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98
황산 혈교 총단에 영웅맹 이십만 병력이 도착한 것은 다음날 저녁 무렵이었다.
백무명과 백여희 등 영웅맹 무사들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총단까지 올라오는데 그들을 막는 어떤 함정이나 기관도 없었다.
오히려 영웅대회 개최처럼 혈교 무사들이 정중하게 영웅맹 무사들을 지정된 장소로 안내해주었다.
혈교 쪽 안내 총책임자는 혈교 총관 극혈사신(極血死神)이었다.
“하하하. 영웅맹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본교와 귀맹 사이에 불미스러운 점이 다소간 있었지만 모든 것을 잊고 본교 총단을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본교는 이번 생사결의 장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대결이 될 수 있도록 감독관 역할까지 할 겁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혈교주께서는 어디 계신가요? 천마신교 측은 모두 도착했나요?”
“교주님께서는 교주전에 계십니다. 내일 생사결 때 감독관 자격으로 나타나실 겁니다. 천마신교 측은 이미 천마 교주님을 비롯해 모든 병력이 집결해 있습니다. 다만 귀맹과는 반대편이라 내일 생사결 전까지는 만나보기 힘들 겁니다.”
“누구 마음대로 혈교주가 감독관을 맡는다는 것이오? 천마에게 유리하게 심사를 하겠다는 속셈이오?”
대륙표국주 우문성도의 말에 극혈사신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말이 감독관이지 승부에 관여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일 두 분 중 승자가 귀맹과 천마신교 두 곳을 모두 다스리게 될 텐데, 자칫 불공정한 개입을 하려다 실패하면 그 후유증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 말씀은 내일 우리 부맹주께서 승리하더라도 혈교 측에서는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다만 다시 날을 잡아 그 승자와 비무를 벌여 최종 승자를 정할 수는 있겠지요.”
극혈사신의 말에 영웅맹 무사들이 술렁였다.
혈교주가 의도하는 바가 어느 정도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백무명과 천마의 대결 중 승자와 다시 생사결을 벌여 최종 승자가 상대편 병력을 흡수하는 것.
그것은 무림의 최종 지배자를 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신선계 반선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긴 했지만, 이렇게 단 두 번의 대결로 무림의 운명을 정하는 것은 무림사 이래 초유의 일이기도 했다.
극혈사신이 말했다.
“이번 생사결은 수하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각 세력의 수장들끼리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그 뜻에 본교의 교주님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본교와 천마신교가 귀맹을 협공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상자를 피할 수 없어 본교 교주님과 천마 교주님 두 분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지요. 그 뜻을 여러분께서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한데 왜 천마 교주께서 먼저 나서신 것이지요?”
백여희의 물음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하하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두 분 수장께서 결정하신 일이나, 아무래도 천마 교주께서 여기 계신 백 부맹주님과 조속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진영을 세우고 휴식을 취하시지요. 이곳은 본교 총단에 있는 사대광장 중 한 곳으로 한 번에 삼십만 무사도 수용할 수 있으니, 막사를 설치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아, 그리고 물과 음식, 술 등도 충분히 비치되어 있으니 내일 아침까지 푹 쉬시기 바랍니다.”
“생사결이 내일 정오에 열린다고 했던가요?”
“네. 장소는 대연무장입니다. 본교 총단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으로, 한 번에 백만 무사도 수용할 수 있지요. 내일 대략 팔십만 무사가 모이게 될 테니 여유가 있을 겁니다. 그럼 내일 아침 제가 직접 모시러 오겠습니다.”
극혈사신이 포권을 한번 한 후 혈교 무사 백여 명과 함께 돌아갔다.
이제 혈교 사대광장 중 한 곳인 서혈광장(西血廣場)에 모인 사람은 영웅맹 무사들뿐이었다.
백무명은 별말 없이 혈교 총단 전체를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백여희가 소리쳤다.
“어서 막사를 설치하라! 내일 아침까지 휴식을 취할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영웅맹 무사들이 급히 막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설치한 막사는 물론 백무명이 거주할 지휘 막사였다.
지휘 막사가 설치되자, 자연스럽게 백무명을 비롯한 지휘부 고수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백여 명이었다.
얼마 후 긴급 작전 회의가 열렸다.
“혈교 놈들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내일 생사결 전에 우리를 기습 공격할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매화검선의 물음이었다.
백여희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음모가 있다면 차라리 내일 생사결 때 있겠지요.”
“부맹주님도 같은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내일 생사결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니 무사들로 하여금 휴식을 취하도록 하십시오. 다만 생사결 후 그 어떤 결과가 생겨도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니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주십시오.”
