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99
* * *
“크으…너희들도 내가 쪽 팔리냐?”
술 취한 경훈이가 한탄하며 내뱉었다.
쪽팔리다니.
그게 무슨!
“뭔 개…개소.”
“딱 말해. 쪽팔리지? 엉?”
“아냐. 네가 왜 쪽팔려. 넌 내 친구잖아.”
철수가 경훈이를 위로했다.
경훈이의 사연을 듣게 되니, 충분히 답답하고 우울해 할만 했다.
그 이유는 선이었다.
최근 들어 선 자리를 많이 보긴 했는데, 퇴짜를 맞은 게 열에 아홉이라는 것.
동년배를 만나도, 연상을 만나도, 연하를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경훈이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술을 퍼 마셨다.
“내 인생은 어찌 이렇게 되었는가. 하아. 비통하다.”
경훈이가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달관한 인생을 표출하며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봉선이가 그런 경훈이를 기가 차다는 듯 바라봤다.
“내 심정은 어떻겠냐?”
“너는 한 번 가보기라도 했잖냐.”
“가본 놈이 더 손해야.”
“안 가본 놈은 더 손해야.”
“손해 볼 것도 없으니 손해가 아니지 인마.”
“모르겠다! 모르겠어!”
봉선이와 경훈이의 사투를 지켜보며, 나와 철수는 녀석에게 무어라 위로를 해줘야 하나 고민이 짙었다.
특히 철수가 그랬다.
유일하게 부부의 연을 맺고 있지 않은가.
철수가 경훈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의 말을 내뱉었다.
“경훈아. 나도 사실 이혼하고 싶어.”
경훈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런 철수를 바라봤다. 철수의 눈빛에는 진심이라곤 1도 없었다.
“에휴. 됐다 됐어.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공짜 술이나 먹고 들어가셔.”
“미안하다. 내가 도움이 못 돼서.”
그러면서 안주는 또 야무지게 잘 먹는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분명히 경훈이의 말에 의하면 열에 아홉이라고 했다.
열에 아홉이란 말은 하나 정도는 성공할 뻔 했다는 뜻이 아닌가.
비록 억측이지만, 그간 선자리만 숱하게 봤던 경훈이가 갑자기 우울해진 건 특별한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 본다.
“경훈아. 나랑 따로 얘기 좀 하자.”
“응?”
나는 경훈이를 데리고 술집 밖으로 나왔다. 둘만의 대화가 필요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집안에서 널 내놓겠다고 했어?”
혹시나 해서 물었다.
경훈이가 풉 웃으며 답한다.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랬으면 진즉에 내가 알아서 나갔지.”
“그러면 이유가 뭐야. 막말로 그 동안 네가 선 자리를 몇 번을 봤냐? 네가 상처 받은 일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냐.”
“……”
경훈이가 담배 연기를 후우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서서 담배 연기만 내뱉던 경훈이가 말문을 떼었다.
“도일아. 이건 비밀이야.”
“뭔데?”
나의 귀가 쫑긋해진다.
“사실은 있잖냐…내가 여자 앞에만 서면 말을 못해.”
“뭐?”
갑자기 이게 무슨!
“여자 앞에서 말을 못 한다고?”
“어.”
“봉선이 앞에서는 잘도 말하더니.”
“걔는 여자로 보이질 않아서 그렇고.”
“아…”
“이번에 우리 숙부가 소개시켜주신 분이 있는데, 나보다 세 살 어리고 참하고 예뻐. 근데, 시발 이게 말이 안 나와. 이상하게도 여자 앞에서만 이런다니까.”
“와…”
“왜? 너도 내가 쪽팔리냐?”
“아니 그게 아니라. 살면서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휴우…나도 이런 내가 너무 밉다. 너무 미워.”
“공황장애 같은 거 아닐까.”
“여자 앞에서만 일어나는 공황장애가 있나?”
“그게 아니라면, 어릴 때 무슨 트라우마 같은 거라고 있었어?”
“아냐. 그런 거 없었어.”
“대체 왜 그럴까.”
“심장이 막 두근두근 거리고, 손도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막나.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밥만 먹고 나온다니까.”
“그럼 여태 선 자리를 다 그렇게 본거야?”
“그냥 밥만 먹은 거지.”
“이야…”
감탄사가 나왔다.
그동안 이장님의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까. 하긴, 저번에는 경훈이를 포기한다며 집안에 사다놓은 예비 손주 선물을 전부 성호에게 줘버리지 않았던가.
그런 이장님도 그렇고, 당사자인 경훈이 속은 더 썩어 문드러지겠지.
“경훈아.”
“응?”
“내가 이건 무덤까지 가져갈게. 절대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을게.”
“봉선이나 철수는 못 믿어도, 넌 믿어. 비밀로 해줘라. 부탁이다.”
