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0
10.
본인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는 이현을 본 이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신경 안 써.”
“그, 그래?”
“응. 나 저기 노리개 볼래.”
“그럴까?”
어릴 적 심하게 놀림당한 이후로, 자신의 외모를 관찰하는 시선과 수군거림에 민감해하던 이린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소와는 달리 숨기려 하지도 않고 덤덤하기만 했다.
이현은 동생이 괜히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어 잠시 망설였으나, 우선 이린이 가리키는 노리개 가판으로 향했다.
“아이고, 어서 오십쇼~”
“린아 잘 안 보이지?”
“응.”
아직 키가 작아 가판이 잘 보이지 않는 이린을 위해, 이현은 가판의 물건을 볼 수 있도록 이린을 안아 올려 주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린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친 상인이 이린의 푸른 눈에 혼비백산해 뒷걸음질 쳤다.
“히익! 괴, 괴물!!”
“아.”
이 반응을 잊고 있었네.
장주가 된 후에는 제법 유명세를 탔기에 연가장을 찾는 이들 중 이린의 특이한 외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하도 말똥말똥 쳐다봐서 구경거리가 된 기분은 느꼈어도 저렇게 당황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봤는데.
‘오랜만이라 좀 신선하군.’
다들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두근두근 기대에 찬 얼굴로 구경하곤 했으니 이런 반응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이현의 생각은 달랐다.
“무례하군요. 사람을 보고 대뜸 그런 소릴 내뱉다니.”
“그, 하지만…….”
“아이가 놀랄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요, 요상하게 생긴 아이가 있는데 당연하지! 허참, 거 사람 맞소? 요물 아니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익숙한 수준이었다.
‘음, 그래도 여전히 기분 나쁘긴 하네.’
많이 무뎌져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호남에서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면 그런 식의 태도는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아저씨가 놀란 거 같아 시선을 피하고 있던 이린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오빠 이런 목소리 태어나서 처음 들어.’
화난 걸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고개를 돌려 오빠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버둥거려 봐도 각도상 보이질 않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린아, 가자.”
이린의 버둥거림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는지, 이현은 이린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고쳐 안은 채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서늘한 목소리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린을 달랬다.
“아저씨가 이상한 말을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노리개는 오빠가 나중에 더 좋은 것들로 사 줄게.”
“괜찮아. 신경 안 써.”
이렇게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보호를 받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쩐지 적응이 안 돼서 부끄러워진 이린은 오빠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이린의 태도에 아까 그 상인의 말에 동생이 상처받았으리라 짐작한 이현은 이린을 꼭 끌어안은 채 익숙한 주루로 들어섰다.
이현의 얼굴을 본 점소이들이 서둘러 다가와 인사를 하고 루주를 부르러 달려갔다.
“소장주님!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도 같이 오셨군요.”
“비어 있는 별실 있습니까?”
“예, 이리로 오십시오.”
이곳은 연가장에서 운영하는 주루였다.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주루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은 당연히 이현과 이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별실로 안내했다.
‘와, 여기도 오랜만이네.’
별실에 도착해 이린을 의자 위에 내려 준 이현은 몸을 숙여 시선을 맞추고 다시 이린의 상태를 살폈다.
“미안해, 린아. 많이 놀랐지?”
“아니. 나보다 그 아저씨가 더 놀랐을걸.”
연가장 오누이의 외모는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으니, 지금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저씨는 사색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근방의 토지는 대부분 연가장의 소유였고, 연가장이나 연가장 소유의 객잔과 주루에 납품하는 것이 주수입인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앞에서 당당하게 연가장의 금지옥엽을 모욕해 소장주를 화나게 한 지금, 그 아저씨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르고 했겠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네.’
이린이 연가장의 고명딸이 아니라 힘없는 서민 가정의 아이였다면 무슨 소릴 더 들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오빠가 정말 그 상인을 괴롭힐 리는 없겠지.’
그 정도로 집요한 성격은 못 되었다. 그저 경고를 했을 뿐.
“오빠가 화내는 거 처음 봤어.”
“우리 린아를 모욕하는데 화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래?”
“그래.”
마냥 착하게만 보였던 이현의 의외의 모습에 이린은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실은 안 보이는 데서 호구 잡히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진지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빠의 단정한 얼굴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빠 너무 좋아.”
“오빠도 린아 좋아.”
이린이 이현의 목을 꼭 끌어안자, 이린 앞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던 이현도 이린을 꼭 끌어안았다.
‘오빠가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다는 걸 알면 오빠는 상처받을까?
그렇게 오누이가 알콩달콩 우애를 다지고 있는 사이, 시키지도 않은 요리들이 알아서 식탁 위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린아 매운 거 먹을 수 있으려나?”