백무명의 말에 영웅맹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였다.
그때 누군가 한 사람이 물었다.
“외람된 질문이나 이번에 부맹주께서 천마에게 패하면 본맹 무사들을 놈에게 넘긴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맹주님도 허락한 사항인지 궁금합니다.”
“맹주님께도 수락하셨습니다. 그렇게만 알고 있으시면 될 겁니다. 더욱 확실한 이유는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 게 설사 제가 패하더라도 본맹 무사들이 천마신교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 그럼 약속을 파기하실 생각입니까?”
“파기가 아니라 이미 천마 그자가 약속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저도 지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게 절대 제가 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백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순간 그의 몸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일어났다.
“아!”
“오!”
지휘부 고수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백무명의 무공이 뛰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 하루 만에 그 무공이 몇 배 이상 높아진 것 같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있었던 백무명의 운공요상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내공 발현이 억제되었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한 것이다.
백여희도 그 사실을 아는지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회의는 내일 새벽에 다시 열기로 하고 어서 돌아가서 쉬도록 하십시오. 최악의 경우에는 본맹 무사들의 세 배가 되는 병력과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깊은 밤.
생사결을 하루 앞둔 영웅맹 진영은 여전히 긴박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진에 들어와 있는 셈이니, 다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무명 또한 마지막 운기조식을 하며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운공요상을 통해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밤이 되자 슬그머니 내일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호지세였다.
이제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백무명이 운공을 멈추고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 할 바로 그때.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인영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스스슷.
은잠술을 펼쳤기 때문인지 막사 밖에 있는 경계무사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것 같았다.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그는 백무명을 보자마자 복면을 벗었다.
한데 그는 생사신의가 아닌가.
“교주님.”
생사신의가 고개를 숙였다.
백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신의께서는 제가 진짜 천마라고 생각하신 것 같군요.”
“네. 성녀님과 매 소저에게 모든 내용을 들었습니다. 두 분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많은 의문이 있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의문이 한 번에 풀렸습니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 급히 아뢸 게 있어 이렇게 은밀히 왔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그게······ 성녀님과 매 소저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감금되었습니다.”
“아! 어찌 그런 일이······ 이유가 무엇이오? 나에게 기밀을 이야기해준 때문이오?”
“자세히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짜 천마가 두 분을 직접 체포했고, 자신만이 아는 곳에 숨겨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일 생사결 결과에 따라 두 분이 처형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보십시오.”
“내일 교주님께서 가짜 천마를 이기게 되면 즉시 성녀와 매 소저 두 분이 처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사결 결과를 알게 되는 즉시 집행되도록 무사들이 모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가짜 천마 쪽에서 뭔가 음모를 꾸밀 것으로 예견하고 있었으나,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신의께서 제게 이 사실을 알려줄 때는 그 해결방안도 생각했을 것 같군요. 어떻게 해야 성녀와 매 소저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내일 생사결 때 절대 이겨서는 안 됩니다. 일부러 패하십시오. 이후 불복을 하면서 가짜 천마를 제거한다면 성녀와 매 소저 두 분은 무사할 겁니다.”
“그게······.”
백무명이 난감해했다.
생사신의가 나름대로 고민한 방책이란 것은 알겠는데, 실행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많았다.
백무명이 내색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다른 방도는 없겠습니까?”
“네. 지금으로서는. 그래도 일단 돌아가서 두 분이 갇혀 있는 곳을 수색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감시를 당하고 있는 터라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시면 교주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성녀님과 매 소저 두 분이 그런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생사결 전에 저에게 수색 결과를 전음으로 알려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생사신의가 다시 은잠술을 펼치며 사라졌다.
스스슷.
홀로 남은 백무명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성녀와 매영설의 위기 상황은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던 그였다.
‘가짜 천마 그놈이 대결 전에 내 마음을 흔들려는 수작 같구나. 아마도 놈은 생사신의가 내게 이 사실을 알려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성녀와 매 소저 두 사람만 체포했을 리가 없었겠지. 신의가 말한 대로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른 방도를 생각하긴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백무명이 깊은 상념에 잠겼다.
백여희를 부르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왠지 이번 일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편히 하자. 모든 것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면 무얼 걱정할 것인가. 인생만사 새옹지마인 것을.’
백무명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무형검의 논리를 생각했다.
그 요체는 바로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태극(太極)이 곧 무극(無極)이라고 했던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자.’
백무명이 눈을 감고 깊은 묵상에 들어갔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