경훈이가 담배를 비벼 껐다.
수심이 짙어 보인다.
그런 경훈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다.
“경훈아, 이거 먹어봐.”
산수유나무의 뿌리와 화살나무의 가지를 배합하면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웃음』의 특전이 발휘된다.
언젠가 한 번 써보고 싶었거늘, 우울증을 겪는 경훈이가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환약 아니냐?”
“약초를 배합해서 만든 작은 환약이야. 팔지는 않고 개인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먹어.”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냐?”
“먹어봐. 괜찮을 거야.”
경훈이가 토끼 똥같이 작은 환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쓴맛이 올라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간신히 꿀꺽 삼킨다.
효험이 좋은 약은 쓴 법이지.
얼마나 쓴지 다시 뱉어 버리고 싶나보다.
“우엑!”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 * *
“푸하하하하!”
경훈이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 봉선이와 철수의 실없는 농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약발이 잘 받네.
너무 잘 받아서 탈이다.
‘약의 농도가 너무 짙었어.’
하지만 걱정되질 않는다.
웃음은 많을수록 좋다.
심지어 웃음은 전염성도 있지 않은가?
환약 한 알에 이정도 효과라면, 자주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야, 내가 재밌는 선 자리 에피소드 얘기해줄까?”
그런데 부작용이 있었다.
웃음은 넘쳤지만, 과다 복용시 주의해야 할 점은 술자리가 끝나질 않는 다는 것이었다.
경훈이의 입이 모터가 달린 듯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밤나무 (4)
경훈이는 선 자리를 가지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냈다.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뿌듯한 점은 경훈이의 우울증을 조금이나마 치유했다는 것이었다.
웃음만한 치료제가 없다.
암센터를 가면 웃음 치료실이 있다.
그곳에는 웃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으며, 웃긴 영화도 틀어주질 않는다.
하하호호.
손뼉을 쳐가며 웃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끼리 둘러 앉아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췌장암의 복통도 감소됨을 느꼈다.
웃음이 사람에게 주는 유익함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다.
세상 어떤 약초보다 효율성이 좋은 약이 웃음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술자리가 좋다.
웃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바탕 웃고 떠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치며 놀때였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술자리는 저마다 뿔뿔이 흩어지며 잠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경훈이를 만난 것은 술집의 화장실에서였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경훈이가 한탄하며 내게 말했다.
“안 서.”
“뭔 소리야?”
앞뒤 맥락 다 잘라 먹고 갑자기 안 선단다.
“내가 쪽팔려서 이런 말하기가 좀 그런데. 진짜 안 서. 요즘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진심이냐?”
서질 않는다니.
정녕, 경훈이도 고개 숙인 남자였던가.
아…
이건 웃음도 이겨낼 수 없는 거구나.
* * *
사연을 들어보니 이러했다.
그러니까, 선 자리를 본 여자가 말없이 묵묵한 경훈이를 특별하게 봐주었고, 며칠 동안 잘 만나다가 술을 먹고 호텔을 갔는데, 경훈이는 서질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 이후로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때마침, 술집에서는 쇼팽의 야상곡이 들렸다.
아, 그랬다.
경훈이의 이야기는 슬픈 야상곡이었다.
“진즉에 말하지 그랬어.”
“왜.”
“내가 좋은 약초가 있었는데, 마침 잘됐네. 내가 챙겨온 게 좀 있거든.”
“응?”
약초 가방이 이럴 때 좋구나!
나는 약초 가방에서 잘게 썬 삼지구엽초를 건네며 말했다. 남자에게 좋은데 차마 표현을 못하겠다.
양을 빗대어 말하자면, 양이 하루에 백 번을 교미하는 것은 이 삼지구엽초 덕분이며, 그래서 음양곽(淫羊藿)으로 불린다.
“경훈아.”
“응?”
“이걸 먹으면 자신감이 좀 생길 거다. 너무 많이 복용하면 감당이 안 될 테니 한 알만 먹어야 돼.”
“고맙다.”
경훈이가 내 두 손을 꽉 쥐며 초롱초롱한 눈을 떴다.
저 눈빛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정녕, 감사하다는 게지.
그때.
“밀수의 현장이냐? 그거 나도 주라.”
철수였다.
“뭘 줘?”
“다 들었거든. 나도 주라고.”
“너도 이게 필요할 때냐?”
“의무방어전을 위해서만.”
그렇다면 뭐.
하는 수 없이 철수에게도 삼지구엽초 몇 알을 건넸다.
누가 보면 마약 거래를 하는 줄 알겠다.
* * *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경훈이의 말 없는 성향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경훈이가 서질 않아 스스로 좌절하며 그 이후로 연락을 못했다지만, 경훈이는 며칠이 지나도록 그 여자를 그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