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41
241.
“그들이 쉽게 걸려 주면 좋겠다만.”
혈교가 부지런히 여기저기 헤집어 놓은 덕분에 혈교에 관한 일에는 다들 뒷걸음질 치는 분위기였다.
“혈교를 척살하는 것은 무림맹의 오랜 숙원이 아닙니까?”
“어느 단체든 그리 단순하고 깨끗할 수 없다는 거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하아.”
혈교로 인해 결속이 유지되고 있다고는 하나 무림맹은 거대한 무력 집단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이권을 손에 쥔 자들은 언제나 현상 유지를 바라는 법이었다.
“어차피 혈교가 없어지면 다시 마교와 반목하겠지만.”
“마교인가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주세하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였다.
“그 일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아, 이현의 벗들이 함께였다고 들었는데.”
“붙잡혀 있는 것은 한 명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가.”
“혹시 다른 이들이 더 있다면… 직접 근방에 가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혈교의 본거지 근처이니 위험성은 있지만 검성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고 한다면 대답하기 궁한 것도 사실이니, 위치만 알려 주면 우선 직접 확인해 보지.”
이현 일행이 마지막으로 행적이 끊긴 곳은 이미 확인했다.
‘이현과 마지막에 함께 동행하고 있던 건 심여준과 노악이라고 했지.’
백리한은 아직 항주에 있고, 청운진인은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며 동행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 * *
‘하지만 위지선은 왜 굳이 그자를 데리고 있는 거지.’
만약 연이현이 맞다면 검성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인질로 삼으려는 걸까?
하지만 검성 같은 협객들은 딱히 친인척이 아니라 아무 민간인이나 붙잡아 놔도 효과가 있을 텐데.
위지선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기분파에, 다소 신경질적인 경향이 있었다. 평소에는 부하들을 폭행하며 기분을 풀지만 포로가 생겼다면 그쪽에 패악을 부릴 가능성도 높았다.
‘내가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지만.’
간단한 확인 정도라면 모를까 혈교의 정보를 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교에서 혈교로 흘러 들어가는 이는 있어도, 혈교에서 신교로 넘어오는 이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었다.
“후우.”
혈교 내의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는 세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연화문 앞에서는 다소 허세를 부리곤 했지만, 역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신녀?”
“대모님.”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의 기척을 기민하게 알아채는 제갈윤주의 목소리에 세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모를 불렀다.
“방금 소운이 왔다 갔는데 만나지 못했나요?”
“아니요. 엇갈린 모양이네요.”
세하의 목소리에서 안도의 기색을 읽은 제갈윤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리 불편합니까?”
“아닙니다.”
세하가 돌아오지 못한 몇 년간, 신교는 몹시 위태로웠다. 세하의 부재 시 전권을 맡고 있는 제갈윤주는 앞을 보지 못했으므로 그 옆에서 보좌하는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본디 언제나 그 역할을 도맡아 해 왔던 건 소운이었다.
“소운이 혈교로 간 것은 나름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상을 치료한 세하가 혈교로 돌아왔을 때, 소운은 제갈윤주의 곁에 없었다.
그렇게 치를 떨며 싫어하던 교주의 곁에 가 있었다.
“덕분에 신교는 무척 한적해졌고요.”
그간 신교와 혈교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이들은 대부분 소운을 따라 혈교에 투신했다.
‘내가 굳이 데려가야 할 이를 선별할 필요도 없어졌지.’
물론 아직 신교에 남아 이쪽을 감시하는 눈도 있겠지만 세하가 상단을 정리하게 되면서 상당수가 은근슬쩍 혈교 내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소운이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백린을 보러 왔었지요.”
그리 말하자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은 백린이 고개를 들었다.
제갈윤주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거대한 흰 뱀은 먹이를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아 소운이 종종 직접 끼니를 챙기러 왔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내용이 담긴 목소리가 세하의 머리에 울렸다.
―얼마 전 혈교에서 붙잡은 정파의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정파의 젊은 청년이 이 근방까지 접근해 왔다 붙잡혔는데 혹시 알고 있느냐고요.
―…그 얘기를 하러 직접 찾아왔단 말입니까?
소운은 혈교로 넘어간 후로도 종종 제갈윤주를 찾아왔다.
