서 사랑을 많이 받나 봐요. 저도 성호만 보면 이것저것 사주고 싶다니까요.”
“….네.”
“성호가 엄마를 정말 많이 닮았네요. 성호 얼굴이랑 어쩜 그렇게 똑같으세요.”
“……”
성호 얘기를 꺼내자마자 엄마는 또 다시 울음이 터졌다.
이런.
헬레나 수녀님이 아무리 다독여보아도 울음은 그치질 못했다.
엄마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이미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쥐어짜면 물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어머님의 손에 건네 드렸다.
“이걸로 닦으세요.”
“고맙습니다.”
크흐흥.
성호 어머님이 내가 받은 손수건으로 눈물도 닦고 코도 풀었다.
성호의 손을 닦아줬던 손수건인데, 이젠 성호 엄마의 눈물을 닦아준다.
나는 헬레나 수녀님을 보며 말했다.
“수녀님, 성호는 어디 있나요?”
“안에 있어요. 선생님.”
이제 성호를 볼 차례였다.
“성호 어머님, 제가 성호 좀 볼 수 있을까요?”
성호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성호가 있는 건물 내부로 향했다.
* * *
“성호 엄마는 확실해요. 가을의 찬바람이 부는 어느 새벽에, 성호의 품에 놓고 간 국화꽃을 또렷이 기억하시거든요.”
“문제는 성호가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마리아 수녀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호는 갓난아기 때 엄마와 이별했다.
그래서 성호에게 친 엄마는 아직까지 낯선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성호를 반강제적으로 떠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호에게 육아원은 집이었다.
수녀님들은 엄마다.
6년 간 살아왔던 이곳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섯 살 아이가 겪을 이별을 어른들이 잘 다독여줘야만 했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
어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수녀님, 혹시 성호 어머님을 육아원에서 머물도록 해서 함께 시간을 가져보게 하면 어떨까요?”
마리아 수녀님이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곤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성호 엄마가 일하는 곳이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요.”
“아..출퇴근이 힘드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