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1
석 달 후. 낙양.
병장기를 찬 무림인들이 바쁘게 오가는 거리 한구석에 거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모두 십여 명 정도.
다들 깨진 바가지 하나를 놓고 적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바가지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앞머리를 앞으로 내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그는 자신의 왼손만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해 왼손가락 약지에 끼어 있는 반지였다.
그의 앞에는 식은 만두 하나가 던져져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거지들이 그것을 보고도 손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제 새로 합류한 거지 한 명이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옆의 거지에게 물었다.
“저자도 거지인가? 옷도 없고 누더기를 대충 몸을 덮은 게 영락없이 거지꼴인데 어찌 바가지도 없이 앉아 있지? 아까부터 말도 안 하고 자기 손에 있는 반지만 보는 것 같던데, 혹시 미친 게 아닌가?”
“쉿! 조용하게. 석 달 전부터 저 자세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면 믿겠나?”
“헉!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말인가?”
“먹기야 먹지. 아마도 저 만두가 오늘 먹을 음식일 걸세. 워낙 거지꼴이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간간이 먹을 것을 던져주고 가거든. 그러면 가끔 알아서 챙겨 먹는다네.”
“물은?”
“한 번씩 비가 오면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더군. 물도 많이 안 먹어.”
“말도 안 해?”
“물론이네. 벙어리일지도 모르지. 하여간 저자에게 신경쓰지 말게.”
“그건 왜인가? 저런 미친놈을 계속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비록 이곳에는 새로 왔지만 나름대로 이 생활만 삼 년째인데 저런 미친놈은 두들겨 패서 쫓아버리는 것이 상책이네. 괜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이라도 해치면 우리까지 관아에 끌려간다고.”
“우리가 왜 안 그래 봤겠나? 저자를 쫓아내려고 밀쳐도 보고 끌어내려도 해봤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네. 저자가 끼고 있는 금빛 반지를 탐내던 놈도 있었는데, 반지에 손을 댄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네. 그래서 우리는 혹시 개방의 고수가 아닌가 생각하고 그때 이후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있네.”
“아! 자네 말이 사실이면 진짜 개방 고수일 수도 있겠군. 얼굴은 봤나?”
“말도 말게. 바람이 세게 불던 날 잠시 얼굴이 드러났는데 화상을 입었는지 사람 얼굴이 아니었네. 그 때문에 더 접근하지 않지.”
“그렇군. 자네 말을 들어보니 꼭 개방 고수는 아니더라도 무공을 익힌 고수일 가능성이 크군. 아무래도 싸움 도중 화상을 입어 정신이 조금 이상해진 그런 괴인일 듯하군.”
“자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 구걸하기에 좋은 장소라 여기 계속 있긴 하지만 솔직히 저자가 스스로 떠나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안 그래도 무림맹이 칠마종에게 대패해 낙양 성내가 어수선한데 저런 자가 옆에 있으니 정신 사납네.”
“그렇군. 한데 저 반지 좀 자세히 보고 싶군. 혹시 값비싼 반지일 수도 있으니까.”
“아까 내 말을 안 들었나? 반지에 손댔다가 정신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네. 보석 반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반지니 신경 쓰지 말게. 금빛 좀 난다고 뭐 그리 대단하겠나?”
“그래도 한 번 보기만 하는 건데 뭐.”
거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괴걸인에게 다가갔다.
괴걸인은 여전히 반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여보시오! 정말 벙어리요? 그 반지가 당신 것 맞소?”
신입 거지가 괴걸인에게 물었다.
나머지 거지들이 흥미롭게 그 광경을 쳐다봤다.
그들 역시 이제는 괴걸인이 한번은 말이라도 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괴걸인은 대답도 없이 반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신입 거지가 반지를 보며 탐욕의 눈빛을 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거지가 되기 전에 보석 세공을 하던 자였다.
그래서 괴걸인이 끼고 있는 반지가 보통 반지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정확한 값은 알 수 없었지만 정식 감정을 받아보면 은자 몇 냥 정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후후! 이런 바보 같은 놈을 두려워해서야!”
신입 거지가 품속에서 작은 칼 하나를 꺼냈다.
소도(小刀)를 본 다른 거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신입 거지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괴걸인을 쫓아냈으면 하는 표정들이었다.
“반지를 건드리면 탈이 난다고 하니 손가락을 통째로 자르면 될 것 같군. 어디 손가락이 잘리나 안 잘리나 볼까?”신입 거지가 괴걸인의 왼손 약지를 자르기 직전.
“앗!”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신입 거지의 손목을 쳤다.
신입 거지가 소도를 떨어뜨리고 비명을 질렀다.
손목을 보니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웬 놈이냐?”
신입 거지가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젊은 남녀.
남자는 훤칠한 키의 미남이었으며, 여자는 이십 대 초반 정도의 미인이었다.
한데 두 사람 모두 백의무복을 입고 있었다.
거지들이 두 사람의 무복에 새겨진 용 모양의 문양을 보고 소리쳤다.
“영웅무관(英雄武館) 사범들이다!”
“영웅무관이라면?”
신입 거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무관은 낙양의 대표적 무관 중 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관원들 상당수가 석 달 전 무림 연합군 출정에도 참여했고, 남은 관원들 역시 낙양 성내 치안 유지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특히 영웅무관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십대사범 역시 적극적으로 무림맹을 돕고 있었다. 참고로 이들 두 사람은 십대사범에 속해 있었다.
돌멩이를 던진 장본인인 백의여인이 소리쳤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다 해도 거지끼리 이런 짓을 벌이려 하다니. 용서하기 힘들구나. 당장 낙양성을 떠나겠느냐? 아니면 아예 손목을 잘라줄까?”