‘어머니께서 신교의 교주였을 무렵부터 함께해 온 이들이시니 절친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특히 소운은 주선하와 제갈윤주의 도움을 받아 오라비의 노름빚에 팔려 갈 뻔한 것을 두 번이나 모면하고 신교를 따르게 되었다 하여 신교에 애정이 깊은 이였다. 혈교가 패망하여 도피 생활을 할 때에도 신교를 버리지 않고 재건을 위해 가장 고생한 이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이가 신교를 버리고 혈교로 떠났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에 대해 알 거라 생각해서 추궁하러 온 건지, 궁금해할 거라 생각해 알려 주러 온 건지 모를 일이지요.
―더 자세한 말은 없었습니까?
―그 청년은 위지선이 직접 수하들을 시켜 감시하고 있다는데 상태가 어떤지까지는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합니다. 다만….
―다만?
―방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 의외로 고문은커녕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치료요?
위지선이 누군가를 치료한다? 귀를 의심할 만큼 생경한 문장이었다.
그것도 대상이 그 연이현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닌지 제갈윤주 역시 애매한 표정이었다.
―추측일 뿐입니다만….
―위지선 성격상 뭔가 아는 게 있든 없든 껍질부터 벗길 것 같은데 의외군요.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으니… 아니, 지금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갈윤주는 한숨을 쉬며 백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화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주세하 역시 붙잡힌 이가 연이현이든 아니든 그의 사지가 무사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편이었다.
―교주였다면 분명 그렇게 했겠지만, 위지선이 자기 선에서 처리했는지 아직 모르는 눈치니…. 이대로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을 겁니다.
교주는 검성을 싫어하고, 연이린 역시 혈교의 일을 방해했다 여겨 죽이려 했으니 그 혈연인 연이현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다면 기뻐할 것이다.
‘게다가 남자들이 시기할 만큼 잘생긴 것으로 유명하니.’
교주도 젊은 시절에는 제법 나쁘지 않은 용모였다던데, 어떻게 보아도 연이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백린은 제 먹이를 알아서 찾아 먹을 수 있는데 너무 응석을 받아 주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큰 아이이니 먹는 양도 보통이 아닌걸요.”
두 사람은 백린을 쓰다듬으며 겉으로는 실없는 대화를 계속했다.
―대모께서는 연이현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신녀께서도 드디어 사내에게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농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연화문의 조카이니 실종 사실이 알려지면 검성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도 그 일 때문에 나갔던 것이 아닙니까?
세하는 아직도 검성에게 들은 진실에 대해 대모에게 묻지 못했다.
‘내가 정말 선대 교주의 딸이 아니라면 어째서 나를 지금껏 키워온 걸까.’
신교에서 갈 곳 없는 아이를 거두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교주와 부교주의 아이로, 신교를 이끌 사람으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신교를 위해 살도록, 어머니의 뜻을 이어가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다.
신교를 위해.
‘당신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교가 거둔 수많은 아이들. 전대 교주의 이념을 위해, 신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
그들과 자신이 과연 다를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달라서는 아니 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선대 교주의 자식이라 내가 다른 신교의 무인들보다 뛰어난 거라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실은 반대였던 게 아닐까.’
연이린이 검성과 천마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기도 했지만 어쩐지 납득할 수 있었다.
그 강함과 그 자질은 우연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층 더, 이린이 부러워졌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을 가졌을까.
다정한 가족. 풍족하고 평화로운 집안. 놀라운 자질과 무공.
세하는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모두 가지고, 세하가 가진 것마저 빠지지 않고 가졌다니.
만약 세하 자신에게 무공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신교의 신녀로 있을 수 있었을까?
자질이 뛰어나기에, 자신을 주선하의 딸로 만들고 신교를 위해 살도록 만든 게 아닐까?
나에게 무공의 재능이 없었어도 대모가 자신을 이리 아꼈을까? 이린이 저의 가족들에게 사랑받듯 애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철이 든 이후로 지금까지 누구보다 신뢰하고 의지해온 이였으나 이를 말로 꺼내 확인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근간을 흔드는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 나올 것만 같았다.
본래 두 사람은 본래 신교에 관한 모든 것을 공유했지만 주선하에 대한 일을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에 대해 말해 준 건 내가 어릴 때뿐이었지. 그 이후에는….’
주선하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하지만 주선하를 기억하고 실제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은 떠올리는 것이 괴로운 듯 다들 말을 아꼈다.
위지선은 교주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 듯했으나 주세하에게 공유하기는커녕 약 올리는 것을 즐겼기에 나중에는 굳이 묻지도 않았다.
세하는 한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곧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언제든 때가 올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아가 어찌 될지 걱정입니다.