“먹어 볼래.”
아직 어린 몸이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했던 이린이 선선히 손을 뻗었다. 이현이 작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 줄 때였다.
“소장주님.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지금요? 알겠습니다. 린아, 잠깐 혼자 먹고 있어.”
“응. 갔다 와.”
팔다리가 짧아 다소 불편함이 있었지만, 착한 오빠가 바지런히 음식을 쌓아 준 덕분에 혼자서 식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맛있다. 진짜 맛있어.’
솔직히 아침에는 머릿속이 엉망이라 대체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제정신으로 음식을 먹고 있으려니, 동굴 안에서 매일매일 곡식으로 만든 벽곡단과 호수에서 잡은 생선만 먹고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풍부한 육즙과 향신료를 사용해 감칠맛을 더한 호화로운 음식 맛이 한층 더 혀에 스몄다.
‘같이 먹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당연히 매일 함께 같은 음식을 먹어야 했던 이도 떠올랐다.
“남궁청휘.”
자신과 마지막까지 동굴 속에서 함께했던 이의 이름이었다.
[그럼 저는 연 소저에게 취선루의 요리를 대접하지요.] [네. 풍광도 좋은 곳이니 원하신다면 연 소저를 위해 층 전체를 전세 내드리겠습니다.]이제 이뤄질 리 없는 약속을 떠올리며 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이 정말 꿈이 아니고 남궁청휘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지금쯤 남궁세가에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나중에 후회하셔도 저는 몰라요.] [얼마든지 후회해 드리겠습니다.]자신을 향해 웃던 그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후회는 내가 하는구나.”
“후해?”
“―!!”
오랜만에 느끼는 고기의 맛을 음미하며 한숨을 내쉬던 중, 식탁 밑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이린은 순간 얼어붙었다. 자신이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이린은 곧 긴장을 풀었다.
‘이런, 아직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이라는 걸 자꾸 까먹는구나.’
이린은 아직까지 현실감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가볍게 혀를 찼다.
식탁 밑에는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이는 네다섯 살 정도 됐을까?
“아가야, 거기서 뭐 하니?”
“민아 아가 아니야. 여기서 아빠 기다리고 있어.”
꼬르륵―.
자그마한 아이의 뱃고동 울리는 소리에 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말을 걸지 않았어도 곧 저 소리 덕분에 아이의 존재를 깨닫지 않았을까.
“배고프지 않아?”
“배고파.”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여, 이린은 아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을 골라 접시에 차곡차곡 쌓았다.
어린 이린을 위한 음식이 대부분이라 이린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아이가 먹기에도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젓가락질은 할 줄 아니?”
“그게 뭔데?”
“그래, 그렇겠지. 이리 오렴. 언니가 맛있는 거 줄게.”
“민아는 여기서 움직이면 안 돼. 아빠가 기다리랬어.”
“먹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그렇게 안 먹고 있으면 배고파서 아빠 못 기다려.”
“정말?”
“그래, 정말.”
대체 어떤 애비가 애를 이런 곳에 두고 간 건지. 찾으면 한마디 해 줘야겠다 생각하며 이린은 아이의 입에 음식을 하나씩 넣어 주었다.
빵빵해진 볼로 오물오물 열심히 먹고 있는 아이는 옷도 꼬질꼬질하고 무척 지쳐 보였지만, 험하게 자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뭐지, 이 아이는?’
누군가 주루에 아이를 버리고 간 걸까? 하지만 이런 별실에는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을 텐데.
이린이 먹여 주는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으며 행복한 얼굴로 배를 두드리던 아이가 이린을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맛있다아. 언니는 선녀님이야?”
“선녀? 아, 음… 맛있는 밥을 주는 사람이니 뭐 그 비슷한 거겠지.”
“와아. 그래서 눈도 예쁘구나.”
“그래? 예쁘니?”
“응. 눈도 머리카락도 반짝반짝해!”
어린아이의 말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살면서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일까.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이린은 아이에게 고기만두 하나를 더 건넸다. 아직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두를 하나씩 손에 쥐고, 두 아이는 마주 보며 행복한 듯 웃었다.
‘내가 제때 혼인했으면 이만한 딸이 있었을지도.’
가족을 잃고 이래저래 혼기를 놓쳐 버린 데다 혼약자까지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뿐인가. 결국에는 집도 잃고, 살해당하기까지.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불운한 인생이었다.
뭐, 제때 혼인했다고 잘살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좀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쾅!
“찾아라!”
그 순간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별실의 문이 열리며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아이가 여기 있다!!”
‘이미 글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