“용서하십시오. 당장 떠나겠습니다.”
신입 거지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머지 거지들 역시 혹시 불똥이 튈까 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자신들이 수수방관한 것이 사실이므로 지레 겁을 먹은 듯했다.
이제 남은 거지는 괴걸인 한 명뿐.
그는 여전히 반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백의청년이 말했다.
“황 사범. 그만 가도록 합시다.”
“아니에요. 이분 몸과 마음이 다친 것 같은데, 데려가서 구 의원께 보여야겠어요. 이렇게 넋을 잃고 있다가는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몰라요.”
“그래봤자 거지 아니오? 지금 무림맹에서 각 무관에 2차 차출을 요청해 우리 영웅무관 역시 정상적인 운영을 못 하고 있는데, 어찌 이런 자를 데려갈 수 있겠소?”
“이럴수록 한 사람이라도 도와야지요. 제가 볼 때 구 의원께 보이면 제정신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데려가지요.”
“아니오. 어찌 저런 더러운 자를 황 사범이 데려갈 수 있겠소? 마침 주위에 우리 관원들이 있으니 그들을 불러 데려가도록 하겠소.”
“감사해요. 수석 사범님.”
“하하하. 이럴 때만 수석 사범 대우를 해주는 것 같구려.”
백의청년이 휘파람을 불자, 관원으로 보이는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이자를 무관으로 데려간다.”
“무관 어디 말입니까?”
“의무실로 데려가라. 구 의원께 보이면 알아서 치료해주실 것이다.”
“네.”
* * *
영웅무관 회의실.
영웅무관주 성장백(成長白) 주재하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자는 십여 명으로 관주와 총관, 사범, 그 외 무관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성장백이 말했다.
“다들 소식을 들었을 것이오. 조만간 새 무림맹주를 선출한 후 제2차 무림 연합군을 결성한다고 하오. 그에 따라 우리 무관에서도 다시 한번 인원을 차출해야 할 듯하오.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해주시오.”
“관주님. 석 달 전 출정에 참여했던 우리 무관 사범들과 관원들이 대거 전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또 차출된다면 우리 영웅무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겁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출정에 참여하기보다 낙양 무관 연합회 소속으로 성내 치안 유지와 무림맹 총단 방어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겁니다.”
수석 사범 위지형(尉遲衡)의 말이었다.
사범 황설지(黃雪智)가 말했다.
“무림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마당에 우리 무관의 안위만 걱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출정 인원에 약간의 조정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전장으로 사범들이나 관원들을 보내는 것을 원천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황 사범. 그 무슨 말이오? 내가 무림맹을 모른 체하자는 말이 아니지 않소? 저번 출정 때 이미 총사범님을 비롯해 사범들만 다섯 분이 목숨을 잃었소. 게다가 함께 출정한 관원들도 수십 명 전사했소. 이런 마당에 또 외부 출정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위지형이 다소 흥분했다.
조금 전에 사이좋게 성내 치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던 두 사람이었다.
성장백이 미소를 지었다.
“위지 사범. 진정하게. 수석 사범인 자네가 벌써 흥분하면 되겠는가? 총사범이 전사한 지금 자네가 우리 무관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네. 그건 그렇고 아까 들으니 순찰을 나갔다가 거지 한 명을 데려왔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그것 역시 황 사범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위지형이 오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반지 때문에 손가락을 잘릴 뻔했던 괴걸인을 구해준 일이었다.
“거지를 구해준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우리 무관으로 데려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정마대전 때문에 관원 수도 줄고 재정이 어려운데 그런 자를 데리고 와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데려오면 치료만 해주고 보낼 수도 없고 며칠은 밥도 먹여야 할 건데 대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위지 사범.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네. 이럴 때일수록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아야지. 나중에 정말 우리 무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을 특별한 사이로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안 것인가?”
“수석 사범님과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황설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위지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황설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얼마 전 황설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가 거절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그로서는 이렇게 종종 다른 일로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설지를 좋아하는 마음에 변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위지형이 곧바로 안색을 풀며 말했다.
“저와 황 사범 사이는 여전히 좋습니다. 정마대전이 끝나면 제가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입니다. 황 사범. 오늘 일은 내가 사과하겠소. 그러니 마음을 푸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수석 사범님께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말조심해주시길 바랍니다.”
“으음······.”
위지형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도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장백이 말했다.
“무림 연합군 2차 차출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일단 새 맹주부터 선출한다고 하니까 그때 가서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다만 그때까지 이곳 낙양성을 사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오. 출정을 나갔던 삼십만 병력이 거의 전부 궤멸되고 그 십 분의 일만 살아 돌아왔으니 무림맹도 이제 풍전등화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관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무관 역시 형식적이나마 무림맹 소속이니 칠마종이 낙양 무림을 장악하면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야 할 겁니다.”
영웅무관 총관 유덕개(柳德開)의 말이었다.
“유 총관의 말은 유사시 우리 무관 역시 사천성으로 본거지를 옮겨야 한단 말이오?”
“네. 지난 석 달 동안 무림 상황이 급변해 정파 무림인들이 마음놓고 다닐 곳은 하남성과 사천성 두 곳밖에 없어졌습니다. 기세를 올린 칠마종 놈들이 지금 전 병력을 동원해 이곳 낙양이 속한 하남성 공략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자는 겁니다.”
“유 총관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나는 끝까지 무관을 사수할 생각이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오늘 회의는 여기서 그치겠소. 다들 돌아가 일을 보시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