―위지선 말씀이시군요.
아주 어릴 적에는 주세하와 위지선 둘 다 제갈윤주와 소운의 손에 자랐다고 했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교주가 위지선을 데려갔고, 주세하만이 신교에 남아 선대 교주의 비급을 익혔다.
덕분에 위지선과 함께한 어린 시절은 짧다.
‘어릴 적에는…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너무 오래던 기억이라 이제는 남은 추억조차 없지만.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키워 온 제갈윤주는 그렇지 않았기에 종종 위지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교주와 부교주가 모두 무사하기를 바라십니까?
―…신녀의 혈육입니다.
그 말에 주세하는 얼굴을 굳히고 몸을 일으켰다.
―그쪽은 저를 혈육으로 여기지 않는데 저는 그들을 걱정해야 합니까?
세하의 말에 제갈윤주는 침묵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복잡한 눈을 했으나 시선을 거뒀기에 세하 역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모께서 심려가 크신 듯하니 저도 잠시 교주께 다녀오겠습니다.”
“…….”
돌아오자마자 다시 자리를 비우는 세하를 대모는 잡지 않았다.
‘내가… 만약 주세하의 딸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의 자식이지? 그리고 위지선은? 위지선과 내가 쌍둥이 남매인 건 맞는 걸까?’
그 길로 교주를 찾아갔지만 교주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얼굴도, 위지선의 얼굴도 찾을 수 없었다.
“곽선후… 곽선후 네놈이 또 내 앞길을 방해하는구나!”
와장창!
연이린이 발견해 가지고 있다던 신교의 비서를 쫓던 부하들이 갑자기 나타난 곽선후에게 몰살당하고, 기껏 찾아낸 책 역시 곽천영이 불태웠다는 소식이 교주에게 전해졌다.
덕분에 그 이후 교주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
우드득!
“다른 소식은 없느냐.”
“송구합니다.”
문파나 세가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는 대부분 성공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혈강시 제조에는 줄줄이 실패하거나 들켜서 쫓겨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심기가 평안할 리가 없었다.
비고에 끌어들여 강호인들을 살해하는 것도 이제는 쉽지 않았다. 애초에 선대 교주인 주선하가 찾아 놓은 것들이었으니.
‘부인이 부지런히 쌓아 놓은 유산을 낭비하다 결국 바닥까지 드러내는구나.’
수년에 걸쳐 주선하의 유산을 소진하고 이제는 남은 것도 많지 않았다. 그간 그 유산이 무사했던 것은 주세하가 열심히 퍼 주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오랫동안 일궈 온 계획이 실패해 모든 것을 잃은 주세하는 능력 부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저 아비의 패악을 지켜볼 뿐이다.
‘처음부터 이리할 것을.’
적당히 부친의 패악질을 받아 주고 물러난 주선하는 마침 위지선이 부재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용모를 바꿔 몰래 내부로 숨어들었다.
‘연이현인지 확인하려면 내가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
동행했다는 연이현의 벗들은 청운진인이나 백리한만큼 준수한 얼굴이 아니니 틀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 * *
연화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연가 상단의 분점에 들러 전서구를 보냈다.
본래 욕심 없는 연적훈이 기를 쓰고 상단 확장을 한 것은 집을 떠난 누이가 어디에 있든 편히 연락을 보내라고 한 일이었으니, 수년 만에 그 보람이 빛을 본 셈이었다.
‘이현이 그쪽 지역을 확인한 건 이린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대외적으로는 무림맹의 의뢰로 혈교를 탐색하고 있던 거니 무림맹 쪽에도 연락을 넣도록 해야지.’
세상일이란 명분이 중요한 법. 세상은 실종된 여동생을 찾다 화를 당한 것보다는 대의를 위해 일하다 화를 당했다는 쪽을 더 높이 쳐 줬다.
‘나도 나이를 먹었군. 아니, 세상 물을 먹은 걸까.’
좀 더 일찍 이런 요령들을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는 언제나 늦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10년이나 늦게 태어난 남동생은 자신과는 달리 늘 요령이 좋았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할 테지.
‘그럼 일단 이현의 행적이 끊긴 곳부터 확인해 볼까.’
이현과 그 벗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과 세하에게 들은 혈교의 근거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일단 혈교의 근거지가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도중에 무언가 다른 흔적이 보일지도 몰랐다.
“그 아이들이 그리된 건 다 내 잘못이니.”
자신이 조금만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지도 몰랐다.